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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시간, 성장동력을 만들다] ③ 쇠락하는 도시에 새 활력 불어넣은 '도서관의 힘'

일본 규슈의 도시들 ②/다케오시와 기쿠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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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오시립도서관 내부 전경. 2층에는 복도를 따라 이어지는 책장이 배치되어 있고, 1층에는 책장과 열람실, 서점, 카페(스타벅스), 편집숍 등 편의시설이 있다. /천경석 기자

도시는 성장을 멈추는 그때부터 쇠퇴하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오래된 도시들 역시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성장을 멈춘 지 오래다. 이미 쇠퇴하고 있는 수많은 도시는 인구가 줄어드는 소멸 위기의 도시로 내몰리고 있다.

오래된 도시의 인구 감소는 우리나라만 겪고 있는 현상이 아니다. 일본의 오래된 도시들은 우리보다 앞서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의 위기를 맞았다. 일본 도시들의 구체적인 인구 감소현황이 공개된 것은 지난 2014년 마스다 히로야 전 총무상이 주도해 펴낸 <마스다 보고서>에서다. 보고서는 현재의 인구 감소 추이로는 2040년까지 일본 도시의 절반인 896개 도시가 사라진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일본의 수많은 도시를 충격에 빠뜨린 경고였다. 그러잖아도 인구 감소로 쇠퇴일로에 놓여있던 도시들은 어떻게든 도시를 살릴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나서야 했다.

더 이상의 인구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목표를 위해 주목한 것이 있다. 쇠락한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을 거점을 만드는 일이다. 도시의 거점으로 도서관을 주목한 도시들이 있다. 일본 규슈 사가현의 다케오 시와 구마모토현의 기쿠치 시다.

 

새로운 커뮤니티를 창출해낸 오래된 도시의 거점

다케오시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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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오시립도서관 1층 전경. 카페(스타벅스)와 서점, 편집숍 등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공간의 특성을 보여준다. /김은정기자 

사가현은 규슈에서 가장 작은 현이지만 온천으로 이름을 알린 작은 도시들이 적지 않다. 인구 5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 다케오 시도 그중 하나다. 고령화율이 일본 도시 평균을 웃돌고 전체 면적의 23%가 논밭인 다케오시의 주산업은 농업이다. 1,3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온천 도시이지만  '일본 온천 관광 100'에는 들지 못하는 평범한(?) 소도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평범한 작은 도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변화를 이끈 것은 놀랍게도 시립도서관이다. 다케오시립도서관은 2012년까지만 해도 시민들의 이용률이 낮은 전통적인(?) 도서관이었다. 사람들을 불러 모을 거점 공간을 모색하고 있던 다케오시가 기존 도서관을 고치고 새롭게 단장해 재개관한 것은 2013. 아름다운 디자인과 편안한 내부 공간 구성, 여기에 이용자 중심으로 전면 개편된 운영방식은 도서관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재개관한 지 1년여 만에 연간 이용자는 100만 명이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중 40만 명이 지역 주민들이 아닌 다른 지역 방문객들이라는 사실이다. 도서관을 방문하기 위해 다케오 시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식당과 숙박업소 등 지역 상권은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자연히 경제적 효과도 이어졌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다케오 시의 선택이 있었다. 다케오 시는 공공도서관을 지역 커뮤니티를 되살릴 거점이자 자랑스러운 자산으로 만들기 위해 지정관리제도를 도입해 혁신을 꾀했다. 세계적인 서점 츠타야를 만들어낸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CC)'의 경영자 마스다 무네아키에게 운영 관리를 위탁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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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오시립도서관 2층에서 내려다본 1층 전경. 창쪽 공간은 열람실이자 카페 손님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김은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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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숍에는 지역에서 생산된 다양한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도서관은 서점과 멀티미디어 이용관, 미술관, 커피숍과 편집숍이 들어선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자료 보존과 도서 대출이라는 기존의 도서관 성격에서 벗어나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공부도 일도 대화도 가능한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도서관에서 즐길 수 있게 했다. ‘누구에게나 편안한 도서관을 내세운 이 도서관의 목표는 새로운 커뮤니티 창출이었다.

관심을 끈 것은 또 있었다. 운영방식의 변화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던 개관 시간을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로 연장하고 개관일도 연간 295일이었던 것을 365일로 늘려 연중 쉬지 않는 도서관을 만들었다.

리모델링을 거쳐 문을 연 도서관의 공간은 창조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넓은 공간을 차지했던 관장실을 없애고, 잡지 판매 코너와 DVD 대여점을 설치한 것도 큰 변화였다. 장서는 188,321권에서 211,096권으로 늘리고 좌석 수도 187석에서 279석으로 늘렸다.

