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의 문학비
시비·노래비·기념석 등 다양한 문학비가 공원과 문화시설, 마을 어귀 등 우리 가까이에 있다. 남원시·순창군·완주군·임실군 중 문학비가 가장 많은 곳은 남원시다. 교룡산국민관광지, 춘향테마파크, 호암시비공원에 시비들이 숲을 이뤘고, 구룡계곡, 만인의총, 변강쇠백장공원, 오리정, 유천마을, 정령치휴게소, 혼불문학관 등에도 각 공간의 특성에 맞춰 시비와 표지석 등을 세웠다.
교룡산국민관광지는 산책로 곳곳에 남원을 상징하는 작품이 돌에 새겨 있다. 고전소설 「춘향전」의 성춘향이 옥에서 들려준 「옥중시」와 이몽룡이 변사또 생일잔치에서 읊은 「어사시」, 임진왜란·정묘호란 때의 의병장 방원진(1577∼1650)의 시조 「애련곡」, 유천마을이 고향인 김삼의당(1769∼1823)의 시 「화만지」, 수지면 출신인 박항식(1917∼1989)의 시 「도라지 꽃」, 복효근의 시 「다시 밝혀 드는 동학의 횃불」 등이다. 교룡산(520m)의 허리를 타고 한 바퀴 돌아오는 둘레길에서 남원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으며, 유서 깊은 교룡산성·선국사·은적암터도 살필 수 있다.
임권택의 영화 <춘향뎐>(2000)과 TV 드라마 <쾌걸춘향>(2005)이 촬영된 춘향테마파크에는 고증을 거쳐 세워진 춘향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춘향전」과 남원을 소재로 한 시비들과 <남원의 애수> 노래비가 있다. 강은교의 시 「춘향이의 꿈노래」, 곽진구의 시 「오작교」, 길용숙의 시 「그리운 이몽룡」, 김동리의 시 「남원에서」, 김소월의 시 「춘향과 이도령」, 김영랑의 시 「춘향」, 박재삼의 시 「자연-춘향이 마음 초(抄)」, 복효근의 시 「춘향의 노래」, 성춘향의 시 「옥중시」, 양성지의 시 「광한루 예찬 시」, 진복희의 시 「춘향연가」 등이다. 사부작사부작 걷다 보면 사랑가 한 대목 절로 흐른다.
호암시비공원은 덕과면 만동마을 들머리에 남원과 연관 있는 조선 시대 선비 18인의 시를 돌에 새겨 만든 쌈지공원이다. 1789년(정조 13년) 창건된 호암서원이 가까이 있다.
향교동 유천마을에는 조선 시대 유일한 부부 시인인 담락당 하립(1769∼1830)과 김삼의당의 시비가 있다. 하립은 문집『담락당집』을 남겼고, 가난한 살림을 꾸리는 여염집 여인인 김삼의당은 글공부를 위해 먼 곳에 있는 남편에 대한 애정과 기대, 아이들의 육아와 시집살이, 일상 속 크고 작은 일들과 자연의 멋을 소재로 260여 편의 한시와 산문을 남겼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 태어났다고 알려진 부부의 사연은 표성흠의 장편소설『교룡』에서 더 애틋하다.
△순창군의 문학비
편백으로 가득한 국립회문산자연휴양림 ‘해원의 숲’은 김소월·김용택 시인의 시가 있는 산책로다. 김소월의 시 「산유화」가 새겨진 시비가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산책로를 따라 나무 팻말에 담긴 「어느 날」, 「단 한 번의 사랑」, 「산벚꽃」 등 김용택 시인의 시가 마음의 휴식을 선사하며 걸음을 가볍게 한다.
귀래정 체육공원에는 순창읍 가잠마을 출신으로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라던 권일송(1933∼1995)의 시 「반딧불」이 새겨진 시비가 ‘한 방울의 술’처럼 서 있다. ‘찢기운 조국’에서 ‘미쳐 돌아가는 용녀의 춤을 멎게 할 천동의 한바탕’을 기다리던 그는 많은 밤, ‘비에 젖는 공화국 헌법 제1조’를 꺼내 들고 ‘절망의 술잔’을 기울였다. 온갖 비리가 난무하는 황량한 세상. 시인에게 술은 내일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서 어둠을 견디는 마지막 묘약이었을 것이다. 복흥면 동산마을에 조선 성리학의 마지막 거장인 노사(蘆沙) 기정진(1798∼1879)의 유허비와 시비가 있다. 높이 1.8m의 유허비엔 그의 일대기와 사상을, 시비엔 그가 8살 때 지었다는 한시 「내장산」을 새겼다.
