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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시간, 성장 동력을 만들다 ⑮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의 과제

단순한 '재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재생'의 길 찾아야 도시는 성장과 쇠퇴를 반복한다. 성장과 쇠퇴의 경험은 시간으로 축적되지만, 성장을 멈추는 순간 찾아오는 쇠퇴의 과정을 극복하지 못하면 도시는 소멸 위기에 놓이게 된다. 오래된 도시들이 안고 있는 과제가 바로 여기 있다. 그렇다면 쇠퇴하는 도시를 다시 살릴 수 있을까. 도시재생은 이에 대한 답이었다. 우리나라에 도시재생이 부상한 것은 2000년대 중반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도시재생 해법으로 내놓은 것은 ‘재개발’, 일명 ‘뉴타운 사업’이었다. 그러나 사업이 부진해지자 2011년에는 살짝 이름만 바꾼 ‘커뮤니티 뉴딜’ 사업이 만들어졌다. 특별회계를 만들어 쓰기 위해 이 사업을 지원하는 특별법 제정까지 추진했으나 법 제정은 무산됐다. 도시재생법이 제정된 것은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이다. 이듬해 국토부가 지방 도시 쇠퇴를 지역이 주도해 해결할 수 있게 하는 기존 도시 재정비 정책을 만들었다. 정부가 주도하는 도시재생 사업의 시작이었다. 도시재생 사업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됐다. ‘도시재생 뉴딜정책’이다. 2018년부터 시행된 이 정책은 5년 동안 해마다 10조씩, 50조 원을 투자해 전국 500개 지역을 재생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도시재생 10년, 그러나 소멸위기에 놓인 시군 도시재생법이 제정된 지 10년. 도시재생 사업은 지역의 오래된 과제를 해결하는 통로가 되었다. 대부분 도시가 도시재생 사업에 뛰어들었다. 전라북도의 도시들도 이 대열에 섰다. 국토부의 도시재생 사업이 시작된 이후 전북에서는 2014년, 도시재생 선도지역 공모사업에 선정된 군산시의 <내항지구와 연계한 근대역사문화지구 활성화 사업>을 시작으로 50개의 사업이 추진됐다. 그 현장은 도시의 쇠퇴를 극복하는 창구가 되었을까. 아쉽게도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된 여건에서도 도시 쇠퇴에 직면한 지역은 적지 않다. 도시재생 종합정보체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북 도시 쇠퇴가 진행 중인 시·군은 12곳이다. 나머지 전주시와 고창군도 도시 쇠퇴 징후가 시작되었다는 진단이다. 도내 곳곳에서 도시재생 사업이 추진됐지만, 도내 14개 시·군 모두 도시 쇠퇴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게다가 현재 진행 중인 도시재생 사업 중 대부분이 내년 초에 완료되는 현장에서는 고민이 많다. 도시재생을 통해 활력을 찾는다고 해도 그 활력을 지속해서 유지해나갈 방안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도시재생 사업으로 공간은 재편되었으나 지속 가능한 동력을 찾지 못해 다시 방치된 예도 적지 않다. 다시 쇠퇴의 길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단순한 '재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재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공간'이 아니라 '사람'을 주목해야 지난 21일 전라북도도시지원센터가 주최한 <도시재생 콘퍼런스>에서는 도시재생 10년 여정을 동행해온 전문가들이 성과와 과제를 이야기했다. 이날 '지방시대,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을 위한 조건'을 주제로 기조 발제한 경성대 강동진 교수는 재생 목표와 대상이 모호하고, 재생 성과에 대한 올바른 정의와 기준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사업이 추진되어 온 것을 주목했다. 재생을 주도하고 지원하는 주체의 역할이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환경 또한 도시재생이 지속성을 갖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진정성을 가진 주체와 핵심 콘텐츠, 공평한 나눔과 공유, 포괄적 정책 추진을 지속성의 과제로 꼽은 그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에 집중할 것을 제안했다. 느리더라도 점진적, 지역에 밀착한 재생사업 느리더라도 점진적이고 지역에 밀착한 형태로 진행되어야 도시재생이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한 강 교수는 재생을 사업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재생 운동으로 전환해 지역이 스스로 자립하고 변화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밝혔다. 도시재생 사업이 지역마다 경쟁 구도를 만들면서 차별성과 정체성을 잃고 과장된 계획을 남발해 그저 그런 성과만 가져오게 됐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충남형 도시재생 사업 추진 구상’에 대해 소개한 조봉운 충남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지역주도형 도시재생 사업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정부의 공공 역할이 특정 사업이 아닌 도시재생이라는 정책 틀에서 재정립돼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정부가 지자체와 지역사회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자산을 활용한 민간협력형 도시재생 방향과 사례’를 발표한 홍경구 단국대학교 교수는 도시의 변화 과정과 현세대의 트랜드를 먼저 이해해야 효과적인 재생이 가능하다고 제시했다. 특히 주민들이 도시를 위해 더 많은 고민을 기울여야 한다며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올해로 10년을 맞은 도시재생 사업의 성과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재생 과정에서 축적된 실패와 성공의 요인을 분석해보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분명해졌다고 말한다. 과제는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이다. 전문가들은 조금 느리더라도 시간과 예산에 쫓기지 않고 성과를 목적으로 하는 도시재생 사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돌아보면 도시재생 사업으로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 준 사례도 적지 않다. 기반·거점시설이 조성되면서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주민들의 소득이 높아진 현장들이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을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전문 인력과 그들이 지속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큰 과제다. 행정의 역할도 제기된다. 도시재생 사업이 끝나면 행정의 역할도 끝나는 현재의 여건에서는 지속적인 동력을 만들어내는 데 어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전문 인력과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고 행정이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도시재생 10년이 우리 앞에 내놓은 과제다. (끝)/김은정 선임기자, 박현우 기자

  • 기획
  • 김은정
  • 2023.11.30 14:28

도시의 시간, 성장 동력을 만들다 ⑮도시재생콘퍼런스 토론내용

청년과 주민이 주도하는 도시재생 지난 11월 21일 전라북도도시지원센터가 주최한 <도시재생 콘퍼런스>가 전북테크비즈센터에서 열렸다. 기조 발제와 발제에 이어진 토론에서는 다섯 명 전문가가 전라북도 도시재생의 지속가능한 방안을 제시했다. △강동희 /군산대학교 교수='도시재생은 사회적 경제를 담는 그릇이다'는 말이 있다. 도시재생에서 사회적 경제 활성화는 중요한 부분이다. 농산물 판매·지역 공공주차장 관리·저수지 용수 비용 절감 등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고, 그 일부를 사회적경제 기업의 수입으로 삼아 모두가 상생하는 도시재생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김진성/ 전주대학교 교수=도시재생 사업은 융합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민관산학이 모두 협력해야 지속 가능해진다. 그러나 대부분 관 주도형으로 사업이 선정되어 한계가 있다. 프로젝트에 따라 전담팀을 유동적으로 운영하고, 각 과나 부에서는 협력하는 형태로 가야 방향성을 잃지 않고 사업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 △유희종 /호원대학교 교수=도시재생 사업이 완료된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가 큰 문제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차원에서 법 조항 개정이나 정책 발굴 등의 행정조치가 우선되어야 한다. 안정적인 시스템이 구축되었을 때, 지속해서 관리해나갈 현실적 대안을 고민할 수 있다. △이상준 /한국토지주택공사 수석연구원=정부를 비롯한 공공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정 사업이 아닌 도시 ‘관리’의 개념으로 접근해 지자체가 스스로 해결 어려운 것을 지원하는 형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자체 또한 정책 조건을 충족하면서 자체적으로 새로운 정책을 발굴해나가는 역량을 마련해나가야 한다. △황지욱/ 전북대학교 교수=지역에서 젊은 세대가 사라진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왜 지방에 젊은이들이 사라지고 있을까’하는 근본적인 고민에서 출발한 도시재생이 필요하다. 결국 대상은' 사람'이다. 성과만을 목표로 하면 어느 시기가 지나고 그냥 제자리에 머물게 된다. 지역 청년들이 참여하고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기획
  • 김은정
  • 2023.11.30 14:27

