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값 요지경…무역전쟁·환율·기후변화에 ‘요동’
무역전쟁, 신흥국 환율위기, 기록적 폭염이 지구촌을 강타하면서 원자재 가격이 종잡을 수 없이 요동치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곡창지대에서부터 시카고, 뉴욕, 런던, 상하이 등지의 상품거래소까지 생산이나 거래 계획을 세우기에 까다로운 시기라는 소리가 쏟아진다. 유난히 더운 올여름에 가장 먼저 가격 등락이 눈에 띄는 품목은 가뭄과 폭염에 흉년을 맞은 밀(소맥)이다. 26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소맥 가격은 지난달 초부터 이달 초까지 무려 20% 이상 올랐다. 이는 주산지인 유럽과 호주에서 기온상승과 강우 부족으로 밀 작황이 좋지 않을 것이란 전망의 영향이다. 미국 농무부의 이달 10일 발표에 따르면 밀의 2018 회계연도 세계 생산량 전망은 7억2천900만t으로 전년 대비 4% 줄 것으로 예상됐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아라비카 커피 1파운드는 22일 현재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보다 싼 1달러로 12년 만의 최저가에 거래되고 있다. 설탕 거래가도 커피와 마찬가지로 10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이코노미스트는 커피와 설탕의 가격 하락이 주산지 브라질의 헤알화 급락과 과잉공급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브라질 수출업자들로서는 헤알화 환율이 올라갔을 때 달러로 표시된 농산물을 쌓아두기보다 빨리 내다 파는 게 유리했다. 주요 생산재인 구리의 지난주 가격은 지난 6월보다 20% 이상 떨어졌다. 이는 미국과 중국이 고율 관세를 주고받는 무역전쟁을 치르면서 보호무역주의가 득세, 세계 경제성장이 둔화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중국이 민간부문 부채감축에 주력하는 것도 성장둔화 전망을 자극해 구릿값을 끌어내리고 있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중국은 세계 구리 수요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국제유가도 7주 연속으로 주춤했다며 그 원인이 신흥시장의 수요 감소에 대한 우려와 원유 거래에 쓰이는 미국 달러화의 강세에 있었다고 진단했다. 미국산 대두 가격은 미묘한 위치에 놓였다. 미국 농무부가 올해 미국 대두 수확량이 역대 최고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 가운데 중국과 신흥국 위기가 변수로 등장했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국은 지난 7월에 미국산 대두에 25% 관세를 부과한 데다가 다른 대두 주산지인 브라질은 헤알화 약세 덕분에 수출 경쟁력이 올라갔다. 일반적으로 원자재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로는 신흥국 경제성장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세계은행의 올해 6월 보고서에 따르면 브라질,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멕시코, 러시아, 터키 등 신흥국은 최근 20년 동안 세계 금속소비 증가분의 대부분, 에너지 수요 증가의 3분의 2, 식량 소비 증가분의 5분의 2를 책임졌다. 이들 국가는 현재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등 G7(주요 7개국)보다 석탄, 귀금속, 쌀, 밀, 대두를 더 많이 소비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원자재 가격은 과거 어느 때보다 신흥국 상황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지난주 터키 리라화 가치폭락이 다른 취약한 통화에 충격을 주면서 나타났던 현상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터키는 최근 미국의 제재를 받은 뒤 자국 통화인 리라화 가치가 폭락했다. 당시 브라질, 아르헨티나, 중국, 멕시코 등 여타 신흥국들도 위기감이 확산되면서 통화가치가 동반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