△완주군의 문학비
문화예술공간 여산재는 돌에 새겨 펼친 시의 숲이다. 2003년부터 김남곤·정군수·조미애·황금찬·허소라의 시와 강현욱·김우종·김형석·박승·안숙선·정세균·지정환·최불암·함종한 등 유명인의 어록을 돌에 새겨 시비림(詩碑林)을 공들여 만들고 있다. “만발하는 꽃에 향기가 없다면 진실과 가치가 무너지듯이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분과 예술의 한 장르를 일궈 내겠다.”라는 것이 여산재를 설립한 국중하 수필가의 의지다.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는 삼례에는 삼례집회와 삼례봉기를 기념하기 위한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역사광장’과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기념비’(삼례읍 삼례태평길 36-2)가 서 있다. 역사광장은 2003년 10월 10일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완주지부가 주도해 조성했으며, 동학농민혁명봉기 기념비, 추념의 장, 대동의 장, 동학농민군 출진상 등을 갖춰 동학농민혁명 속 삼례의 역사를 공고히 했다. 송기숙(1935∼2021)의 소설 「녹두장군」에 삼례에 모인 민초의 삶이 생생하게 묘사됐다.
△임실군의 문학비
임실에도 문학비가 많다. 임실문인협회에서 2008년 사선대 진입로 작은 동산에 세운 임실문학비는 임실 문학인들의 기세를 높이는 문학비다. 『임실문학』 제30호 발간을 기념하고, 협회와 회원들의 문운과 단결, 애향을 기원하며 최풍성의 시 「글 동산에 모여」와 임실문협 회원 104명의 이름을 새겼다. 문학비를 세우던 2008년에 48명의 이름을 새겼지만, 이후 회원이 늘면서 문학비 옆에 비석을 만들어 56명의 이름을 더 넣었고, 앞으로 활동할 회원들의 이름이 들어갈 여분까지 남겨놓았다. 사선대 조각공원에는 임실이 고향인 가수 최갑석(1938∼2004)의 노래 <38선의 봄>과 <고향에 찾아와도>의 노랫말을 새긴 노래비가 있다. 섬진강댐 수몰민의 서러움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요산공원 ‘망향의 탑’에는 김춘자의 시 「사라진 흔적 가슴에 새기며」가 새겨 있다.
임실 문학비의 성지는 진뫼마을에서 시작된다. 마을 앞 고추밭 가장자리에 ‘월곡양반 월곡댁/ 손발톱 속에 낀 흙/ 마당에 뿌려져/ 일곱 자식 밟고 살았네’라고 새겨진 작은 비석이 있다. 진뫼가 고향인 수필가 김도수가 2006년 부모님이 땀 흘리며 일구던 밭에 세운 것으로, 사람들은 이 비석을 ‘사랑비’라 부른다.
자식들은 비단길 걷게 하겠노라고 힘든 가시밭길 걸어오신 부모님의 깊은 뜻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만, 여기 살아생전에 미처 다 드리지 못한 사랑을 조그마한 비에 새겨 기리려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가난했지만 일곱 자식들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김도수의 수필 「월곡양반과 월곡댁에게 사랑비를 바칩니다」 중에서
수필집『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전라도닷컴·2015)에 실린 그의 글에서 식구들을 먹이고 키워준 논밭 다랑이 흙냄새가 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진뫼마을에서 천담마을에 이르는 섬진강길에는 「농부와 시인」, 「향기」, 「봄날」, 「사람들은 왜 모를까」, 「나무」, 「섬진강1」, 「섬진강3」 등 김용택의 시를 새긴 시비가 여럿 있다. 섬진강길을 따라 유유자적 걸으며 맑은 물살이 흘러가는 소리를 들으면 시와 삶과 풍경이 하나가 된다. 시비에 적힌 시를 소리 내 읽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시인이 된다. /최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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