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일가(一家), 이 사람] 신아출판사 서정환 회장
직업적 의문과 궁금증 사이에서 서정환 회장이 떠올랐다. 신문 기자라는 입장에서, 비슷한 결을 가진 출판업을 하는 사람은 어떤 생각일까. 이미 낡아버린 느낌의 단어지만, ‘디지털 시대’에 출판업을 한다는 것. 그것도 50년 넘게 한 가지 일을 해왔다는 것에서도. 그 긴 시간을 업(業)으로써 버틴 의미가 궁금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사명감이 있기에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이어올 수 있었을까’라는 호기심이 걸음을 이끌었다. 서 회장을 만나기 위해 신아출판사에 먼저 연락했다. 돌아온 대답은 “당연히 회사에 계신다. 매일 사무실로 출근하신다”는 말이었다. 1940년생이니 올해 여든셋. 현역으로 활동하기에 낯선 나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처럼 느껴졌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은 서 회장의 아들. 서영훈 실장이었다. 공학박사로 반도체 대기업에서 탄탄대로를 걸었지만, 몇 해 전부터 출판사로 출근 중이다. 아버지에 대해 "매일 출근뿐 아니라 하루 만보 걷기를 매일 거르지 않는 분"이라고 귀띔했다. 지난 11일 전주시 진북동 신아출판사 사무실에서 서 회장을 만났다. 기분 좋은 미소를 가진, 삼국지 유비처럼 귓불이 커다란 사람이라는 게 서 회장의 첫인상이었다. 사무실에 매일 출근하고, 업무를 본다는 말이 허투루 나온 말이 아니었다. 이날도 오전 일찍 출근 후 이사장으로 있는 전북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 회의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신아가 지내온 시간만큼이나 세월이 묻어나는 듯한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돈 벌기 위해 한 일이지요. 다른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의미도 찾아지더라고요. 신아출판사의 시작은 1970년. 올해로 업력 52년을 이어온 장수 출판사다. 수천 종의 단행본과 10여 종의 정기간행물이 여전히 독자를 만나고 있다. 지역 출판 역사에서 유례없는 일로, 전북의 출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임은 당연하다. 신아의 궤적을 돌이켜보면 시작부터 사명감이나 뚜렷한 목표가 있었으리라 생각했지만, 서 회장의 대답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서 회장은 모든 게 먹고 살기 위함, 지극히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 말한다. “한눈팔 여유가 없었다. 그것이 정답일 겁니다. 무슨 거룩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건 아니었지요.” 실제 서 회장 청년 시절 대부분은 ‘먹고 사는 것’을 위한 투쟁과 같았다. 고향인 순창 구림면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풍족했다. 공부도 잘했다. 큰아들에 대한 기대로 온 가족이 논과 밭을 팔아 전주로 나오면서 시련이 시작됐다. 세상 물정에 어두웠던 아버지가 집을 사고도 등기를 하지 않아 전 재산을 날려 하루아침에 온 가족이 길거리로 나앉게 됐다.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가족들을 지키고 먹여 살리는 일은 온전히 큰아들인 그의 몫이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청년 가장이 됐다. 신문 배달부터 학교 소풍에 따라가 사진 찍어주는 일까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 했다. 성실한 그를 눈여겨본 민국일보 지사장이 그에게 총무를 맡겼고, 민국일보가 발행하는 사보에 글도 썼다. 1965년 신아일보가 창간하면서 총무와 주재 기자도 지냈다. 신문사 지사를 맡으면서 부업으로 시작한 ‘프린트’일이 평생 업의 시작이 됐다. 1970년 인쇄소를 본격적으로 차린 것이 신아문예사의 시작이었다. 신아출판사를 거치는 모든 결과물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 가득 신아에서 발간하는 정기간행본만 10종이다. 특히 1992년 시작한 <수필과 비평>은 올해로 30년이 됐다. 유일하게 '흑자'가 나는 간행본이라고 말할 때는 자긍심이 드러났다. 실제로 <수필과 비평>은 존재 자체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 초창기 작가들에게 글을 청탁하면 거절당하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신아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됐다. 꾸준히 신인을 등단시키고, 등단한 작가들은 모임인 수필과 비평 작가회의를 통해 서로가 교류한다. <수필과 비평>을 기다리는 독자들도 상당하고, 이미 등단한 작가도 많다. 