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팔도유람] 시민 복합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전일빌딩 245’
사람들은 저를 찾아와 너른 세상을 가르쳐주는 책을 읽고/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백의의 천사라는 부푼 꿈을 안고 졸린 눈을 비비며 열심히 공부도 하였습니다/(중략) 광주의 과거, 현재, 미래를 품에 안은 저는 전일빌딩 245입니다.
전일빌딩 245에 들어서면 1층 전일 아카이브 코너에 설치된 메인 모니터에서 전일빌딩을 1인칭 화자(話者)로 한 영상이 흘러나온다. 간결한 문구와 영상이 함께 어우러져 옛 전남도청앞 금남로 1가 1번지에 자리했던 한 건물이 품고 있는 광주의 현대사를 압축해 보여준다.
호남언론의 1번지이자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의 헬기 사격을 입증하는 상징적 현장인 옛 전일빌딩(518 민주화운동 사적 제28호 지정)이 광주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자칫 헐릴 뻔 했던 건물은 518 당시 헬기에서 쏜 총탄 자국이 발견됨에 따라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광주시는 4년여 동안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해 최근 전일빌딩 245라는 이름을 붙인 시민 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시켰다. 오는 11일에 개관하는 전일빌딩 245의 역사적 의미와 층별 문화콘텐츠에 대해 살펴본다. 광주 시민들에게 전일빌딩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1968년부터 1980년까지 4차례에 걸쳐 신증축된 전일빌딩(지하 1층지상10층)은 당시 호남에서 가장 큰 사무실용 건물이자 광주 최초의 미디어 복합 문화 건물로 평가된다. 옛 전남일보(현 광주일보)와 전일방송(VOC) 등 언론사를 비롯해 전일도서관, 남봉미술관, 전일다방, 간호학원 등 다양한 용도의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전일빌딩은 옛 전남도청과 함께 1980년 5월을 온몸으로 기억하는 역사적인 현장이다. 당시 내외신기자들이 옛 전남일보 편집국이 자리한 전일빌딩 3층 창가에서 금남로를 피로 물들인 공수부대의 진압장면을 촬영했다. 또 5월 27일 새벽에는 전일빌딩을 지키던 시민군들이 11공수여단 61대대 진압군에 의해 사살되거나 생포됐다.
놀랍게도 전일빌딩은 518의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당시의 총탄자국을 품고 있었다. 광주시는 리모델링 공사를 앞두고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518 흔적을 찾기 위해 2016~2017년 국립 과학수사 연구원에 조사를 의뢰했다. 조사결과 건물 내외부에서 총탄자국 245개(외벽 68, 실내 177개)가 발견됐다. 특히 10층 바닥과 기둥, 천장에 남아있는 탄흔은 제자리비행(Hovering)을 하는 헬기에서 사격한 것으로 분석됐다.(2019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판과정에서 법원의 명령조사로 탄흔 25개가 건물내부에서 추가 발견됐다.)
전일빌딩 245 명칭은 옛 전일빌딩의 도로명 주소(광주시 동구 금남로길 245)와 건물에서 발견된 총탄자국 숫자가 일치하는 데서 명명됐다. 전일빌딩 245는 역사공간에 시민들의 삶을 담아 미래 정신으로라는 컨셉 아래 크게 ▲광주의 과거를 기억하는 곳(1980 0518 9~10층) ▲광주의 현재를 만나고 나누는 곳(시민플라자지하 1~4층) ▲광주의 미래를 꿈꾸는 곳(광주콘텐츠 허브 5~7층) ▲공존휴게공간(옥상정원, 굴뚝정원8층, 옥상) 등으로 구분된다.
1층에 자리한 전일 아카이브는 전일빌딩의 역사를 자료사진과 영상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방문객은 대여한 AR(증강현실) 디바이스 태블릿을 이용해 전일빌딩 터의 역사와 헬기 사격 상황을 보여주는 518 그날의 전일빌딩을 실감나게 살펴볼 수 있다.
금남로쪽 캔버스 245공간에는 1980년 광주의 아픔이 빛으로 승화돼 인권의 도시 광주로 다시 태어남을 표현한 이이남 작가의 미디어아트 작품 다시 태어나는 광주(10분 50초)가 천장형 LED 모듈에 펼쳐진다.
1층 중앙에서 3층까지는 꽃처럼 피어나는 원형계단으로 연결돼있다. 2층은 남도 관광센터, 3층은 디지털 정보도서관과 작가나 시민들이 공간을 대여해 기획 전시를 할 수 있는 시민 갤러리로 변모했다.
특히 1980년 5월 당시 전남일보(광주일보 전신) 편집국이 있었던 3층에는 518과 언론 코너가 마련돼 있다. 보안사의 보도검열과 신문기자들의 저항, 유인물 신문인 투사회보 등 518 당시 언론 상황을 축소모형으로 재연해 놓았다. YWCA 교전 코너에는 1980년 5월 27일, 진압군이 전일빌딩과 인접한 YWCA 시민군과 교전하는 모습을 실물크기 모형과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했다.
4층은 광주 관내 5개구별 생활문화센터의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되는 전일 생활문화센터와 NGO 센터, 광주 청년센터, 예술공방, 대관공간(회의실) 등으로 쓰인다. 5~7층은 기업지원센터와 콘텐츠기업 입주공간, 중장년 기술창업센터, 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센터 등으로 구성된 광주콘텐츠 허브와 투자진흥지구 기업 입주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9~10층은 518 기념공간이다. 방문객들이 1980년 헬기 총격의 실제 흔적을 직접 보면서 왜곡된 518의 진실을 하나하나 알아갈 수 있도록 한다. 공간은 크게 프롤로그로 시작해 증거, 목격, 왜곡, 기록, 진실을 거쳐 에필로그에 이르는 옴니버스 식으로 전시스토리를 구성해놓았다. 증거 코너는 국립 과학수사연구원이 2016~2017년 4차례 조사를 통해 찾아낸 헬기사격의 결정적 증거인 총탄 흔적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910층에는 옛 전남도청과 전일빌딩을 중심으로 제작한 광주 시가지 축소모형과 함께 M60 기관총을 장착한 UH-1 모형헬기가 공중에 매달려있다. 벽면에는 헬기사격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한 멀티 어트랙션(Attraction관람객을 끌기 위해 짧은 시간 상연하는 공연물) 영상 쇼가 연출된다. 전일빌딩 헬기사격 VR(가상현실)코너에서는 방문객이 헤드셋을 착용하고 전일빌딩을 향해 총탄을 난사하는 진압군의 헬기 사격모습을 VR로 경험할 수 있다. 당시 상황 속에 놓여있는 것처럼 총탄이 정면으로 날아오는 듯 생생하다.
올해로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아직 발포 명령자와 헬기사격 등 진실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자녀들과 함께 전일빌딩 245를 비롯해 옛 전남도청,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옛 카톨릭 센터) 등을 찾아 1980년 5월 그날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길 권한다. /광주일보=송기동 기자, 사진=나명주김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