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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부채를 찾아서 - 캔버스가 된 부채

△캔버스가 된 부채, 화가 심성희 인터뷰

■ 찾아간 곳: 부안군 심성희 작업실, 전주시 방화선 부채연구소

■ 찾아간 날짜: 2020년 6월 12일

더운 여름, 부안에 있는 화가 심성희의 작업실에 갔다. 한국화가 심성희는 최근 10여 년 동안 부채에 그림을 그려왔다. 부채에 그림을 그리다니, 그 색다른 이야기가 궁금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부채 크기를 의논하는 모습.
부채 크기를 의논하는 모습.

-왜 부채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나.

“12년 전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렸던 전북아트페어에 참석했다. 당시 출품작은 도자기와 부채에 드로잉을 한 것이다. 그때 전시장 입구 공예관에서 작업하고 계시던 방화선 선자장이 제 작품을 보고 관심을 가져 연락을 주셨고, 선생님 부채에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부채에 그리는 작업은 다른 작업과 어떻게 다른가.

“일반 화지에 그리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부채 선면에 그리는 것이 조금 더 어렵다. 보통의 화지는 그림을 그리다가 틀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지를 바꾸면 되지만 부채의 경우 잘못 그리면 부채를 통째로 바꿔야 하니 그릴 때마다 매우 조심스럽다. 물론 한지에 그림을 그려서 그 한지로 부채를 만들면 더 좋겠지만 그럴 경우 부채 고유의 맛을 살릴 수가 없다. 나는 부채의 맛을 살리고자 완성된 부채 위에 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니 그림을 그릴 때마다 매우 조심스럽다.”

 

-캔버스로서의 부채는 어떤 매력이 있나.

“평면의 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부챗살의 요철 때문에 붓을 놀릴 때 또 다른 재미가 느껴진다. 그리고 화지는 완성 후 액자를 주로 하여 작품을 돋보이게 하지만, 전통과 현대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부채는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소재의 특성이 액자를 할 때보다 훨씬 매력이 있고 작품의 완성도가 높다.”

 

모란의 꿈(앞)-화폭선.
모란의 꿈(앞)-화폭선.

-캔버스로서 합죽선과 단선의 차이점이 있다면.

“화가로서 합죽선과 단선의 차이점을 표현한다면 붓의 자유가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다양성의 추구라고 할 수 있다. 합죽선은 주어진 화지에 맞추어 그림을 그려야 하니 표현의 제약이 있다. 하지만 방화선 선자장의 단선은 내 그림에 맞추어 부채의 크기를 변화시킬 수 있어 붓의 자유가 더 느껴진다. 두 번째로 합죽선은 부채 앞면에만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단선은 양면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게 단선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부채에 그림을 그리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아마 옻과의 전쟁이라 불러야 할까. 첫 번째는 방화선 선자장의 대원선에 옻칠 작업을 할 때이다. 옻의 성질도 잘 모르면서 순수한 색 옻칠로만 대원선에 부부 초상화를 그린 적이 있다. 내 인생에 아마 가장 힘든 초상화 작업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KBS 주관하에 방화선 선자장의 초대형 부채에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할 때이다. 온몸에 옻이 오른 상태에서 장시간에 걸친 퍼포먼스를 하다 보니 정말 힘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정말 겁이 없었구나’, ‘다시 하라고 한다면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 부채에 그림을 그렸을까?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써넣은 부채를 서화선(書畵扇)이라 한다. 부채는 부챗살과 갓대, 선면(扇面)으로 구성된다. 선면은 부채의 거죽으로 종이나 천으로 만들어지는데 여기에 물을 들이거나 깃털을 달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자료를 보면 중국에서는 4세기에, 한국에서는 고려 중기부터 부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청홍 모란 원선(앞).
청홍 모란 원선(앞).

製自心機妙 마음의 신묘한 경지에서 만들었으리.

煙峯落翠 안개 낀 봉우리에 푸른 용이 뚝뚝 떨어지네.

遙分萬壑 만 골짜기 바람을 멀리 나누어서,

遣作一堂秋 한 마루 가을을 일찍 보내주었구려.

紺碧綾紋細 검푸른 비단 무늬 섬세하기도 하고,

斕斒玉柄脩 찬란한 옥 자루 길기도 하여라.

感恩何處驗 그중에 고마움을 느낀 곳은,

滿面汗渾收 얼굴에 가득한 땀을 식혀준 것이라네.

위 시는 『동국이상국집』에 수록된 <송선 열 자루를 선사한 강남의 정상인에게 사례하다> 라는 제목의 이규보의 작품이다. 이 시의 내용을 보면 장인이 심신을 경건히 하고 정성 들여 부채를 만들었으며, 부채의 선면은 비단으로 되어 있고 옥 자루 손잡이가 달린 단선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선면에 그려진 그림은 안개 낀 봉우리와 푸른 용이다. (출처: 『선자장』, 국립무형유산원, 2017)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합죽선 제작이 활발해지고, 그 쓰임새도 깨끗한 백선보다 그림선(서화선, 화접선)이 더 유행하게 되었다. 당시 그림선은 수묵화가 주를 이루었으나 현대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시도들이 행해졌다. 전주부채문화관도 부채와 한국화의 콜라보 작업 이후 부채와 사진, 부채와 판화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 전시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신도 부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한국화가 심성희는 전라북도무형문화재 방화선 선자장과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2미터 이상의 거대한 부채에 자신의 작품을 담아 부채 자체가 병풍이 되는 작업을 해보고 싶은 게 심성희의 희망 사항이다.

우리 생활 속 깊숙이 부채가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생활 속 부채 이야기, 오늘은 한국화가 심성희와 선자장 방화선의 콜라보 작품을 만나봤다.

필자는 귀여운 듸림선에 그림을 그려 올여름을 시원하게 지내볼까 한다. 여러분들도 한번 시도해보시라. 누구나 부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이향미 전주부채문화관 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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