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순창군·완주군·임실군 모두 뛰어난 문학 작가와 작품을 냈다. 도시를 상징하는 단어에도 ‘남원 = 춘향’, ‘완주 = 콩쥐팥쥐’, ‘임실 = 김용택’ 등 문학 자원이 높은 자리에 있다. 연관검색어에 문학 자원이 노출되지 않는 순창군도 문학 자원의 양과 질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순창은 조선 시대 최초의 금서(禁書)인 소설 「설공찬전」의 배경지이며, 빨치산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은 이태의 소설 「남부군」과 농민 운동사의 소설적 전형을 보여준 윤정모의 소설 「들」도 순창을 바탕으로 했다. 시 창작과 이해에 관한 이론서『시칙』과『산경표』 등 다양한 저서를 편찬한 조선 영·정조 시대의 지리학자·실학자인 여암 신경준(1712~1781)과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라고 말하던 권일송(1933∼1995) 시인도 이곳 출신이다. 특히, 여성의 지위를 인정하며 꽉 막힌 유교 사회의 부조리에 비판의식을 드러낸 「설공찬전」의 존재는 무척 귀하다. 게다가 순창은 이름난 학자와 풍류객의 흔적도 많다. 예술과 풍류는 본래 세상을 비켜 보는 비판과 저항 의식에서 나온다. 이는 중앙권력에서 먼 전라도를 지키며 혹은 벼슬을 마다하고 이 땅을 찾은 강직하고 고결한 이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문학은 그런 것이며, 순창의 매운맛도 같은 선에 있다.
△문학 명소가 찾아진 곳은 115곳
최명희문학관과 혼불기념사업회, 얘기보따리가 전라북도 14개 시·군에 앞서 남원시·완주군·임실군·순창군의 문학 명소를 찾아 나섰다. 문학 명소는 문학적으로 의미 있는 공간이나 장소를 말한다. 작가의 삶과 문학 작품에서 유의미한 곳으로 널릴 알릴만한 곳을 가리키며 △작가가 태어난 곳 △작가가 거주한 곳 △작가가 작품을 쓴 곳 △작품의 주요 배경지 △작품에서 의미 있게 거론된 공간 △시비·소설비·문학비와 같은 문학적 상징물이 있는 공간 △문학관·기념관과 같이 작가와 작품을 기념한 공간 △문학인이나 문학작품이 떠오르는 공간 등이 해당한다. 4개 시·군에서 115곳의 문학 명소가 추려졌다. 남원시가 36곳으로 가장 많았고, 순창군이 17곳, 완주군이 31곳, 임실군이 31곳이었다.
빗물 고여 팔랑이는 흙바닥 길에 숨통을 터놓고 바퀴자국 훑고 간 자리에 안부를 걸쳐 놓는다 이때 삼례터미널은 빈집 같다 버스들은 벚꽃 잎들을 헤아리며 종점 없는 마을로 떠날 것 같다// 내 안에 새겨진 주름 패인 얼굴을 현상해 놓고 흑백사진 같은 터미널 지나 후정리 길목에서 손 흔들던 그의 모습을 던져주고 간다
∥김헌수의 시 「삼례터미널」 부분
문학 명소가 모여 있는 곳은 완주군 삼례읍 일대가 9곳으로 가장 많았다. △그림책미술관 △동학농민혁명삼례봉기역사광장 △비비정 △삼례문화예술촌 △삼례시장 △삼례역 △삼례책마을문화센터 △완주향토예술문화회관 △우석대학교 교정 등이다. 일찍이 교통의 요지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가 살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국어국문학과가 있었던 것도 큰 이점이다. 삼례의 역사와 문화, 삼례의 공간과 음식 등을 소재로 시를 쓴 시인 중에 우석대학교와 인연이 깊은 이가 많은 것이 이를 말해준다. 김헌수·송하선·안도현·유강희·정양·진창윤 시인 등이다.