도시의 시간, 성장 동력을 만들다⑭ 빈집의 변신

방치된 빈집에서 마을과 원도심 살리는 새로운 공간으로 한때 공동화되어가는 농어촌 마을을 살리기 위해 빈집을 활용한 프로젝트가 유행처럼 번졌던 적이 있다. 덕분에 더러는 마을 거점으로, 더러는 체험을 위한 공간으로 태어나 새로운 역할을 얻기도 하고 예술인들의 작업이 더해지면서 마을을 알리는 통로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빈집은 갈수록 늘고 있고, 저출산 고령화와 함께 늘어나는 빈집은 이제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부상했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빈집은 151만 1,300여 채, 전체 주택 1,852만 채의 8.2%다. 2015년 조사 결과 106만 9,000채였던 것에 비하면 40% 넘게 늘었다. 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이 중 25.6%인 38만 7천여 채가 1년 넘게 방치된 빈집이다. 전국에서 가장 빈집이 많은 곳은 전남이지만 전북도 12.9%로 제주와 강원에 이어 4위다. 빈집은 도시의 지속가능성, 도시의 쇠락과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빈집 관리’에 고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시재생 역시 '빈집'에 주목한다. 그 결과 오랫동안 방치됐던 빈집이 경로당이나 마을회관 같은 주민 공동시설로 변신하고 도서관 등 다양한 공공시설이 확대되고 있다. 쇠락한 중소도시의 원도심 재생사업은 대부분이 빈집을 활용해 거점을 만들고 침체된 상권을 살리는 것이 목표다. 전북에서도 마무리되었거나 진행 중인 빈집 활용 재생사업이 많다. 그중에서도 재생사업의 지속성을 주목하게 하는 곳이 있다. 상권 이동에 따라 침체된 원도심을 살려낸 부안의 ‘매화풍류마을'과 빈집을 사들여 책방과 공방, 식당과 카페 등 독특한 문화거리로 조성한 순창의 ’창림문화누리마을'이다. △쇠락하던 원도심의 변신, 부안 매화풍류마을 작고 값이 싸 서민들이 숙소로 애용했던 '여인숙'. 여관과 모텔 등 현대식 시설을 갖춘 숙박업소가 등장하면서 대부분 사라졌지만, 아직 명맥을 잇고 있는 곳이 있다. 부안상설시장 인근에 있는 골목이다. 지금은 두세 개 남았지만, 예전에는 시장에 물건을 팔러온 상인들과 손님들이 오가며 찾던 여인숙이 몰려 있었던 곳이다. 이 골목이 자리한 부안읍 동중리 일대는 한 시절 가장 번성했던 부안의 중심가였다. 그러나 생활 환경이 변하고 시외버스 정류소가 이전하자 전통시장을 제외한 인근 상권이 붕괴하면서 쇠락의 길에 들어섰다. 부안군은 군청과 부안상설시장을 잇는 원도심 일대를 살려내기 위해 정비사업을 시작했다. 차 한 대 겨우 지나다니던 4m 거리가 넓어지고 보행환경이 개선됐다. 눈에 띄게 달라진 원도심 기반 시설에 다시 도시재생 사업을 얹혔다. 2018년 말 9월, ‘매화풍류마을’이 국토부 공모사업에 일반근린형 뉴딜사업으로 선정되면서다. 이 사업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초 4년 동안 추진되는 사업이었지만 1년 연장되어 거점시설 중 하나인 어울림센터가 완공되면 2023년 말 마무리 된다. 매화풍류마을에는 4곳의 거점시설이 만들어졌다. 청년창업플랫폼 1·2동과 실버커뮤니티센터, 어울림센터와 매화풍류 예술공방이다. 청년창업플랫폼에는 동네 사랑방 '동네카페'가 있다. 도시재생 시작 전부터 마을 사업을 주도했던 매화풍류마을협동조합이 운영하고 있다. 카페에 있는 모든 시설과 장비는 조합원들이 직접 제작했다. 주민공모사업으로 바리스타 교육과 목공 강습을 받은 주민들의 솜씨다. ‘동네카페’ 주변에는 실버커뮤니티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며 소금공장이 있던 건물을 새롭게 조성한 매화풍류 예술공방은 개원을 준비하고 있고,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상인·청소년, 방문·관광객이 함께 이용하는 소통 공간으로 운영될 어울림센터 역시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예술공방은 부안 예술인들로 구성된 ‘예술인사회적협동조합’이 위탁을 받아 운영할 계획이다. 이 공방을 이끄는 심성희 이사는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이면서도 부안군의 정체성을 담은 문화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협업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거점시설 4곳을 중심으로 부안에서 창업을 희망하는 만 39세 이하 청년 창업가들을 위해 문을 연 '챌린지숍'도 인기다. 부안도시재생지원센터는 하드웨어적인 공간 조성에만 주목하지 않고 공간이 자생할 수 있는 운영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민역량강화를 위한 프로그램과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그 일환이다. 김종원 부안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은 "거주자 중심으로만 거점시설을 운영하고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부안 전 지역의 어린이부터 청소년, 중장년, 노년들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시설로 운영된다면 동력도 얻고 자생 역량도 커질 수 있을 것”이라며 "공간 조성에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연계사업을 발굴하고 사업화를 함께 고민하면서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빈집이 모여 또 다른 마을을 만든 순창 창림문화누리마을 순창군에는 특별한 마을이 있다. '창조적 마을'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창림문화누리마을이다. 순창군은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의 '창조적 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마을의 역사·문화를 담은 새로운 마을을 조성했다. 2021년에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선정되면서 ‘창림문화누리마을’부터 그 일대를 새롭게 갖추는 사업을 더해 관광명소 추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순창읍에 있는 ‘창림문화누리마을’은 내년까지 진행되는 사업이다. 중앙로를 정비하고 창림문화누리마을 조성을 끝내고 내년에는 이 일대의 활성화 방안 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다. 창림문화누리마을이 도시재생 사업으로 정비되면서 이 일대의 환경은 크게 변했다. 저녁만 되면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 어둠도 일찍 찾아왔지만, 지금은 기반 시설은 물론 조명까지 갖춰져 밤에도 환하고 아름다운 마을이 됐다. 새로운 모습으로 정비된 창림문화누리마을에는 6개 공간이 들어섰다. 방앗간, 상점, 주택 등 빈집으로 방치되어 있거나 이주를 희망하던 가구를 사들여 보수한 공간들이다. 이 공간에는 창림국수, 창림카페, 길거리책방, 크레파스, 토닥토닥 발효공방, 은희공방 자수 등이 입주해있다. 창림문화누리마을은 건물과 땅을 순창군에서 매입해 공간을 조성하고 입주자를 모집해 운영하고 있다. 임대료가 저렴해 부담이 없지만, 본격적으로 공간이 운영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을 단위의 운영 시스템은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기관과의 연계 프로그램도 아직은 미흡해 마을의 홍보나 마케팅은 입주자들 스스로가 해내야 하는 여건이다. 순창도시재생지원센터는 현재 공간 조성에 집중하고 있지만, 공간이 마무리되면 주민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해 운영하면서 주민들이 주도하는 공간으로 이끌 계획이다. 이곳에 입주해있는 공간 중 가장 오래된 곳은 창림국수(대표 권주철)다. 방앗간이 있던 가게를 보수해 식당으로 개조한 창림국수는 오래된 가게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낸 외관과 벽화가 눈에 띄는 식당이다. 권대표는 순창 출신으로 외지에서 활동하다 귀향해 농사를 지었으나 전업해(?) 2년 전 식당을 열었다. 6개 공간의 교류와 소통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그는 문화누리마을을 순창의 관광지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침체 됐던 상권을 되살리고, 외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은 물론 주민들이 함께하는 문화마을을 만드는 작업이다. 얼마 전에는 6개 공간이 함께 활용하는 할인권을 만들었다. 6개 공간의 대표가 홍보 마케팅을 위해 마음을 모아 시작한 첫 작업이다. 순창군청 도시재생 뉴딜사업 담당자는 "창림문화누리마을은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과 더불어 그 일대가 도시재생 사업에 포함돼 있다. 진행하고 있는 어울림센터로 사업은 완료된다. 아직 사업이 진행 중이다 보니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하드웨어가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도시재생 대학 강좌를 진행하는 등 소프트웨어 쪽에 주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김은정 선임기자, 박현우 기자

  • 기획
  • 김은정
  • 2023.11.19 17:44

도시의 시간 성장동력을 만들다 ⑬ 공동체의 힘

도시재생으로 얻은 결실, 주민들이 이끄는 공동체 문화 우리나라의 도시 재생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10년대 중반부터다. 정부가 주도하는 도시재생사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업의 이름과 규모가 달라졌지만, 시간은 10년 가까운 여정이다. 덕분에 광역과 기초단체를 막론하고 국가가 주도해온 도시재생사업은 공간과 환경을 크게 변화시켰다. 마무리됐거나 진행 중인 재생 사업의 성과를 가늠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도시재생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각 도시가 공통적으로 안게 된 결실이 있다. 주민 공동체의 등장(?)이다. 특히 재생 사업을 계기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주민 공동체는 사업이 끝나고도 살아남아 재생 공간의 운영 주체가 되거나 새로운 공동체 문화 환경을 열어가고 있다. 도시재생은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한 밑거름이다. 전국 도시들이 재생 사업에 '주민 공동체 활성화'나 '주민 역량 강화'를 앞세우는 이유다. 전북에서도 주민공동체의 역량을 돋보이는 도시재생 현장이 많다. 그중에서도 지난해 문을 연 전주시 용머리여의주마을 주민공동이용시설과 2019년 문을 연 중앙동 커뮤니티플랫폼 둥근숲은 전국적으로 주목을 모으고 있는 공간이다.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해 공동체의 자생력을 키우고 있는 전주의 오래된 마을과 공간을 찾았다. △완산동 용머리 여의주마을 주민공동이용시설 전주의 남쪽에 자리한 완산동에는 야트막한 두 개의 산이 있다. 완산과 다가산이다. 그 사이에 남북을 가로지르는 ‘용머리 고개’가 있다. 김제 쪽에서 전주 구도심으로 들어오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 고개를 안고 있는 오래된 마을이 여의주 마을이다.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채 옛 모습을 오랫동안 유지해온 용머리 여의주마을의 환경이 바뀌게 된 것은 지난 2018년 국토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선정되면서다. 마을 중심의 도시재생 사업은 대부분 기반시설 개선이나 확충이 중심이지만 이 마을의 도시재생 사업은 달랐다. 마을 입구부터 좁은 도로와 가파른 오르막길, 비좁은 골목 골목이 이어지는 주거 중심의 지형적 특성으로 기반시설 개선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동네살리기>를 내세운 재생사업의 목표는 자연스럽게 주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정주 여건 개선이 되었다. 용머리 여의주마을은 도시재생 사업은 국토부의 뉴딜사업에 선정돼 2018년부터 2022년까지 4년 동안 진행됐다. 도로와 골목길을 정비하고 텃밭을 만드는 기반시설 개선사업과 함께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주민공동이용시설 건립이 중심 사업이었다. 주민공동이용시설은 2020년 6월 공사를 시작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주택을 중심으로 20여 채를 매입해 허문 자리에 2층짜리 아담한 건물과 정원을 조성하는 사업이었다. 공사 기간만 2년. 지난해 12월 용머리여의주마을 주민공동이용시설은 문을 열었다. 건물 1층에는 카페 <유기공장>과 협동조합 사무실, 장애인 표준사업장이, 사무실 공간으로 조성한 2층에는 임대 공간인 사진 스튜디오, 상담센터, 미술관, 방짜유기 전시관 등 개인 작업실과 교육장 등이 들어섰다. 건물 뒤쪽에는 원예치료 등 식물을 활용한 치유 공간과 함께 공동텃밭·치유 정원도 조성됐다. 시설의 운영과 관리는 용머리여의주마을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최동완)이 위탁을 받았다.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은 도시재생 사업의 시작부터 함께해온 주민협의체가 지난 2021년 9월 설립 인가를 받고 출범한 단체다. 협동조합 조합원들의 연령대는 50대부터 70대까지. 마을 주민들의 연령대가 높은 만큼 조합원들의 평균 연령도 높다. 조합원은 21명. 모두 출자한 주체지만 공간 운영과 관리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참여한다. 아직 시작 단계여서 숫자가 많지 않지만, 점차 조합원을 늘려갈 계획이다. 공간을 운영하는 재정은 2층 사무실 임대료와 공간 사용료, 그리고 1층 카페에서 얻는 수입으로 충당한다. 그래봤자 100만 원 남짓한 수입이지만 공간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인력이 필요한 일은 조합원들의 봉사로 해결하고 있는 덕분이다. 조합의 실질적인 운영을 도맡아 거의 매일 출근하는 송호숙 사무국장과 이은자 조직국장도 임금 없이 일하는 봉사자다. 웬만한 일손은 봉사로 해결하는 덕분에 작은 소득으로도 마을 주민들을 초청해 식사를 하거나 함께 즐기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올해는 원예 전문가인 마을 주민이 강사가 되어 원예치료와 공예 교육, 스마트폰 활용 교육 등을 진행했다. 내년에는 주민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늘리고 마을 축제도 만들어볼 계획이다. 송 사무국장은 협동조합의 자생력을 위해서는 조합원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더 큰 과제가 있다고 말한다.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지금은 주민들이 생산하는 마을 상품 개발하고 카페 운영을 통해 수익을 높이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여의주마을에는 주민공동이용시설말고도 특별한 공간이 또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으로 불리는 <옛이야기 도서관>이다. 건축가 유현준 교수가 설계한 이 공간은 마을의 지형적 한계를 오히려 장점으로 활용한 작고 아름다운 도서관이다. 이곳 또한 마을 주민들이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지만, 여의주 마을은 도시재생이 어떻게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을지 관심을 끈다. 오래된 마을의 변화를 주목하는 이유다. △중앙동 고물자골목의 <둥근숲> 전주의 남부시장에 자리 잡은 고물자골목은 6.25 전쟁 직후 미군 부대의 구호물자와 보급품이 거래됐던 공간이다. 그러나 상권이 이동하면서 이 공간도 쇠퇴했다. 도시재생이 시작된 것은 2016년부터다. 이곳 역시 주민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과 함께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어졌다. 주민들의 가장 큰 관심은 방치된 공간 활용방안을 찾는 것이었다. 2019년 11월 문을 연 청년 공유공간 <둥근숲>은 그 결실이었다. 고물자골목의 재생 사업에는 다른 마을과 달리 청년들의 참여가 활발했다. 남부시장 인근에서 서점이나 식당을 운영하는 청년대표부터 청년 예술가들까지 둥근숲을 거점으로 다양한 활동을 주도했다. 고물자골목은 전주시에서 첫 번째로 도시재생 사업에 선정된 곳이다. 2016년 '전주, 전통문화 중심지의 도시재생' 사업으로 선정되자 2017년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가 문을 열면서 본격적인 재생 사업을 시작했다. 기존 사업 기간은 2020년까지였으나 1년 연장해 2021년에 마무리됐다. 문을 연 지 4년째인 둥근숲 역시 주민협의체가 중심이 되어 창립한 협동조합이 운영을 위탁받았다. 지난 2월 총회를 통해 둥근숲사회적협동조합을 맡게 된 류영관 이사장은 원도심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의 코디네이터로 고물자골목의 재생사업을 이끌었던 활동가다. 사업이 끝나고도 이 공간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류 이사장의 열정 덕분에 둥근숲은 어려운 재정 여건에서도 청년 공유공간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 둥근숲은 공간을 활용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가 대부분 '청년'에 맞추어져 있다. 올해는 전북형 청년마을사업에 선정돼 공간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 1층은 전시, 강연, 상영회, 모임 등이 가능한 실내 라운지 공간과 공유 주방이, 2층은 코워킹 스페이스, 3층은 입주사무실이 들어섰고, 옥상정원과 마당도 새롭게 꾸몄다. 둥근숲의 전신은 여관과 요양병원이다. 여관에서 요양병원으로 바뀌면서 들여놓은 엘리베이터가 지금도 남아 있다. 둥근숲은 그동안 청년 예술가들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전시와 정기적으로 청년들이 참여하는 마켓을 열어왔다. 마켓은 청년들이 기획하고 이끄는 일종의 동네 축제다. 내년에는 새롭게 들여놓은 시설을 활용해 레지던시와 서점 등 청년들이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둥근숲도 재정을 해결하는 일이 우선 과제다. 임금 없이 공간의 활성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류 이사장은 재정도 해결하고 공간의 목표인 청년 커뮤니티플랫폼으로 자리잡기 위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조합원을 늘리는 것도 새로운 목표다. 쉽지 않지만 둥근숲을 찾아오는 청년들이 점차 늘고 있으니 조합의 규모를 키우는 것도 공간 활용을 확장하는 것도 가능하리란 확신이 있다. 둥근숲이 주민들의 활동공간으로, 청년들이 소통하고 교류하는 플랫폼으로, 청년 예술가들의 창작 산실로 누구나가 참여하고 쉴 수 있는 숲과 같은 공간으로 자리잡는 것. 이 공간을 주목하고 있는 청년들의 바람이다. / 김은정 선임기자, 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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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09 17:00

