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전주영화제 러브콜…높아진 위상 확인해요" 9년째 전주국제영화제 총괄하는 민병록 집행위원장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는 방문객들로 하여금 전주에 대한 인상을 전혀 다른 온도와 색깔로 바꿔놓았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영화제는 전통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고즈넉한 도시에 새로운 활기와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주류, 익숙한 것보다 비주류, 낯선 것에 주목하는 전주영화제의 실험정신은 올해도 유효하다. 지난 9년 간 전주영화제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영화제 반열에 올려놓은 민병록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62동국대 교수). 개막 막바지에 만난 그는 버거웠지만 최선을 다했고, 힘들었던 만큼 즐거움과 보람이 컸다고 말했다.- 올해 전주영화제의 전반적인 특징을 설명해 주십시오.△ 올해 전주영화제는 더 많은 관객들이 상영작들을 관람할 수 있도록 상영작 편수를 소폭 줄여 총 42개국 184편이 상영됩니다. 대신 영화제 기간 좌석 부족, 적은 상영 횟수 등으로 인한 관객들의 불만을 감안해 상영 횟수를 2회에서 3회로 늘렸습니다. 또한 최신작을 얽매여 소개하지 못하는 작품을 소개할 수 있도록 일부 섹션을 만든 결과 예년에 비해 더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화들을 선보일 수 있게 됐습니다. 올해 신설된 '비엔나 영화제 50주년 기념 특별전', '게스트 큐레이터', '시네마 스케이프' 내 '되찾은 시간' 등은 더 깊어진 시선을 약속합니다. 전주영화제와 영화적 이상이 비슷한 비엔나 영화제 특별전은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전주에서만 열린다는 점이 각별합니다. 해외 영화제 감독 혹은 관계자들이 전주영화제를 너도 나도 찾을 땐 정말 뿌듯하죠. 관객들이 먼저 찾고 사랑하는 영화제로 성장한 것을 바라보는 일도 커다란 기쁨입니다.- 영화제에는 국내외 많은 스타들이 방문하는 데, 올해 특별한 손님이 있는지.△ 프랑스계 위르실라 메이에 감독이 올해 개막작으로 선정된 <시스터>로 전주를 찾습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영화평론가 크리스 후지와라는 자신이 맡고 있는 에딘버러 국제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전주에 옵니다. 신설된 게스트 큐레이터에서 '파열 : 고전영화의 붕괴' 를 주제로 직접 선정한 영화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전주영화제 간판 프로그램'디지털 삼인삼색'에 참여한 라야 마틴 감독(필리핀), 비묵티 자야순다라 감독(스리랑카), 잉 량 감독(중국)도 영화제 기간 중 핸드 프린팅에 참여해 관객과 함께 축제를 즐깁니다. 또한, '숏!숏!숏! 2012'의 감독인 김곡김선 감독('곡사' 감독), 박정범 감독도 영화제를 방문해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숏!숏!숏! 2012'를 선보입니다. - 전주영화제를 준비하면서 보람이라면. △ 올해 전주영화제 슬로건은 '공감'과 '변화'입니다. 작은 움직임이 세상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나비효과'를 담은 포스터를 정한 것도 전주영화제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실제로 전주영화제를 통해 소개됐던 한 편의 영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켰거나, 또 전주영화제를 통해 발굴된 감독들이 그 나라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성장했습니다. 자원봉사자'지프지기'로 시작해 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주역이 된 조지훈 프로그래머나 '국제경쟁'을 통해 발굴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정오의 낯선 물체>), 스와 노부히로(<마/더>), 드니 코테(<방랑자>) 등은 세계적인 감독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감독들이 국내외 영화제에서 두각을 드러낸다는 사실은 또 다른 자부심일 겁니다. - 영화제 준비에 가장 큰 어려웠던 부분은. △ 올해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일단, 411 총선과 여수세계박람회로 인해 전국적인 홍보가 뒤늦게 이뤄진 점이 아쉬웠죠. 게다가 매년 4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 개막하는 전주영화제 개막식이 '제48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과 겹치는 것 때문에 조바심이 나기도 했고, 어린이날을 앞두고 폐막해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줄어들까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매년 지적되어온 숙박시설 구축 부분이 여전히 과제로 남겨져 있습니다. 더구나 지역의 대표적인 코아호텔이 문을 닫아 고민하던 차에, 기존 호텔들이 리모델링 돼 숙박난을 해결할 수 있어 다행이라 여겼습니다. 향후 언제라도 국제행사를 치러낼 수 있을 숙박시설 구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9년간 많은 영화인들을 접했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인이라면.△ 해외 초청객에게는 무조건 전주 한옥마을을 돌아보게 한 뒤 전주한지문화축제를 보여줬습니다. 특히 심사위원들은 심사가 일찍 끝나면, 진안 마이산김제 금산사 등을 함께 다녀옵니다. 수상작 명단이 새나가면 안되니까, '입막음용' 이죠. (웃음)인상 깊었던 게스트를 꼽자면, 2009년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 나오는 유명한 프랑스 배우 드니 라방(당시 전주영화제가 개봉한 영화는 <캡틴 에이협>)입니다.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못 받은 영화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래 없이 참 잘 됐거든요. 실제로 만나보니, 영화에서 등장한 무정부주의자 '알렉스'의 표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걷는 걸 좋아했어요. 영화제가 끝나면 함께 호텔로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존경하는 벨라타르 감독 회고전이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돼 기쁘다든가, <캡틴 에이협> 시나리오가 너무 맘에 들어 감독이 다른 배우로 바꿀까봐 초조했었다는 말까지 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아주 인간적인 배우이면서 전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많이 가졌던 배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 개인적인 활동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 나를 이야기하는 직함은 많습니다.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 심사위원 등등. 어차피 전주가 내 고향이니까 영화제를 발전시켜보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룬 것 같아서 흡족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내 영화를 찍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하죠. 몇 개 작품은 이미 써놓기는 했는데, 아직 햇빛을 못 쬐고 있습니다. 작품을 달라는 친구도 있었는데, 내가 언제 찍게 될 지 몰라서 못 주겠더라구요. (웃음) 인간의 욕망에 관해 쓴 <이카루스의 날개>라든가, 어린 시절의 용기와 도전을 다룬 <소년> 등입니다. 나중엔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아닌, 영화감독으로 초대되어 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영광이겠죠.● 민 위원장은 전주 출생인 민 집행위원장은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일본 니혼대 대학원과 뉴욕대 대학원에서 영화학 석사를 받았으며, 한국영화학회 회장영화진흥위원회 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