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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피아니스트 로랑 권지니] '서양악기 산조 협주곡' 작업 참여

로랑 권지니(Laurent Guanzini)는 프랑스 재즈씬에서 폭넓게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온 작곡가이자 대학교수다. 무엇보다 피아니스트로 많은 활동을 펼쳐왔다. 16세에 프랑스 대중가수 로랑 불지(Laurent Voulzy)와 함께 녹음한 후, 30여 년 동안 클래시컬 음악을 시작으로 탱고, 집시음악, 연극, 영화, 무용음악과 뮤지컬까지 다양하고 새로운 장르들을 섭렵했다. 로랑 권지니는 2005년, 한불수교 120주년 공연을 위해 강태환, 김덕수 등 명인들과 만나게 됐다. 그는 이를 계기로 처음 한국음악을 접했다. 이 인연을 시작으로 그의 첫 피아노 솔로음반 를 황병준 엔지니어와 녹음했고, 강은영 교수의 음반 녹음에도 참여했다. 전통음악의 여러 명인들을 만나고 음악을 접해오던 그는 2009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음악부분 공동큐레이터로 위촉되었고, 두 번째 솔로음반을 금호아트홀에서 녹음했다. △문화예술위 지원받아 명인들과 작업 로랑 권지니가 본격적으로 한국의 전통음악을 만나게 된 것은 2013년 여름, 문화예술위원회의 특별프로그램을 위해 서울을 방문하면서였다. 유경화 명인과 경기 도당굿 장단에, 안성우 명인의 작품 영풍에, 김영길 명인의 남도 민요조의 선율에는 블루스와 재즈 화성 연주로 마치 대화하듯 화려하게 답했다. 서로의 음악을 존중하면서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곡처럼 연주해냈다.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했던 것은 산조합주였다. 이재화 명인과 김해숙 명인은 한갑득류 거문고산조와 최옥삼류 가야금 산조를 중심으로 20여분 남짓한 산조합주의 틀을 만들었다. 로랑 권지니는 이 곡의 피아노 파트를 완성해야했다. △협업으로 전통음악 본질 이해 그 해 여름, 이재화, 김해숙 명인은 로랑 권지니에게 산조의 정수를 전수했다. 명인들은 단지 산조의 의미를 전하고 공연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았다. 유럽과 세계를 무대로 삼고 있는 피아니스트에게 우리 전통음악의 본질을 이해시키고자한 것이었다. 그 결과 로랑 권지니는 다스름,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늦은 자진모리, 자진모리, 휘모리까지 이어지는 산조합주 공연에 두 명인과 합류할 수 있었다. 2013년 8월 22일,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로랑 권지니와 명인들의 10월 프랑스 공연에 앞서 오픈리허설이 열렸다. 유경화, 안성우, 김영길 명인들과의 연주와 이재화, 김해숙 명인과의 산조합주까지 이어진 공연에서 로랑 권지니는 피아노 의자를 비울 시간도 없이 무대를 지켰다. △프랑스서 깊은 인상 남긴 산조 그 해 10월, 명인들은 파리에서 로랑 권지니와 다시 만났다. 긴 시간을 공들였던 공연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산조와 장단을 제대로 이해한 프랑스 피아니스트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지난 3월 초, 국립국악원 관계자는 창작악단의 서양악기 산조협주곡 시리즈의 첫 작업에 로랑 권지니가 동참해 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해왔다. 라벨의 피아노 소품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했고, 관현악곡을 작곡했던 그에게 어려운 제안이 아니었다. 올해 6월, 그는 완성된 첫 오선보를 국악원에 보냈다. 유난히 길고 느리게 지나갔던 2013년 여름을 함께 보낸 명인들과의 선행학습을 통해 배우고 익힌 산조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의 곡은 김대성 작곡가에 의해 국악 관현악곡으로 편곡되어,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정기공연에 피아노 산조 협주곡이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로랑 권지니가 한국음악을 무대에서 만나고, 함께 연습하고, 공연하고 녹음해왔던 10년의 여정은 이렇게 흘러왔다. 2005년 첫 녹음을 마친 후,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다며 그가 선물했던 와인처럼, 그의 한국음악 여정도 더욱 깊은 향으로 농익어가길 바란다. <끝> ※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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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23 23:02

[16. '판소리'의 새로운 도전] 한국 소리, 다른 장르와 이유있는 만남

얼마전 2015 전주세계소리축제가 막을 내렸다. 나는 현장에서 축제를 관람하지 못했지만 사진을 보니 올해도 대단한 공연들이 많았던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영국의 학교로 돌아와서 다시 학생의 신분으로 생활하고 있다. 지금은 논문을 쓰고 발표를 하면서 학자로서, 또 판소리로 활동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한국에 있었던 1년이 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영국에도 판소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한국음악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음악을 연구하는 사람들내가 다니고 있는 소아스대학(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아시아 아프리카 연구원)에는 세계 여러 음악을 좋아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특히 한국음악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와 같이 연구하고 있는 다미는 장구와 가야금을 전공하고 있다. 다미를 통해 이은석이란 작가를 런던 K 뮤직 페스티벌에서 만나게 됐다. 이은석은 영국에서 자란 한국 사람이다. 그는 원래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다가 한국음악에 관심이 생겨 국악기와 서양악기로 함께 연주할 수 있는 곡을 만들게 됐다. 그런데 자신의 곡에 한국적인 느낌이 부족한 것 같다며 판소리만의 특색 있는 음색을 음악에 넣었으면 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나는 이렇게 이은석과 함께 처음으로 구음(가사 없이 특히 시나위에 자주 들을 수 있는 소리)을 작창하게 됐다. 둘 다 조금은 서툴렀지만 함께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참 재미있었다.△ 국악으로 새로운 작창 시도이 곡을 국악이나 판소리라고 규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국악에 있는 몇 요소를 차용해 새로운 음악을 만들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퓨전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K-Pop과 가까워지는 퓨전이 아닌 좀 더 실험적인 현대음악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음악에는 사실 목적이 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한국적인 음악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이 곡을 통해 도대체 한국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만들었던 곡이다.이 프로젝트의 표어는 홍익인간이다. 한국에서는 많은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한다. 우리는 각 개인이 사회에 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이 능력을 혼자 성공하는데 사용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작업을 진행했다. 곡을 녹음하고 뮤직비디오를 찍고 곧 대회에도 출전할 예정이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논문을 쓰기 위해 1년 동안 한국에서의 경험을 정리해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 소리꾼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관객들이 판소리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인 것 같다. 나는 한국에 머물렀던 1년 동안 많은 실험들을 목격했다. 창작 작품도 있었고, 창극도 있었고, 가요와 섞인 판소리도 있었고, 정통 판소리의 길을 가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사실 전통 판소리가 너무 좋아서 가끔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다른 장르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좀 아쉽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판소리와 다른 장르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많이 얻을 수 있는 것 같다.국악 뿐 아니라 서로 다른 장르가 만나 상대방을 이해하고 노력하고, 언제 양보하면 좋을지, 언제 자기 것을 그대로 해야 할지 알게 되면 재미있는 음악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전통 판소리를 향한 나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운 음악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으니 앞으로도 이렇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음악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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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20 23:02

