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다양한 밑그림들이 판소리의 바탕이 된다. 수궁가·심청가·적벽가·춘향가·흥부가 등 판소리 다섯 바탕은 어느 특정한 예술가가 어느 날 갑자기 창작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판을 거듭하며 여럿이 어우러져 이뤄냈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쌓여 풀어지고 익고 삭아야 혼이 담긴 사설을 담을 수 있고, 눈이 부시게 서러운 자기 수련을 제대로 겪어야 좋은 소리를 얻을 수 있다. 문학과 판소리는 하나다.
남원시·순창군·완주군·임실군에는 판소리와 관련된 곳이 많다. 광한루원, 남원고전소설문학관, 변강쇠백장공원, 오리정·버섯밭, 춘향묘, 춘향테마파크, 흥부마을(아영면·발복지), 흥부마을(인월면·태생지)은 판소리 다섯 바탕의 배경지이고, 구룡계곡(국창권삼득유적비), 송흥록·박초월 생가, 용진읍 원구억마을(권삼득 생가·묘역·소리굴)은 명창과 관련이 깊다. 국립민속국악원, 안숙선명창의여정, 춘향문화예술회관, 순창국악원, 완주향토예술문화회관, 필봉문화촌은 판소리가 다양한 매체로 변화하며 시민을 만나는 현장이다.
△판소리 동편제의 탯자리 운봉읍 비전마을
남원의 풍류는 판소리 동편제의 탯자리라는 자부심에서 시작된다. 남원은 국악의 본거지라 할 만큼 수많은 명인과 명창이 나왔다. 그 시작은 판소리사에 가장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며 철종 10년(1859) 정삼품 통정대부의 벼슬을 제수받은 송흥록과 송광록, 송우룡, 송만갑(1865∼1939) 가문이다.
지리산 아래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은 동편제 판소리의 창시자인 송흥록이 태어난 곳이며, 명창 박초월(1917∼1983)이 성장한 소리의 고향이다. 송흥록의 아우로 한때 형의 고수로 지내다가 소리를 연마해 형에 버금가는 명창이란 소리를 들은 송광록도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판소리사에서 가장 많은 제자를 길러낸 송만갑은 구례 출신이지만, 송광록의 손자이니 이 마을과 무관하지 않다. 박초월 명창은 13살에 성악의 묘를 체득해 명창이 된 전설적인 인물이다. 남원, 그중 운봉은 말 그대로 ‘국악의 성지’다.
동편제 명창들의 여러 이야기는 윤영근의 장편소설 「동편제」(삼신각·1993)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4대를 이어온 가업인 한의사로 일하면서도 소설가의 삶 또한 소홀함 없이 꾸려온 윤영근은 수필 「작가에게 고향은 무엇일까」(『월간문학』 2021년 11월호)에 ‘중학교 시절 어렴풋이 장차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간직한 이후 70년 세월을 늘 글감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라고 고백하며 소리꾼들과의 인연을 밝혔다.
어린 시절 그의 집 사랑채는 소리꾼들의 사랑방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임방울·송만갑·이화중선 같은 소리꾼이 찾아와 며칠씩 머물다 갔다. 소리꾼이 오면 마당에서는 자연스레 소리판이 벌어졌다. 그때 들었던 명창들의 소리는 그에게 <쑥대머리> 한 대목을 흥얼거릴 수 있게 했고, 소설 「동편제」와 「각설이의 노래」, 「가왕 송흥록」, 「이화중선」 등을 쓸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목청을 틔우려고 피를 토하며 독공을 했던 얘기며, 창극단 공연을 다니다가 불온한 대목을 불렀다 하여 경찰서에 끌려가 일본 순사에게 모진 고문을 당한 얘기들은 그대로 내 소설의 소재가 되었다. (중략) 동편제의 가락을 '지리산 천왕봉에서 집채만 한 바위가 굴러 내려오는 소리'로 비유하고 있다. 어쩌면 남원이 동편제의 본향이 된 것도 지리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리산의 우람한 산세가, 골짜기마다 숨어 있는 크고 작은 폭포가 수많은 명창들을 길러 냈는지도 모르겠다. 지리산의 넉넉한 품 안에서 절차탁마하여 명장으로 우뚝 선 소리꾼들은 또 내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지리산은 내게 얼마나 고마운 산인가. 남원의 동편제, 동편제를 부른 남원 출신의 소리꾼들, 그리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명창을 길러낸 지리산은 내 소설 속의 또 다른 주인공이 아닐 수 없다. ∥윤영근의 수필 「작가에게 고향은 무엇일까」
작가는 고향의 산, 들, 강,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야 하며, 그것이 고향에 보은하는 길이라고 말하는 작가 윤영근. 그의 소설들을 읽으면 <춘향가>나 <흥보가> 한 대목은 흥얼거릴 줄 알고, 젓가락 장단일망정 고수 흉내를 낼 줄 알며, 송흥록이 <귀곡성>을 부르면 귀신이 화답했다는 일화 하나쯤은 꺼내놓을 줄 알게 된다.
