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와 80년대 고교 야구의 열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향토애와 동문의식으로 똘똘뭉친 광팬들로 인해 ‘성동원두(城東原頭=성 동쪽 들판이라는 뜻)는 항상 만원이었다. 오늘날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있는 곳이 바로 서울운동장 야구장, 소위 성동원두 아니던가. 이름있는 상업계 고교는 물론, 내로라하는 인문계 명문고들은 고교 야구팀을 운영하며 성가를 톡톡히 누렸다. 고교야구 톱스타들은 대부분 투수와 4번타자를 겸한 대형 스타였고 요즘으로 치면 프로축구, 프로야구, 프로농구 스타를 합친것 만큼이나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고교야구 전성시대 초대 한화그룹 회장이자 천안북일고 설립자인 김종희 이사장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경향 각지의 선수들을 영입, 창단 3년만인 1980년 이상군 투수를 내세우며 첫 전국대회(봉황대기) 우승을 만들어낸다. 고교 야구는 대부분 지역 예선을 거치게 되나 봉황대기의 경우 전국 모든 팀이 본선에 참가하기에 가장 권위있는 대회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과거 봉황대기 참가팀은 전국적으로 50개 안팎이었으나 이달말 폐막하는 이번 제52회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에는 스포츠클럽 25개팀을 포함해 역대 최다인 전국 103개 고교팀이 출사표를 던졌다. 때마침 봉황대기에 참가한 전주고가 선전하고 있어 최종 결과가 주목된다.
봉황대기 야구를 지켜보면서 최근 일본 고시엔대회가 떠오른다. 1915년에 시작돼 올해로 106회를 맞은 고시엔대회는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고교야구대회인데 올해엔 일본 전역에서 무려 3957개 학교가 출전했다. 마침내 우승컵을 거머쥔 교토국제고의 교가를 부르는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재일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의 교가 일부다. 외국계 학교의 우승은 처음이라고 하니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한국계 민족학교의 고시엔 본선 진출은 교토국제고가 처음이나 멀리 일제강점기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스무 번에 걸쳐 조선 대표가 고시엔 본선에 출전했다고 한다. 최고 성적은 휘문고보(현 휘문고)가 1923년 기록한 8강인데 당시 휘문고보는 선수 전원이 조선인이었다. 며칠전 파리월드컵에서 선전한 전북 선수들의 환영식이 열렸다. 이번 파리올림픽에 전북자치도를 대표해 출전한 선수단은 선수 9명, 임원 6명 15명인데 특히 임실군청 소속 김예지 선수는 10m 공기권총 종목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면서 국제적인 관심을 끌기도 했다. 문제는 대회가 열릴때만 반짝해서는 미래가 없다는 거다. 이미 쇠락할대로 쇠락한 전북을 살리려면 초대형 국제대회라도 유치해야 할 모양이다. 지난해 새만금잼버리의 여진이 아직 남아 있기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미래 먹거리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복합리조트와 초대형 국제체육행사가 그 해법이 될 수 있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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