[⑮ 소리프론티어] 실험·창작으로 전통음악 외연 확장을

음악은 삶의 유비(類比)라고도 한다. 닮아있다는 뜻이고, 동일한 속성을 가진다는 의미다. 짧은 예술가의 삶과는 다르게 일부 음악은 오랜 시간을 견디며 고전(古典)이 되고, 전통(傳統)이 되기도 한다. 세상 어디에서나 서로 다른 시대성이 함유된 음악이 켜켜이 쌓이는 한편, 이전과는 다른 감성을 담고 변모된 장르가 새롭게 등장하기도 했다. 새로운 형식은 기존의 주류 음악이 가진 형식미와 원칙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을 상징했고,예술적인 가치가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퇴색되지 않고 이어지면 전통이 되었다. 기존 음악을 바탕으로 한 꾸준한 변화들은 풍성한 토양을 가꾸었기에 새로운 음악의 출현은 언제나 당연하고 반가운 일이다.△시대와 호흡하며 모습 갖춰전통음악에서도 이와 같은 변화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의 정과정, 삼기곡에서 유래했다는 가곡은 만대엽-중대엽-삭대엽의 변화의 과정을 거치며 18세기까지 이어졌다. 이후 19세기에 농락편을 통해 대중화되었고, 오늘날 남여창 41곡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변화의 과정에서 느린 노래였던 만대엽, 중대엽은 시간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지만, 삭대엽에서 파생된 새로운 형식들은 뼈대를 형성하며 이어지는 것이다.영산회상도 마찬가지다. 조선 초기 음악의 원형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상령산이 본격적으로 풍류방에서 연주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로 추정하는 것이 정설이다. 이후 중령산과 세령산이 더해졌고,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오늘날 연주되고 있는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상령산에서 타령까지의 곡 변화는 수세기에 걸쳐 형성된 새로운 형식들이 그 각각의 시대성을 대표하듯 이전의 전통 곡들과 함께 차곡차곡 쌓이며 어울린 것을 보여준다.이렇듯 가곡과 영산회상을 통시적으로 보면, 전통의 원형미를 간직하되 새로운 프레임의 수용을 통해 외연이 점차 확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형의 보존에 대한 진중함과 더불어 실험과 창작의 결과물이었을 새로운 형식에 대한 관용과 포용의 역사도 담겨있는 것이다.△원형 보존하며 실험성 더해오늘날에도 원형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 예술적 가치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작곡이 아닌 전통음악의 통상적인 장르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그 음악적 외연의 확장을 다루는 것은 시나위일 것이다. 시나위는 무속음악으로, 특정 지역의 음악적 색채가 강조되거나 무용의 반주로 연주되었다고 인식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무대 위에서 연주되는 시나위는 음악적 상상을 무한대로 확장시키는 다양한 실험과 창작으로 이어진다. 즉흥이라는 연주자의 자유로운 해석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구성과 능수능란한 선율감으로 펼쳐진다.△음악적 고민과 노력 지속해야해마다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소리프론티어에서는 새로운 음악에 대한 진중한 고민의 결과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 노력들은 긴 시간을 통해 잘 다듬어진 성과라는 점에서 반갑고 무척이나 소중하다. 특별히 올해 본선에까지 올라서 경합을 벌였던 3개 팀 모두가 진심으로 반갑고 그 앞날에 많은 발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현대음악, 재즈 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다른 음악과의 만남은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현재성(現在性)을 담고자 하는 노력들이 충분히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모든 시도들은 오늘날 우리들 삶 속에 투영된 고민을 담은 실험과 창작이며, 전통음악의 외연을 확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역사의 흔적이 켜켜이 적층된 전통음악이 이 시대의 거인이라면, 그 어깨 위에 올라 앉은 음악적 고민과 노력이 더 넓고 먼 지평선을 향해 지속적으로 변화해 나가길 바란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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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16 23:02

[⑭ 귀명창은 즐겁다] 국악 즐기다보면 '얼쑤' 외치게 될 터

△국악을 즐기는 사람들국악원에 있다 보면 국악 좋아하시는 분들이 참 많구나 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풍물반 강의실 앞에서, 판소리 수업을 기다리면서, 어떤 분은 휴게의자에 앉아 장단을 맞추고, 소리를 따라하며 흥을 낸다.우리 국악을 누구나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 조선 후기 민속악이 부흥하고 궁궐 안에 있던 많은 음악들이 궐 밖으로 퍼져나가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그 전에 음악은 궐 안에 집중되었고 민간에 전승되던 음악들은 음악을 전유하던 이들로부터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조선 후기를 거치면서 부유한 농공상인이 등장했고 이들은 민간음악 부흥에 큰 힘이 되었다.△추임새와 소리 한 자락<2015 전주시 지속가능지표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판소리 추임새를 넣을 수 있다고 답한 전주시민의 비율이 최근 몇 년 사이 줄었다. 2011년에는 38.5%였는데 2014년에는 26.4%였다. 반면에 민요나 판소리 한 대목을 부를 수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늘어났다. 2011년에 20.3%에서 2014년에는 65%에 이른다. 흥미로운 일이다. 추임새 넣을 줄 아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소리 한 대목 할 줄 아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오늘날 추임새를 넣을 줄 아는 사람은 귀명창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추임새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인데 국악에 어지간히 익숙하지 않고서는 힘들다. 국악을 배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 결과 민요나 판소리 한 대목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추임새 넣을 줄 아는 사람의 비율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 이들이 귀명창이 되기에는 아직 시간과 여건이 조성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명창을 만드는 귀명창명인명창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오늘날에는 대통령상 수상과 문화재 보유자 지정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땠을까? 한마디로 귀명창이 좌우했다고 볼 수 있다. 18세기에 명창 배출의 대표적인 등용문으로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의 모태라 알려진 전주 통인청 대사습이 있었다. 많은 관객들이 운집하는 경연의 장이었는데 판소리인에게는 기회였다. 관객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면 그의 이름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명창으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이런 평가가 가능했던 것은 관객들이 잘하는 소리와 못 하는 소리를 가려듣는 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귀명창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명인명창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대학 졸업장이나, 수상경력, 문화재 인증서 등이 필요하게 되었다.△아는 만큼 즐겁다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아는 만큼 즐겁다로 바꿔보면 어떨까? 평소에 존경하던 어느 학자의 연구실에 간 적이 있다. 책상 한 쪽에 자그마한 수석이 놓여 있었는데 손때가 탔는지 반질반질 했다. 그는 무관심하면 한낱 돌덩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살피다 보면 생각지 못한 감흥과 즐거움을 얻는다고 했다. 매개는 수석이지만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열린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오랜 전통으로 우리의 생각과 삶이 배어있는 국악,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얼마나 많겠는가? 들려오는 풍물소리에 춤추게 되고 주변을 잊고 연주에 심취하게 만드는 뭔가가 켜켜이 쌓여 있다. 많은 이들이 그 기쁨을 얻으면 좋겠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외치게 될 것이다. 얼~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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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13 23:02

[⑬ 런던 K-뮤직 페스티벌] 판소리·인디·록·퓨전 밴드 한 자리에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한국음악 페스티벌인 런던케이뮤직페스티벌(London K-Music Festival)을 소개한다. 이 페스티벌은 런던에 있는 한국문화원이 2013년에 처음 개최했고 올해 두 번째로 열렸다. 이 페스티벌에서는 판소리뿐 아니라 한국의 다양한 음악을 소개한다. 인디 밴드, 록 밴드, 퓨전 밴드까지 총 출동한다. 한국 대표 예술양식인 판소리꾼과 국악 아티스트는 라인업에 반드시 포함된다.올해는 9월 한 달 동안 국악 듀오 숨[suːm], 보컬 트리오 바버렛츠, 록 밴드 노브레인, 월드뮤직 밴드 잠비나이 등 여러 팀이 축제 무대에 올랐다. 올해 판소리를 대표해 축제에 초청된 소리꾼은 남상일과 박애리였다. 팝핀현준과 전통 무용가 최지선, 아쟁 담당 배런과 고수 전계열도 무대에 섰다.런던케이뮤직페스티벌은 올해 처음 워크숍을 진행했다. 소리꾼 남상일은 소아스(SOAS) 대학교의 아프리카 연구원 키스 하워드(Keith Howard) 교수와 워크숍을 이끌어 나갔다. 하워드 교수가 판소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 후 소리꾼 남상일이 수궁가 중 별주부가 하늘의 토끼를 만나게 해달라고 비는 장면부터 토끼와의 만남까지의 대목을 들려줬다. 이어 관객들과 질의응답 시간이 진행됐다. 남상일은 워크숍 전날, 파리에서 수궁가 완창을 하고 런던에 와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었는데도 열정적으로 관객들에게 판소리를 소개했고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냈다. 관객들은 매우 즐거워했고 활발한 토론도 진행됐다. 판소리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은 처음엔 생소해했지만 판소리를 가까이서 경험하면서 판소리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자리였다.다음 날, 이들과 함께 나도 공연을 하게 됐다. 이 공연은 한국의 대명절인 추석을 기념해 영국의 관객들과 함께 즐기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흥보가 중 박 타는 대목을 짧게 불렀다. 공연이 진행됐던 카도간 홀(Cadogan Hall)은 관객 9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공연장으로, 그동안 섰던 무대 중 가장 큰 무대라서 긴장을 많이 했다. 유명 소리꾼인 남상일과 박애리와 함께 무대에 설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부족한 나를 지도해주면서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감사했다.남상일은 수궁가를 들려줬다. 박애리와 팝핀현준은 공항의 이별과 흥보가 중 한 대목을, 최지선은 즉흥 춤과 태평무를 선보였다. 훌륭한 공연이라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 이 공연의 좌석은 거의 매진됐고, 관객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영국에서 기립박수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닌데,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고 되레 내가 더 큰 감동을 받았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관객들이 나를 찾아와서 공연 잘 봤다고 앞으로도 판소리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이렇게 반응하는 관객들을 보니 내가 오히려 더 감사했다. 전문 소리꾼이 아닌 나에게는 이렇게 큰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꿈만 같았는데, 판소리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니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해 사람들에게 판소리를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판소리를 보다 가까이서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나는 전문 소리꾼이 아닌 판소리 연구가다. 직접 판소리를 배우면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판소리를 배웠다. 그런데 운 좋게도 생각보다 더 많은 실전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을 얻고 있다. 나는 전문 소리꾼은 될 수 없겠지만 판소리가 좋아 시작된 이 작은 일들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판소리를 좋아하게 되고 이 흥겨운 시간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이런 사명감을 갖고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2015.10.7~10.11)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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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06 23:02

