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다. 죽어가고 있다. 서글픈 부고장이 날아온다. 지방대 기초학문의 현실이다. 대학도, 지역사회도, 정부도 관심 밖이다. 아니다. 오히려 그 죽음을 부추기고 있다. ‘사회학과,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대구대학교 사회학과가 최근 부고장을 돌렸다. 대학본부에서 2025학년도 학칙 개정안을 통해 사회학과 폐과를 결정하자 다음달 초 ‘학과 장례식’을 열기로 한 것이다.
21세기 들어 신입생 모집난이 가중되면서 각 대학이 취업에 유리한 실용학문 위주로 속속 학과 개편을 추진했고, 이는 기초학문과 인문·사회계열의 위기로 이어졌다. 이 같은 현상은 신입생 모집난이 더 심각한 지방대에서 두드러졌다. 전북지역에서도 사회학과는 전북대에서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또 모든 학문의 출발점으로 불리는 ‘철학’과 기초과학의 핵심인 ‘물리학’은 국립대인 전북대와 군산대에서만 겨우 살아남았다.
교육부의 정책 방향도 기초학문과 인문·사회계열의 위기를 부추겼다. 정부는 ‘지방대 살리기’ 정책을 요란하게 추진하면서 막대한 재정지원을 미끼로 지역산업과의 협력, 취업 중심의 구조개혁을 대학에 요구했다. 생사의 기로에 선 지방대로서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요구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요구한 구조개혁은 ‘학문의 전당’이었던 상아탑을 취업학원으로 바꿔놓았다. 게다가 교육부는 2025학년도 대입에서 전공자율선택제(무전공) 확대를 권장하면서 기초학문의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역대 정부가 수십 년간 ‘지방대 살리기’ 정책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지만 대학혁신과 경쟁력 향상이라는 해묵은 과제는 그대로 남았다. 사업 명칭만 바뀔 뿐 접근방식은 차이가 없었고, 뚜렷한 성과도 없었다. 현 정부는 ‘글로컬(Glocal) 대학’ 육성 사업을 내놓았다. 백약처방에도 불구하고 고사 위기에 놓인 지방대를 어떻게 단기간에 글로벌 수준으로 키워 지역성장을 이끈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지방대의 살 길’은 변함이 없다. 외국의 성공사례를 가져와 대학에 제시하면서 지역 및 산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당장 열매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학에서는 썩어가는 뿌리를 살펴볼 여유도 없이 이리저리 바람을 따라 잔가지를 뻗어내면서 속빈 열매라도 만들어내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렇다면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역할은 수도권 대학에 맡겨 놓고, 지방대는 산학협력에 초점을 맞춘 전문 취업기관으로서의 역할에 몰두해야 할까? 아니다.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변수와 위기에 대응하려면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 기초학문의 바탕 없이는 취업 중심의 응용학문도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 기초학문의 부고가 이어지면 머지않아 그 대학의 장례식날이 올 수밖에 없다. 지역과 대학의 현 상황이 녹록지 않다. 그래도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지역의 미래를 위해 최소한 국립대만이라도 이런 칼바람에 흔들리지 말고, 상아탑의 본분을 끝까지 지켜냈으면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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