실향민의 아픔과 아름다운 옥정호가 공존하는 임실군 운암면은 8곳, ‘김용택시인의작은학교’와 진뫼마을이 있는 임실군 덕치면이 7곳, 순창의 역사·문화 콘텐츠가 모여 있는 순창군 순창읍이 6곳, 소설 「혼불」의 배경지인 남원시 사매면이 5곳, 지리산 일대인 남원시 산내면이 5곳, 다양한 문화시설이 모여 있는 남원시 어현동이 4곳이었다. 남원시 산곡동, 남원시 인월면, 순창군 동계면, 완주군 구이면, 완주군 동상면, 완주군 소양면, 완주군 용진읍, 완주군 운주면, 임실군 강진면 등은 각각 3곳의 문학 명소가 모여 있었다.
△문학 명소는 꾸준하게 늘어
그러나 문학 명소로 꼽은 115곳은 각 시·군 문학 명소 찾기의 시작을 의미하는 숫자일 뿐이다. 지역의 곳곳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은 꾸준하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한국문인협회 남원지부는 가을 시화전 주제로 ‘광한루원’을 제시했다. ‘남원의 문화를 알리고 계승 발전하는 것은 문인들의 몫’이며, ‘다양한 문화 재산을 보존하고 타 지인들에게 알리는 것’이 취지였다. 이에 남원 지역 문학인들이 광한루원을 소재로 한 시를 선보이며 크게 호응했다. 김두성의 「광한루원」, 곽진구의 「광한루 완월정에서」, 권용태의 「몽룡과 교룡」, 소은옥의 「완월정의 월하」, 오점록의 「광한루 뿌리를 찾아서」, 이문숙의 「광한루, 오작교」, 조내화의 「사랑으로」, 조희미의 「광한루원 나래」, 최규현의 「광한루의 겨울」, 최기식의 「광한루 오작교에 비가 내리면」, 최춘이의 「광한루원」, 하재룡의 「광한루 봄」, 하지연의 「광한루 단오」, 황용수의 「광한루원을 거닐어 보자」 등이다. 짧은 시간에 ‘광한루원’을 소재로 한 20여 편의 시가 탄생한 것이다. 순창문인협회, 완주문인협회, 임실문인협회 등 각 지역에 기반을 둔 문학인 단체에서 발간하는 기관지를 살피면 지역 명소를 소재로 한 작품은 별처럼 쏟아진다.
4개 시·군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고전소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고전소설의 성지’라 불리는 남원을 비롯해 각 지역을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과 옛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남원의 「흥부전」, 「춘향전」, 「변강쇠전」, 「최척전」, 「홍도전」, 「만복사저포기」, 순창의 「설공찬전」, 임실의 「오수의 개」 등이다. 완주군이 배경지로 알려진 「콩쥐팥쥐」와 「선녀와 나무꾼」은 작품 내용 중 완주군을 배경지로 직접 거론한 작품이 많지 않아 아쉽다. 또한, △지리산 바래봉 △강천산 △대둔산 △모악산 △비비정 △위봉폭포 △섬진강 △옥정호 △회문산 등과 같은 자연환경과 △실상사 △송광사 △위봉사 △초남이성지 △임실성당 △화암사 등과 같은 종교시설, △김주열열사 추모공원 △만복사지 △송흥록·박초월 생가 △지리산지구전적기념관 △황산대첩비 △순창남계리석장승 △용진읍 원구억마을 △이치전적지 △정여립공원 등과 같이 옛사람이 남긴 흔적이나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유적지인 경우 시·소설·수필·희곡·시나리오 등 문학 작품이 되는 경우가 많아 작품의 숫자는 더 많이 늘 것이다.
△고향을 소재로 한 시인·작가의 창작품 많아
남원시·순창군·완주군·임실군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많은 작품을 창작했거나 작품에 여러 배경지를 담은 문학인은 곽진구·김용택·복효근·안도현·장교철·최승범(1931∼2023) 시인과 김도수 수필가, 김양오·유수경 동화작가, 윤영근·이병천·최명희(1947∼1998) 소설가, 노경식·최기우·최정주 극작가, 최동현 판소리연구가 등이다.
“신형, 그곳이 고산현의 대둔산이오. 저 장형이 살렸다는 최대웅도 거기에 있을 거외다. 내가 망설인 이유는 신형이 때아닌 고생을 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소.”