문학상 시상 등 꾸준한 활동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수필과 비평>이 신아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서 회장은 1990년 문예지로 신아가 처음 창간한 <소년문학>에 가장 애착이 간다. 간행물 창간이 자유로워진 1990년, 신아에서 가장 처음으로 신청한 발행본이 <소년문학>이다. 서 회장은 아이들에게는 문학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손으로 엮은 책자에 제 글이 실린 적이 있어요. 그걸 받아들고 어머니께 보여드리기 위해 집으로 뛰어가던 장면이 기억에 가장 크게 남아있습니다. 아마 그 마음이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실제로 서 회장은 이날 <소년문학> 최신 호를 펼쳐 보이며 가장 크게 웃었다. 대전, 부산, 여수, 인천 등등 전국 각지에서 아이들이 보내온 작품이 그득하다.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하는 이런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기억 속에 남아요. 회사에도 이런 일을 많이 할 것을 요구합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유수의 신문사들이 앞다퉈 소년 문학지를 창간하며 인기를 끌기도 했었지만, 현재 남은 건 신아의 <소년문학>과 카톨릭출판사에서 발간하는 <월간 소년>정도다. 종이책의 침체와 불황은 이미 현실입니다. 굉장히 어려워요. 그럼에도 책은 살아남을 것이라 믿습니다. 1990년대 출판업이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에는 직원이 80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사내에서 결혼한 커플도 다수였다. 지금은 30명 남짓한 직원으로 회사를 꾸리고 있다. 여전히 지역 출판사로서는 규모가 있는 편이지만, 상황이 어렵다는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다. 이날도 서 회장은 회사 이야기가 나오자 "아주 어렵다"고 말한다. "너무 먼 미래를 상상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현재의 독자들과 앞으로의 독자들. 그 세대가 20년. 30년 까지 없어지지는 않으리라 보기 때문이죠." 최근 e북이나 유튜브를 포함한 영상 등 대세에 따라 사업 다각화도 구상 중이지만 상황이 녹록지만은 않다. 다만, 시대는 기록을 통해 발전한다는 것을 믿는다. 특히 문화는 기록을 통해 발전했다. 책은 과거에도 선봉의 역할을 했고, 앞으로도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이 때문에 책은 살아남는다고 믿고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내가 좋아했으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길게 가려면 좋아해야 합니다. 50년이 넘는 시간을 이 일에 매진할 수 있던 원동력은,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저 좋아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신아에서 나오는 모든 책을 서 회장이 교정하던 시기가 있었다. 책은 소설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시나 수필, 여러 교수들의 논문이나 문화, 예술, 사진까지 모든 분야를 총망라하는 수준이었다. "날마다 독서를 하는 셈이었습니다. 내가 싫었으면 아무리 돈이 많이 생겨도 싫었겠죠. 그런데 늘 새롭고 새롭게 배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내가 좋아서 했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여전히 꿈을 품고 있다. 지속적인 투자는 서 회장의 신념 같다. 서울에만 있던 컬러 인쇄기를 전주에서 가장 먼저 도입한 것도, 인쇄에 컴퓨터를 도입한 것도 그다. 돈을 벌기 위함.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마음에 각인된 '의미'도 찾았다. 먹고 사는 문제로 정신없던 시절이지만 완판본 본 고장이 이곳이며, 과거 출판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완판본이 단순히 책만 만든 것이 아니라 문맹을 깨우치는 역할도 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이때다.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더욱 아쉽다고 말한다. "전주가 대한민국 출판의 본고장인데, 지금의 위상은 너무 아쉽죠. 무엇이든 할 생각입니다."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아직도 꿈을 꾼다. 업력 52년. 해야 할 일은 꼭 해야 한다는 소신도 있다. 전주, 나아가 전북 출판의 어른으로, 완판본을 알리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지난 50여년이 아닌, 앞으로의 몇년을 더욱 기대하게 했다. 천경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