[⑫'춘향가'와 사랑의 도시] 실제로 있을 법한 낭만적 이야기 매력

판소리는 소리꾼과 고수가 이끌어가는 전통적이고 독특한 문화예술이다. 소리꾼은 노래뿐 아니라 이야기와 함께 모든 인물의 역할을 도맡는다. 필자는 전주세계소리축제보다 이 전통적인 형식을 더 잘 만나볼 수 있는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판소리 다섯바탕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춘향가라고 생각하는데 아마도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판소리와는 달리, 실제로 존재했을 법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춘향가를 제외한 다른 판소리의 줄거리는 모두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심청가에서는 여주인공이 아버지의 눈을 뜨이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만, 용왕에 의해 다시 살아난다. 흥보가는 선하고, 악한 두 형제의 이야기인데, 결말에 박에서 도깨비들이 등장한다. 수궁가에서는 토끼와 거북이가 주인공이고, 적벽가는 중국의 전쟁 이야기다.춘향과 이몽룡 사이의 금지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 춘향가는 세계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영어권의 로미오와 줄리엣, 중동의 레일라와 마즈눈, 인도 아대륙의 히르와 란자와 같은 이야기다. 이 이야기들과 달리 춘향가는 행복하게 결말을 맺는다. 흥미롭게도 춘향가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춘향과 몽룡의 행복한 만남이 아닌 옥에 갇혀 춘향이 내뱉는 비극적인 탄식이다.나에게 춘향가는 숨도 못 쉴 만큼 아름다운 작품이었지만, 나의 통역이자 안내원이었던 젊은 친구는 전통 판소리가 고루하게 느껴진다고 고백했다.이와 같은 상황이 판소리를 더 인기 있는 형식으로 각색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20세기 초 판소리는 여러 소리꾼들에 의해 연기되는 극의 형식, 서양의 오페라와 같은 창극의 형태로 바뀌었고 최초로 각색된 작품이 바로 춘향가다. 이는 1903년 서울의 최초의 극장식 건물인 원각사에서 처음 공연된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는 2012년 소리축제에서 레이디 춘향이라 불리는 완전히 다른 형식의 춘향가를 보았는데, 모든 등장인물이 노래를 부르는 형식이었다.또 미소라는 매우 인기 있는 뮤지컬 형식의 작품은 서울에서 몇 년간 공연됐다. 기존 판소리와는 달리 속도감 있고 빠른 전개를 보였으며 80분 남짓이었다. 이야기는 거의 춤으로 표현되었지만, 제일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태형을 당할 때 춘향이 부른 반항적인 노래였다. 첫 번째 매질로도 나의 결연한 마음을 바꾸지 못할 것이며, 두 번째 매질로는 심지어 죽어서도 나는 두 주군을 섬길 수 없음을 나는 이 작품이 한국판 레미제라블과 같다고 생각했다.이 모든 형식들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영화로 각색된 작품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춘향가를 소재로 한 영화는 북한 영화 3편을 포함해 최소 16편에 이른다. 이중 가장 흥미로운 영화는 2000년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춘향이다. 이 작품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판소리 노래와 가사를 직접 사용했다는 점이다. 임 감독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영화 서편제를 찍었고, 놀랍게도 이 영화는 1993년 한국영화의 흥행기록을 깨기도 했다.그러나 춘향가에 대한 다른 놀랄만한 점은 그 배경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사랑의 도시 남원은 전주에서 불과 50㎞ 거리에 있다. 통역 친구와 함께 남원에 가보니, 이태리의 베로나에 있는 줄리엣의 집인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보다 볼 것이 더 많았다.광한루는 아마도 몽룡이 춘향을 보았을 때 서 있었던 곳일 것이다. 가까이에는 수로로 둘러싸인 어여쁜 정자가 있었는데, 달을 구경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오작교인데, 견우와 직녀를 위해 머리로 다리를 놓아주었던 까마귀와 까치를 상징한다. 다리를 건너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어서인지 연인의 낭만적인 산책코스로 유명한 듯했다. 가까이엔 고색창연한 춘향의 사당도 있었다. 그 앞에는 수궁가를 연상시키는 듯한 토끼와 거북이가 그려져 있는데, 위대한 사랑이야기인 춘향가가 항상 승리하리라는 것을 아는 듯했다.그렇다면, 춘향가의 이야기는 진짜일까? 춘향과 몽룡은 실제 인물일까? 그게 문제가 될까?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노래가 말하듯이 사랑은 모든 것을 바꾼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2015.10.7~10.11)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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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02 23:02

[⑪ 민요, 세계음악으로의 가치] 서민 문화적 감성·시대성 담은 자산

몇 해 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켄 로치(Ken Loach) 감독의 작품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동명의 아일랜드 민요인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를 원제로 한다. 이 노래는 400여년간 행해진 영국 식민통치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영국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들의 시신을 침대에 둔 채 조문객을 맞이하는 어머니의 육성으로 불려졌다. 순간이지만 이 영화의 배경을 모두 설명하는 노래였다.영화 취화선에는 이춘희 명창의 이별가가 나온다. 임권택 감독은 우연히 라디오에서 이춘희 명창의 노래를 듣고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고 한다. 임 감독은 노래의 배경이 된 사계절을 타임랩스로 담아내며 한편의 아름다운 뮤직비디오와 같은 그림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민요는 서민의 문화적 감성을 담은 노동과 놀이, 의례와 더불어 시대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산이다.앞서 예를 들었던 아일랜드의 민요는 18세기 하프 연주자였던 오캐롤란(OCarolan)에 의해 정리돼 오늘날까지 전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는 아일랜드 전역을 걸어서 여행하며 각지에 있는 민요를 악보로 남겼다. 이 자산은 오늘날 월드뮤직밴드인 치프턴스(Chieftains)를 비롯, 수많은 아일랜드 음악가를 배출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우리나라는 이보다 먼저 세종대왕이 박연을 통해 음악을 정리하게 하면서 민요 수집도 진행했다. 팔도의 현에서 민요를 채집해 매년 보고토록 한 것이다. 세종과 세조는 민요 부르는 사람을 궁으로 불러 공연하게 했다는 내용이 실록을 통해 전해지기도 한다.당시 수집됐던 민요는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지만 고정옥 민요 연구가의 기술에 따르면 민요는 많은 경우 도가(徒歌)-악기 연주 없이 노래만 부르는 것의 형태로 추정된다. 그 특성상 무리지어 함께 부르며, 노동하는 사람들의 노래다. 또 듣는 사람이 없어도 길을 가며 혼자 부르는 노래다.월드뮤직 분야에서 흔히 말하는 포크 리바이벌은 영미권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산업화와 정의롭지 못한 정치에 대한 반항을 다뤘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민족 정체성의 자각을 위해 시작되기도 했다.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이창배, 정득만 명인이 운영했던 청구고전성악학원을 중심으로 경서도민요가 정리되고 전수됐다. 최상일 프로듀서와 그의 방송 팀이 20여년에 걸쳐 한국토속민요의 발굴과 채집을 통해 이룬 성과는 민요 연구에 큰 이정표를 세웠음을 부인할 수 없다.소박하면서도 단순한 멜로디, 반주가 없거나 복잡하지 않은 악기로 연주되고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이 연행됐던 민요는 음악과 공연산업의 발전에 따라 음반으로, 공연으로 새로운 옷을 입었다.서양음악의 수용에 따라 일제시대에는 선양합주로, 해방 이후에는 한양합주로 서양악기와 전통악기가 민요를 연주했으며,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추기도 했다. 고(故) 백대웅 작곡가는 민요에는 내재된 화성이 존재하며, 이를 통해 민요가 세계 음악의 보편성을 담고 있음을 기술한 바 있다. 전통음악의 현대화에 중요한 자산으로 활용될 민요의 가치에 대해 본격적으로 주목해야하는 이유다. 스코틀랜드의 위대한 시인 로버트 번스의 시에 곡을 붙인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은 한때 애국가의 곡조로 불렸고 세계인의 노래가 됐듯이 아리랑을 비롯한 많은 민요를 더 가까이 하고 삶의 주변에서 풍성하게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2015.10.7~10.11)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의 음반프로듀서 김선국의 새로운 도전을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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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22 23:02