[도시의 시간, 성장동력을 만들다] ⑫ 청년이 주도하는 도시재생

도시재생, 청년을 모으고 청년의 힘을 일으키다 익산청년시청과 군산의 ‘술익는 마을’ 프로젝트 20만 명. 20여 년간 전북을 떠난 청년 인구수다. 올해 8월 기준, 전라북도 인구는 176만 명. 전체 인구의 11%, 꼭 정읍과 완주를 합한 인구수다. 청년 유출은 전북의 문제만이 아니라 대부분 중소도시가 안고 있는 현실이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 상황을 고려한다 해도 대도시에 미치지 못하는 교육·산업 환경 때문에 지역을 떠나는 청년인구가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은 안타깝다. 전국의 도시들을 긴장시키고 있는 지역소멸 위기도 결국은 청년들의 유출이 가장 큰 원인이다. 전북뿐만 아니라 전국의 작은(?) 도시들이 지역소멸을 막기 위한 해법으로 청년들이 떠나는 것을 막고 외지의 청년들을 끌어들이는 정책에 부심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시재생이 청년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 있다. 정부의 다양한 공모사업의 중심에는 청년이 있다. 덕분에 전국 각 지역에서 청년을 내세운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도시재생 사업에서도 관심을 끄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 대부분은 아직 시작 단계이거나 실험 단계에 놓여 있지만,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오래된 도시를 살려내는 현장은 희망을 준다. 전북에도 이런 현장이 여럿 있다. 지역의 오래된 공간과 자산을 주목해 건물을 거쳐 다시 만들고 지역만의 특별한 콘텐츠를 활용해 도시의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의지가 담긴 현장이다. 그중에서도 주목을 모으는 사례가 있다. 익산시가 구도심에 있는 오래된 호텔을 고쳐 청년의 취·창업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탄생시킨 <익산청년시청>과 지역 콘텐츠를 개발해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동네 청년들과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군산 청년기업 지방의 <영화타운과 술익는마을> 프로젝트다. △방치된 호텔의 변신, 대한민국 1호 익산 청년시청 대부분 도시들이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 부심하고 있는 것은 청년 정책이다. 전라북도의 도시들도 예외가 아니다. 익산시는 그중에서도 청년인구 잡기에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자치단체다.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익산시는 시정의 우선순위에 청년을 앞세웠다. 지방소멸대응기금 까지도 다른 시군과는 달리 청년을 위해 투자할 정도다. 지난해 12월, 익산에 새로운 공간이 문을 열었다. 익산청년시청이다. 전국에서 처음 시도한 덕분에 ‘대한민국 1호’란 별칭을 얻었다. 청년시청이 있는 중앙로는 익산의 구도심 중심이다. 이 일대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익산의 상권을 대표하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외곽에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주민들이 떠나고, 자연스럽게 상권은 위축되면서 활기를 잃었다. 빈 곳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하고 더러는 흉물로 방치됐다. 한때 성업했던 ‘하노바 호텔’도 그중 하나였다. 익산시는 구도심에 남아 있는 오래된 건물 하노바 호텔을 사들이기로 했다. 이 공간을 활용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거점으로 만드는 것, 그 영향으로 구도심이 활기를 찾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익산청년시청>이 탄생한 배경이다. 청년시청은 ‘청년들의 행복한 삶과 사회진입을 위해 조성된 공간’이다. 취업과 창업을 위한 정보를 나누고 교육이 진행되며 공간을 지원하고 놀이와 소통을 위한 다양한 공간과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문을 연 지 1년이 채 안 됐지만 익산청년시청은 전국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금까지 청년시청을 다녀간 청년은 1만 5,500여 명, 매월 1,700여 명이 이곳을 찾아 다양한 지원사업과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청년 취업 성과도 이어지고 있다. 청년시청이 주도하고 있는 청년도전 지원사업에 참여한 청년 10명이 취업을 하고 ‘다이로움 취업박람회’로 청년 100명이 일자리를 찾았다. 창업공간으로도 인기를 모으면서 여러 개의 회사가 독립의 기반을 이곳에서 닦고 있다. 청년들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네트워크를 이어내는 프로그램도 활발하다. 그중에서도 추진 중인 익산 ‘청년지도’ 사업은 청년들의 창업공간과 작업공간을 점으로 이어 공간과 콘텐츠 네트워크로 활용하기 위한 것. 익산이 젊은 도시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담아내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청년시청 운영은 시가 맡고 있다. 중간 조직 없이 자치단체가 직접 운영과 관리를 맡는 형식이다. 청년시청 운영을 위해 기업일자리과의 창업지원계가 아예 사무실을 옮겨왔다. 대부분 민간 위탁이나 전문가 채용으로 운영 기반을 마련하는 것과 달리 자치단체의 직영 방식은 특별한 예다. 그래서인지 사업의 추진과 운영이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거점공간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전문화된 조직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익산의 청년 사업을 주도해온 ‘청숲’의 활동가가 임기제 공무원으로 합류해 있지만, 전문성과 지속성을 위한 조직과 운영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다. 오정선 익산시 창업지원계장(청년시청 대표 운영자)도 "청년 단체나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특별한 어려움은 없다“며 ”그러나 청년시청의 지속적이고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는 조직과 인력의 전문화가 과제”라고 말했다. △청년이 다시 살리는 군산의 양조산업 군산은 일제강점기 쌀 수탈 전진기지였다. 개항 초기, 군산에 이주해온 일본인 중에는 특히 농장을 운영하는 지주들이 많았다.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일제의 식민지 농업정책)으로 쌀 수탈량이 급증하면서 부를 축적하게 된 일본인 지주들이 그들이다. 쌀을 가공하는 산업도 번성했다. 정미소와 양조업이다. 특히 양조업은 어느 도시보다도 번성해 군산은 양조산업 본고장으로 부상했다. 명절이나 제사 등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면 빼놓을 수 없었던 '백화수복'이 군산의 양조산업체 백화양조의 대표상품이다. 1940년대 설립된 조선양조가 모태인 백화양조는 일찌감치 국내 청주 업계를 석권했으며 국산 양주 제조로도 높은 시장 점유율을 지켜온 업체다. 그러나 1990년대 말 경영권이 바뀌면서 지금은 롯데가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군산의 양조산업 역사를 지역 콘텐츠로 주목한 청년들이 있다. 구도심 재생에 다양한 프로젝트로 참여해온 지역관리회사 ㈜지방도 그중 하나다. 양조산업에 관심을 가졌던 지방의 조권능 대표는 농업회사법인 '흑화양조'를 만들었다. 조 대표는 일찌감치 군산을 청주의 도시로 되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2017년 영화시장을 살리기 위해 시작한 ‘영화타운 프로젝트’도 양조산업을 다시 일으켜보겠다는 생각이 바탕이었다. 영화타운에는 술집을 중심으로 빵집, 화장품 가게 등을 조성했다. 단순히 영화시장 살리기에만 주목하기보다는 영화시장을 활성화하면서 군산이 가진 콘텐츠를 엮어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대규모 단지는 아니지만, 테마파크 형식을 도입, 인근 상점과 협업하면서 마을을 군산의 색깔로 채워나가겠다는 목표였다. 도시재생으로 시작한 이 사업은 다시 새롭게 기획한 ‘술 익는 마을’ 프로젝트가 행정안전부의 청년 마을 만들기에 선정되면서 점점 몸집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 사업으로 조 대표는 영화시장에서 도보로 500여m 떨어진 곳에 '술익는마을'을 만들었다. 지금 이곳에는 양조장과 스파 공간이 조성돼 있다. 스파는 양조장에서 술 만든 후 나오는 술지게미로 입욕제 등을 만들고 직접 피로를 풀 수 있는 관광상품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아직 정식으로 문을 열진 않았지만, 영화시장과 이곳 일대에는 관광객들이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조 대표는 앞으로 군산의 대표 술을 만들 계획이다. 단순히 지역 술을 개발하는 것뿐 아니라 제대로 판매망을 갖출 수 있도록 마케팅 방법을 연구 중이다. 그가 기획한 프로젝트는 군산의 밤 문화(?)를 제대로 만들어보겠다는 목표와 닿아 있다. "지금 군산은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근 도시에 왔다가 잠시 들렀다 가는 도시, 한번 다녀가면 두 번은 오지 않는 도시로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원인이 건강한 밤 문화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타운이나 술익는 마을이 술을 주제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고민하는 이유지요.” ‘술익는 마을’은 내년 초, 기획한 술을 출시하고 연계된 공간의 운영을 시작할 계획이다. 청년들이 몰려 오는 도시, 다시 찾고 싶은 도시로 가는 길이 열리고 있다. / 김은정 선임기자, 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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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27 17:08

