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학개론 ① 마을이란 무엇인가]사람으로, 사람답게,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곳
9월초부터 우석대 평생교육원에서 마을학개론 강좌를 개설한다. 전남의 순천대 평생교육원에서도 같은 강좌를 연다. 하지만 실제로 개강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적정한 인원의 수강생이 신청을 해야 비로소 개설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소 불안하다. 과연 자기 돈을 내고 15주 동안, 일주일에 하루 2시간씩을 공부할 여유가 있는 삶을 사는 전라도 시민들이 그만큼 될지. 더군다나 마을학개론이라는 게 재미있는 놀이도, 돈 되는 생활기술 공부도 아니지 않은가.부디 전북에서든, 전남에서든 뜻이 모아져 국내 최초의 마을학개론 강좌가 대학의 밖에서나마 무사히 개강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당연하지만 개인적인 욕심이나 현시욕은 아니다. 마을학개론으로 생활비나 벌자는 게 아니다. 오래 전부터 마을에서 사람답게 먹고 사는 법을 서로 가르치고 배우자는 간절한 소망을 품었다. 평소 귀농인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다보면 안타깝고 답답했기 때문이다. 귀농 또는 자발적 하방을 해서 농촌마을에서 먹고 살려면, 지역사회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일단 마을이란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마을은 잘 모른 채 무작정 귀농한다. 농사를 그렇게 보듯 마을의 삶 또한 만만하게 보는 것이다. 마을학개론의 발상은 이같은 절박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그래서 농사짓는 비법, 집 짓는 기술, 땅 고르는 요령 보다 우선 마을, 공동체, 마을시민, 마을기업, 대안마을, 대안농정, 그리고 대안사회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귀농 15년 여정의 기록인 〈마을시민으로 사는법〉 〈마을을 먹여살리는 마을기업〉 〈사람 사는 대안마을〉 〈농부의 나라〉 〈농촌마을공동체를 살리는 100가지 방법〉 〈행복사화유럽〉 〈마을주의자〉 〈귀농의 대전환〉 〈농민에게게 기본소득을(근간)〉 등 이 곧 마을학개론의 컨텐츠를 이루는 셈이다. 구체적으로는 마을공동체귀농의 이론과 실제, 마을과 공동체의 주체인 마을시민과 마을주의자의 실제와 사례, 마을공동체 사업의 주체인 마을기업의 실제와 사례, 농촌마을생태공동체마을의 실제와 사례, 농업농촌농민사회적 경제 관련 대안농정의 해법, 그리고 EU(유럽연합) 등 대안사회의 현장사례와 대안모델 등에 대해 주로 강의하고 토론할 계획이다.또 마을공동체사업에 뛰어든 원주민들도 사정은 귀농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을이나 공동체에 대한 사전학습이나 훈련이 부족하다. 하지만 사회적경제 기반 농촌마을공동체를 통해 농업농촌농민은 물론, 도시와 국가의 지속발전가능한 활로를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마을에서 마을사람으로 살아가는 한, 마을공동체사업이란 포기도 방임도 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러자면 더 열심히 마을을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마을로 들어가 마을공동체를 일굴 마을시민과 마을주의자들이 서로 배우고 가르칠 마을학교가 필요하다. 마을학개론은 그 마을학교의 교과서에 다름아니다. 다만 읽고 말하고 듣는 공부에 그치지말고 현장에서 행동하고 실천하고 체화할 수 있는 사람답게 먹고사는 실용적 공부라야 한다. 마을학개론이 마을에서 먹고사는 법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자 목표다.△ 마을이란 무엇인가사전에 적힌대로 보면 마을이란 주로 시골에서 사람사는 집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아무래도 생업에 주로 매달리는 도시의 동네는 마을의 사전적 의미나 원형과는 서로 어긋나거나 어울리지 않는다. 모름지기 마을이려면 최소한 삶(생활)과 일(생업)이 하나의 시공간에서 조화롭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러기에 도시보다는 농촌이 적합하다. 거기에 쉼(휴식)과 놀이(문화)까지 보태 누릴 수있다면 더 할 나위 없는 살기좋은 마을일 것이다. 마을학개론에서 의미하고 소망하는 마을이 바로 그런 마을이다.그런데 먹고 사는 일에 자꾸 치이는 도시의 동네를 벗어난 마을에서도 결국 먹고 사는 게 문제다. 농사를 짓든, 농사를 짓지 않든 먹고 사는 일에 다시 매달리게 된다. 결코 개인이 온전히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사회적 난제라는 결론에 이른다. 결국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한다. 기본소득,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급식, 고용안정, 보편적 사회복지 같은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이 열쇠를 쥐고 있다.여기에 먹고 사는 생활의 기술을 가르치는 직업학교, 지역공유 사회적경제 자산은행, 지역단위 협동연대 농업농촌경영체, 마을공동체와 사회적경제의 융합 플랫폼 등의 정책과 제도를 통해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축적해야 한다. 물고기(기본소득)와 물고기 잡는 법(생활기술), 소득과 일자리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마을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풀릴 수 있다.마을이란 그렇게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사람들과 더불어 나눠먹고 살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사회안전망과 사회적 자본의 힘으로 서로가 서로를 믿고 기대고 돌보고 보살필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그렇게 삶과 일, 그리고 쉼과 놀이가 하나되는 곳이라야 한다. 마을이란 무엇인지, 공동체를 왜 하는지, 지역사회는 어디쯤 가고있는지, 마을자치를 어떻게 할지 끊임없이 묻고 답을 구해야 비로소 마을은 보일 것이다. 그게 마을학개론에서 함께 하려는 공부의 목적이다.△사회적 인간은 마을자치공화국으로그러나 마을학 공부도, 마을공동체의 실천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사회적 동물로서, 사회적 인간은 몰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에밀 뒤르켐은 사회분업론에서 기계적 연대로부터 분업에 따라 개성적이고 이질적인 개인들의 유기적 연대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합의식이 약하고 개인의식이 우월한 근대사회에서 사회적 인간의 몰락을 염려했을 것이다. 로버트 퍼트넘은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에서 사회적 자본을 폐쇄성이 강한 결속형 자본과 포용성이 큰 교량(연계)형 자본으로 구분했다. 가령 성가대나 볼링클럽 같은 곳에서 다양한 사람이 어울릴 수 있는 교량형 사회적자본이 많을수록 건강한 사회라는 것이다. 울리히 벡은 서구를 중심으로 추구해온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이 실제로는 가공스러운 위험사회를 낳는다고 주장했다.다행히 도시든, 농촌이든 몰락하는 사회의 출구와 해방구를 찾으려는 새로운 사회의 시민들이 마을공동체를 재생하고 복원하려 애를 쓰고 있다. 걱정과 우려는 적지 않지만 문재인정부도 50조원의 도시재생사업을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경제학자들이 주로 구축해놓은 자유시장의 진지, 현대 자본주의의 패러다임과 플랫폼에 갇혀있는 도시나, 국가에서는 해법과 출구가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을학개론의 결론은 마을로 내려가자는 것이다. 마을에 가야 비로소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사람답게, 사람의 도리를 다 하며 먹고 살 수 있다. 마하트마 간디가 설계한 마을은 개인의 자유에 기초한 완전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마을자치(Swaraji)로 작동하는가히 마을공화국이라 할만하다. 그래서 간디는 마을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믿고 주장했다. 정기석 마을연구소 소장시인※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