[⑩ 해외에서 만나는 판소리] 프랑스서 3년째 한국소리축제

프랑스 파리에도 한국의 소리를 프랑스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K-Vox Festival(한국 소리 페스티벌)이 있다. 현재 이 축제는 3년째를 맞이했고, 올해 처음으로 방문했다. K-Vox Festival을 처음 만든 사람들은 프랑스 작가 Herve Pejaudier 씨(헤르베 페조디에)와 그의 아내인 한국인 한유미 씨다. 이들은 연극배우기도 하다. 판소리를 연구한 아내를 통해 판소리의 재미를 발견한 페조디에 씨는 판소리를 직접 배웠고, 프랑스 관객에게 이를 소개하기 위해 소리꾼 민혜성 씨와 공연을 만들었다.먼저 페조디에 씨는 판소리 한 대목을 직접 연기하면서 프랑스어로 이야기를 한다. 그 다음 민혜성 씨가 등장해 원래 대목을 들려준다. 이 방법은 보통의 자막과 함께 선보이는 판소리 공연과 달라 프랑스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이 방식으로만 한국의 소리를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쉬워 결국은 한국의 소리를 위한 음악축제를 아내와 함께 만들었다.K-Vox Festival에서는 매년 좋은 공연을 만날 수 있다. 올해는 처음으로 판소리를 연구한 학자를 모아 심포지엄까지 열었다.여기서 집중하고 싶은 것은 외국인을 위한 판소리 대회다. 참여자들은 민요와 판소리를 각 한 대목씩 준비하고 10분간 심사원 앞에서 경쟁한다. 예전에 이 축제에서 상을 탄 사람들이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아마추어 소리꾼 경연대회인 나도야 소리꾼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난 6월 이 대회에서 상을 탄 사람들은 내년 3월에 한국에 입국해 한양대의 국악 전공자들과 함께 협업 공연을 할 예정이다.올해 이 판소리 대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16명이었다. 나도 이 대회에 참석했다. 이 대회를 위해 춘향가 중 이별가 그리고 신민요 봄타령을 준비했다. 확실히 공연이나 대회와 같은 목적이 생기면 더 집중하게 되고 이 기회를 통해서 더 많이 배우게 되는 점을 느꼈다. 특히 열심히 갈고 닦은 노력의 결과를 다른 사람들 앞에 선보일 수 있다는 만족감이 참 크다.하지만 나처럼 1년간 계속 한국에 있고 매일 학원에서 판소리를 배우는 사람보다 다른 참가자들이 더 대단했다. 일 년에 단 한번 2주 정도의 판소리 워크숍을 듣고 그 매력에 푹 빠져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도 혼자 연습하고 용기를 내 대회에 출전하는 모습이 정말 멋지다.그중 한 참가자는 6월에 열리는 대회를 위해 2월부터 녹음 파일을 듣고 동영상을 보며 준비했다고 들려주었다. 이런 열정을 보고 나는 좀 더 반성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년 동안 한국에서 직접 선생님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 정말 귀한 기회였다는 것을 또 한번 느꼈다. 대회 장소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1년에 2주만이 아닌 제대로 판소리를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이 사람들의 열정과 꿈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면 재미있는 세상이 될 것 같다. 한국에서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배우는 것처럼 파리에서도 판소리를 일상적으로 배울 수 있다면 말이다. K-Vox Festival과 같이 해외의 축제로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판소리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2015.10.7~10.11)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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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18 23:02

[⑨ 올 소리축제 해외라인업] 매혹적인 민속악기 아티스트 한 자리에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는 수많은 해외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다. 올해도 많은 매혹적인 예술가가 소리축제 무대에 오른다. 그 시작은 프랑스의 아코디언 연주자 리샤르 걀리아노다. 10년 전, 영국 맨체스터에서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음악을 연주하던 그를 처음 보았다. 그 연주회는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탱고 콘서트들 중 가장 뛰어난 공연으로 남았다.리샤르는 1950년 프랑스 남부에서 태어났는데, 이태리 태생의 아코디언 연주자 루시앙 걀리아노의 아들이다. 그는 파리에서 활동했으며, 주로 재즈를 연주했다. 그러다 1980년대에 아르헨티나의 누에보 탱고 음악가 아스토르 피아졸라를 만났다. 리샤르는 프랑스 아코디언 음악을 피아졸라가 탱고를 변형시켰던 방식으로 연주했다. 이는 그를 매우 다재다능한 뮤지션으로 성장하게 했고 리샤르는 어떤 특정 범주로 분류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아티스트로 명성을 날리게 됐다.리샤르와 마찬가지로, 아주 유능한 아티스트가 있다. 바로 스페인 출신의 가수이자 연주자인 아나 알카이데다. 그는 톨레도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데, 톨레도는 한때 유태인이 많이 살았던 곳이며, 그녀의 음악은 스페인의 세파르디 유태인들의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마지막 앨범 불의 노래(La Cantiga del Fuego)는 유태인 소녀와 기독교인 소년의 비극적인 사랑, 또 그 도시에 남아있는 한 우물에 대한 노래로 시작한다.아나는 어렸을 때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생물학을 전공했다. 2000년도에 스웨덴의 민속공연과 전통음악에 반했다. 아나는 니켈하르파는 내게 특별한 마법을 부리는 것 같다. 이 악기의 현란한 모양, 다듬어지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심오한, 그리고 달콤하기까지 한 소리는 나를 옴짝달싹도 못하게 한다. 2002년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니켈하르파를 갖게 되었고, 2005년에는 음악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스웨덴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니켈하르파는 바이올린과 비슷한 악기로 활로 연주되지만, 건반으로 멈추며 기타처럼 가슴에 안은 채 연주한다. 부드럽고 섬세한 소리의 악기지만 로큰롤 음악과 같은 다양한 장르와도 잘 어울린다. 현재 아나는 이 악기의 국제 친선대사나 다름없다. 최근 그녀는 사마르칸트에서 연주활동을 했다. 인도네시아의 밴드 고트라사왈라앙상블과도 함께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 앙상블도 올해 소리축제 무대에 선다.그는 음악은 아주 감성적인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우리의 언어, 문화적인 배경과 상관없이 같은 것을 지향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자신을 두고 음악을 통해 감성적인 연관성을 만들고, 또 다른 사람들과 장소에 가까워질 수 있어 운이 아주 좋은 사람이다고 밝혔다.폴란드 출신의 뮤지칸시는 소리축제를 통해 아시아 무대에 처음으로 선다. 유태인의 음악과는 사뭇 다른 소수 민족의 음악을 포함해 다양한 전통음악을 연주한다. 바르샤바에서 열린 폴란드 라디오의 새로운 전통 축제의 수상자다. 이 축제는 폴란드의 최고의 민속밴드로 구성돼 있다.말레이시아 출신의 가믈란 연주팀 리듬 인 브론즈는 대부분 여성멤버로 구성됐다. 소리축제 방문은 이들에게 아주 흥미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이들은 청동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악기를 연주해 해외공연의 기회를 좀처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말레이시아 사라워크에서 열렸던 레인포리스트 축제에서 그들을 보았을 때 나는 그들이 연주한 현대음악, 한 벌의 차임벨과 징을 포함시킨 전자 기타 음악에 매료됐다. 그들의 음악은 정열과 따뜻함을 담고 있어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2015.10.7~10.11)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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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15 23:02

