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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전북의 문학 명소] 5.옛이야기에 스민 선인의 마음

모든 곳에 이야기가 있다. 그중 으뜸은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의 삶과 소망이 깃들어서 전해 내려온 전래동화다. 대부분 권선징악 구조로 이뤄져 있으며, 주인공이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며 자신의 꿈을 성취하는 내용이다. 이야기에 담긴 삶의 철학과 가치는 우리 겨레를 비롯한 세계인이 보편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들이 전승된다. 각박해질수록 전래동화를 더 귀하게 여겨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전래동화 속 마을도 늘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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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콩쥐팥쥐마을, 임실 오수의견공원, 순창 삼인대, 임실 조삼대 (왼쪽부터 시계방향).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임실 ‘오수의 개’

‘오수의 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개다. 산불로부터 술에 취해 잠든 주인을 구하기 위해 냇물에 몸을 적셔 주위 들풀에 비벼 불길을 막고 자신은 지쳐서 죽었다는 이야기의 주인공. 이 이야기는 전라도 안찰사 출신인 최자(1188∼1260)의『보한집』(1254)에 처음 실렸고, 1911년 간행된 보통학교의 교과서『조선어독본』과 1973년 간행된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의견으로 소개되면서 전 국민이 다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 지금도 이준연·정하섭 등 여러 작가가 동화로 각색해 독자를 만나고 있다.

오수의견비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오수 주민들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본래 설화의 무대인 오수면 상리마을 앞 오수천 가까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하천 정비 공사를 하면서 사라졌다가 1939년 마을 유지들이 현상금 20원을 걸고 찾아냈고, 현 위치인 오수시장 옆 원동산공원으로 옮겨졌다. 오수의견비각 현판 글씨는 무주군 출신으로 국무총리를 지낸 황인성(1926∼2010)이 썼다. 의견비 바로 곁에는 귀가 늘어지고 적당히 긴 털을 가진 의견상이 서 있으며, 공원 한쪽에는 9기의 선정비들이 있다. 1971년 12월 2일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개 오(獒), 나무 수(樹)를 쓰는 오수면의 지명 역시 그 개의 무덤에 꽂은 지팡이가 큰 나무로 자랐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완주 앵곡마을에서 읽어야 제맛인 콩쥐팥쥐

한민족에게 가장 친근한 전래동화 「콩쥐팥쥐」는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로 시작되는 꿈결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조선 이조 중엽 시절에 전라도 전주 서문 밖 30리쯤 되는 곳에 한 퇴리가 있으니, 성명은 최만춘이라 하였다. (중략) 열 달이 차자 갑자기 그윽한 향기가 방안에 감돌며 문득 한 옥녀를 낳았으니, 딸아이의 이름을 콩쥐라 지어 애지중지 길렀다.

∥최고본(最古本) 대창서원판『대서두서전(콩쥐팥쥐전)』(1919년)

콩쥐팥쥐 이야기는 전국에 걸쳐 분포하며, 서양의 「신데렐라」 이야기도 유형이 유사하지만,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 ‘전주 서문 밖 30리쯤 되는 곳’이라는 구체적인 지역적 배경이 언급돼 완주군 이서면 앵곡마을과 그 일대가 ‘콩쥐팥쥐의 고향’이 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었다. 그래서 이서면의 도서관 이름은 ‘콩쥐팥쥐도서관’이며, 전주시에서 이서면을 거쳐 김제시로 이어진 도로는 ‘콩쥐팥쥐로’가 되었다. 완주향토예술문화회관에서는 ‘콩쥐팥쥐’를 소재로 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모두 ‘전주성 서문 밖 30리’라는 첫 문장이 낳은 결과물이다.

 

△놀부와 흥부가 화해하고 행복을 찾은 남원 흥부마을

남원은 고전소설문학관이 있을 만큼 옛이야기가 차고 넘치지만, 놀부·흥부 형제 이야기가 첫손에 꼽힌다. ‘흥부’를 앞세운 흥부마을도 두 곳이다.

