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번 사람들 익명성 보장 안 돼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전주서 사회활동하며 오래 산 사람이면 모두가 호적계장들이다. 형님 동생 하는 문화가 판치지만 막상 어려운 일을 당하면 외면하기 일쑤다. 말로만 의리를 찾지 돌아서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이다. 익명성 보장이 안 되다보니까 점심은 누구하고 먹고 저녁에는 누구를 만나 술 마신 것까지 훤히 안다. 골프장에 왜 그 사람들 하고 어울렸는지도 금세 알 정도다. 좁은 지역 사회라서 움직이는 동선이 그냥 통째로 드러난다. 살다보면 남의 눈에 안 띄었으면 할 때가 많다. 굳이 자신의 사생활을 노출시키지 않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아 부자들이 불편한 점을 많이 느끼고 산다. 그래서 시시콜콜한 얘기 들어가면서 살기 싫어 훌훌 서울로 떠난다.
전주에서 웬만한 고가의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도 있지만 서울 등 외지에서 비싼 가격에 산다. 비밀 보장이 안 되고 믿음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 똑같은 제품을 서울 가서 봉 써가면서 사와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 호남선 KTX가 본격 개통된 이후 서울과 반나절 생활권이 형성되면서 이 같은 현상은 더 두드러질 것 같다. 빨대현상이 나타나 지역 내 자금 유출이 빨라졌다. 빠른 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빨대현상은 이미 경부선상의 대구 경주 부산에서 드러났다. 서울 가기가 빨라졌지만 역효과도 만만치 않다.
지금 전문직이나 젊은 샐러리맨들은 서울 가서 쇼핑하는 게 일상이 됐다. 백화점에 가봤자 물건도 다양하지 않은데 굳이 이곳에서 쇼핑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 서울 가면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고 남 눈치 안 살피고 자유스럽게 쇼핑하는데 꽉 막힌 전주에서 쇼핑해야 하느냐는 것. 주말에 대전 코스트코나 부여 롯데아울렛을 찾는 사람도 늘었다. 드라이브도 즐기고 주변 지역을 관광할 수 있어 좋다는 것. 최근 들어 전주 로드숍들이 장사가 안 돼 죽을 맛이다. 생필품은 대형마트에서 구입하지만 돈 되는 것은 거의 서울 가서 구입하기 때문에 장사가 예전에 비해 안된다는 것. 그나마 입소문 난 대형음식점 정도나 북적인다.
생산시설이 빈약한 전북은 인구 유입도 안 되고 돈만 외지로 유출되는 바람에 서민들 살기가 어렵다. 맞벌이 월급쟁이들이나 살기 좋은 곳이다. 하지만 돈 좀 번 사람들마저 자꾸 서울로 이사가 더 위축된다.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정도는 사 놓고 서울서 주말을 보낸다. 기관장 지낸 사람들은 거의 서울서 산다. 전주서 체면 유지하고 살기가 버겁다는 것. 퇴직하면 애경사가 문제인데 이것도 서울로 이사 가면 찾을 일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도시규모가 100만 명 이하일 때는 파이도 작고 익명성이 보장 안 돼 의외로 투서나 진정 사건이 많다. 먹고 사는 과정에서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까 상대를 모함해서 흠집 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전주가 광주 전남에 비해 무고사범이 의외로 많다. 그 만큼 살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민선자치시대가 열리면서 인심이 예전만 못하다. 각 지역별로 네 편 내 편하면서 편 가르기로 사분오열 되었다. 단체장 선거 때 된 쪽으로 줄서지 않은 사람은 사업하기가 힘들다. 모든 게 알게 모르게 연줄로 움직이는 사회라서 그렇다. 선거 때 반대편에 섰던 사람은 시군청 출입하기도 껄끄럽다. 지역이 이런 식으로 움직이다보니까 사는 게 피곤하다.
부자들 서울로 이사 가지 않게 해야
이제는 남의 탓 그만하고 뒤통수치는 일 좀 안했으면 좋겠다. 사업해서 돈 번 사람은 사회적 약자를 살펴야 한다. 그게 다산이 말하는 애민정신이다. 사회가 돈 번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 정도로 여긴다면 누가 애정을 갖고 살겠는가. 말로만 애향하자고 떠들 일이 아니라 숨어서 비겁하게 상대를 끌어 내리는 일부터 안해야 한다. 서울로 이사 가지 않아도 함께 잘 살 수 있는 그런 전주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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