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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부채를 찾아서 5. 커피와 부채

 

△ <커피노블레스> 커피 볶는 남자 최희광의 ‘전주를 보다’

 

커피 볶는 것이 가장 즐거운 남자, 커피노블레스 최희광.
커피 볶는 것이 가장 즐거운 남자, 커피노블레스 최희광.

커피 볶는 사람 최희광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어머니의 드립 커피로 커피에 입문하게 된 그는 원두 도매사업을 거쳐 CoE(Cup of Excellence)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며 생두를 구매하고, 이제는 카페를 열어 커피를 직접 볶게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에 직접 선택한 생두 볶는 작업이 제일 행복하다는 그는 ‘바리스타’보다 ‘커피 볶는 사람’으로 불리길 바란다.

커피 볶는 사람으로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커피의 역할에 대한 몇 가지 팁을 준다면 싫어하는 사람과 커피를 마시게 된다면 바닐라라떼를 마셔라. 달달한 천연 바닐라 시럽이 들어 있어 마음을 달콤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애인과 싸웠다면 아포카토를 주문하라. 달콤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진하게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끼얹어 만든 아포카토를 먹다 보면 얼어 있던 마음이 살살 녹아내릴 것이다. <커피노블레스> 를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이자 가장 힘들었던 고객은 故 김충순 화백이다. 김 화백은 에스프레소에 매우 조예가 깊어 조금이라도 신경을 덜 쓰면 정확히 짚어내며 지적했다. 핸드드립이나 사이폰커피도 좋아하지만 그 역시 김 화백처럼 에프프레소를 제일 좋아한다.

아침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아내에게 내려주는 그는 ‘주님 위에 마눌님’이라고 주장하는 애처가이다. 맛있는 에스프레소와 따뜻한 물이 만난 아메리카노. 마시기에 무난하고 대중적이며 만들기도 쉽지만 고객들의 평가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는 메뉴를 아내에게 매일 아침 내려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마눌님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다가가기 힘든, 그래서 매일 애정을 쏟아 공략해야 될 ‘최고의 고객’이기 때문 아닐까? 안행로 46번지에 알콩달콩 둥지를 튼 그는 이제 전주 사람이 다 된 마눌님과 전주를 보며 살고 있다. 그의 카페 한편에는 그런 그들을 사진작가 유백영이 담아내고 故 조충익 선자장이 만든 부채, ‘전주를 보다’가 예쁘게 내려다보고 있다. 항상 행복하시라.

 

△ <한옥마을 커피로드> 바리스타 강정희의 ‘바람’

 

애정하는 콜롬비아를 내리고 있는 바리스타 강정희.
애정하는 콜롬비아를 내리고 있는 바리스타 강정희.

엄재수 선자장의 부채 위에 그려진 윤명호 화백의 산수화, 故 조충익 선자장의 태극선, 선자장 방화선이 작업한 유대수의 판화 부채, 혼불 시리즈, 수많은 시집과 음반들. 피아노를 전공한 바리스타 강정희는 음악과 커피가 있는 예술 공간을 늘 꿈꿔왔다.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공간만이 아닌, 향기와 음악과 사람이 있는 카페는 그녀의 오랜 이상이었다. 고객들이 좋은 음악을 즐기고, 좋은 작품을 감상하고, 편안한 시간을 즐기기를 바리스타 강정희는 소망한다. 그래서인지 햇볕이 좋은 그녀의 카페는 황금빛 조명을 사용하여 더 밝고 안온하다.

꽃 피는 봄이면 코스타리카 따라주를 마셔보자. 상큼하고 산뜻한 신맛이 봄과 어울린다. 아이스로 마시기에 좋은 신맛이 나는 케냐AA는 여름이 제격이다. 부드럽고 우아한 와인의 맛과 향을 가진 자마이카 블루 마운틴은 다가오는 단풍의 계절에 마셔보자. 그리고 눈이 내리는 겨울엔 에티오피아 시다모를 권한다. 깊고 묵직하며 진한 커피의 맛은 내면을 성찰하게 해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은 브라질 카파라오를 마셔라. 신맛이 적고 달콤한 초콜릿 맛과 고소한 호두 맛이 혼재되어 있는 중성적인 커피이다.

바리스타 강정희가 제일 사랑하는 커피는 무엇일까? 콜롬비아이다. 의외다. “부드러운 신맛과 쓴맛, 진한 초콜릿 향과 단맛이 조화로운 커피이며 다른 지역 커피들의 강한 맛을 보듬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블렌딩이 쉽기도 하지만 카페를 오픈하자마자 단골이 되어 준 손님이 자주 마시는 커피라 좋아하게 되었지요.”라고 이유를 밝힌 그녀는 역시 커피보다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크게 웃지도 않고 입가에 미소만 짓는 그녀의 카페에는 늘 행복한 ‘바람’이 감돈다. 판화가 유대수의 작품 ‘바람’처럼.

 

△ <재하로스터리카페> 장재하의 ‘남은 자들의 몫’

 

부채와 커피에 대해 설명하는 재하로스터리카페 장재하.
부채와 커피에 대해 설명하는 재하로스터리카페 장재하.

칼디의 염소가 먹었다는 커피, 수도승이 마셨다는 커피. 약차에서 시작한 커피는 귀족의 전유물에서 이제는 가장 대중적인 음료가 되었다.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로 출발한 부채 역시 귀족적 예술품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문명의 발달로 인해 이제는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다. 카페에 있는 부채를 보러 갔다가 커피와 부채의 역사, 커피와 부채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커피와 부채는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인류의 필수품으로 출발하였고, 문헌상 기록을 보면 귀족문화의 하나로서 사치품과 예술적 가치로 호사를 누리다가 현대에 이르러 모든 사람들의 기호품으로 대중화되었다는 점이 있다.

“선풍기나 에어컨의 강한 냉기보다 부채의 적당하고 은은하게 흐르는 바람이 마음을 식혀주듯, 커피 또한 향이 강한 커피보다는 은은한 커피가 여유를 줍니다. 부채를 부칠 때 힘껏 부치다 보면 어느새 시원함은 고사하고 더위만 남게 되거든요. 커피도 향이 좋다 하여 너무 강하게 볶으면 몸에 좋은 성분들은 사라지죠. 요즘은 커피를 너무 세게 볶습니다. 세게 볶으면 향이 강해서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커피 본래의 기능인 약으로서의 좋은 성분은 사라지고 강한 풍미만 남게 됩니다. 강한 풍미가 있는 커피를 일반 대중들이 좋아하게 되었지만 저는 커피의 본질적인 기능을 되살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몇 년 동안 연구하고 시음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어커피’입니다. 어커피는 커피 씨앗에 들어 있는 약 성분을 추출하여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면서 마음의 여유를 추구하고자 만들었습니다. 과한 것은 오히려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듯이 적당한 바람은 시원함을 주고 적당하게 로스팅된 커피는 건강을 줍니다.”

어? 커피? 어! 커피!

폭우가 쏟아지던 날, 움직이는 것을 포기하고 차분히 앉아 마시니 어커피 고유한 맛이 마음속 깊이 편안함을 준다. 2019년 11월에 작고한 故 김충순의 마지막 작품으로 김 화백이 ‘남은 자들의 몫’이라며 툭 던지듯 주셨다는 부채가 카페 한편에 걸려 있다. 여느 작품보다 붉은색이 강하고 한껏 아름답게 표현한 점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남은 자들의 몫은 무엇일까?

 

/이향미(전주부채문화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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