[도시의 시간, 성장동력을 만들다] ⑪ 전라북도 도시들의 도시재생

발전과 쇠퇴의 반복, 오래된 도시의 길찾기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1980년대 이후 생겨난 몇몇 신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 오래된 도시다. 전라북도 도시도 예외가 아니다. 도시연구가 강동진 교수가 규정하는 기능 차원의 오래된 도시는 ‘발전과 쇠퇴를 반복해온 특정한 지역산업을 보유한 도시, 그 도시만의 두드러진 향토색을 가진 도시’다. 오래된 도시는 긴 시간을 거쳐온 만큼 풍부한 역사와 스토리를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오랜 시간 때문에 쓰임새를 잃어버린 공간이 많다. 낡고 오래되어 불편하고, 그래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방치된 것들이 많은 도시. 인구 감소와 함께 지역 소멸의 위기에 놓인 우리나라의 오래된 도시가 안고 있는 현실이다. 도시재생은 바로 이러한 현실적 문제로부터 출발했다. 전북의 도시들은 일찍부터 도시재생을 주목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도시재생의 물꼬를 튼 것은 2014년부터 시작한 국토부의 도시재생사업이다. 정부 주도 도시재생사업은 지방 도시의 쇠퇴를 지역이 주도해 해결할 수 있게 제도화한 일종의 기존도시 재정비 정책이다. 정부는 쇠퇴한 도시주거환경을 개선하고 도시의 내발적인 발전 잠재력을 강화하기 위해 도시재생특별법을 제정해 제도화했다. 그 결과 도시재생사업은 전국적으로 확장됐다. 전라북도의 도시들도 2014년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전라북도도시재생지원센터에 따르면 지금까지 공모를 통해 선정된 사업은 모두 50개. 유형별로는 경제적 이익보다 주거지 개선에 우선순위를 둔 일반근린형이 14개로 가장 많고, 혁신지구 1개, 경제기반형 1개, 지역특화형 2개, 중심시가지형 10개, 주거지지원형 5개, 우리동네살리기 4개, 전북형 3개, 인정사업 10개다. 도시재생 예비사업도 2022년 말 기준, 45개가 선정되어 시・군별로 다양한 주민참여 공동체 활성화 사업이 추진되었거나, 진행 중이다. 도시재생사업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은 전주다. 2012년부터 시작한 동문문화예술 거리 조성사업이 그것이다. 그러나 정부 주도 도시재생사업으로는 2014년에 도시재생 선도지역 공모사업에 선정된 군산시의 중심시가지형이 시작이다. 이 사업은 사업비만 200억 원이 투자되는 5년 장기 프로젝트였다. 창조적 상생을 통한 근대역사문화 도시 구현이 목표. 원도심인 중앙·해신·월명동 일원을 중심으로 진행된 도시재생사업을 위해 군산시는 일제강점기 식민지의 아픈 역사를 가진 일본 건축물까지 근대문화자산으로 살리고 주민과 함께 특화 거리를 조성하는 등 군산이 갖고 있는 문화적 자산을 적극 활용했다. 당시 도시재생 선도지역 공모사업에 군산시를 비롯해 전국 13곳이 선정됐지만, 국토부는 그중에서도 기존 자산을 살린 군산시의 성과가 가장 두드러진다고 평가했다. 도시재생 첫 사업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눈에 띈 결실은 관광객 증가였다. 내항이 기능을 잃으면서 주변 인구의 74%가 감소해 쇠락했던 군산 원도심의 연간 관광객은 22만 명 수준. 그러나 도시재생사업 직후인 2015년에 85만 명, 2016년에 102만 명 등 해마다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비어 있던 집과 상가도 하나둘 주인을 찾기 시작했다. 군산 원도심의 도시재생사업 성과는 지역 주민·상인·전문가의 자발적인 참여와 자치단체,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일궈낸 결실이었다. 도시재생특별법 제정과 함께 지역마다 만들어진 기구가 있다. 재생 사업을 실질적으로 추진해가는 일종의 중간지원조직인 도시재생지원센터다. 전라북도의 14개 시군에는 모두 도시재생지원센터(기초센터)가 있다. 가장 먼저 문을 연 곳은 군산시(2015년 4월·행정직영)다. 이후 전주시(2015년 7월·민간위탁), 정읍시(2016년 5월·행정직영), 남원시(2016년 9월·행정직영), 익산시(2017년 6월·행정직영), 김제시(2018년 5월·행정직영), 완주군(2018년 6월·민간위탁), 장수군(2019년 1월·행정직영), 임실군(2019년 2월·민간위탁), 부안군(2019년 2월·행정직영), 고창군(2019년 4월·민간위탁), 순창군(2019년 6월·행정직영), 무주군(2020년 4월·민간위탁), 진안군(2021년 10월·민간위탁)이 뒤를 이어 문을 열었다. 2019년 7월에는 전라북도도시재생지원센터가 설치됐다. 광역 단위 지원센터는 국토교통부 도시재생사업을 비롯한 연관사업 선정을 돕는 전문가 컨설팅이나 사업추진 및 성과관리를 지원하고 전라북도와 각 시・군, 도시재생지원센터(기초),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의 협업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기구다. 지역 주민과 가장 가까이 있는 현장지원센터도 전주시, 군산시, 익산시, 정읍시, 남원시, 김제시, 완주군, 임실군, 고창군, 부안군 등에 모두 28곳이 설치돼 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정부의 도시재생사업에 선정되어 추진되었거나 추진되고 있는 전라북도 도시들의 사업은 많다. 이미 그 쓰임새를 찾아 성과를 내고 있는 사업도 있지만, 아직 진행 중이거나 실험 단계에 있는 사업이 여럿이다. 그중에서도 옛 수협창고를 수제맥주 특화사업장으로 재탄생시킨 군산의 <째보스토리 1899>, 구도심의 비어 있던 호텔을 리모델링 하여 청년들의 창업과 취업을 지원하는 허브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익산의 <청년시청>, 지역의 특성을 살려 매출 증진에 성공한 정읍의 <쌍화차거리>, 유흥시설 밀집 지역이었으나 역이 이전하면서 기능을 잃은 공간을 매입해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고 있는 남원 <사랑나눔어울림센터>, 노후주택 정비 사업으로 활력 되찾은 고창 <모양성마을>, 오래된 여인숙의 기능을 바꾸어 마을주민들의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는 부안 <창업플랫폼> 등은 재생 과정과 성과를 주목받고 있는 사업이다. 공유공간으로 만들어졌으나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해 자립과 지속가능성을 실험해가고 있는 전주의 <둥근숲>이나 공·폐가 밀집 지역 공간을 주민 공동이용시설로 바꾸어 활용하고 있는 <여의주마을>처럼 연구사례로 꼽히는 사업도 있다. 전라북도의 도시재생사업은 어디까지 왔을까. 그 현장을 찾아 성과와 과제를 진단해본다. /김은정 선임기자, 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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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10.13 00:48

