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저택에서 군사들이 나왔습니다.”
달려온 군사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모두 보군으로 2천명이 넘습니다.”
“기마군을 쓰지 않군요.”
부장(副將) 형달이 김유신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어둠속에서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이곳은 왕궁 서쪽의 군사 조련장이다. 짙은 밤이어서 황야는 어둠에 덮여 있었지만 소음이 들려왔다. 김유신이 모은 군사 1500명이다. 이쪽도 보군으로 구성된 군단이어서 은밀하게 움직이려는 의도다. 김유신이 바람에 날리는 수염을 움켜쥐었다. 바람이 센 흐린 날이다. 그래서 하늘에는 별 한점 보이지 않는다.
“그놈들이 왕궁으로 오려면 두갈래 길이 있다. 아직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도록 하자.”
김유신이 말을 이었다.
“내가 지금도 호곡성에 박혀있는 줄 알고 있겠지?”
“이렇게 나오신 줄 알았다면 비담이 움직였을 리가 없지요.”
옆에 선 장군 김용무가 말했다.
“비담 주위에 고관의 6할이 모여 있습니다. 대장군.”
“많을수록 좋지 않겠느냐?”
김유신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여졌다.
“그 반역의 무리를 소탕하면 신라는 새로운 기운으로 덮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장난이다. 고관의 6할이 모였을 뿐만 아니라 비담 일당은 신라군(軍) 전력의 8할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삼천당 등 주요 부대 지휘관 대부분은 비담에게 충성을 맹세한 무리로 채워졌고 대왕과 김춘추 무리로 분류된 장군, 관리는 변방으로 쫓겨났다. 지금 김춘추가 가 있는 신주(新州)만이 김춘추, 김유신에게 우호적이다. 그때 어둠속에 잠깐 동요가 있는 것 같더니 김유신 앞으로 한 무리의 사내가 나타났다. 그 중심에 선 사내가 김춘추다.
“대감.”
김유신이 다가가 김춘추의 손을 쥐었다.
“무사히 오셨군요.”
“이틀 동안 달려왔습니다.”
김춘추의 지친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성벽을 넘어오면서 도둑 무리 같은 내 신세가 한심했소.”
“이 난관만 지나면 신라는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자 김춘추가 김유신의 손을 움켜쥐고 흔들었다.
“내가 가야 출신 대장군의 도움으로 신라 사직을 구하는군요.”
김춘추는 김유신보다 6살 연하의 44세. 작년에 세력의 기반이었던 가야주 42개 성을 잃고 잔뜩 위축된 상태다. 가야주는 본래 가야왕족인 김유신의 세력 기반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때 김유신이 정색하고 말했다.
“대감. 비담이 조금 전에 왕성을 향해 군사를 출발시켰소. 이제 우리가 그놈들을 급습할 차례요.”
“승산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군사 수는 적지만 기습을 하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담이 직접 옵니까?”
“왕궁을 습격해서 여왕전하를 벨테니 비담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군.”
머리를 든 김춘추의 눈동자가 흐려졌다.
“이번 당의 고구려 침공은 실패할 거요. 그래서 당황제는 신라왕이 누가 되든 신경도 쓰지 못할 겁니다.”
목소리를 낮춘 김춘추가 말을 이었다.
“비담은 그것을 노리고 있지요.”
“그놈 뜻대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
김유신이 말했을 때 다시 전령 하나가 달려오더니 소리쳤다.
“비담군(軍)이 장계신길로 꺾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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