[⑧ 농악인과 판소리] 같은 듯 다른 개인·집단 예술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라는 질문을 받으면 농악은 실기인이고 판소리는 연구자라고 답한다. 한 가지를 매진해도 부족할 마당에 무슨 욕심으로 두 가지나 하고 있다. 힘들고 뚜렷하게 잘 하는 게 없지만 할 얘기는 생긴다. 농악인과 판소리인의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무대 위 같은 듯 다른 문화고독하게 혼자 서야 하는 게 소리판이다.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잘 되어도, 못 되어도 결국은 소리꾼 책임이다. 고수는 길동무가 되어 줄 따름이다. 무대에서 관객의 냉엄한 평가를 온전히 혼자 맞이해야 한다. 경쟁도 피할 수 없다. 스승이냐 제자냐 하는 것조차 잠시 접어두게 된다. 많은 판소리인은 외롭고 무섭다고 한다.어느 중견 명창이 제자고 후배라도 빼어난 소리하는 걸 들으면 긴장하고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오정숙 명창도 하루 연습 안 하면 내가 알고, 이틀 안 하면 옆 사람이 알고, 삼일 안하면 온 세상이 다 안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긴장을 늦출 수 없고 연습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일상이 보이는 듯하다.사진소리라는 말이 있다. 스승을 곧이곧대로 흉내내는 소리를 이른다. 판소리인은 전통적으로 사진소리를 지양했다고 한다. 스승을 계승하되 자신만의 소리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판소리는 개인예술이다. 자신의 색깔로 존재가치를 증명한다.몇 년 전 어느 지역 축제에서 농악공연이 시작되기 전, 상쇠는 두 번째 꽹과리잽이인 부쇠와 장고잽이의 우두머리인 수장고, 북잽이의 수장인 수북 그리고 소고수의 우두머리인 수소고와 양반, 각시 등 잡색의 대장인 대포수도 불렀다. 공연의 순서와 강조할 부분, 유념할 내용 등을 얘기했다. 상쇠와 나눈 이야기를 부쇠, 수장고, 수북, 수소고, 대포수가 각 분야에 전했다. 공연 중간 중간에도 상쇠는 눈짓과 손짓으로 신호를 했다. 현장 상황에 맞게 길이와 내용을 조정해가며 공연은 마무리됐다.농악판은 네가 없으면 안 되는 판이다. 집단예술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난 상쇠도 장고잽이나 북잽이, 소고잽이 등이 없으면 훌륭한 농악판을 만들 수가 없다. 협동과 화합의 속성이 배어 있다.농악도 개인간 경쟁이 없지는 않다. 예전 농악판에서는 상쇠가 어리바리하면 지나가던 다른 동네 상쇠가 꽹과리를 치며 판에 들어가 기존 상쇠를 쫓아내도 아무소리 못하곤 했다고 한다. 수장고, 수소고가 되려는 경쟁은 두말할 것도 없다. 다만 형태적으로 싫건 좋건 함께해야 하는 특징이 있다.△국악인으로 다른 듯 같은 문화판소리에서나 농악에서나 스승의 존재감은 대단히 크다. 문헌이나 악보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스승은 예술을 담고 있는 유일한 존재다. 스승이 체득한 예능은 제자가 학습할 수 있는 유일한 텍스트다. 구전심수로 오랜 세월 학습하다보면 부모자식 같은 정도 쌓인다. 판소리 사제간이나 농악의 사제간이나 부모자식처럼 되는 경우가 많다.농악의 연주기교 중에 겹소리를 내는 것이 있다. 꽹과리는 지갠, 장고는 구궁 또는 기닥의 소리다. 한 번 칠 때 지와 갠, 구와 궁 소리가 함께 나야 한다. 또한 두 소리의 간격을 띄어 치고 붙여 치고,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하지만 정확한 소리를 내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농악인들 사이에서는 일명 구궁만타라 하여 하루에 구궁을 만 번씩 쳐야 제대로 된 구궁소리를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 3~4년 정도의 수련이 필요하다. 가락의 기교뿐만 아니라 머리에 쓰는 상모의 기교도 필요하다. 긴 농악 판굿의 순서도 익혀야 한다. 각 악기별 개인놀이도 배워야 한다. 농악 역시 오랜 수련이 필요하다.학위 논문을 쓰기위해 지난 2009년부터 4년 반 정도 판소리인을 취재했다. 조사가 끝나갈 무렵 질문은 한 가지로 모아졌다. 왜 판소리를 하는가?였다. 부귀영화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수련이 쉬운 것도 아닌데 왜일까?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리고 당연했다. 때론 흔들리고 이따금 한 눈도 팔지만 그래도 이 삶을 계속하는 것은 판소리가, 농악이 다른 어떤 것보다 좋기 때문이었다. 판소리인과 농악인의 본질적인 공통점은 국악인으로서의 삶을 사랑하고 힘들어도 그 길을 간다는 점이었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2015.10.7.~10.11)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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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11 23:02

[⑦ 종묘제례악] 유교·향악·제례 접목한 민족주의 음악

최근 프랑스는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국가차원에서 세계 여러 나라와의 수교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 몇 년간 중국,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 등의 아시아 국가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여러 나라의 공연예술, 문학, 영화, 미술, 공예 등 다양한 문화예술을 자국에 선보였다. 현재 크로아티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와의 교류도 준비하고 있다.한국과 프랑스는 올해 수교 130주년을 맞았다. 한불상호교류의해 한국조직위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9월부터 내년 12월까지 약 120개의 행사가 양국에서 진행된다. 여기에는 다양한 전통예술공연도 포함된다. 올해 파리가을축제에는 안숙선 명창이 주축이 된 판소리 수궁가 입체창과 김금화 만신의 서해안 풍어제(중요무형문화재 82호)가 포함됐다. 상상축제에는 김덕수 명인이 주축이 된 2015 파리 난장과 프랑스에 산조와 시나위를 알린 이재화, 박현숙, 김영길, 안성우, 유경화, 나영선, 조영제 명인 등의 산조&시나위 앙코르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 또 김백봉 명무로부터 최승희 무용을 전수받은 양성옥 명무의 독무가 70여년 만에 파리의 레비스트로스 극장에서 공연된다. 이어 쉘부르 지역 등으로 지방도시 투어를 진행한다.2015-2016 한불상호교류의해를 기념해 진행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서막을 열게된 공식개막작은 종묘제례악이다. 국립국악원 정악단, 무용단의 85명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공연단은 종묘제례악의 음악과 일무(佾舞)제례까지 모두 갖춰 6세기만에 첫 해외무대를 준비했다. 또 종묘제례악은 프랑스 국립샤이오극장 2015-2016 시즌 개막작으로 선정돼 공연의 의미를 더했다. 더불어 한국무용을 세계에 처음 알린 최승희 명무의 프랑스 고별공연이었던 Farewell이 1939년 6월 15일 국립샤이오극장의 무대에 오른 후 우리의 공연이 프랑스 무대에 본격적으로 오르는 첫 무대이기도 하다.종묘제례악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동시에 종묘에서 연행된 매우 중요한 공연예술이다. 조선시대 통치이념인 유교의 예악사상을 담아내는 동시에 향악과 접목시킨 악기 배치와 음계의 재정립을 이뤄냈다. 또한 작곡과 작사에 맞춘 일무를 제례와 접목시킨 완성된 예술 형식으로 전승돼왔다.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이전의 궁중음악과는 구별된 독립된 형식이며 당시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피어난 민족주의 음악의 시작으로도 볼 수 있다.서양의 민족주의가 19세기 이후에야 작곡으로 변별성을 갖게 된 것에 비하면 종묘제례악은 이에 비해 몇 세기나 앞선 것이다. 이 외에도 오늘날까지 궁중음악의 정수로서 연주를 이어오며 민간 음악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전통예술의 원형으로는 가장 장엄한 형식미를 지녔다.이번 프랑스 공연에는 국립샤이오극장의 특성과 무대형태에 맞춘 일무가 전면에 서며, 박동우 무대디자이너의 종묘를 형상화한 작품과 이상봉 조명디자이너가 참여해 기존공연과 차별성을 갖는다. 피나 바우쉬의 사진작가로 알려진 우종덕 작가는 종묘의 사계절을 1년간 타임랩스로 촬영한 영상을 오프닝으로 준비했다. 서예의 대가인 열암 송정희 선생은 강렬한 캘리그라피를 남겼다.유례없이 대규모로 진행되는 이번 종묘제례악 공연이 프랑스와 유럽 문화예술계에 깊은 인상을 남기며 우리 궁중 예술의 정수가 제대로 소개되는 기회로 작용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미 모든 티켓이 매진됐다는 소식이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2015.10.7~10.11)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의 음반프로듀서 김선국의 새로운 도전을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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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08 23:02