[도시의 시간, 성장동력을 만들다] ⑩ ‘재생에서 창생으로’, 관광거점도시 꿈꾸는 섬 /남해

경남 남해군은 섬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바다와 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가진 곳이 유독 많다. 그래서인지 바다에 온전히 갇혀 있는 섬이지만 거주하는 인구가 많았다. 1960년대만 해도 인구는 13만 5천 명을 웃돌았다. 그러다 점점 줄기 시작해 1985년 9만 명 이하로 떨어진 이후 더 급속히 줄어 지금은 4만 1천 명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인근 대도시로 나가고 노인들만 남은 결과다. 그러나 남해는 다른 도시들과 사뭇 다르다. 남해는 외지인이 늘 들고 난다. 10여 년 전부터는 들어오는 외지인들이 더 많아지고 있는데, 특히 도시재생을 주목하는 젊은 세대의 유입이 눈에 띈다. 관광객은 늘어나는데 쇠락해가는 원도심 남해는 관광산업으로 이름을 알린 곳이다. 지금도 농업과 어업이 바탕에 있지만, 주산업은 관광이다. 남해군은 오래전부터 자연 유산에만 기대지 않고 관광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대표적인 것이 2001년 조성한 독일마을이다. 1960년대, 산업역군으로 독일에 파견됐던 독일 거주 교포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주거지를 제공하고 독일의 이국 문화를 경험하는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한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서 남해군은 외국마을 조성 사업을 지역 활성화의 큰 축으로 삼았다. 그러나 오래된 도시들이 그렇듯 남해군의 고민은 따로 있었다. 관광객은 증가하지만, 원도심은 쇠락하는 상황. 인구 감소도 그렇지만 남해군 전역에 관광 명소들이 흩어져 있다 보니 관광객들 읍 소재지 권역을 지나치는 것이 원인이었다. 남해군이 아예 도시재생 대상 지역을 읍소재지로 집중한 이유다. 주민 삶의 질 높이고 관광객들 이끌 <창생플랫폼> 남해군의 도시재생이 본격화된 것은 2019년부터다. 남해군은 2018년, 중심시가지형 사업 <재생에서 창생으로 ‘보물섬 남해 오시다’>로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선정됐다. 민간 차원의 도시재생은 이전부터 활발했지만, 군이 본격적으로 주도하는 재생사업은 이것이 시작이었다. 남해군의 뉴딜사업을 이끄는 남해군도시재생지원센터(센터장 안재락)는 2019년 4월 문을 열었다. 시점으로만 본다면 후발주자다. 남해는 도시재생 사업 방향을 관광중심형으로 삼았다. 관광중심형 사업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선택한 유형이다. 사업 대상지도 남해읍에 집중시켰다. 스쳐 지나가는 남해읍 중심지를 남해관광의 전진기지로 만들어 퇴락하는 원도심을 살려보겠다는 취지였다. 뉴딜사업이 시작된 지 5년째, 원도심 거리는 관광특화 가로 사업과 무장애통학로 사업으로 새롭게 바뀌었다. 오래된 한옥과 떡공장은 청년센터와 청년학교로 변했으며 주민들이 쉬고 즐길 수 있는 야외정원도 만들어졌다. 올해 말에는 ‘창생플랫폼’과 ‘관광창업 아카데미’가 들어선다. 창생플랫폼과 관광창업 아카데미는 뉴딜사업으로 만들어지는 가장 큰 건축물이다. 옛 여의도나이트 부지에 신축하는 <창생플랫폼>과 폐업한 장수장 여관을 개축하는 <관광창업아카데미>를 유기적으로 통합해 남해군의 새로운 거점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지하 1층, 지상 4층 구조에 전체면적 2,269㎡에 이르는 규모다. 주민들의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복합문화공간이자, 관광객과 외지인들에게는 관광과 창업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 교류하며 남해의 관광자원을 연결하는 거점으로 활용할 <창생플랫폼>은 올 연말 완공 예정이다. 남해 관광의 시작과 끝, 기억의 예술관 <남해각> 프로젝트 바다에 둘러싸인 남해가 육로가 이어지는 곳은 사천시와 하동군. 노량해협을 건너 만나는 육지가 하동이다. 남해와 하동은 남해 노량해협을 사이에 두고 육지와 섬으로 갈린다. 지금은 남해대교와 노량대교가 놓여 남해에서 육지로 나오는 길이 활발해졌으나 다리가 없던 시절에는 배를 이용해야만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 남해와 하동을 연결하는 남해대교가 열린 것은 1973년이다. 우리나라 최초이면서 동양에서 가장 큰 현수교였다. 2018년에는 노량대교가 개통됐다. 남해대교가 건설된 지 50년 가까이 되면서 안전성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덕분에 남해는 남해군과 하동군을 잇는 곳에 남해대교와 노량대교를 함께 품게 되었다. 하동 쪽에서 남해로 들어가는 남해대교를 건너면 처음 만나게 되는 건물이 있다. 남해대교와 연계되어 건축된 숙박과 휴게공간이었던 ‘남해각’이다. 1975년 해태관광이 짓고 운영하기 시작한 남해각은 줄곧 원래의 쓰임을 유지해오다가 2018년에 문을 닫았다. 남해 관광의 상징이자 남해 주민들에게 기억의 장소로 남아있는 이 공간을 다시 주목한 것은 남해군이다. 군은 남해각을 매입해 관광거점 시설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2021년 개관한 ‘남해 관광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관광 플랫폼 ‘남해각’이다. 건물은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쓰임을 극대화했다.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관광 상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여행자라운지와 갤러리, 남해각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아카이브와 각종 기획전시가 열릴 수 있는 전시공간, 그리고 다목적 기능을 담은 바다도서관이 들어섰다. 앞마당에는 남해대교와 노량해협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형 음악공연장을 조성 중이다. 남해군은 지난해 남해군관광문화재단(본부장 조영호)에 남해각 운영을 위탁했다. 실질적인 관광거점 시설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선택한 전문성을 갖춘 기관과의 협업이다. 성과는 곧바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지난봄 개최한 ‘남해 관광 거버넌스데이’는 53개 업체와 제휴를 맺는 성과를 올렸고, 관광기념품 전시·판매에는 20여 개 지역의 관련 업체의 참여를 끌어냈다. 땡큐 영수증 굿즈, 편백 펜던트 등 소비를 촉진하는 관광콘텐츠를 개발한 것도 눈에 띈다. 지난여름에는 바다도서관을 개관, 남해만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성격을 강화했다. 덕분에 남해각을 찾는 여행객들은 크게 늘고 있다. 남해군관광문화재단 조영호 본부장은 “남해각을 남해관광의 매력을 알릴 오프라인 거점 공간으로 구축하기 위해 지역 관광 거버넌스와 소통하고 교류하며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인구 4만 명의 작은 섬 도시 남해의 미래는 관광거점 도시다. 재생에서 ‘창생’을 꿈꾸는 도시 남해의 실험이 주목받고 있다. /김은정 선임기자, 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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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09.25 10:56

[도시의 시간, 성장동력을 만들다] ⑨ 지역성의 가치로 살려내는 거리의 역사

민간주도 도시재생사업의 모범 <개항로 프로젝트> 예술적 실험 공간으로 주목받는 폐공장의 변신<코스모40> 1876년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이후 원산과 인천의 항구를 잇달아 열었다. 불평등조약의 산물로 이루어진 이른바 강제 개항이었다. 인천은 일본의 조선 진출과 주권 침략의 음모를 실현하기 위한 도시가 됐지만, 한편으로는 낯선 문화가 밀려 들어오는 이국적인 장소이자 새로운 것에 대한 희망이 교차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개항기와 근대를 거치며 새로운 문물이 들고 나는 창구로 근대의 여명을 밝힌 인천의 성장은 역동적이다. 본격적인 성장은 1960년대와 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이루어졌다. 공단이 들어서면서 투자가 집중되어 각종 기간시설과 편의시설이 확충됐다. 각종 산업이 발달하면서 인구도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서울, 부산, 대구에 이어 4대 도시로 성장한 것도 이즈음이다. 1981년에는 인구 100만 명을 돌파하면서 직할시로 승격했고, 1995년에는 인천광역시로 확장되며 승격됐다. 이후 개발과 성장을 지속해온 인천의 오늘은 외형적으로(?) 화려하다. 항만 상업 도시를 기반으로 농공업과 수산, 문화와 관광, 물류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며 비약적인 성장을 하는 도시. 그러나 인천 역시 오래된 도시로서 오랫동안 안고 있는 과제가 있다. 도시 확장으로 쇠퇴한 원도심을 다시 살려내는 일이다. 기능을 잃은 공간에 새로운 역할을 불어넣다 <개항로 프로젝트 > 인천의 원도심인 중구 개항로.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 일대는 ‘힙’한 문화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곳 역시 도시가 확장되면서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거리에 남은 것은 사람의 온기를 잃어버린 공간들. 개항로는 곧 ‘과거’를 품은 역사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 인천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원도심의 부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뭉친 덕분이다. 이 중심에는 민간이 주도하는 도시재생 사업 ‘개항로 프로젝트(대표 이창길)’가 있다. 2018년 시작된 개항로 프로젝트는 원도심 재생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인천 중구 구도심을 중심으로 제 기능을 잃은 건축물에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기능을 부여해 거리를 재편하는 프로젝트다. 개항로 프로젝트가 주목한 공간은 인천항과 맞닿은 신포동 입구에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이르는 1km 남짓한 2차선 거리다. 영화관과 병원, 회사 등 건축적으로도 가치 있는 근대 건축물과 항구도시로 한 시절 번성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된 곳이다. 개항로를 살리는 주체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지역 브랜드를 만들어내고 있는 10여 명 기획자와 원도심을 지켜온 오래된 가게들. 개항로 부활을 꿈꾸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새로운 기능을 갖게 된 공간은 20여 곳에 이른다. 프로젝트 첫 공간은 오래된 이비인후과를 복고풍 콘셉트로 개조한 카페 '브라운 핸즈'. 이후 다양한 성격의 가게와 공간이 뒤를 이어 문을 열었다. 옛집을 무조건 부수지 않고 건축물의 개성을 살리고 특별한 기능을 더한 곳들이다. 한 조명회사가 조명 인테리어를 콘셉트로 오래전 문을 닫은 산부인과를 개조해 만든 카페 '라이트 하우스', 방치되어 있던 창고를 개조해 만든 갤러리 '잇다 스페이스', 볼품없는 건물을 작은 잡화 백화점으로 탄생시킨 ‘개항백화’, 일제시대 때 지어진 튼튼한 벽돌 건물을 고치고 개항로의 기억을 품은 소품을 더해 문을 연 ‘개항로 통닭’ 등 근대 건축물의 가치를 온전히 담고 있는 공간의 변신은 흥미롭다. 덕분에 개항로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새로운 공간과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오래된 가게들이 어우러져 특별한 풍경을 갖게 됐다. 개항로 프로젝트는 2021년, 오래된 가게를 지켜온 어른들과 함께 ‘개항로 맥주’를 만들어 출시했다. 지역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는 이 맥주는 협업의 결실이다. 개항로 프로젝트는 새로운 것에만 열광하지 않고 도시를 지켜온 오래된 가게들과 협력하면서 상생의 길을 찾아간다. 도시재생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워주는 사례다. 지역주민 예술가와 연대하는 폐공장의 변신 <코스모 40> 인천에는 뜨거운 관심을 받는 복합문화공간이 있다. 공간 성격을 하나로 규정하거나 한계를 두지 않고 다양한 예술적 실험과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의 탐색과 시도를 껴안은 공간 <코스모40>이다. 공간의 전신은 화학 공장. 인천 서구 가좌동에 있던 코스모 화학의 대규모 공장 단지에 있던 건물 한 동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당초 이곳에는 45동이나 되는 거대한 공장이 있었다. 2016년 공장이 울산으로 이전하면서 2만 평이 넘는 대규모 단지에 있던 공장들은 빠르게 철거되기 시작했다. 40동도 철거 대상이었으나 공간의 맥락을 지키고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지역 주민의 제안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주민참여와 지역재생의 의미를 담아 특별한 공간으로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폐공장의 재생은 낯설지 않다. 복합문화공간, 미술관과 공연장, 혹은 상업적 성격을 앞세운 대형카페 등 방치됐던 대규모 공장을 활용해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시킨 예는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코스모40>은 좀 더 특별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외형적으로 돋보이는 독특한 구조다. <코스모40>은 원래의 건물을 보수하면서 최소한의 증축을 했다. 완전히 분리된 듯하면서도 연속된 하나의 고리 모양으로 삽입된 신관은 옛 공장 공간의 새로운 활용도를 적극적으로(?) 돕는 역할을 한다. 특이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축물로 개조된 <코스모40>'은 '인천시 건축상 대상',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공장의 기초 구조물과 기계들을 최대한 남겨 놓은 내부도 새로운 건축적 요소와 결합해 시간의 중첩이 자아내는 아름답고 흥미로운 공간이 됐다. 이러한 특성으로 <코스모40>은 예술적 실험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어디서도 품을 수 없는 날카롭고 날이 서 있는 작업을 담아내는 공간,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주목하는 공간이 <코스코 40>이다. 지역 주민들과의 탄탄한 연대도 돋보인다. 주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바자회 팝업스토어 등을 통해 주민 참여를 끊임없이 이끌어낸다. 방치됐던 건축물이 가져올 지역사회의 변화가 기대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김은정 선임기자, 박현우 기자

