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왕의 전형을 만나는 완주 송광사
867년 창건한 천년고찰인 송광사는 국내에서 드물게 평지에 지어진 사찰이다. 지붕 맞대고 울타리 잇대 사는 여느 집처럼 들어앉은 품새가 허물없이 속내 나누고 사는 마을의 한 이웃 같다. 일주문부터 금강문, 천왕문, 대웅전까지 일직선으로 서 있는 것도 송광사의 특징이다. 절 앞에 서면 일주문 안으로 금강문이, 그 문 안으로 천왕문이, 또 그 문안으로 대웅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최명희는 소설 「혼불」에서 승려 도환이 입을 빌려 ‘완주 송광사 사천왕을 사천왕의 전형으로 보았다.’라고 말한다. 현존하는 소조 사천왕으로는 가장 오래된 존상이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소승이 보기에는 완주 송광사 사천왕이, 흙으로 빚은 조선 사천왕 존상들 가운데 가장 빼어난 조형으로서, 높이 십삼 척의 위용도 웅장하고, 그 큰 신체 각 부위 균형이며 전체 조화가 놀랍도록 알맞게 어우러져 큰 안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얼굴의 표정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조각되어, 깊이 패인 이마의 주름살에 미간의 찌푸림, 우묵히 들어갔다 튀어나온 눈두덩, 그리고 눈자위와 눈밑의 굵은 주름들을 보고 있으면, 도무지 투박한 진흙을 주물러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극채 찬란한 색깔들.” ∥최명희의 장편소설 「혼불」
사천왕은 단 한 위도 같은 상이 없다. 동․남․서․북 각 방위 천왕의 신모(神貌)가 서로 다른 것은 물론이고, 같은 이름의 북방다문천왕이라고 해도 사찰마다 특성이 있어 비파의 생김새며 사현(四弦)을 누르고 튕기는 손가락의 모양과 위치, 얼굴 모색에 눈썹․눈․코․입술․이․수염의 형태가 다 달라서 빚는 손, 바치는 마음이 인간을 넘어 정토와 십계에 사무친다. 눈썹 하나만 보더라도 천편일률적으로 무조건 시커멓게 먹칠한 솔잎처럼 곤두선 것이 아니다. 선운사 북방은 완연히 웃음을 띤 주름의 노안에 어질고 부드러운 흰 눈썹 다보록이 눈을 덮어 나부끼는 데다가, 수염도 맑은 은실 다발을 빗어 내린 듯 투명하다. 송광사 북방은 가장 사천왕다운 장엄 용맹의 풍모로 눈썹 터럭 한 올 한 올 힘차게 박아 세운 것이 장비 수염과 함께 어울려 서슬 푸른 바람 소리를 낸다. 그러나 그 서슬을 누그리며 중생을 달래는 것은 코밑의 수염이었으니 터럭이 길어 여덟 팔(八)자로 드리워진 숱이 짙고 검었다.
임진왜란 때, 송광사는 승병 사령부였다. 하지만 석가모니에게 ‘살생의 성공’을 기원할 수는 없는 법. 하여 승병들은 사천왕에게 승리를 기도했고, 그 흔적이 남아 지금도 사천왕 앞에는 촛불과 향이 타오른다.
△쓸쓸한 심사를 달래기에 좋은 실상사
남원 산내면 아늑한 들판 가운데 있는 실상사는 눈 내리는 겨울에 찾아 들어 쓸쓸한 심사를 달래기에 제격이다. 드넓은 논과 밭을 떠돌이처럼 헤매도 보고, 절 입구에 있는 돌장승들에 하소연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상사는 시인과 소설가의 출입이 유난히 잦고, 시와 소설로도 자주 읽힌다. 도종환의 시 「실상사-정도상에게」, 신경림의 시 「실상사의 돌장승-지리산에서」, 신용목의 시 「실상사에서의 편지」, 정동철의 시 「실상사 철조여래좌불을 만나다」 등이다.
실상사를 배경으로 한 정도상의 소설 실상사는 「봄 실상사」, 「여름 실상사」, 「가을 실상사」, 「겨울 실상사」, 「내 마음의 실상사」 등 다섯 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집이다.
