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조용하기만 하던 전주가 요동하고 있다. 신도심의 빠른 정착과 주변혁신도시의 공격적인 추진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특히 원도심은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전통생활문화기반의 관광지로 부상하면서 여러 가지 변화들로 새로운 디자인의 요구가 많아지면서 새삼 디자인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디자인작업은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으나, 사실 디자인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기존의 것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작업으로 꼽을 수 있다. 물론 성공적인 디자인을 위해서는 전혀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장점을 유지하고 개선하면서 발전시키는 것이 더욱 가치있는 디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 디자인작업에서 이러한 의식을 소유한 디자이너가 기존의 장점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려 해도 발주자의 무조건적인 새로운 것의 요구로 실패하는 디자인 사례도 허다하다.
건축비 3000억 원이 투입되었으나 광복이후 최악의 건축물이라는 혹평을 받고 있는 서울시의 새로운 시청사는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 전통가옥의 처마를 재해석한 친환경적 건축물이라는 설명과 함께 신축된 서울시 신청사는 문화가 가지고 있는 형상적인 가치에만 매달리고 무조건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시작된 잘못된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서울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도심의 한복판에 기존의 건물과 공유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주변에 있던 기존의 소중한 것들도 가치를 함께 잃어간다는 평이다.
“서울시청사는 무너지지 않는 이상 서울의 랜드마크 노릇을 할텐데, 그게 원통하고 허무합니다. 제 아무리 무지막지한 건물이라고 해도 대중이 오래 이용하면서 대중들의 삶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죠. 그렇게 되기까지 대중들에게 상처가 너무 크지요”라는 어느 원로 건축가의 이야기가 안타깝게 들린다.
과거 명동성당 건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서울의 명동성당주변을 재개발하면서 국제공모를 추진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한국계 이태리 건축가가 기존의 명동성당의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확대하는 설계안을 제출하였고 이것을 본 담당자들이 기존의 것과 비슷하게 하려면 뭐하려고 비싼 돈 들여 국제공모전을 하느냐는 평가를 하면서 기존의 명동성당 옆에 현대적인 건물을 짓자는 제안에 관심을 가지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이 이러한 위험한 디자인 안은 여러 반대에 부딪혀 재개발 자체가 중단이 됐다.
최근에 와서 기존의 가치를 유지하는 안으로 명동성당 재개발공사가 마무리되었는데, 성당주변 신축되는 건물들에 기존의 성당건물과 비슷한 벽돌과 마감재를 사용해 명동성당의 고유한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낸 명동성당이 완성됐다. 강산이 10번도 더 바뀌었을 동안, 변치 않는 기존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것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했던 명동성당의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 성공적인 디자인 사례가 되고 있다.
새로 조성되는 계획도시의 허허벌판에 지어지는 건축물이라면 상징성을 지닌 전혀 새로운 건물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의 전통문화가 있는 곳이라면 디자인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보존해야 할 가치가 큰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전주는 전통문화가 가득 찬 고장이다. 새로운 디자인보다 기존의 것을 개선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디자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역이라는 것을 디자이너뿐 아니라 정책을 입안하는 공공기관의 담당자나 디자인을 발주하는 건축주나 모두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가장 훌륭한 디자이너는 오랜 세월 동안 전해져 오는 선조의 지혜 속에서 지켜야할 가치를 발견할 줄 아는 능력이 있는 디자이너라고.
전주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