“염려해주시니 고맙습니다만, 신일균은 이미 그를 보냈던 관군에서도 죽었고 내 마음속에서도 죽은 지 오랩니다. 대둔산에 가거든 어디를 찾아야 하오이까?”
“안심사에 가면 아마 길이 열릴 것이오.”
∥이병천의 소설『마지막 조선검 은명기3』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 시인은 고향인 임실을 비롯해 강천산·덕치초등학교·진뫼마을·섬진강길 등 순창군과 임실군 여러 곳에 자신의 흔적을 인상 깊이 심어 놓았다. 임실의 섬진강댐 물문화관도 시인의 시 「섬진강」을 시작으로 박경리 소설가의 「토지」와 최명희 소설가의 「혼불」을 소개한다. 이병천 소설가는 고향인 완주군 용진면 시천(詩川)마을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저기 저 까마귀떼」를 썼으며, 대둔산에서 끝까지 항전한 동학농민군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마지막 조선검 은명기」를 발표했다. 또한, 남원·순창 등을 배경으로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썼다. 순창 출신으로 오랜 시간 고향에서 교직 생활을 한 장교철 시인은 지금까지 옥천향토문화사회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면서 순창 지역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한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순창 출신 판소리연구가인 최동현 시인은 『순창의 판소리 명창』에 순창 출신 명창의 삶과 소리 세계를, 『안숙선의 판소리』에 남원 출신 안숙선 명창의 삶과 소리 세계를 담았다. 임실 진뫼마을이 고향인 김도수 수필가는 오랜 시간 타지에서 생활하면서도 늘 고향을 그리워하며 땅과 강,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에 얽힌 추억을 수필집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와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 시집 『진뫼로 간다』에 새겨 놓았다.
고향은 아니지만, 전북의 역사·문화 콘텐츠를 폭넓게 담고 있는 작가도 많다. 유수경·최기우·최명희가 한 예다. 유수경 작가는 익산이 고향이지만, 완주군의 역사와 문화를 두 편의 동화에 그렸다. 만경강 발원지인 밤샘과 밤티마을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하늘 아래 첫 동네 밤티」와 1920년대 일제가 수탈을 위해 양곡창고(현재 삼례문화예술촌)를 지으면서 사라진 맹꽁이와 금개구리 이야기를 그린 「한내천에 돌아온 맹꽁이와 금개구리」이다. 극작가 최기우는 남원을 배경으로 창극 「춘향, 네 개의 꿈」, 국악뮤지컬 「시르렁 실겅 당기여라 톱질이야」 등 여러 편을 무대에 올렸으며, 완주군과 전주시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희곡 「달릉개」, 「들꽃상여」, 「은행나무꽃」, 「정으래비」 등을 선보였다.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은 아버지의 고향인 남원 사매면을 주요 배경지로 했다. 작품 속에서 임실의 이웅재고가, 완주 송광사 사천왕 등 전북을 폭넓게 다룬다.
전남의 섬에서 태어났지만, 임실 신전마을을 제2의 고향으로 삼은 장현우 시인은 임실에서 농사를 배우고 이웃과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삶과 성찰을 시집 『귀농일기』와 『바다는 소리 죽여 우는 법이 없다』에 고스란히 담았다. 충남 당진 출신으로 남원에 사는 김양오 작가는 도공·춘향사당·몽심재·이화중선 등 남원의 역사·문화 콘텐츠를 매년 동화로 써서 세상에 알리고 있다. 경북 예천 출신으로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40여 년 동안 전북에서 거주한 안도현 시인은 춘향터널·삼례역·화암사 등을 비롯해 전라북도 14개 시·군의 풍경과 감성을 빠짐없이 시에 담으며 전북 문단사에 뚜렷하게 이름을 새겼다.
시인과 작가들이 생생하게 살려낸 문학의 근원들은 시대를 넘어 작가와 작품을 기억하게 한다. 이들이 풀어낸 문학의 향기는 이 땅을 다시 흐드러지게 피어나게 할 찬란한 힘이다. /최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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