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중심적 젠더폭력 법·제도적 장치 통한 중장기 로드맵 구축을
지난 4월 26일 대낮에 서부 신시가지 건물 화장실에서 성폭행을 시도하다 저항하는 여성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달아났던 5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고 보도되었다. 이 가해자는 당일 범행 대상을 물색하다가 퇴근 후 화장실에 가던 여성을 뒤따라갔고, 성폭행을 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마주하면서 많은 여성들은 섬뜩함과 동시에 충격과 분노에 휩싸이게 했던 2년 전 서울 강남역 근처 건물 화장실에서 발생한 여성 살해 사건을 떠올렸을 것이다. 서울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에 이어 인천 부평역, 이 곳 전주 서부 신시가지 까지 무차별한 폭력으로부터 여성에게 안전한 곳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하였다.
지난 강남역 사건 이후 여성들은 ‘우연히 살아남았다’라는 증언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 폭력에 맞서며 대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번 서부 신시가지 사건 역시 모르는 남성에 의한 살해 미수로 피해자는 평범한 수많은 여성 중에 한 사람이었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고, 어떠한 사회적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스스로 살아남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렇듯 여성은 언제, 어디서,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범죄는 왜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것일까.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에 대해 많은 여성단체들은 여성혐오 살인사건으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경찰은 이 사건을 ‘범행동기의 부재’,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직접적인 범죄를 촉발한 요인’이 없기 때문에 정신질환자의 난동에 의한 ‘묻지마 살인’으로 명명하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경찰이 근거로 삼았던 범행동기를 찾기 어려운 점, 피해자가 범죄를 유발하지 않은 점이 여성혐오범죄 판단의 주요 근거가 된다. 동기조차 뚜렷하지 않았음에도 폭력의 수준이 극단적이었다는 점에서 강남역 여성 살인은 혐오범죄 인 것이다. 혐오범죄는 피해자는 벌 받아 마땅하다는 믿음으로 피해자가 어떤 위법적 행위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피해자가 속한 그룹 전체에 대한 편견과 분노에 기인한다. 이에 오롯이 오랜 기간 차별받고 억압받았던 집단에게 무분별하게 가해졌던 편견과 오명을 그 집단의 개인에게 부과한다.
그래서 언제든지 지목된 구성원들은 유사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며, 회복 불가능한 공포의 범죄이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남성의 시선이 절대적 기준이 되어 인간의 경험을 대표해 왔다. 모든 편견과 차별, 혐오에 기인한 범죄인 젠더폭력은 여성에게 특정한 역할의 수행을 강요하고 이를 위반했을 때 남성 중심적 젠더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공포와 폭력은 발생해 왔다.
또한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일에 있어 모든 원인을 여성에게 돌리고 비난하였다.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여성들의 #미투도 평소 행실이 문란했다거나 외모를 품평하거나 왜 그 자리에 갔냐는 등 피해 여성에게 모든 원인을 돌리고 있다.
더 이상 우연적이고도 불운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며, 참고 견딜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젠더폭력을 위중한 사회적 범죄로 여길 때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권리가 그 만큼 확대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여성폭력에 대한 편견 없는 인식과 성 평등 문화를 확장하고, 법·제도적 장치 등 지역차원의 젠더폭력근절을 위한 중장기로드맵 구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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