「봄 실상사」는 통일 운동을 하며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힘겨워하는 주인공이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 찾아간 실상사에서 운동권 시절 헤어졌던 첫사랑 운서와 마주치는 모습을 환상적으로 그렸다. 「여름 실상사」는 명품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추구하며 술집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영혼과 육신이 피폐해진 여대생 국희가 실상사에서 상처를 치유 받는 과정을, 「가을 실상사」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병에 걸린 시골 청년 현우의 죽음을 시간의 해체와 정신분석적 기법 등을 동원해 그렸다. 「겨울 실상사」는 권력과 언론과 결탁해 성공을 거둔 타락한 벤처사업가 김성철의 분열된 자아를 드러내며, 「내 마음의 실상사」는 소설가이자 사회운동가인 나(화자)가 육체노동자인 친구를 통해 허명과 허위의식을 깨닫는 과정을 보여 준다.
통일 운동을 해온 작가의 체험담이 생생하게 들어있는 이 소설을 읽으면, 작가에게 실상사는 힘들고 지칠 때면 무작정 찾아가 쉬고 싶은 곳이다. 왜 왔냐며 묻지 않고, 잘못을 타박하지 않는 곳, 그곳은 고향일 수도, 엄마 품일 수도 있다. 어디 작가뿐이랴. 작가의 글을 접한 이들은 실상사에 가지 않았어도 이미 실상사는 고향이고, 엄마의 품인 것을….
△잘 늙은 절 한 채, 화암사
이유 없이 힘들거나 외로울 때가 있다. 완주군 불명 자락의 화암사는 그런 마음이 들 때 찾아가면 좋은 곳이다. 화암사는 현대 문명의 헛바람을 맞지 않고 오랜 세월 ‘곱게 늙어 온’ 절이기 때문이다.
화암사에는 보물 제662호인 우화루가 있다. 비가 꽃처럼 떨어지는 다락. 현판은 투박하고, 낡았다. 글씨는 흐릿하고, 벽은 까맣게 때가 묻었다. 그래서 더 애잔하니 곱다. 우화루 옆 작은 대문이 경내로 들어가는 문이다. 문지방은 움푹 파인 달문이다. 문턱에 둥글게 휘어진 나무를 대서 천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이룬 문을 들어서면 적묵당, 극락전, 우화루, 요사채가 고만고만한 크기로 서로 네 귀를 맞추듯 서 있다.
절 입구에 있을 법한 일주문도 사천왕상도 없이 경내로 들어서려면 작은 문 하나를 통과해야 한다. 잊을 수 없다. 세월에 닳은 문턱을 처음 넘어설 때, 나는 마치 어릴 적 외갓집 대문을 넘어 마당으로 발을 들여놓을 때와 똑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실제로 ㅁ자형 구조를 가진 경내로 들어가면 그곳은 절이 아니라 여염집의 편안한 안마당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때의 적막은 또 얼마나 큰 위안인가. ∥안도현의 수필 「잘 늙은 절, 화암사」
우화루는 절의 앞쪽에서 보면 우람한 다섯 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2층 누각이지만 경내에서 바라보면 단층구조다. 우화루 왼쪽 돌담을 끼고 돌아가면 정갈하게 지어진 해우소가 정겹고, 오른쪽에 사시사철 멈추지 않고 뿜어내는 약수가 맑다. 화려한 단청이 미치지 못할 격을 지니고 수수하게 나이 들어가는 사적들. 극락전은 이 땅에 유일하게 남은 백제 시대 건축의 유구다. 건축학자들은 극락전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하앙구조를 갖추고 있는 법당이라고 자랑한다. 극락전 안에선 유난히 정교한 아름다움을 지닌 닫집과 조선 시대 동종을 볼 수 있다. 이 동종은 예전에 사람이 종을 치지 않아도 밤이면 저절로 울려 스님들과 불공을 드리러 온 신도들을 깨웠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가 전해진다. 특히, 일제강점기 전쟁에 쓸 무기를 만들기 위해 조선의 쇠붙이를 강탈하던 일본 헌병들이 화암사로 몰려올 때, 동종은 스스로 울었고, 스님들은 동종을 땅에 묻어 두었다가 해방 후에 꺼내 오늘까지 무사히 보존하게 되었다.
화암사는 낡고 작고 허름하다. 세월에 부대껴 기둥은 까매졌고, 단청은 희미해졌다. 목어에는 두껍게 먼지가 내려앉았다. 그러나 너무 커서 위압적이지 않고, 화려해서 행인을 주눅 들게 하지도 않는다. 세월에 지치고 늙어가서 더 마음이 가는 절, 그게 화암사다. /최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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