아영면 성리 상성마을은 놀부에게 쫓겨난 흥부가 정착하고 제비 다리를 고쳐준 뒤 부자가 된 마을이라 ‘발복지’라 불리며 많이 알려졌다. 흥부가 배가 고파 쓰러졌다는 허깃재와 흥부가 허기로 쓰러졌을 때 흰죽을 먹여 살린 은인에게 논을 사주었다는 흰죽배미, 놀부가 흥부의 집을 찾아왔다가 화초장을 지고 건넜다는 개울 노디막거리, 흥부와 놀부가 살았다는 장자골 등이 지척이다. 마을 사람들은 「흥부전」이 조선 영·정조 때, 이 마을에서 많은 덕을 베풀며 살았던 박춘보 이야기를 근거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마을 뒷산에는 그의 무덤이 있고, 주민들이 해마다 추모제를 올리는 망제단이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인월면 성산마을은 놀부와 흥부가 태어난 곳이다. 성산마을에는 이웃과 소작인을 괴롭혀 놀부의 모델이 된 박첨지가 살던 곳으로 박첨지네 텃밭과 서당 터가 있으며, 마을 앞 냇가에는 제비를 형상화한 연상교가 있다. 연비봉, 화초장 바위, 흥부네 텃밭 등 「흥부전」에 나오는 지명도 전해진다. 그러나 성산마을의 의미는 오히려 더 특별하다. 「흥부전」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성산마을은 고약한 성격의 놀부가 박을 타다가 쫄딱 망한 마을이 아니라, 개과천선해 동생과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여기며 사는 따뜻한 마을이기 때문이다. 최기우의 희곡 「시르렁 실겅 당기여라 톱질이야」에 가족의 화해와 화합을 부르는 남원의 소리와 그 의미가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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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담긴 뜻을 잇는 마음

남원 구룡계곡은 양반 출신 명창 권삼득(1771∼1841)이 득음한 곳으로 알려졌다. 권삼득은 제2곡인 북바위에 앉아 소리 한바탕을 한 뒤 옥룡추 계곡에 콩을 한 알씩 던졌는데, 한 가마가 다 없어졌을 때 비로소 득음했다는 일화다. 은적암터는 수운 최제우(1824∼1864)가 동학 경전인『동경대전』과 포교가사집인『용담유사』를 집필한 은적암이 있던 곳이다. 몽심재 고택은 1700년에 박연당이 지은 양반가 건물로, 김양오의 동화 「꿈과 마음이 담긴 집 몽심재」에 넓은 품으로 모든 사람을 반겨 맞은 몽심재의 모습이 세심하게 그려 있다.

변강쇠백장공원은 옹녀와의 사랑을 위해 장승을 뽑아 땔감으로 쓴 변강쇠가 벌을 받아 장승처럼 굳어서 죽었다는 「변강쇠전」을 소재로 만든 쌈지공원이다. ‘조선 팔도를 누비다 강쇠가 옹녀를 만나 이곳에 이르러 음양바위에서 운우지정을 나누며 장승들을 뽑아 땔감으로 쓰니 대방장승이 대노하여 팔도 장승을 이곳에 모이게 하여 강쇠에게 벌을 내린 곳으로 전해져 백장골로 불리어 온다네.’라는 공원의 안내 글이 무섭다기보다는 정겹다. 공원 옆을 흐르는 백장암 계곡에는 변강쇠와 옹녀가 놀았다고 전해지는 백장바위, 남녀의 성기 모양을 한 음양바위, 바위를 긁어 국을 끓여 먹으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는 근연바위 등이 곳곳에 있다.

임실 운암강에는 낚시로 산삼을 낚아 어머니의 병을 고쳤다는 운암 이흥발(1600~1673)의 조삼대(釣蔘臺) 설화가 있다.

순창 삼인대는 1515년 김정(순창군수)·박상(담양부사)·유옥(무안현감)이 중종반정으로 억울하게 폐위된 단경왕후 복위를 위해 목숨을 걸고 상소문을 썼던 곳이다. 그 올곧은 정신을 잇는 마음은 계속 이어져 여러 문학인이 삼인대 정신을 문학 작품에 담았고, 순창삼인선양문화회는 2003년 순창의 300개 마을에서 2개씩 돌을 모아 절의탑(節義塔)을 세워 선인의 충절을 기렸다. /최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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