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이 꽃인 봄. 전주의 봄은 축제의 물결로 온다. 그 선두에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있다.
지난 4월 30일 개막한 전주영화제는 올해 더욱 다양한 시도와 변화로 주목을 모았다. 가장 큰 변화는 야외상영장과 영화상영장의 동선 확장이다. 덕분에 ‘외연의 확장’과 ‘시민들과 가까워진 영화제’란 키워드는 영화제가 열리는 내내 새롭게 확장된 공간과 거리를 떠다녔다. 단정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전주영화제가 시민들에게 한걸음 더 가깝게 다가갔다는 ‘지점’으로만 보자면 의미 있는 행보였던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9일 동안 새로운 영화바다를 항해한 올해 전주영화제의 목표와 가치는 주효했을까. 형식의 변화에만 주목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논쟁의 여지는 적지 않을 것 같다.
돌아보면 전주영화제는 꽤 오랫동안 주류나 익숙한 것보다는 비주류와 낯선 것을 주목하는 대안영화제로서의 정신이 빛났던 영화제였다. 그래서 ‘여전히 낯설고 실험적이며 논쟁적인 영화’로 가득 찼던 전주영화제는 그 자체가 미덕이자 정체성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전주영화제의 성장과 함께 이러한 가치는 얼마 전부터 조금씩 힘을 잃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주영화제를 첫해부터 한해도 거르지 않고 찾았던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55)를 만났다. 해마다 전주의 봄을 조우해온 그는 올해도 일주일을 꽉 채운 긴 시간을 전주를 찾아온 영화인을 만나고 영화 보는 일로 보냈다.
부산영화제를 만들고 20년 동안 그 중심에서 영화제 역사를 함께 써온 그에게 전주영화제의 올해 변화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사실 그가 몸담고 있는 부산영화제는 올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다이빙벨’ 상영으로 불거진 자치단체와의 갈등이 엄청난 후유증을 몰고 온 탓이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부산영화제는 그래서 갈 길이 아직 험난하다. 그만큼 부산영화제가 놓인 상황은 우울했으나 인터뷰는 즐거웠다.
-영화는 많이 보셨습니까.
“하루 네 편이 목표인데 상영장 동선이 달라져서 예전만큼 여유 있게 다니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변화된 환경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편했습니다. 상영장 여건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내년에는 영화의 거리 안에 상영장이 신설된다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겠죠.(웃음)”
-주로 어떤 영화를 선택하십니까.
“저는 아시아 영화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 영화를 집중적으로 봅니다. 올해 아시아영화들 중에는 이미 본 작품이 많아서 한국영화를 중심으로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전주영화제에는 독립영화가 특히 많이 나오기 때문에 주목할 만한 작품이 많이 있죠.”
-우리나라 독립영화 환경은 어떻습니까.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여건은 늘 어려운 것 같거든요.
“그래도 한국의 독립영화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훨씬 건강합니다. 여건은 어렵지만 좋은 재능들이 꾸준히 발견되고 있거든요. 근래 들어 일본 중국에서는 주목할 만한 신인 감독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너무 하지 않나’ 싶을 정도지요. 그러나 한국 독립영화를 보면 영진위 지원도 그렇고 환경이 점점 더 열악해지는데도 재능 있는 감독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거든요. 이런 상황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지지하는 전주영화제는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군요.
“물론입니다. 디지털 삼인삼색도 그렇고. 영화제가 해야 할 역할이 여럿이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한 역할이 그런 것이죠. 영화제 역할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용어가 ‘대안 마켓’ 이거든요.”
-그런 역할이나 기능은 어떤 영화제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가져가야 할 부분인가요.
“일반적으로 영화시장은 주류 영화, 상업 영화를 중심으로 하지 않습니까. 그대로만 놓아둔다면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는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죠. 그래서 영화제는 그런 주류마켓이 하지 않는 대안마켓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전주영화제처럼 독립영화를 발굴하고 피칭 행사를 통해 투자자를 연결해주면서 재능을 발굴하는 역할은 매우 중요하고도 큰 미덕입니다.”