⑥판소리 공연 - 큰 선생님들 힘있는 무대에 박수를

이전 글에서는 소리꾼들이 판소리를 배우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 글에서는 소리꾼들의 노력의 결과인 공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나는 올해 운 좋게 많은 무대에 설 기회가 있었다. 그 중 제일 인상적이었던 무대는 올해 5월에 진행된 국창 박록주 탄생 110주년 기념공연이었다.이 공연은 박록주 선생님의 제자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인 박송희 선생님이 준비한 공연이다. 나는 박송희 선생님의 제자인 민혜성 선생님에게 소리를 배우고 있어서 나도 이 무대에 설 기회를 얻게 됐다. 판소리를 1년도 채 못 배운 나에게 이런 기회는 정말 영광스러운 것이었다.박록주 선생님은 20세기 초부터 활동했던 여류 명창이다. 당시 박록주 선생님은 큰 스승이었던 송만갑, 박기홍, 정정렬 명창으로부터 사사했고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인 판소리의 춘향가와 흥보가 전수자로 지정되었다. 남자처럼 힘차고 꿋꿋한 창법인 동편제 소리로 국창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한 명창이었다.이 공연에서는 박록주 명창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같은 유파의 소리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유파나 제는 같은 선생님께 배우고 같은 소리하고 있는 소리꾼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판소리계에선 스승의 영향이 중요하기 때문에 누구에게 배웠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유파란 개념이 쓰인다.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는 바디다. 바디란 받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누구로부터 소리를 전수 받았는지를 설명한다. 그래서 보통 어떤 소리를 하는지 설명하고 싶으면 저는 동편제 박록주 바디 흥보가를 배우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박록주 바디를 배웠던 소리꾼들이 모였다. 박록주 선생님께 직접 소리를 배운 박송희 선생님과 조순애 선생님, 이 후 박송희 선생님께 소리를 배운 나의 스승인 민혜성 선생님과 다른 제자 분들, 그 다음 세대인 나와 같은 제자의 제자들까지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이렇게 다 모여 있으니 왠지 조상을 기념하기 위한 가족 모임 같았다. 특히 나와 같은 외국인을 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받아주신 소리꾼들에게 참 감사했다.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지 않고 그저 다른 제자들과 동일하게 여겨주셔서 큰 감동을 받았다.직접 판소리 공연을 해본 적 없는 분들이라면 궁금해 할 것 같아 공연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려고 한다.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서는 공연장을 빌려야 한다. 대관 비용이 꽤 크기 때문에 보통 지원을 받고 공연을 하게 된다. 이후에는 공연에 출연하는 팀들끼리 따로 모여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한다. 나는 이 공연에서 민혜성 선생님의 다른 제자들과 함께 봄 타령이라는 민요를 준비했다. 공연 당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모여 악사들과 맞춰보고 마이크 테스트를 한다. 판소리계에서는 계급이 규정돼 있어서 제일 어린 사람부터 연습하기 때문에 큰 선생님들이 오래 대기하지 않도록 시간을 잘 분배한다. 특히 박록주 선생님께 직접 소리를 배운 박송희 선생님은 올해 여든 아홉으로 연세가 많으시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피곤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해 무대를 만든다. 나는 특히 이런 분들을 보면서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힘 있는 무대를 선보이며 즐기는 모습을 보며 나는 또 한번 판소리 하시는 분들을 향한 존경심을 갖게 됐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2015.10.7~10.11)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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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04 23:02

⑤ 판소리인 '나의 스승, 나의 제자' - 부모·자식처럼 끈끈한 사제 관계

판소리인에게 스승이란 어떤 존재일까? 어느 명창은 소리를 배우면서 스승님이 해가 달이다 해도 믿을 만큼 스승님 말씀을 천금같이 여겼다고 했다. 그리고 스승님을 떠올리니 가슴이 먹먹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판소리인에게 스승은 그런 존재라고 했다. 무서울 만큼 절대적인 존재 그러면서도 부모처럼 한 없이 챙겨주는 존재.판소리는 일정한 악보가 없이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음악이다. 이를 구비전승음악이라 한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사설을 옮겨 적은 사설집이 활용되는 정도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얼굴을 직접 보며 하나하나 가르치고 배운다. 그러다보니 그 정이 남다르다.판소리인이 수련을 거쳐 명성을 얻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친다. 스승을 찾고 배움을 허락 받으며 수련을 하고 세상에 인정을 받는 기나긴 여정이다. 그 여정의 길목, 길목마다 스승이 함께 한다. 대부분 판소리 스승과 제자는 그렇게 평생의 연을 쌓는다고 한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하는 여정의 대목 대목을 따라가 보자.아무소리나 한 번 해봐.지금은 어느덧 중견이 된 판소리인 김씨. 그는 어려서 판소리가 좋아 무작정 판소리 스승님께 갔다. 스승님은 대뜸 아무소리나 한 번 해봐 하셨다. 배운 것이 없는데 무얼 해야 하냐고 되물으니 스승님은 또 다시 그냥 아무소리나 한 번 해봐 하셨다. 김씨는 평소 스승님이 소리 가르치는 곳 근처에서 자주 귀동냥을 했었다. 귀동냥소리를 되든 안 되든 그냥 했다. 그랬더니 스승님은 그 정도면 됐다. 내일부터 와서 배워라 하셨다. 그 때 그렇게 시작된 판소리 인생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스승과의 인연은 이렇게 아무소리나 한 번 해봐라는 입문과정으로 시작된다.한 발 더 가까이입문을 하면 사사가 시작된다. 사사(師事)란 스승으로 삼아 섬기며 가르침을 받는 것을 말한다. 판소리인들이 말하는 사사란 스승과 주기적으로 또는 여러 날 집중적으로 만나며 소리공부하는 것을 뜻한다. 판소리 스승에게 사사를 받는 다는 것은 그 스승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판소리는 배울 게 참 많다. 단가 배워야 하지, 바탕소리 배워야 하지. 어디 소리뿐인가, 발림도 배워야 하고 기본적인 장단도 칠 줄 알아야 한다. 보통은 배우는 단위가 바탕소리다. 판소리인들은 한 바탕 뗬다(떼었다), 두 바탕 뗬다는 말을 자주 한다. 바탕소리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배우기를 한 편했다, 두 편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게 오래 걸린다. 한 바탕 떼는 데 보통은 일 년 길게는 삼년 때로는 그 이상도 걸린다.스승은 이제 사사할 때만이 아니라 공연 갈 때나 개인적인 일을 보러갈 때도 제자를 찾게 된다. 제자 역시 일상적으로 스승을 찾아뵙고 크고 작은 일들을 도와드리게 된다. 판소리인들은 이런 제자를 수발제자라 한다. 스승과 수발제자 사이는 더욱 각별하다. 대부분이 스승을 부모처럼, 제자를 자식같이 여긴다.세상 속으로인연과 열정을 더해가며 그렇게 수련을 하다보면 어느 덧 세상 속으로 가야 할 때가 다가온다. 스승은 제자를 이러 저러한 무대에도 세워보고 크고 작은 대회에도 내보낸다. 가르쳐온 제자를 세상에 선보이는 것이다. 제자가 칭찬을 받으면 좋아하고 지적을 받으면 속상해 한다. 스승 자신이 보기에도 잘 한다 싶으면 사람들에게 은근슬쩍 자랑도 한다.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판소리인들의 스승, 제자 사이가 끈끈하게 이어지는 것은 왜 일까? 판소리를 한다는 것은 곧 스승을 모신다는 것이다. 판소리는 스승을 통해서 배우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제자는 스승을 통해서 자신의 미래를 본다. 스승은 제자를 통해서 자신의 소리를 남긴다. 제자를 길러내는 것은 곧 자신의 소리가 후대에도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 걷는 소리 길 여정에서 스승이 곧 제자고, 제자가 곧 스승이다. 그렇게 판소리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2015.10.7~10.11)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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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01 23:02