  • 기획
  • 김은정
  • 2023.09.12 13:55

[도시의 시간, 성장동력을 만들다] ⑧ 공동체의 힘이 만들어내는 개항도시의 부활

공동체의 힘이 만들어내는 개항도시의 부활 목포 원도심 <꿈바다협동조합>과 <건맥 1897 협동조합> 목포는 1897년 개항한 도시다. 부산 원산 인천에 이어 네 번째 개항했으나 빠르게 성장해 우리나라 3대 항으로 자리 잡았다. 항구가 번성하면서 목포의 성장은 지속됐다. 그 영향으로 1990년대까지 인구가 늘어났으나 연근해 어업이 위축되고 목포의 경제를 이끌었던 조선업이 쇠락하면서 도시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도시들이 그러하듯 목포 역시 신도심이 개발되자 중심 상권이 붕괴되고 사람들이 떠나간 원도심은 활기를 잃었다. 그러나 개항이 만들어낸 근대도시 목포는 지금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빈 곳이 늘어나 황폐해진 거리, 시간이 멈춘 원도심에 그 꿈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덕분이다. 2010년대 중반, 정부의 지원정책으로 기반을 닦기 시작한 원도심 도시재생이 이어낸 결실이다. 새로운 힘도 더해졌다. 2020년 문화체육부가 선정한 관광거점도시에 선정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목포시는 관광거점도시로 선정된 직후 주요 관광·취약지를 정비하고 관광도시로서의 환경을 가꾸는 일에 힘써왔다. 그러나 기대한 만큼 관광객 수는 크게 늘지 않았고 관광의 형태도 당일치기 여행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변화가 생겼다. 목포의 원도심과 근대문화유산 공간들이 활기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목포의 원도심 부활을 이끄는 중심에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마을기업과 협동조합이 있다. 전국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꿈바다협동조합>과 <건맥 1897 협동조합>이다. 골목, 공간과 공간을 이어 마을 호텔이 되다 <꿈바다협동조합> <꿈바다 협동조합>은 원도심에서 게스트 하우스, 식당, 카페 등을 운영하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협동조합이면서 마을기업이다. 서로 다른 공간을 갖고 있지만, 원도심을 일으키는 일에 뜻을 모은 이들의 목표는 각각의 공간을 하나로 이어 수평적 마을호텔을 만드는 것. '꿈꾸는 바다꼴목'이라 이름 붙인 이 마을 호텔에는 게스트하우스 10곳, 식당·카페 등 6곳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꿈바다 협동조합이 뜻을 모은 것은 2019년. 이들은 원도심의 도시재생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내외의 다양한 사례를 배우며 주민이 주도하고 협력적으로 운영하는 마을사업 모델을 주목했다. 원도심을 아우르는 마을호텔 '꿈꾸는 바다꼴목'은 관광객이 특색 있는 숙소와 음식 등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와 환경을 제공한다. 몇 걸음만 가면 만날 수 있는 공간들을 목포의 특별한 정취를 느끼면서 걸을 수 있다는 것도 '꿈꾸는 바다꼴목'이 주는 선물이다. 지역에 있는 작가들과 협력해 1897 개항문화거리의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을 출간하고 옛 건축물 드로잉 엽서, 소책자 등을 제작해 판매도 한다. 관광객들은 조합이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고, 목포의 관광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목포역 근처에 문을 연 오프라인 플랫폼 '라운지 꿈'에서는 관광 정보와 함께 체크인하기 전 짐을 맡길 수도 있다.꿈바다 협동조합 방은희 이사는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쉐프가 되고 호텔리어가 되는 순간을 꿈꿨다“며 ”숙박부터 음식, 차, 술도 마시면서 목포의 지역에서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여행 상품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꿈바다 협동조합이 골목(거리)으로 이어지는 '마을호텔'을 만들게 된 특별한 이유는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골목 전체가 하나의 호텔이 돼서 함께 상생했을 때 의미 있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다. 실제로 마을호텔의 수익은 각각의 공간 수입에 그치지 않고 마을과 주민들이 성장하는 발판으로 쓰인다. 지역과 관광객이 상생할 방안을 함께 고민하며 다양한 방법을 찾아 시도할 수 있는 것도 이 덕분이다. 사실 이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목포의 원도심 도시재생 구역에서 운영되는 게스트하우스는 외국인 관광객의 투숙만 허용되는 도시민박업이다. 현행법상 도시 안에서의 숙박업은 상업지역에서만 운영할 수 있지만, 외국인도시민박업은 주거지에서도 '외국인'에 한해 운영할 수 있다. 조합원들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는 모두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도시민박업이다. 조합이 출범하고 곧바로 터진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조합의 존립을 위태롭게 했다. 그러다 마을기업은 내국인 숙박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행히 2021년 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에 선정됐다. 온·오프라인 플랫폼 구축 등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한편으로는 내국인도 숙박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추진했다. 자치단체와 협의하면서 정부의 관련 부처를 설득하며 길을 찾았으나 과제는 해결하지 못한 상황. 그래서 아직 갈 길이 멀다. ”건어물거리, 축제 열고 마을펍 열어 살렸죠“ <건맥 1897 협동조합> 목포시 만호동에는 중심을 관통하는 오래된 거리가 있다. 도소매, 중계, 경매 등 종사자들이 모인 이 거리는 목포항을 거친 건해산물이 들고 나는 유통 중심이었다. 1958년, 이 거리를 중심으로 건해산물 조합이 만들어졌다. 전국 최초였다. 거리는 80년대까지도 번성했으나 어업이 위축되고 항구가 쇠락하면서 사람도 떠나고 상점도 크게 줄어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거리로 쇠퇴했다. 원도심의 재생과 함께 거리를 되살리기 위해 상인들이 나섰다. 상인들이 십시일반 뜻을 모아 연 맥주축제가 시작이었다. 축제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자 건어물 거리에 있는 상가들은 아예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건맥 1897 협동조합>이다. 조합은 거리를 활성화하기 위한 통로로 마을펍을 열었다. 거리의 상권 활성화를 위해 만든 이 공간은 오래된 여관 건물을 무상으로 임차해 개조했다. 처음에는 1층에 ‘1897건맥펍’을 열고 운영하다 2∼3층에 숙박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건맥스테이'까지 열었다. 마을펍은 자주·자립·자치적인 운영을 통해 목포 건어물 자원을 지역 상품화하고 ‘1897 건맥펍’을 지역특화 브랜드로 만들어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골목상권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을펍에서는 건어물과 맥주를 판매하는데 처음에는 오징어, 쥐포 등 건어물 중심 메뉴가 전부였지만, 손님이 많아지자 전문가의 자문까지 얻어 지역특화형 안주를 개발했다. 건새우를 갈아 양념을 치킨에 뿌린 ‘새우통닭’이나 해산물을 듬뿍 섞은 ‘바다 피자’ 등 지역을 담아 만든 안주는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다. 조합은 마을펍에 이어 거리를 살리는 새로운 사업을 추진했다. 2019년 가을 첫 문을 연 건맥축제 '토야호(土夜好)'다. 만 원을 내면 무한으로 생맥주를 ‘리필’해 주는 이 축제는 첫해부터 관심을 모았다. 젊은 세대를 건어물 거리로 끌어들이려는 전략도 성공했다. 적은 예산으로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조합원들과 지역주민들이 협력해 축제를 이끌었다. 예산의 한계에도 300명 정도가 즐길 수 있는 축제로 정착한 ‘토야호’는 1년에 15주,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데 지금은 목포여행의 필수 코스가 되어 관광객들을 부른다. 건맥축제 '토야호'도 처음에는 확신을 얻지 못하는 축제였다. ‘과연 사람들이 올까?’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걱정이 많았지만, 축제는 성공했고 자리를 잡았다. 그 바탕에는 주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축제의 방식을 고민해온 조합의 노력이 있었다. 대부분의 축제는 비가 오면 취소되지만 ‘토야호’는 비 오는 날에도 축제를 열었다. 비가 오면 상인들은 점포의 창고를 열어 손님을 맞고 손님들은 파라솔까지 챙겨와 축제를 즐겼다. 유명한 가수가 서는 축제의 공연무대를 아마추어 예술인들이 재능기부로 채우고 주민들은 자원봉사로 힘을 보탰다. ‘토야호’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2020년을 제외하고 30회 넘게 열렸다. 누적 방문객은 2만 1,000명. 조합은 2억 5,000만 원이 넘는 경제 효과를 얻었다고 소개했다. 건맥 1897 협동조합 정우영 이사는 "우리는 상품을 줄 때도 케이블카·요트 이용권 등 다시 목포를 올 수밖에 없도록 행사를 기획한다”며 “토야호를 즐기기 위해 하루 더 자고 간다는 관광객을 만났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목포 만호동 건해산물거리의 부활을 이끄는 중심에는 <건맥 1897 협동조합>의 건강한 힘이 있다. 그들 공동체의 의지가 가져올 앞으로의 변화가 더 기대된다. / 김은정 선임기자, 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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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09.12 13:55