다시 문을 연 이후 도서관의 일일 평균 방문자 수는 기존 867명에서 2,529명으로, 대출 이용자는 일일 평균 280명에서 460명으로 늘었다. 다케오 시민만이 아니라 일본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도서 대출이 가능하게 한 것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데 주효한 방식이었다. 그 결과 도서관 회원의 60%가 지역 외 거주자이고 도서 대출 역시 외부에서 찾아오는 이용자들이 43%나 됐다. 주변 음식점과 상점은 덩달아 매출이 늘었고, 숙박시설 예약률은 두 배로 뛰었다.

다케오시립도서관의 성공사례는 일본 각 도시에도 영향을 미쳐 도서관 건립 바람을 일으켰다. 20151월 가나가와현 에비나시와 2016년 미야기현 타가조시에 만들어진 도서관이 그 결실이다.

이용자 중심의 운영을 내세운 다케오시립도서관에서는 책을 읽다가 커피를 흘리거나 책을 훼손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1년에 2,000만 엔(2억 원)을 들여 60007,000권을 구입하고, 3년 동안 한 번도 보지 않는 책들은 따로 골라 폐기하거나 보육원에 기증하는 것도 특별하다.

다케오시립도서관은 지난 201710, 새로운 공간을 더했다.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될 어린이도서관이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온 다케오시립도서관이 가져올 또 다른 변화가 기대된다.

 

지역의 자연환경을 품은 도서관, 주민의 자긍심이 되

기쿠치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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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치중앙도서관 내부 전경. 기쿠치 강의 모양을 디자인한 책장. 100미터가 넘는 긴 책장을 1층 공간에 배치했다. 

기쿠치 시는 구마모토현의 북부를 흐르는 기쿠치 강 상류에 있는 도시다. 인구 5만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지만, 규슈지방의 정치, 교육, 문화 중심지로 번성해 지금도 적지 않은 유적이 남아 있다. 곡창지대여서 농업이 발달하고 지리적 여건으로 쌀 집산지가 되어 한때는 상업 도시로도 발전했다. 그러나 일본의 오래된 지방 도시들이 그렇듯이 기쿠치도 성장을 멈추고 쇠퇴의 길에 들어선 지 오래다. 수십 년 동안 청년들이 대거 대도시로 이주하면서 도시는 활력을 잃었다.

시는 지역을 떠나려는 청년들을 붙잡기 위해 대책을 찾아야 했다. ‘청년들이 떠나지 않는 도시 만들기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청년들이 왜 지역을 떠나는 것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던 시는 활력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첫 번째 과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공간을 위해 시가 선택한 것은 도서관. 지역 주민이 자랑스러워하는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기쿠치 시는 어느 도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랜드마크로 만들기 위해 건축가 나카무라 가즈노부 씨에게 디자인을 의뢰했다. 기구치 시 만의 특별한 도서관을 만들고 싶었던 나카무라 씨는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자연환경을 주목했다. 그중에서도 시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쿠치 강을 도서관의 주제로 삼았다. 강의 흐름처럼 곡선을 그리는 거대한 책장이 만들어져 1층 아담한 도서관을 가득 채웠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아름다운 도서관 기쿠치중앙도서관의 ‘BOOK RIVER’가 탄생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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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치도서관의 잡지 코너. 길게 이어지는 책장의 한부분을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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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 이어지면서 만들어진 공간을 다양한 기능으로 활용하고 있다. 

기쿠치도서관의 외형은 예상 밖으로 소박하고 평범하다. 거대한 규모도 아니고 화려하지도 않다. 그러나 1층에 있는 도서관에 들어서면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책장이 곡선으로 휘감아 돌며 공간을 가로지른다. 높지 않지만 길이 100m가 넘는 책장이 가로로 이어지며 공간을 나누거나 연결하면서 다양한 기능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풍경은 특별하고 아름답다.

기쿠치중앙도서관은 지난 2017년 문을 열었다. 도서관의 슬로건은 사람과 정보, 문화가 만나 어울리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교류의 공간이다. 개관 이후 불과 두 달 만에 지역 주민의 80%가 도서관을 찾았으며 타지에서 도서관을 찾는 방문객들도 늘기 시작했다.

미국의 이름난 인테리어인 전문 잡지 <INTERIOR DESIGN>'은 지난해, ‘잠시 머물고 싶은 세계 12개의 도서관에 이 작은 도시의 기쿠치중앙도서관을 선정했다. 도시에 활력을 가져다준 도서관은 이제 주민들의 자랑이 되었다.

 

공간의 힘으로 활기를 얻어낸 오래된 도시들이 적지 않다. 그 통로는 서로 다르지만 새로 짓거나 오래되어 방치됐던 건물을 활용해 지역 주민들을 모으고 외지인들을 끌어들이는 도서관의 등장은 새롭다. 도시재생의 의미와 가치가 더 다양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 일본 규슈=김은정 선임기자, 천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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