△숱한 명창을 배출한 판소리의 고장 순창
순창은 김세종·박유전·장재백·장판개 명창을 배출한 판소리의 고장이다.
복흥면 서마리 마재마을 출신인 박유전(1834~1904)은 ‘서편제의 아버지’로 불린다. 대원군이 그의 소리에 ‘제일강산’(천하에서 제일)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무과 선달의 명예직 벼슬을 내리기도 했다. 동계면 가작리 쑥대미 출신이라고도 하고, 팔덕면에서 나서 인계면에서 살다가 죽었다고도 전하는 김세종(1825~1898)은 신재효의 집에서 판소리 선생을 지내면서 장재백·김찬업·이동백·이선유 등 많은 명창을 배출했다. 최초의 여성 명창 진채선을 가르친 것도 김세종일 가능성이 크다. 그의 수제자로 적성면 운림리 매미터 출신인 장재백(1849~1906)은 순창과 남원 일대의 동편제 법통을 전승했으며, 일제강점기 최고의 여성명창인 이화중선·이중선·박록주 등이 적성면에서 그에게 소리를 배웠다. 금과면 연화리 삿갓데마을 출신인 장판개(1885~1937)는 송만갑의 제자 중 첫손에 꼽힌다. 1904년 고종황제에게 참봉 벼슬을 하사받기도 했다. 이들 명창이 뿌린 소리의 맥은 순창국악원에서 잇고 있다. 국악원은 판소리·민요·난타·창극·무용·가사‧가곡·농악 등 국악의 전 분야를 아우르는 강의로 국악 동호인을 넓혀가고 있다.
순창 출신 판소리연구가 최동현이 쓴 『순창의 판소리 명창』(민속원·2023)은 김세종, 박복남, 박유전, 배설향, 성점옥, 이화중선, 장득주, 장득진, 장영찬, 장재백, 장판개, 주덕기, 한애순 등 스무 명에 가까운 순창 지역 판소리 명창을 소개하면서 우리 판소리사에서 순창의 역할을 가늠하게 했다. 그가 2011년에 낸 『소리꾼-득음에 바치는 일생』(문학동네)은 소리꾼이 득음하기까지의 혹독한 과정을 김세종·박유전·장재백·장판개 명창의 삶을 빗대 들려준다.
△조선 최초의 ‘비가비 명창’ 권삼득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는 최초의 ‘비가비 명창’인 권삼득(1771∼1841)이 나고 자란 곳이다. 동네 굿판에서 판소리에 매료된 그는 글공부를 팽개치고 소리 공부에만 매달렸다. 그 이유로 죽을 고비를 맞지만, 멍석에 휘말린 그는 “소리 한마디만 하고 죽게 해 달라!”라고 청했다.
아 말이 판소리지, 그게 광대아닝가아, 광대. 그 집안으 아부지 형님들이 양반 가문에 일대 치욕이라 해서, 판소리 공부를 아조 포기허게 헐라고 왼갖 방법을 다 써봐도 끝내 안 듣거등. 지금이라고 머 달러진 것도 없지마는, 그때는 더 했을테지맹. 집안에 광대 나먼 온 집구석 쑥대밭 되는 것으로 안 알었능가잉? ∥최명희의 장편소설 「제망매가」
마지막 가는 길에 하나 소청이 있노라 허드랑게. 그게 뭔고 허니 가조 일곡을 부르고 죽겄노라 허는 거 아니겄어? 기왕지사 직이기로 작은 혔으니 죽는 사람 소원 하나 못 풀어주랴 허락을 허고 모두 빙 둘러서 듣는디 거적 밑에서 새나오는 가조 일곡이 그만 사람으 오만간장을 다 녹이지 않았더라고? 울음바다가 됐당게로. 그래 하도 가긍허여 문중이 다시 의논을 혔지야. 족보에서 활적하고 내쫓기로 혔다이.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중에서
거적에 덮여 부르는 <춘향가> 중 십장가. 슬프고 애달픈 그의 소리에 감동한 문중 사람들은 그를 죽이는 대신 족보에서 제명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 길로 권삼득은 완주의 위봉폭포와 남원의 구룡폭포 등 세상을 떠돌며 설움을 떨치고 소리 공부를 했다. 소리 때문에 가문에서 쫓겨난 그는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고 들고 맞으며 세상사 설움을 떨쳤다. 폭포의 굉음에 맞서 목에 시퍼런 핏줄을 세우고 온몸의 기운을 상청으로 뽑아냈다. 신재효(1812∼1884)가 <광대가>에서 높은음을 길게 질러 내는 권삼득의 소리를 ‘천층절벽 불끈 소사 만장폭포 월렁궐렁 문기팔대 한퇴지’라 하며,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에 비유한 것은 이 때문이다.
권삼득은 노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고단한 소리꾼의 삶을 끝냈다. 용진면 구억리에 안동권씨 집성촌과 사당이 있고, 용진면사무소에서 구억리 방향으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의 나지막한 산에 그의 무덤이 있는데, 무덤 옆에 ‘소리구멍’이라고 불리는 조그마한 구멍이 뚫려 있다. 더질더질. /최기우(극작가)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