[도시의 시간, 성장동력을 만들다]⑦ 쇠락한 원도심, 청년과 주민들이 살려내다

도시재생의 성과와 과제 공주 원도심 재생과 사회적기업 '퍼즐랩' 우리나라 도시들은 1980년대 이후에 만들어진 신도시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오래된 도시다. 기능으로는 ’발전과 쇠퇴를 반복해오면서 특정한 지역 산업을 갖게 된 도시’이거나 그 도시만의 ‘두드러진 향토색을 가진 도시’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오래된 도시들은 발전과 쇠퇴를 반복해오면서 성장 동력을 잃었다. 한 시대, 우리나라의 도시발전 정책은 ’확장성‘의 가치를 앞세웠다. 도시마다 신시가지 개발이 유행처럼 번졌다. 도시의 확장에 환호했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신도시 건설에 집중하는 사이 원도심 쇠퇴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도시는 확장했으나 오래된 도시들의 고민은 다시 시작됐다. 쇠락한 원도심 살리기에 정부가 나선 것은 꽤 오래전이다. 정책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도시재생 정책이 만들어졌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도시재생 사업은 2018년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도시재생 뉴딜 정책’으로 선정되어 추진된 것들이다. 5년 동안 해마다 10조 원씩 50조 원을 투자하는 도시재생 뉴딜정책의 목표는 전국 500개 지역을 재생시키는 것이었다. 전면 개발 대신 지역이 주도하는 도시재생으로 도시 공간을 혁신하고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도시정책 목표이기도 했다. 전국의 수백 개 도시가 도시재생의 가치를 내세워 쇠퇴한 도심 살리기에 나선 배경이다. 역사문화자원에 재생을 더해 얻은 가치 충남 공주시는 도시재생 우수지역으로 꼽히는 지역이다. 부여로 도읍을 옮기기 전까지 64년 동안 백제의 도읍이었던 공주는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충청도 전체를 관할하는 충청감영과 관찰사가 주재했던 명실상부 충청도의 중심도시였다. 1932년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위상은 변했지만 공주여자사범학교(현 공주교육대학교), 공주사범대학(현 공주대학교) 등이 개교하고 중고등학교들이 들어서면서 공주는 교육의 도시가 됐다. 오래된 도시들이 그렇듯이 공주도 1980년대, 도시 확장에 도시의 미래를 걸었다. 금강 너머 북쪽에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인구 이동이 이어졌다. 상권이 옮겨지자 원도심은 쇠락하기 시작했다.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도시의 영역은 더 위축되어 한때 22만 명이나 됐던 인구는 반 토막으로 떨어졌다. 그러던 공주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제민천 일대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쇠락하던 원도심도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미미한 숫자지만 57년 만에 인구가 증가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 공주의 도시재생은 꽤 오래전부터다. 고도 보존 및 육성사업(고도보존육성 기본계획)이 그 바탕이다. 2014년부터는 본격적인 도시 재생 사업 로드맵을 세우고 선도사업을 추진했다. 하숙마을, 문화예술촌을 비롯해 고성에 오르는 골목길, 박찬호 골목길, 근대문화골목길 등 골목길 사업이 이 시기에 이뤄졌다. 2019년에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에 선정되면서 보다 본격적인 재생사업이 시작됐다. 올해 말까지 5개년 사업으로 추진된 공주의 뉴딜은 역사·문화 자산을 활용해 쇠퇴한 도심을 살리는 것이 중심이다. 관 주도가 아닌 주민 주도의 사업을 확충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 그동안 도시재생 선도사업 지정을 시작으로 옥룡동 도시재생 뉴딜사업, 중학동 도시재생 뉴딜사업 등 다양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면서도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주민참여형 도시재생 사업을 앞세웠었다. 공주시는 올해까지 '문화와 세계문화유산을 품은 공산성 마을'을 목표로 주거지지원형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내년까지 '제민천과 함께하는 역사문화 골목 공동체'를 목표로 중심시가지형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추진한다. 공주 도시재생 사업의 중심에는 주민과 청년이 있다. 시는 지원사업 공모뿐만 아니라 주민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사업을 주체적으로 이끄는 주민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시민대학을 운영하고, 마을 가꾸기 분과를 만들어 주민이 도시재생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자 주민들의 참여는 눈에 띄게 늘었다. 도시재생 사업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위해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설립도 계획하고 있다. 송두범 공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공주는 여전히 인구 감소 현상이 이어지고 있지만, 청년들이 소소한 행복을 위해 찾아오고 일정한 기간이나마 살고 싶어 하고, 여기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지역의 혁신과 발전을 위해서는 주민들의 참여와 청년들이 필요한데 공주는 그런 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시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제민천과 원도심 활력을 이끄는 주식회사 퍼즐랩 제민천은 공주의 원도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물길이다. 공주는 금학동에서 시작해 금성동까지 4.2km를 흘러 금강에 이르는 제민천을 중심으로 도시를 형성했다. 그러나 신시가지가 개발되며 주요 상권이 이동하자 제민천 주변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원도심으로 쇠락하고 말았다. 제민천은 오염되어 악취가 나고 비가 오지 않으면 물도 흐르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공주시는 제민천 살리기에 나섰다. ‘제민천 생태하천 조성사업’과 ‘제민천 활력거점 조성사업’으로 주변 하수도를 정비하고 반죽동 일원에 하숙마을과 문화예술향유 공간을 만들었다. 맑고 깨끗한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자 서서히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 외지의 청년들이 하나둘 공주를 찾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청년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일을 도모하며 지역의 미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사회적기업 ‘퍼즐랩’(대표 권오상)이 있다. 퍼즐랩은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일종의 지역 관리회사다. 공주가 가진 고유한 자원을 주목한 권오상 대표가 게스트하우스 ‘봉황재’를 운영하다 2019년 커뮤니티 기반의 사업을 고민하며 창업했다. 퍼즐랩은 마을 안에서 개개인에게 맞는 다채로운 커뮤니티와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느슨하게 연결하는 일을 한다. 퍼즐랩의 사업은 창업 4년 만에 큰 폭으로 확장됐다. 한옥 게스트하우스 ‘봉황재’와 ‘버드나무빌’, 커뮤니티호텔 ‘슬로크루즈’ 등의 숙소와 공유오피스인 ‘업스테어스’, 교육장인 ‘금강관’, 노인회관을 이용한 팝업 공간, 마을 자원을 활용해 소비와 유통을 이끄는 ‘크림오브엑스’와 마을 안내소 등이 모두 퍼즐랩이 운영하는 공간이다. 공주 원도심의 ‘마을 스테이’와 청년마을 ‘자유도’는 퍼즐랩이 설립한 브랜드 프로젝트다. 마을 스테이는 퍼즐랩이 운영하는 숙소와 원도심의 식당, 카페, 책방, 공방, 갤러리 등 다양한 운영자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해 일관성 있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이다. 이 네트워크에는 마을 주민들도 마을해설사로 참여하고 있다. 청년마을 ‘자유도’도 '마을 연결' 브랜드다. 공주 원도심을 찾아온 청년들이 이 마을 안에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각자의 자유 의지에 따라 삶과 일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갖춰져 있다. 원도심에 자리 잡은 다양한 공간을 중심으로 행사를 열고 참여한 사람들이 다시 공통적인 관심과 가치로 연대하는 틀을 확장해가는 퍼즐랩의 커뮤니티 프로젝트에는 청년들 뿐 아니라 원주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늘고 있다. 퍼즐랩이 이즈음 새롭게 추구하는 것이 있다. 관계 인구(생활인구) 만들기다. 도시 대부분이 정주 인구 확보를 위해 청년들을 유입하는데 매달리고 있지만, 이제는 정주 인구가 아닌 관계 인구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퍼즐랩의 판단이다. 장원희 프로젝트 매니저는 ”거주하지 않지만 일을 위해 도시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도시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통로이기 때문"이라며 “관계 인구가 공주시에 와서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그들 또한 이곳에서 일거리를 찾아 정착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 퍼즐랩 직원 중 과반수는 다른 도시에서 온 청년들이다. 일을 찾아왔다가 아예 공주로 거주지를 옮긴, 관계 인구로 시작해 정주 인구가 된 경우다. 퍼즐랩은 지난 2021년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됐다. 서울과 수도권 밖에 청년이 머물고 싶어 하는 마을을 만드는 이 사업에 2021년 한 해 동안 140명이 넘는 청년들이 참여했다. 이들 중에는 공주에 남았거나 다시 찾아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는 청년들도 여럿이다. 느슨하지만 강력한 결속력으로 만들어 내는 지역 커뮤니티의 힘으로 공주의 원도심을 바꾸어 가는 퍼즐랩은 건강한 커뮤니티의 활동이 지역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직은 경제적 자립과 인력 확보가 자유롭지 않지만 퍼즐랩의 활동에 더 큰 기대를 갖게 되는 이유다. / 김은정 선임기자, 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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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08.10 16:18

