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안급국안 90권 국역 출판
조선 후기 정치범죄사회사 자료인 추안급국안이 한글로 번역돼 90권의 책으로 발간됐다.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소장 변주승)가 2004년 번역에 착수한 후 10년만에 완역, 〈국역 추안급국안〉으로 간행했다(推鞠은 의금부에서 임금의 특명에 따라 중한 죄인을 신문하는 일을 말한다).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이 번역사업은 조선왕조실록을 제외하면 단일 서목의 번역서로는 최대의 책자인 성과물. 총 10억5000만원의 연구비가 지원됐으며, 정치경제사회사상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10명이 연구진으로 참여했다.〈국역 추안급국안〉 발간은 조선후기 사회 전반에 관한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하고, 역사문화 콘텐츠 개발과 한국학의 세계화, 한국문화에 대한 학제간 연구의 촉진 등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학계는 평가하고 있다. 또 이런 방대하고 중요한 사료의 번역과 출판이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나아가 조선시대 출판문화가 발달했던 전주에서 발간돼 전주가 출판 및 번역의 메카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됐다고 연구소는 의미를 부여했다,△추안급국안, 조선 선조때 부터 300년 심문기록이번에 간행된 역사사료인추안급국안은 선조 34년(1601)부터 고종 29년(1892)까지 약 300년 동안 변란, 역모, 천주교, 왕릉 방화 등에 관련된 중죄인들을 체포심문한 기록이다. 279건의 범죄사건에 대한 이 기록은 331권의 필사본 책자로 묶어져 규장각에 소장돼 있다. 여기에 수록된 사건 관계의 문서 수만 1만2589건, 사건 연루자만 1만2000명에 달한다. 심문 대상자는 신분상으로 양반에서 노비까지, 지역으로 관료와 상인 및 농민과 궁녀 등이 망라되어 있으며, 당시의 사회적 모순과 갈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특히 이 자료가 중요한 것은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비변사등록 등 다른 역사서에서 요약압축된 사건이나 내용들을 심문과 진술 형태로 가감 없이 자세히 수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 사건의 이면에 존재하는 실체적 진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간관계, 베일에 싸여 있던 궁중 내부의 갈등까지 역사적 사건의 속살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어 당대인들의 사회적 행동양식의 복원과 조선 후기 역사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기대하고 있다.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중요 정치사건의 경우 사건의 개요만 간단하게 1~2줄로 처리되지만, 추안급국안에서는 심문재심문대질심문 등의 절차를 거치면서 관련 사건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광해군 때 역적모의로 교살된 임해군 관련사건만 해도 4개월에 걸친 심문자료가 있어 당시 사건을 오롯이 보여줄 수 있는 게 이 자료란다.△자료발간이 갖는 의미조광 한국고전문화연구원장은 〈국역 추안급국안〉이 갖는 의미로, 다른 역사서에서 요약압축된 사건이나 내용들을 심문과 진술 형태로 가감 없이 수록하고 있어 조선후기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상 등 각 분야의 역사적 복원이 가능하다는 점을 첫 번째로 꼽았다. 또 한국문화에 대한 학제 간의 연구를 촉진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역사적 자료가 번역 제시될 때 여러 분야의 사회과학자와 인문학자들이 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와 함께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에도 도움을 줄 수 있고, 이두 중심의 언어를 정리함으로써 조선시대 언어연구와 한글 번역을 통한 한국화의 세계화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여기에 다양한 직업의 실태와 생활상 등을 토대로 역사문화 콘텐츠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점, 디지털화를 통한 대중화와 산업화의 길을 튼 점에도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어떻게 이루어졌나〈국역 추안급국안〉의 번역 분량은 원문 글자 수 약 672만여 자며, 번역문은 200자 원고지 15만매 규모. 이를 위해 변주승(연구책임자, 전주대) 김우철(한중대) 조윤선(한국고전번역원) 이상식(고려대) 이향배(충남대) 이선아(전북대) 허부문(서강대) 오항녕(전주대) 서종태(전주대) 문용식(전주대) 등이 참여했으며, 전주대 사학과 대학원의 연구보조원 30여명이 참여했다.변주승 소장은 10년간의 고생은 차라리 추억이다며, 이만하면 됐지로 자만에 빠지는 것을 참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술회했다. 3년 전 번역을 완료했지만, 잘못된 부분을 최소화하기 위해 연구자간 치열하게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느라 늦어졌다는 설명이다.연구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완주군 비봉면 천호동에서 3박4일간 번역 세미나를 진행했으며, 호남의 대표적 사학자인 고 변시연 선생(변주승 소장 선친)과 대전의 이성우 선생에게 어려운 한자 자문을 받았다. 장소를 제공한 김진소 전 호남천주교교회사연구소 소장 또한 연구팀의 든든한 후원자였단다.연구소는 이번 번역된 책자 500부를 연구기관 등에 한정 보급하고, 3년 안에 국역본 웹서비스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