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메아리]남고사 아래, 꽃 몸살을 앓다
일요일 아침, 드디어 앞산 남고사 벚나무가 꽃을 피웠다. 지난 밤, 영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던 것이 저 때문이었던가. 이미 목련은 만개했고, 개나리떼 오종종 방천 둑에 서성인다. 몸의 징후를 때때로 몸이 모른다. 언제부턴가, 봄과 함께 불면(不眠)이 찾아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득, 파도 소리 들려, 깜빡깜빡 그런가 보다 고개를 젓다가, 화들짝 남고사 앞자락에 웬 바닷 물결, 놀라서 깨어보면 창 밖으로 혼곤하기도 흥건한 달빛에 잠긴 몇몇 별이 떠오르고 까무룩 가라앉는다... 어떤 아이가 나를 부른다, 꿈결이지 싶어 몸을 뒤척이면, 평소 그렇게도 잠이 많던 막내가 새벽바람에 베란다 창 앞에서 앙-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사람이 일월(日月)과 다퉈, 계절 오는 소식을 먼저 알리려 쉬지 않고 달려왔더니, 집 앞마당엔 벌써 가을 바람 그득하다던가. 그러고 보니, 여기 남고사 골짜기로 스며든 지 벌써 10년째. 산벚나무가 피고 지는 봄밤 내내, 나는 뒤척이고 서성였다. 봄 햇살에 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도 하고 봄바람에 휘청이기도 하며, 불현 떠오르고 문득 꺼져버리는 삶의 휘황한 기미 앞에 나는 어지러웠다. 봄에 생각하면, 봄을 보내고 난 뒤 다시 봄을 맞이할 때까지가 한해살이이다. 그렇게 서른부터 서른 아홉, 꼽다보니 까닭 없이 서럽다. 대체 봄에 내겐 무슨 일이 있었던가. 벌 나비 닝닝거릴 때 다투어 피던 꽃들이 제멋대로 흩어졌을 뿐. 오는가 싶더니 벌써 봄볕 지난 산그늘, 옹송옹송 어깨 움츠린 진달래 헛것처럼 선연했을 뿐. 송홧가루 흙비처럼 쏟아지면 이도 그만, 바람 순해지면서 여름이다. 애오라지 그뿐이다. 꽃나무 몸살이 심하여, 산도 절도 끙끙 앓을 때, 더러는 내게도 신열이 올라 잠들지 못한 것이다.하냥 떠돌던 구름이 마음에 근(根)이 생겨 어딘가 맺히고 싶으면 천근 만근 바위가 된다던가. 나도 그리 하고 싶었던 것인가. 남고산성 윗돌 아랫돌이 모두 결계(結界)를 풀면 그냥 뭉게구름으로 피어오르는가, 그것이 궁금해 이 골짜기 십년 머문 바람이 되었던가... 저 꽃들도 그런 것인가, 꽃이 아닐 때는 꽃이 되고 싶어 안달이다가, 피어 보면 제 얼굴이 참혹하여 서둘러 지고, 또 새봄을 기다리단 말인가. 봄은 이처럼 늘 소란스럽다. 낮으론 어질거리고 밤이면 울렁인다. 꽃몸살 한창인 산중턱까지 봄 타는 이들의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저들로 하여 이 밤 산은 더 끙끙댈 것이나, 전주천 물결 위에 어룽이는 산 그림자 내일은 더욱 요요(夭夭)할 터... 꽃놀이의 절정은 꽃비처럼 쏟아지는 낙화 속에 있고, 봄맞이로는 밤마실이 제 격이란다. 봄날은 간다, 고 봄이 말해준다.환락(歡樂)이 애정(哀情)을 낳고, 머무르지 않으면 이별이다. 산하의 주인은 일월이요 너희는 과객(過客)이니, 불면과 몸살은 오롯이 너희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속한 일임을. 봄에 보란다. 어지러워도 똑똑히 보란다. 하니, 어쩔 것인가. 난 오늘밤도 불면으로 지샐 밖에, 밤에도 꽃은 피고 진다는데, 몸살 앓는 사이 휑하니 봄날은 간다는데... 여인(旅人)에게는 통행세가 부과되는 법. 몸살난 꽃놀이든 불면의 두통이든 치르기는 다 마찬가지이니, 이제 잠 못 드는 일이 썩 억울할 리도 없다고 위안할 밖에…. /김병용(소설가, 백제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