이 가을, 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이드웨이를 간다 산타바바라든 어디든
이런 설렘의 계절에는 영화 또한 로드무비가 제격이다. 길을 떠나면서 여러 사람과 사건을 만나게 되고, 그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길 위의 영화 말이다.
그동안 수많은 로드무비가 가을 속을 지나갔다. 내 인생에 끼어든 영화도 무수히 많다. 한 여인을 두고 삼형제가 사랑의 몸살을 앓는 〈가을의 전설〉. “이 길과 똑 같은 길은 없어! 세상의 길은 모두 다르니까.”라는 대사로 로드무비의 대명사가 된〈아이다호〉. 동경 뒷골목, 노란 은행잎 빼곡한 길에서 삶을 재조명하는 〈텐텐〉. 특히 킬러와 인질의 사랑을 그린 〈섬머타임 킬러〉 는 압권이다. 금발의 주인공이 오토바이를 타고 광란의 질주를 하는데, 억새풀 사이로 ‘Like a play‘라는 곡이 감미롭게 흘러 매혹적이다. 꼬깃꼬깃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이 영화들은 틈만 나면 재생되어 내 여린 감성을 자극하고 삶을 간섭한다.
우리영화 〈산타 바바라〉는 일과 사랑이 뒤엉켜 풀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한 청춘남녀를 미국 서부 산타바라라로 떠나보낸다.
광고 전문사원(AE라고 부름)‘수경’(윤진서 분)은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다. 밤낮없이 일에 매달려 산다. 고객과 술 마시는 일도 잦아 다른 곳에 눈 돌릴 겨를이 없다. 일중독자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광고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영화음악감독인 ‘정우’(이상윤 분)라는 청년을 만나게 된다. 이 사람은 매사가 무사태평이다. 좋은 게 좋다는 주의. 선배가 사기치고 도망가는 바람에 채권자가 들이닥쳐 자신의 분신과 같은 기타를 들고 가버려 머릿속이 오직 기타 찾는 일로 가득 차 있다.
과음 하던 날, 정우가 횡설수설 하다가 탁자에 머리를 박고 잠들어 버린다. 들쳐 업고 바래다주는 과정에서 수경은 이 남자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가 재혼하여 미국에 산다는 것도. 자신도 언니와 이복인 것을…. 수경은 내색하지 않고 일에 열중한다. 녹음을 위하여 스튜디오가 있는 산타바바라로 함께 출장을 간다. 그곳에는 영화 〈사이드웨이〉에 나오는 유명한 와이너리(양조장)가 있고, 끝없이 펼쳐진 포도농장이 있으며, 맛있는 와인이 있다.
LA에서 해안 도로를 타고 북서쪽으로 약 1시간 반 정도 올라가면 산타바바라다. 아름다운 석양, 온화한 기후, 스페인식 건축양식, 팝스타 ‘마이클잭슨’이 살았다는 네버랜드…. 나도 몇 년 전에 그곳에서 갔었는데, 바다로 길게 뻗은 부두가 인상적이었다. 기다란 부두 끝 바다와 맞닿은 자리에 서니 세상 시름이 다 녹는 것 같았다.
둘은 와인에 취한다. 〈사이드웨이〉의 이혼한 교사 ‘마일스’가 그랬던 것처럼. 마일스가 찾아가는 와인 여정은 샛길(사이드웨이)같은 것 이었다. 이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사람이 그곳에서 새 길을 찾는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마일스를, 그의 사이드웨이를 동경하는 두 사람 앞에 과연 어떤 길이 나타날까. 영화는 끝없이 펼쳐진 해안도로, 확 트인 바다, 석양의 타는 노을을 보여주며 길을 정하라고 재촉한다. 아! 검붉은 태양의 불콰함은 마일스가 햄버거와 함께 마셔버린 ‘슈발블랑’의 맛을 방불케 한다.
해변을 돌아 스페인 풍 빨간 지붕이 즐비한 주택가 길을 걸을 때 정우가 비장한 어조로 말한다. “우리 아버지처럼 엉성한 사랑은 하지 않을 거야.”수경이 답한다. “다 사정이 있었을 거야.” 정우가 수경을 돌려 세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이 무슨 사랑인지 알아요?” “…” “외사랑 이라고요. 그것은 짝사랑하고 달라요. 상대방이 낌새를 알아차리고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랑 말예요.”수경이 함박웃음을 터트린다. ‘술에 곯아떨어진 날 감지했어요. 우리는 비슷한 상처로 힘들어 하잖아요.’수경의 마음이 스르르 열린다.
한편 영화는‘취하라’는 메시지도 진중하게 전한다. 일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사랑에 취하고, 인생에 취하라. 계속 취하라!
시인 보들레르도 ‘취하라’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늘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거기 있다/ 이것이야말로 본질적인 문제이다/ 어깨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하는/ 시간 신의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 늘 취해 있어야 한다.’후략.
‘취(醉)하지 않으면 취(取)할 수 없다.’고 말하는 한양대학교 유영만 교수는 “막히는 길에서 오마이 갓!”을 연발 하면 갓길이 쫙 열린다고 하며 웃었다.
이 가을, 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이드웨이를 간다. 산타바바라든 어디든.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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