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한 남해 바다 위. 휘날리는 신장대를 품고 저 멀리 파도를 가르며 지나는 웅비의 어선 행렬. 뿌려지는 어망. 날아드는 기러기 떼. 그곳은 천혜 한려수도이자 남해의 진주.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이다. 통영시의 옛 명칭은 충무였다. 오랜 시간 충무라 부르며 다니던 필자로서는 맛도 이름도 변하지 않는 통영의 향토 음식 “충무 김밥”처럼 왠지 충무라는 옛 명칭이 더 정겹고 맛있는 사심(私心)이 있다. 충무공 이순신의 시호를 도시 이름으로 썼던 통영은 다도해를 중심으로 임진왜란 때 충청, 전라, 경상 삼도 수군을 통할하던 통제영이 상주한 지리적 요충지였다. 통영은 임진왜란 당시 이러한 지리적 요건과 기묘한 전술을 이용한 한산대첩으로 왜군을 크게 물리쳐 우리 선조들의 꿋꿋한 용맹과 패기를 널리 알리는 고장이었다. 또한 한국 저명한 예인들의 고향으로 윤이상, 박경리, 유치환, 김춘수 등을 낳았으니 통영이야말로 예향의 보배스런 땅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남해안 별신굿은 경상남도 거제도와 이곳 통영 일대 어촌 마을에서 행해지는 제의이다. 1987년 7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82-4호로 지정되어 11대 세습무 정영만 대사산이(굿판의 유지와 장식 및 굿 음식 장만 등을 책임지며, 승방 <굿을 주재하는 무당> 을 가르치는 사람)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남해안 별신굿은 여느 별신굿처럼 마을의 평안과 풍농·풍어를 기원하며 축원한다. 이러한 해원(解寃)에 화룡점정을 찍듯 무가와 무악은 굿판의 중요한 요소이자 빠질 수 없는 점정이다. 남해안 별신굿의 무가와 무악은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는 동해안 별신굿, 전라도의 씻김굿과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특이한 선율의 맥락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산을 오르며 흥얼거리는 듯한 동해안 별신굿의 메나리 토리도 아니요, 슬프고 애절한 전라도 씻김굿의 육자배기 토리만도 아니다. 경상도의 메나리는 울진, 포항, 부산, 거제 등 경상도 전역을 토대로 통영에 왔으며 전라도의 육자배기는 전주, 남원, 진도, 해남, 순천, 여수 등 전라도 전역을 거쳐 통영에 도달했다. 이렇듯 영·호남 접경지인 통영에서 행해지는 남해안 별신굿은 지리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두 지역의 굿 음악 토리가 혼합되면서 독특하고 창의적인 선율을 형성하게 된다. 이렇듯 통영의 별신굿 속에는 다른 지역의 굿과 비교해 특별함이 많다. 굿을>
특별함 중에 또 하나의 귀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먹을거리다. 여느 지역의 굿처럼 화려하고 풍성한 상차림은 물론이고, 굿 연희 중 필자와 같은 산이(남해안 별신굿의 악사를 칭하는 말)들이 먹었던 주전부리는 통영 꿀빵이었다. 이 꿀빵은 굿의 진행 과정 중 쉬는 틈을 타서 별신굿의 산이들이 먹었던 통영의 향토 음식으로 개인적으로 빵을 좋아하던 필자에게는 굿과 주전부리였던 꿀빵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었다.
오늘날 통영의 꿀빵은 충무 김밥과 더불어 통영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이 되었다. 지금도 유명한 통영의 중앙시장과 통영 지역 여러 곳에서 꿀빵이 다양한 종류로 판매되고 있는데, 필자가 별신굿을 배우러 왔던 1990년대에는 그 종류와 판매하는 곳이 많지 않았다. 통영의 꿀빵. 잔잔한 달콤함을 입에 물고 아쟁 활대를 그을 때에는 이미 소리 속엔 희락(喜樂)이 있었다. 이렇듯 꿀빵은 남해안 별신굿과 함께 달콤함과 즐거움으로 그렇게 필자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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