-부산영화제는 어떻습니까.
“부산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죠. 이런 역할을 하는 영화제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전주영화제가 이런 역할을 더 활발하게 해야 하겠군요. 해외에서도 이런 성격의 모범적인 영화제가 많죠.
“전주영화제처럼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성향을 가진 영화제라면 로테르담영화제를 꼽고 싶습니다. 전주영화제도 JPM이나 프로젝트 마켓을 운영하잖아요. 피칭행사도 있고. 로테르담은 그런 성격으로는 아주 잘되고 있는 영화제입니다. 사실 프로젝트 마켓은 아시아에서 부산이 제일 처음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모델이 로테르담이었어요. 그곳에 프로젝트마켓이 있는데 정말 제대로 키워놓았어요. 부산영화제가 프로젝트 마켓을 시작할 때 거기서 영감을 얻고 많이 배웠죠. 전주영화제도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대안마켓을 얼마나 잘 운영하는가가 과제일겁니다. 로테르담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어요.“
-결국은 재정이 문제 아닐까 싶은데요.
“전주영화제도 이런 역할을 잘하려면 펀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틀림없이 올 겁니다. 물론 지금도 디지털 삼인삼색 같은 경우는 제작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펀드는 그것과는 성격을 좀 달리 할 필요가 있거든요.”
-부산영화제도 펀드를 운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저희는 제작비를 직접 지원하지 않습니다. 후원을 받아 진행하지요. 예를 들여 시나리오 개발을 지원하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제작이나 후반작업을 지원하는 것도 있는데 후반 작업을 지원하는 경우는 국내 후반작업 업체들의 후원으로 이루어지거든요. 업체들이 후원에 나서는 것은 그만큼 프로모션 효과가 크기 때문이고요. 저희는 직접 지원을 하지 않고 제작하는 동안 작업하는 실질적인 경비만 지원합니다.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도 부산의 영화과를 갖고 있는 6개 대학이 협찬을 합니다. 영화제로서는 의미도 있고 재정도 해결할 수 있는 통로지요.”
-로테르담 영화제는 규모가 크지 않나요.
“단편이 워낙 많아 상영편수가 400편 가까이 됩니다. 로테르담 영화제는 예술영화를 전문적으로 배급하는 회사에서 시작했어요. 배급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셈이죠. 그래서 로테르담에서 상영된 영화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 배급이 될 수 있는 통로를 얻게 됩니다. 토론토 영화제도 그런 역할을 매우 잘하고 있는데 그곳은 프로그래머가 10명이 넘습니다. 제작사를 갖고 있거나 세일즈 회사를 갖고 있는 프로그래머도 있지요. 그런 시스템을 잘 작동해서 토론토에서 소개된 영화들에 대해 판권을 잘 팔 수 있도록 지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 특성들이 토론토를 꼭 가야겠다는 동기부여를 하게 되고요. 우리로서는 매우 부러운 여건이죠. 부산이나 전주도 그런 역할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제의 기본적인 의미와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말 그대로 ‘축제로서의 가치’와 ‘대안시장’으로서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영화제는 다른 축제와는 달리 충성도와 몰입도가 상당히 강한 축제예요.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의 공감도가 매우 높습니다. 영화제 관객들이 모르는 사이라 하더라도 동료의식을 갖게 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죠. ‘대안시장’으로서의 가치는 최근 국내의 영화시장의 상황을 보면 더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영화제가 없다면 영화시장은 그야말로 예술영화와 작가영화는 사라지고 오로지 상업영화만이 지배하는 독과점 시장이 되어 버릴겁니다.”
- ‘대안 마켓’으로서의 기능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군요.
“영화제는 예술영화와 작가영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영화시장에서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자리로서의 의미가 큽니다.”
