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음악 해외진출의 거점…문화 다양성 견인 / 올 소리축제 세계문화의집 관장 참석 협력 논의
지난해 가을, 프랑스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400석 남짓한 한 극장의 로비에는 토요일 이른 오후부터 사람들이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판소리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10주년을 기념해 열린 라운드테이블 ‘시공을 초월해 생동하는 예술, 판소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들 중에는 스위스 제네바의 유명한 월드뮤직 전문가를 비롯해 벨기에, 네덜란드에서 참가한 전문가도 눈에 띄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3 한국예술특집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라운드테이블에는 불어권의 민족음악학계와 월드뮤직계를 대표하는 프랑수아 피카르 소르본대 교수, 앙리 르콤트 동양언어대 연구원, 북브뤼셀 문화센터관장인 쟈크 이브 르독트 씨 등이 판소리 번역가 에르베 페조디에·한유미 부부와 함께 판소리에 대한 각자의 주제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유네스코 전문위원이며 루브르박물관 오디토리움의 예술자문인 피에르 부아 프랑스 세계문화의집 예술감독은 모든 준비과정을 지휘했고, 좌장으로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동아시아 설화와 노래, 공연예술을 아우르는 판소리의 예술적 가치가 부각됐다. 또한 유럽인의 감성에 걸맞은 판소리 번역에 대한 고민과 함께 유럽인으로 판소리를 배웠던 체험담과 젊은 프랑스 소리꾼이 ‘춘향가’ 중 ‘사랑가’의 대목을 시연했다. 프랑스 학자의 연구발표로 모든 내용이 불어로만 진행된 이날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판소리가 지닌 세계적인 공연예술로서의 가능성을 재확인했다.
이 라운드테이블이 열렸던 세계문화의집(La Maison des Cultures du Monde)은 다양한 문화권의 음악과 무용공연, 제례와 의식 등 전통예술이 프랑스를 통해 유럽과 세계에 알려지게 된 거점으로 높은 명성을 지닌 곳이다. 오늘날 세계 문화예술계에서 주목받는 기관으로 성장한 프랑스 세계문화의집은 문화 수·출입의 균형을 위해 문화성, 외무성, 파리시, 알리앙스 프랑세즈 재단의 후원으로 지난 1982년 설립했다. 설립자인 셰리프 카즈나다르 씨와, 아와드 에스베르 관장, 피에르 부아 예술감독이 모두 유네스코 위원을 겸직하고 있다. 이곳은 프랑스 내 주요 문화기관·단체와 견고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세계문화의집은 공연형태의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의 발굴 및 프로그래밍, 유네스코 및 세계 음악학계와 민족공연학(Ethnoscenology) 분야 신설, 사라져가는 음악 기록 및 아카이빙과 문서화 등을 통해 프랑스의 문화다양성에 대한 관심을 견인해 왔다. 또한,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문화예술축제로 높은 명성을 지닌 상상축제(Festival de L’Imaginaire)를 주최하면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공연 및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민족음악 음반제작과 아카이빙을 위해 자체 음반레이블인 이네디(INEDIT)도 운영한다.
세계문화의집에서 우리 전통음악을 선보이게 된 첫 무대는 지난 1982년 한애순 명창의 판소리 완창 공연이다. 이어 안숙선, 조통달, 김동준, 송순섭 등의 명창이 이 무대를 통해 판소리를 프랑스와 유럽 및 세계 음악계에 알릴 수 있었다. 1960년대 프랑스 세계연극축제에 김소희 명창이 참가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지속적으로 판소리를 공연한 곳은 세계문화의집이다. 2002년 파리가을축제에서 안숙선, 김일구, 김수연, 조통달, 김영자 명창의 판소리 다섯 바탕 완창이 진행됐다. 이는 미국 뉴욕과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로의 투어까지 이어졌던 쾌거의 시작점이었고, 판소리가 200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과정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비단 판소리 뿐 아니라, 세계문화의집은 우리나라의 전통음악계 명인과 깊은 인연이 있다. 진도씻김굿의 박병천 명인, 평조회상으로 갈채를 받았던 정재국 명인, 호적풍류의 깊은 맛을 처음 선보였던 최경만 명인이 세계문화의집 무대에서 공연했다.
황병기, 이재화, 박현숙, 김해숙, 김영길, 안성우, 유경화 명인 등은 산조와 시나위, 창작곡을 선보였으며, 김영기 명인은 여창가곡 전바탕 공연을 선보였다. 경기민요와 서도민요를 대표하는 이춘희, 유지숙 명창의 공연은 상상축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하용부, 양성옥 명무가 소개되었고 영산재, 봉산탈춤, 국립국악원의 영산회상 등 다양한 공연이 이곳을 통해 프랑스와 유럽에 소개됐다.
올해 열리는 전주세계소리축제에는 세계문화의집 아와드 에스베르 관장이 개막공연부터 폐막일까지 참가하며, 향후 협력방안을 논의한다. 세계문화의집이 그 동안 우리 전통예술을 해외에 소개하는 중요한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했으며, 전주세계소리축제도 세계적인 축제로 성장한 만큼 이번 만남을 통해 더 많은 기회가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 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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