④ 한국의 전통, 판소리 - 강렬한 소리·추임새, 최고의 전통 예술

나는 월드뮤직 매거진 송라인즈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면서 이 세상에 과연 고유한 음악형식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이럴 때면 나는 대개 한국의 판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판소리는 치열하고도 지난한 노력을 요하는 예술로 한 사람의 소리꾼이 이끌어가는 형태다. 그들은 이따금 탁하고 비명과도 같은 소리로 노래를 하는데 오직 북장단에 맞춰 소리를 한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합죽선을 펼쳐 보이기도 한다.몇 년 전, 판소리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 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어 거의 죽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이런 경험 뒤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만약 거미를 두려워한다면 이것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거미가 든 항아리에 손을 집어넣는 것이라고 말이다.그래서 좋아, 한번 판소리를 이해해보자라고 결심했다. 판소리의 심장부인 전북에 있는 거미들의 보금자리를 찾게 됐다. 판소리에 대한 공포심과 혐오감을 극복하기 위해서였지만 돌아보니 하늘이 준 기회였다.진실로, 필자에게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판소리를 마주했던 경험은 하나의 계시와도 같았다. 19세기부터 내려온 한 상인의 집으로 알려진 전주한옥마을의 학인당 마당에서,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 병풍 앞에서 펼쳐졌던 판소리 완창은 결코 잊을 수 없다. 당시 소리꾼은 장문희 명창으로 30대 여성이었다. 그는 비교적 젊은 소리꾼이라고 여겨졌는데 심청가를 불렀다.판소리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자막이었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화면에 영어로 번역돼 한국말을 전혀 모르던 나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구슬픈 이야기가 간혹 우스갯 소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그러나 실제로 진한 감동을 선사하고, 청중을 옴짝달싹도 못하게 만든 것은 그 소리가 만들어내는 표현과 시적인 감흥이었다. 심청 어미가 죽음을 맞이하는 부분에서 소리꾼의 목소리에 묻어난 짙은 씁쓸함, 심청 어미의 장례식 풍경-수양버들이 우거진 정자에서 지빠귀가 노래를 부를 때의 딴 세상 같은 느낌-을 그 예로 말할 수 있다.심청이 자살할 때는 그 장면 속의 모든 것이 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풀과 나무는 물론이고 심지어 산도 눈물을 뿌리고 새들도 작별을 고했다. 뻐꾸기 한 마리가 죽음을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그 내용이 그림처럼 생생하게 살아나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나는 지금껏 심청가 완창을 3번 감상했다. 심청가는 내가 들었던 소리들 중 가장 비극적이었고 여태껏 가장 좋아하는 소리다. 아무래도 심청가와의 만남이 어떤 특별한 계시와도 같은 경험이었기 때문이다.다른 판소리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전주에서 들었던 춘향가는 가장 낭만적이었고, 흥보가는 가장 재미졌으며, 수궁가는 최고의 상상력으로 가득했다.두루 이런 말들을 늘어놓는 이유는 지금껏 보아온 판소리는 최고의 전통 예술 양식이기 때문이다. 고수는 장단을 맞출 뿐만 아니라 공연 전체를 통과하며 소리꾼을 격려해 극을 이끌고 열정적인 귀 명창 또한 추임새를 잊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판소리는 오페라에 비견되지만, 소리의 강렬함과 얼씨구와 같은 추임새를 청중이 함께 하는 방식은 오히려 플라멩코에 더 가깝다.소리축제처럼 판을 꾸미고 친밀감을 만들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판소리를 감상하고자 전주를 방문하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지난 2012년 소리축제 개막 공연 무대에서 안숙선 명창과 그의 제자 100명이 아주 감동적인 광경을 선사한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물론 방법이 이뿐은 아니다. 이자람 씨와 같은 소리꾼은 세계를 돌며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극장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다른 위대한 예술 형식처럼, 앞으로 판소리 또한 끝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재창조되길 소망해본다.※ 이 칼럼은 전주세계소리축제(2015.10.7~10.11)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의 사이먼 편집장의 월드뮤직 이야기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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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28 23:02

[③ 전통음악 대중화에 대한 소견] 올바른 제도 교육 필요하다

오늘날 전통은 과거의 한 시점에서 고착된 역사적 증거가 아닌 민족적 자아로서 미래 지향적인 문화유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전통의 계승발전에 대한 음악부문의 노력은 제도의 확립과 공적 지원체계의 마련 등 의미 있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전통음악은 국악(國樂)으로 통칭되지만, 민족의 보편적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이유로 전통음악계는 대중화를 세계화와 함께 중요한 의제로 인식하고 있다.전통음악의 대중화 기반은 올바른 제도 교육다. 역사적으로 전통음악은 소통과 공감의 예술이었지만, 정규 교육과정과 일상적 음악환경을 점유하고 있는 서양음악에 밀려 전문가의 예술로 인식되고 있다. 서양음악 위주의 관점과 이론체계로 이뤄진 음악교육으로는 전통음악의 실체에 대한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다.뛰어난 전통음악 이론가인 동시에 교육자였던 작곡가 백대웅(白大雄, 1943-2011)은 제도 교육에서 가르치는 음악의 3요소인 가락(melody), 장단(rhythm), 화성(harmony)은 전통음악에 담긴 성음, 길, 이면이라는 말에 숨겨진 깊은 뜻을 설명할 수 없으며, 음악(音樂, Music)이라는 말은 20세기 이후의 사용됐고 이전에는 악(樂), 소리, 노래 등으로 표현됐다고 짚었다.또한 전문가의 언어로만 설명돼온 전통음악계의 자성도 필요하다. 보편타당한 언어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통일된 개념이어야 하며, 학생의 다양성을 살리되 합리적으로 정리된 이론교육이 강조돼야 한다.백대웅은 잘못된 음악교육의 예로 홍난파(洪蘭坡, 1897~1941)가 전통음악을 가리켜 화성이 없는 원시음악 이라고 했던 말을 여러번 지적했다. 홍난파는 조선정악전습소라는 20세기 최초 우리나라의 음악교육학교에서 수학했음에도 전통음악에서 생성됐던 길바꿈기법(변조, 전조기법)이나 장단의 다양함, 예술성 등을 인식하지 못해 선입견을 가졌다는 것이다.더불어 학술적으로 전통음악사에 대한 재정립도 필요하다. 대부분의 전통음악사는 왕조사(王朝史) 중심의 편년체 형식으로 기술됐다. 각 음악장르의 생성과 변모에 대한 통시적 이해는 쉽지 않다. 왕조의 흥망성쇠가 문화예술사의 변화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이나, 서양의 문화예술사가 문예사조의 변화에 따라 교육되고 있음을 살펴본다면 음악양식사의 도입은 전통음악에 대한 보편적 이해와 대중화를 위해 중요하다.부르크하르트 이후,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서양의 음악양식사 연구는 구조적인 역사, 수용의 역사, 문화적인 역사도 포괄하는 연구 또는 비평의 한 형태로 음악에 초점을 맞춘 미학적 경험까지 폭이 넓어지고 있다.반면 전통음악계는 일부 학자에 의해 전통음악양식사 기술이 제기됐지만 왕조사에 기대 음악사를 설명하는 관행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 하다.전통음악계는 이 시대의 대중과 어떻게 만날지 고민하는 한편, 다음 세대가 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통음악을 이해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전통음악에서 현대적 감성을 발견하고 옛 시대의 음악을 오늘날에 보존하는 것은 방법적 차이일 뿐 같은 길 위에 있다.전통은 대를 이어 물려받은 중립적 유물이 아니라 그 사회의 구성원이 자신의 시점에서 의미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요소를 선택보존해 재구성한 선택적 전통의 결과다. 전통음악이 우리시대의 보편적인 감성을 담아내면서 누구나 편안하게 즐기도록 이해 기반을 마련하고, 그렇게 대중 곁에서 공감을 얻길 바란다.※이 칼럼은 10월7일~11일 열리는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의 음반프로듀서 김선국의 새로운 도전을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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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25 23:02