-전주영화제 뿐 아니라 지속성과 건강함을 유지하는 것은 모든 영화제의 고민일 듯 합니다. 상업성과 축제성의 사이에서의 고민도 그렇고요. 국내 영화제들은 다행스럽게 저마다의 정체성이 서로 다른 것 같은데요.
“이제 국내의 영화제들은 자기 정체성이 분명해 진 것 같습니다. 때문에 국내에 국제영화제가 너무 많다는 주장은 별 설득력이 없습니다. 다만 국내 여러 영화제들이 고유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세계무대에서 유사한 성격의 타 영화제들과 경쟁하고, 위상을 높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해외영화제와 어깨를 견주어도 될 만큼 성장했다는 이야기도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이제는 영화제들이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그들의 영화가 영화시장에서 좀 더 폭넓게 수용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에 눈을 돌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칸이나 베를린, 토론토영화제가 세계적 위상을 유지하는 강력한 무기중의 하나가 바로 마켓 혹은 마켓 기능이에요. 전주영화제는 마켓은 없지만, 토론토영화제처럼 마켓기능은 수행하고 있지요. 앞으로 이 마켓을 좀 더 확대했으면 좋겠어요. 이러한 기본 방향만 분명하게 설정되어 있다면, 축제성을 강화한다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나 영화비즈니스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정 영화제를 가야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 영화제의 정체성과 축제성 모두가 그들에게는 중요하기 때문이죠.”
-화제를 좀 돌려보죠. 아시아 영화 전문가로서 최근 활발해지고 있는 중국의 영화산업은 어떻게 보십니까.
“중국영화산업이 너무 급성장하고 있어서 거품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될 정도입니다. 최근에는 부동산회사와 IT 기업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투자의 흐름이 형성되고 있어요. 그들이 중국영화시장에서 강력한 배급망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지난 해 중국에서는 ‘오주(五洲)영화배급사’가 탄생했습니다. 중국 최대 멀티플렉스 체인망을 보유한 완다그룹과 다디, 진이, 헝디엔 등이 함께 만든 배급라인인데, 오주는 단숨에 중국시장의 45%를 장악하는 막강한 배급라인으로 떠올랐어요. 중국 최대 부동산회사인 완다그룹은 영화산업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동산회사와 IT 기업들과 기존의 영화제작사들, ‘화이브라더스’나 각 지역의 스튜디오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중국영화산업의 방향은 달라질 겁니다.”
-급작스럽게 이루어지는 이런 현상에서 문제도 있을 것 같은데요.
“물론 그림자도 있습니다. 바로 양극화 현상인데 대작과 저예산 영화 편중현상이 그것입니다. 중간급 규모의 영화가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으니 새로운 재능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거죠. 바로 이 점 때문에 ‘거품현상’을 우려하기도 합니다.”
-문화가 도시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된 시대에서 문화 인력을 키워내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지역의 문화 인력은 수많은 축제에서 늘 고민과 과제이기도 합니다. 부산영화제도 예외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부산, 혹은 부산영화제가 부산의 영화 인력을 어떻게 성장시켜 가는지 궁금합니다.
“부산 역시 이러한 고민이 큽니다. 영화제의 경우는 이제 부산 인력만으로도 운영이 가능한 정도가 되었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지역 인재들을 키워낸 덕분이죠. 영화산업의 인력 문제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부산의 영화산업 기반이 아직은 허약하기 때문인데 부산지역 6개 대학이 영화과에서 배출한 인재들은 대부분 서울로 올라가야 합니다. 부산지역의 영화 인력을 성장시키는 데에 있어 보다 근원적인 과제는 지역의 영화산업을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부산도 전주와 마찬가지로 영상위원회, 소규모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지만, 아직은 촬영하기 좋은 도시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당분간은 지역의 인재들이 서울에서 자리 잡게 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정도의 역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영화제 뿐 아니라 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는 모든 축제나 문화관련 행사들은 자치단체와 늘 갈등과 긴장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산영화제는 특히 올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자치단체와 영화제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떤 관계여야 할까요.
