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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시선은 인생의 땔감이 될 수 없다

박정용 (주)쿠엔즈버킷 대표
박정용 (주)쿠엔즈버킷 대표

10년 전쯤의 일이다. 가족들과 떨어져 서울에 살고 있어 주말이면 매번 가는 곳이 고창이지만 고창읍성에서 반나절 시간을 보내자고 생각해 본적이 있었나 싶었다. 더군다나 고창읍성에 읽을 책을 들고 간다니 고창에서 나고 자랐지만 처음 일이었다. 참고로 그즈음 고창에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있었고, 햇볕이 가장 맹렬할 때 두 손 가득히 책을 들고 고창읍성 매표소를 통과했다.

고창읍성 입구에 문화유산 답사를 온 듯한 40~50대 20여명이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게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설명하는 해설사와는 좀 떨어진 성벽 그늘에 서서 연신 손부채를 부치고 있었는데 해설사 얘기는 듣는 둥 마는 둥 이다.

그렇게 생각된 이유는 그 한 무리의 사람들 시선이 갑자기 내게 쏟아짐을 느꼈기 때문이다. 뜨거운 한 낮에 땀을 흘리면서 한켠에 책을 가득 끼고 걸어오는 사람에게 무리의 호기심이 발동된 듯하다. 급기야 문화유적해설사 까지 돌아서서 나를 쳐다 봤다.

마치 읽지도 않을 책을 멋으로 끼고 온 사람처럼 몸이 쭈뼛해지고 발걸음이 부자연스러워졌다. 책을 읽으러 온게 맞다는 표시로 손을 고쳐 잡았고, 무리의 시선을 지나쳐 언덕을 올라갔다. 뒤통수에 모아진거 같은 관심이 사라질만한 곳까지 긴장감으로 고창읍성 문을 통과해야 했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데 혼자 울트라 오버액션을 했다는게 나중에 밝혀진다. 먼저는 나무그늘에 자리를 잡았다가 정말 좋은 명당자리를 찾았다. 부임한 현감이 사택으로 활용했던 곳이라는데, 지대가 높아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계속 불어왔고 뒤편은 대나무 맹죽 숲이 있어 바람에 대나무 잎새 소리가 시원하게 들리는 곳이다.

책을 읽기 보다는 책을 베게 삼아 자기 딱 좋은 곳이었다. 조금 있자니 다시 그 무리가 이곳까지 찾아 들었다. 입구를 통과하면서 책을 든 내게 의혹에 찬 시선을 보냈던 무리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 “봐라 나 이렇게 책을 읽고 있지 않나”라고 보여줄 기회인 셈이다.

헌데 그 긴 행렬이 지나가는 동안 자기들 얘기에 바빠 옆을 힐끔이라도 쳐다본 사람조차 없었다. 긴 행렬이 지나가는 동안 억울함을 풀 수 있었던 희망은 먼지처럼 사라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난생 처음 책을 읽으러 온거부터가 잘못된 시도 였을까? 아님 남의 시선을 과도하게 느낀 내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던 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초보여서 그랬나 싶다. 숨겨도 숨겨지지 않는 초보의 딱지가 그들에게 그대로 보였던 게 아니었을까? 언제까지 초보로 머물러 있을지는 각자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사람 사는 인생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증기기차에 비유되기도 한다.

증기기차는 땔감을 넣지 않으면 기적을 울리지 않는다. 땔감이 떨어지면 증기기차는 멈춘다. 남의 시선이 인생의 증기기차를 움직이는 땔감으로 사용 된다면 증기기차의 앞날은 예측하기 어렵다. 남의 시선이 아니고도 땔감은 우리가 사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우리가 땀을 흘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많은 땔감이 모아지고 사용돼서 증기기차가 속도를 내게 된다. 남의 시선을 땔감으로 쓰는 초보자가 증기기차를 힘차게 움직일 수 없는 이유다. 10년 전, 모양성에 책 읽으러 갔던 때의 나이 사십에도 난 인생 초보자였던 셈이다.

/박정용 (주)쿠엔즈버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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