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희 이야기하는 문화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를 가보면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골 지역의 작은 식당에서도 하나같이 깔끔하게 디자인돼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산뜻한 간판이며 메뉴판, 휴지까지 상당히 고급스러운 디자인이다. 내부의 인테리어와 음식이 담겨지는 용기는 말할 것도 없이 서빙하는 방식까지도 수준 높은 경우가 많다. 가볍게 주인의 디자인 감각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지나칠 수 있지만 디자인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확실하게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골의 작은 식당에서 어떻게 이런 투자를 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아직 녹녹치가 못하다. 우리는 식당을 열기 위해 공간과 시설 등의 유형적인 요소에 대한 투자에 급급하지 사업의 전략이나 콘셉트 같은 무형적 요소에 대한 투자는 생각할 여유가 없다. 어쩌면 여유가 없다기 보다는 무형적 요소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보여진다.
요즘 들어 유난히 많은 소규모의 식당이나 상점이 대기업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다. 심지어 대기업에 못 당한다는 자조적인 생각으로 소기업 창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대기업과 소기업의 차이는 디자인의 인식의 차이 즉 무형적 요소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도 비롯된다고 여겨진다.
하나의 작은 사업을 시작하고 추진함에 있어서도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인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업을 추진하는 노력이 이익으로 바로 연결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사업의 가치를 키우는 것으로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전주대의 최근의 비약적인 발전은 디자인과 같은 무형적인 요소의 가치를 중요시한 결과도 하나의 중요한 성공 요소가 되었다. 10여년 전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의 학장을 지낸 이남식 총장이 부임하면서 첫 사업으로 학교의 브랜드디자인작업을 선정하였다. 총장 임기 동안 추진할 모든 노력을 담을 그릇이 바로 브랜드라는 생각에서였다. 지역대학의 전형적인 이미지였던 대학의 낙후한 브랜드로는 새롭게 추진할 여러 가지 사업을 담기에 역부족이었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당시 국내 최고의 브랜드디자인회사인 소디움파트너스사에 지역대학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예산을 들여 내부의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브랜드 디자인작업을 추진하게 됐고 현재의 브랜드이미지를 만들었다. 이후 추진한 대학의 현대화 사업이 고스란히 브랜드에 담기게 되었고 전국의 종합대학 중에서도 돋보이는 현대적인 브랜드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필자도 처음 이 총장의 요청을 받고 전주대를 방문해 현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의 대학브랜드를 보고 가능성이 있는 대학이라는 판단이 들었고, 부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디자인에 대한 정부지원이 다른 어느 선진국에 비교해도 월등히 많은 나라다.
그러나 이런 많은 지원이 수출 위주의 산업구조 때문인지 대부분이 중소기업의 제품개발을 위한 디자인 지원에 집중되고 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디자인의 중요도 인식이 갖춰진 중소기업보다는 디자인 인식이 전무한 영세한 개인사업자에 대한 디자인지원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전북은 관광지으로서의 발전이 기대되는 상황에서 지역의 작은 상점이나 식당 등에 대한 전문적인 디자인 지원으로 지역의 고유문화가 담긴 차별성을 확보한다면 일률적인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점포와 경쟁할 수 있는 기회도 가능하다. 또한 작은 점포의 디자인 고급화를 통해 지역 전반의 디자인 수준을 높이는 계기도 될 것이다.
전주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