“자치단체와 영화제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팔길이 원칙’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특성상 이러한 ‘아름다운 원칙’은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최근 부산영화제 사태가 이를 증명했죠. 더 안타까운 것은 공무원 사회 전체가 아니라 단체장 한사람의 문화인식 수준에 따라 이러한 사태가 생겨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팔길이원칙’이 타당하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 전체가 공감하고 있지만, 공무원 조직의 특성상, 혹은 특정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러한 원칙이 무시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지요. 결국은 ‘깨어있는 시민의식’만이 이 같은 상황을 제어할 수 있을 텐데 안타깝지만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수준이 여기까지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서글픈 현실이지요.”
전주와 전주영화제를 향한 그의 애정은 각별했다. 반면교사. 인터뷰 말미에 전주영화제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올해 전주영화제는 그 어느 해보다 큰 변화를 겪은 것 같습니다. 시민들에게 좀 더 다가가려는 시도를 공격적으로 했죠. 이러한 변화가 옳은지 그른지는 제가 판단할 문제는 아닙니다. 독립영화와 대안영화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영화제로서의 대원칙, 정체성만 변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시도는 분명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이러한 시도가 좀 더 다듬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영화와 영화제를 이야기 하다 보니 전주영화제의 길이 보였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는] 부산국제영화제 위상 높인 '아시아 영화 전문가'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는 부산 토박이다. 고등학교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해 대학에 가서는 영화동아리에 들어가 열심히 활동했다. 영화를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영화동아리 활동의 동력 때문이었다. 중앙대 대학원 영화과에 들어가 아예 진로를 영화로 바꾸어버렸다. 영화를 공부하면서부터는 아시아영화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80년대 후반, 아시아국가의 영화들은 국내에서 볼 기회도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대상이었다. 아시아 영화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본 야마가타 영화제를 다녀와서부터다. 야마가타 영화제는 그가 처음 만난 해외영화제인데 다큐멘터리를 주제로 하는 그 영화제에서 그는 큰 문화충격을 받았다. 이듬해 아시아 영화를 중심으로 소개하는 홍콩영화제에서 다양한 아시아 영화를 만나면서 다시 한 번 아시아 영화의 가능성을 주목하게 됐다. 고군분투, 아시아영화를 공부하는 과정은 외로웠지만 선두주자라는 자긍심으로 극복해냈다. 부산을 떠나지 않고 영화와 관련된 작업을 하면서 당시 경성대 교수로 있던 이용관교수와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경성대에 출강했던 전양준씨와 의기투합해 영화전문지 ‘영화언어’를 만들었다. ‘영화언어’를 통해 영화를 이야기 했던 시간들이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들어내는 바탕이 됐다. 제 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막을 내렸을 때 그를 만난 지인들은 ‘꿈을 제대로 이뤘다’고 격려해주었다.
1996년부터 프로그래머로 참여해온 그는 특히 아시아 영화를 전담하면서 수많은 영화인들과 친분을 쌓아왔다. 덕분에 그의 인적 네트워크는 예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두텁고 견고하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아시아의 대표주자가 된 바탕에는 그의 성실하고도 열정적인 노력과 도전의 힘이 놓여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는 스스로 감독으로서의 재능이나 평론가로서의 재질은 없지만 영화제 프로그래머는 누구보다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 시절 단편영화를 제작하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는 영화 제작에 마음을 두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준 스승으로는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을 꼽는다.
수많은 영화제들을 다니면서도 순수한 관객의 입장으로 찾는 유일한 영화제로 전주를 꼽는 그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전주를 찾는다. 전주영화제를 ‘소풍’으로 삼아 아시아 게스트들과 전주와 인근 도시의 맛집 순례하는 일을 큰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계간지 영화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넷팩(아시아영화진흥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램부터 영화제 앞뒤를 다 들여다봐야하는 수석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는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아시아영화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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