[② 산 공부, 그리고 고통의 다른 이름 '판소리'] 소리꾼 득음 위한 처절한 노력에 반했어요

나는 원래 영국의 런던대학교 SOAS(소아스, School of Oriental & African studies)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던 정치학도다. 어느 날 아시아 정치에 관한 수업을 듣던 중 한국의 전통음악을 접하게 됐다. 당시 런던에서 송순섭 명창과 이자람 씨의 적벽가를 관람할 수 있는 계기도 연이어 생겼다. 언어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전해지는 격렬한 감정에 전율을 느꼈다. 나와 판소리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나는 소리꾼들의 표현력에 반했고, 판소리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 창작 판소리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게 됐다. 현재 박사과정 1년을 마치고 현장 연구를 위해 한국에 와 있다. 판소리를 직접 배우고 소리꾼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며 판소리를 연구하고 있는데, 그들을 통해 가장 먼저 놀라고 인상 깊었던 부분이 바로 처절하고도 간절한 노력,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공부 방식이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른바 산 공부였다.산 공부는 판소리를 배우는 과정의 필수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산 공부는 옛날 명창들이 해오던 백일 공부다. 이름만으로도 금세 짐작할 수 있겠지만 자기 소리를 얻는 득음을 위해 백일 동안 절이나 동굴에 살면서 종일 혼자서 소리 공부를 한다. 이 과정에서 소리꾼들이 메아리와 폭포 소리를 이기기 위해 피를 토해가며 노력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만으로도 판소리를 배우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현대 사회에서 백일 공부에 들어가는 소리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아무런 수입 없이 백일간 공부에만 매달리기가 힘든 까닭이다. 그래서 요즘 소리꾼은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 산에 들어가서 소리 공부를 한다. 옛날 명창들처럼 피를 토할 때까지 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산 공부도 만만치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나는 지난 겨울, 처음으로 소리 몸살이란 단어를 알게 됐다. 나 역시 판소리를 배우고 있는 터라, 연습을 많이 하면서부터 갑자기 온몸이 아팠다. 처음에 소리 연습을 많이 하면 목이 아프기 시작한다. 그러면 계속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배에 힘을 주게 된다. 배에 힘을 주게 되면 배 근육도 아프기 시작하고 배 대신 등에 힘을 주고 결국 등까지 온 몸이 아프기 때문에 소리 몸살을 앓게 된다.산 공부를 하면서 응당 겪게 되는 것이 목이 쉬는 일이다. 목은 소리꾼에게는 생명이다. 그래서 감기에 걸려 목이 쉬면 절대로 목을 사용하면 안 된다. 하지만 공부 때문에 목이 쉰다면 계속 해야 한다. 쉬었던 목을 극복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야 그 다음에 더 좋은 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운동할 때도 근육이 아플 때가 있다. 그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근육이 풀릴 때까지 계속 운동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더 강한 근육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쉰 목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훈련해야 이후 다섯 시간의 완창 공연을 할 수 있다.산에 들어가 물 옆에서 연습하는 이유도 따로 있다. 보통 실내 연습을 하면 목이 빨리 마르기 때문에 하루 종일 연습을 하려면 물을 많이 마셔야한다. 강변이나 폭포 근처에서 연습을 하면 습도가 높아 물을 많이 마시지 않아도 목이 상하지 않고 오래 연습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소리꾼들이 매년 적어도 한 번씩 산 공부에 들어간다.산 공부 이야기만 들어도 판소리를 배우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느낄 수 있다. 소리에만 집중하고 몇 십년간 공부한 사람을 진짜 소리꾼이라고 부를 수 있기에 판소리란 예술이 더욱 귀하다. 이런 생활을 선택한 소리꾼들이 정말 존경스럽다.그리고 나처럼 그저 판소리가 좋아서 산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다녔던 산 공부에는 초등학생부터 예순을 넘은 사람까지 다양한 나이대를 만날 수 있었다. 힘든 과정을 직업이 아닌 그저 판소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판소리가 매우 대단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일반인이 판소리를 배우고 즐길 수 있다면, 판소리의 미래가 더욱더 밝다고 믿는다.※이 칼럼은 오는 10월7일~11일 열리는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의 영국 소녀 안나의 Open your Sori!(오픈 유어 소리)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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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21 23:02

[① 농악, 그것이 알고 싶다] 농사 음악보다는 종합예술…시대 변화따라 기교 발전

오는 10월 열리는 전주세계소리축제(이하 소리축제)는 비교음악제를 지향하며 판소리를 중심으로 치러진다. 더불어 세계 각국의 전통소리로부터 이어져 온 월드뮤직과의 비교를 통해 전통의 가치를 높이고 공유한다. 본보는 소리축제를 앞두고 소리축제 조직위와 함께 전통음악과 월드뮤직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연재를 마련했다. 조세훈 전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 영국 월드뮤직 전문지 <송라인즈(Songlines)>의 사이먼 브로튼 편집장, 저스트 뮤직의 김선국 대표, 영국 런던대 소아스(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University of London)에서 한국음악을 연구하는 대학원생 안나 예이츠 씨가 오는 10월23일까지 차례로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독자에게 음악적 상식과 지평을 넓히는 글을 선보인다.지난 7월4일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다시 한 번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러한 경사는 지난해 12월에도 있었다. 농악이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것이다. 유형의 유산은 눈에 보이는 실체가 있기에 보존의 대상과 방법이 좀 더 명확할 수 있다. 하지만 무형의 유산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이어지는 기예나 지식, 생활방식인 만큼 전승의 대상과 방법이 유형유산보다 추상적이고 복합적이다. 유형유산이 보존의 대상이라면 무형유산은 전승의 대상이다.특히 농악은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백견(百見)이 불여일타(不如一打)다. 백번 듣는 것 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고, 백번 보는 것보다 한 번 직접 쳐 보는 것이 낫다. 역설적으로 일견(一見)과 일타(一打)도 백문(百聞)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으니 농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이야기들을 나눠보고자 한다.△농악? 풍물?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쓰인다. 각자 맞다고 할 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공식 용어로는 농악이 더 많이 쓰였다. 무형문화재로 등재할 때도 무슨무슨 농악이라 하고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될 때도 농악이라 했다.1970~1980년대 농악이란 용어가 일제에 의해 선택되고 활용된 것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농악, 풍물, 풍장, 매구, 매귀, 굿, 걸궁, 걸립, 두레, 군물, 군고 등 다양한 말이 있었지만 일본 전통 가면극 능악(能樂)과 비슷해 일제 강점기 때 농악으로 표준화했다는 것이다.그 대안으로 제언된 말이 풍물이다. 최근, 풍물은 악기를 이르고 농악은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이미 널리 쓰여 이 말도 하등의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19세기 문헌인 황현의 <매천야록>, 최덕기의 <갑오기사> 등에 농악이란 말이 사용된 사실이 근거로 제시됐다.농악이나 풍물이라는 용어에는 각각의 시각과 해석이 담겨있다. 이 견해들은 서로간 논쟁을 통해서 정교해지고 있다. 발전적인 모습이다. 논쟁이 풍성해질수록 대상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아끼는 마음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농악은 농사 음악인가먼저 음악인가?에 대해 말하자면 농악의 악은 음악만을 말하기보다 노래, 음악, 춤 등을 총체적으로 일컫는다. 농악에는 가락 연주뿐 아니라 노래, 춤, 제의, 연극, 놀이 등이 함께 한다. 그래서 농악의 장르는 농악이다고 한다. 즉 종합예술이다.다음으로 농사 음악인가에 대해서는 꼭 그렇지는 않다. 농악의 형태는 다양하다. 농사일을 하며 하던 두레농악, 공동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하던 걸립농악, 전문적인 공연을 목적으로 하던 연예농악 등이 있다. 두레농악에서는 풍농을 노래했고, 걸립농악에서는 공동의 번영을 추구했으며, 연예농악에서는 예술적 만족을 지향했다.△농악은 변하지 않는가농악도 1920년대와 오늘날은 다르다. 우선 악기나 복색이 변한다. 과거에는 짚신이나 고무신을 신었다면 오늘날에는 가죽으로 만든 미투리나 운동화를 신는다. 의상도 색깔이나 양식은 지켜지겠으나 재질 등은 다르다. 악기도 마찬가지다. 얼기설기 만들어서 크기도 제각각이고 소리도 차이가 많았다면 요즘에는 제작 기술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크기의 규격화가 이뤄지고 원하는 성음으로 주문 생산도 가능하다. 음악적 기교도 세련되고 정교해졌다.어느 명인이 설장고 놀이에 대해 말했다. 요새 애들이 더 잘 쳐. 기교도 많고 모냥새도 이쁘고라고.전통도 시대와 함께 변화고 전통예술은 그러한 시대상을 반영해 왔다. 농악도 집단 연희로 판굿이 형성되고 그 안에 꽹과리, 장고, 북, 소고 등의 개인놀이가 생겨났으며, 각각의 개인놀이는 오늘날 독자적인 연희물 변모해 가고 있다.이제는 농악을 우리의 고정관점에서 풀어주자. 역동적인 변화, 그 넓은 바다에서 마음껏 놀게 하자.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우리 가까이에서 사랑받는 예술이 되게 하자.※이 칼럼은 오는 10월7일~11일 열리는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공동 연재하고 있으며 소리축제 공식블로그 소리타래(http://blog.sorifestival.com)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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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1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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