[도시의 시간, 성장동력을 만들다] ⑥ 도시의 추락, 아름다운 건축물로 일어서다

도시재생의 성과와 과제 일본 규슈의 도시들/ 구마모토현의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프로젝트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쇠퇴와 성장의 순환이 그 변화를 주도하지만 때로는 예기치 않은 외부의 힘에 의해 변화하기도 한다. 규슈지역 중심에 있는 구마모토현. 세계 최대의 칼데라 분화구를 가진 아소산과 기쿠치강을 비롯한 네 개의 강을 품어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오래된 도시들이 그러하듯이 구마모토 역시 급격한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맞닥뜨린 환경문제가 있다. 1950년대 중반, 구마모토현의 미나마타 시에 몰아친 환경 재앙 <미나마타병>이다. 원인은 미나마타 시에 들어선 화학공장 등이 배출한 유기수은. 연안 수자원과 환경을 오염시킨 유기수은의 폐해는 컸다. 미나마타 시의 어민들 사이에서 집단으로 발병한 미나마타병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금속성분이 사람의 몸에 축적되어 나타나는 대표적인 공해병이 되어버린 미나마타병은 그 이후 미나마타 뿐 아니라 구마모토현의 도시들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83년 구마모토현의 지사로 취임한 호소카와 모리히로는 추락한 도시이미지를 바꾸어 사람을 불러들이고 새로운 산업을 유치할 수 있는 환경 정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구마모토현은 문화를 중심에 세운 다양한 정책을 만들어 냈다. 그 정점에 구마모토의 도시이미지를 바꾸고 구마모토를 아름다운 건축의 도시로 세계에 알린 사업이 있다. 도시에 아름다운 건축물을 들여놓는 사업 <구마모토 아트폴리스(KAP)>다. 특색 없고 단조로운 도시 미관을 새롭게 고쳐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로 만들기 위한 이 정책은 구마모토에 새로운 이미지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1988년 시작, 35년째 지속되어온 정책의 힘 1988년 호소카와 지사가 만든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는 ‘풍부한 자연과 풍토를 살리면서 후세에 문화적 유산으로 남길 수 있는 우수한 건조물을 만들고’ ‘주민들의 도시문화와 건축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며 지역 발전을 이끌 구마모토만의 생활공간을 창조해나가는’ 것이 목적이다. 올해로 35년째. 자치단체의 같은 사업, 같은 정책이 이처럼 긴 시간 동안 일관되게 추진해온 예는 드물다. 구마모토현은 아트폴리스 사업을 만든 호소카와 지사 이후 후쿠시마 지사, 사오타니 지사, 그리고 현 가바시마 이쿠오 지사까지 세 번이나 지사가 바뀌었지만 사업의 취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더 활력있는 사업추진을 위해 방식을 보완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지사나 시장 군수가 바뀌면 하루아침에 정책이 바뀌고 잘 진행되던 사업까지도 중단되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이유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는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동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호소카와 지사가 1988년 발표한 정책이다. 호소카와 지사는 바로 전 해인 1987년, 베를린에서 열린 <베를린건축박람회>에서 영향을 받아 이 정책을 주도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아트폴리스로 지정된 공공건축물과 민간건축물이 구마모토현의 이곳저곳에 들어서며 도시를 빛내기 시작했다. 아트폴리스 지정은 철저한 심사와 절차를 거쳐 이루어졌다. 사업을 이끈 초대 커미셔너는 이소자키 아라타 씨. 세계적 건축가로 명성을 쌓은 그는 구마모토현 출신이 아니었지만, 발주자와 건축가, 시민들과 협의하고 설득하고 토론하면서 구마모토의 새로운 역사를 써냈다. 흥미로운 것은 적지 않은 건축물들이 아트폴리스 지정을 신청하지만 정작 이 사업을 주도하는 현 당국은 별도의 예산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공건축물도 현 차원에서는 지방자치단체나 민간기관이 예산을 투입해 만들 예정이던 마을회관이나 다리, 미술관 등의 건조물이 아트폴리스의 취지에 맞게 잘 만들어지도록 과정에 참여하고 그 진행을 돕는 역할만 할 뿐이다. 그런데도 아트폴리스 사업이 성공한 이유를 전문가들은 단호하고 과감하게 시행한 커미셔너 제도 덕분이라고 평가한다. 주민들에게 자부심 안긴 공공임대 아파트의 변신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프로젝트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공공 영구임대아파트다. 목표는 대부분의 공공임대주택이 가진 획일적인 디자인과 주거의 양적인 측면만을 고려한 건축 방식 대신 아름다운 디자인과 쾌적한 환경의 주거지를 영세민들에게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첫 결실은 구마모토현이 운영하는 ‘호타쿠보 1단지’. 1991년에 준공된 호타구보 1단지는 아트폴리스 정책이 적용된 첫 공공 영구임대아파트였다. 그 뒤를 잇는 것이 구마모토시가 운영하는 ‘신치단지’다. 모두 5개의 구역으로 구성된 신치단지는 4천 명 인구가 거주하는 서민 아파트 단지다. 다섯 명 건축가가 각각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설계해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디자인을 가진 덕분에 이 아파트 단지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도시의 관광상품으로 부상했다. 쇠퇴하는 구도심의 재생에 새로운 동력이 된 셈이다. 변화와 재생의 힘으로 세계적 건축 도시가 되다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로 추진된 프로젝트는 2021년 7월 기준, 109개다. 이 중 95개 건축물이 완공됐다. 내로라하는 건축상을 받은 건축물도 여럿이고 집합주택, 교육과 스포츠시설, 관광시설, 농업시설, 박물관 미술관 관공서 등 종류도 다양하다. 공원이나 전망대 다리 등의 조형물도 적지 않고, 화장실도 여러 개다. 역사적 건축물도 별도로 지정해 지역 문화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온전히 살렸다. 이러한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사업의 성과는 단순히 건축물을 들여 외형적 환경을 바꾼 것에 그치지 않는다. 문화의 새바람을 불어넣어 재생의 힘을 얻었으며 세계 각국의 건축도 들이 찾아오는 건축의 도시가 됐다.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는 세 번째 커미셔너인 건축가 이토 도요오 씨가 이끌고 있다. <자연을 열고 사람과 조화한다>는 그가 아트폴리스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담아낸 슬로건이다. 각 지역에 들어선 건축물은 ‘점’으로 산재하고 있지만, 이것을 ‘선’으로 연결하고 또 다른 프로젝트와의 연대를 강화해 구마모토 전 지역을 ‘면’으로 확장하겠다는 아트폴리스의 목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35년 동안 일관되게 지속해온 한 도시의 정책이 갖는 힘과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하는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이 도시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 일본 규슈=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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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07.20 17:45

[도시의 시간, 성장동력을 만들다] ⑤ 쇠퇴 위기 도시, 역사 자원 활용 관광거점 도시로 우뚝

도시는 성장과 발전의 눈부신 시간을 맞았다가도 어느 사이 쇠퇴의 시간을 맞게 된다. 도시가 끊임없이 성장동력을 찾는 이유다. 일본이 쇄국정책을 펼치던 시대, 서양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던 나가사키, 한때는 일본의 3대 항구로 번성했던 모지항을 안고 있는 기타큐슈도 쇠퇴의 위기에서 성장동력을 찾아 나선 도시들이다. 도시의 교육문화시설, 관광 콘텐츠가 된 역사 공간 ◇나가사키 <데지마> 나가사키는 요코하마, 고베, 니가타, 하코다테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개항 도시다. 교류를 위해 항구를 연 시기는 각기 다른데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항구를 연 도시는 나가사키다. 그러나 나가사키의 교류 역사는 본격적인 개항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데지마(出島)>는 일본의 쇄국정책 속에서도 유일하게 서유럽에 개방되었던 창구다. 데지마가 일본의 근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나가사키 항은 1571년 포르투갈과 처음 무역을 시작했다. 1859년에 항구를 열었으니 270여 년 전에 이미 서양과 교류하는 문을 열었던 셈이다. 이후 나가사키 항은 본격적인 교류와 무역항이 되었는데 그 통로가 된 곳이 데지마다. 데지마는 1634년에 축조를 시작해 1636년에 완성된 인공섬이다. 포르투갈인들의 기독교 포교 활동을 금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부채꼴 모양으로 조성된 이 인공섬에는 나가사키에 들어와 시내에 흩어져 살고 있던 포르투갈인들을 모아 거주하게 했다. 그러나 1637년 지방 관리들의 횡포와 과중한 징세를 견디다 못해 기독교인들이 민란(시마바라의 난)을 일으키자 일본은 포르투칼 배가 들어오는 것을 막고 포르투갈인들을 국외로 추방했다. 포르투갈인들이 떠나고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무인섬이 되자 일본 정부는 히라도에 있던 네덜란드의 무역상사와 상관을 데지마로 이전하게 했다. 서양의 학술, 의학, 문화가 들어와 일본 근대화에 큰 역할을 하게 된 또 하나의 계기였다. 데지마는 이후 200여 년 동안 일본의 유일한 해외 무역 창구로 역할을 해왔다. 1860년대에는 외국인 거류지로 편입되면서 더 번성했으나 나카시마 강의 공사로 데지마의 북쪽이 깎이고, 항만 개량공사로 남쪽이 매립되면서 부채꼴 인공섬은 원형을 잃게 됐다. 일본 정부는 1922년 ‘데지마 네덜란드 상관 터’를 국가사적으로 지정했다. 데지마 복원이 시작된 것은 1951년이다. 사적 안 사유지의 공유화를 진행하면서 1982년에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복원 정비 구상을 세웠다. 1992년에는 나가사키시에 ‘나가사키시 데지마 사적 복원정비연구회’를 설치해 데지마 사적을 교육문화시설로 조성하고 나카시마 강 맞은편 지역을 도시공원으로 조성하는 도시계획을 추진했다. 사적 ‘데지마 네덜란드 상관 터’ 복원이 시작된 것은 1996년이다. 복원 작업은 중단기와 장기 3단계로 나눠 진행되고 있다. 서북 중앙 동남의 구역을 순서대로 3단계로 나눠 19세기 초의 건축물과 주변 환경을 복원해 내는 사업이다. 이 정비계획에 따라 인공섬 안의 건조물과 섬 주변의 돌벽, 정문 다리를 복원하는 사업이 우선 추진됐다. 장기적으로는 19세기 초의 데지마 완전 복원이 목표다. 사적 안의 사유지를 완전히 공유한 것은 2001년, 사업을 시작한 때로부터 50년이 걸렸다. 2006년, 데지마는 건조물 대부분을 복원하고 돌벽과 담을 정비해 다시 문을 열었다. 오늘날 마주하는 데지마는 되살려낸 거리와 복원해 낸 건축물들이 방문객들을 수백 년 전 과거로 안내한다. 복원된 건물들은 전시와 체험을 위한 자료를 통해 각각의 기능을 그대로 보여준다. 당시 일본에 살던 포르투갈인과 네덜란드인의 생활을 재현한 그림과 모형이 전시된 사료관이나 1904년 매립되기 전의 데지마를 15분의 1로 축소한 데지마 모형과 네덜란드 무역상사를 실물 크기로 재현해 놓은 전시실은 특히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수백 년 전, 서양과의 교류 창구였던 데지마는 이제 나가사키의 역사를 새롭게 인식시키는 관광 콘텐츠의 거점이 됐다. 일본에서는 초·중·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 손꼽히는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내부의 건축물과 돌로 된 벽, 수로와 정문 다리까지 온전히 복원된 데지마는 낮과 밤의 풍경이 서로 다른 아름다움으로 눈길을 끈다. 도시 재생이 단순한 정비나 복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장기적인 구상을 실현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사례다. 행정과 민간 협력의 결실, 쇠락한 항구의 변신 ◇기타큐슈 <모지항 레트로> 모지항은 일본 혼슈(가장 큰 섬)와 규슈를 가로지르는 간몬해협에 있는 항구다. 1889년 국가의 특별수출항으로 지정돼 20세기 중반까지 중계무역항으로 기능을 했다. 중계무역을 통해 무역항으로 자리 잡은 모지항은 대륙으로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며 번성했다.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때에는 군수 물자를 수송하는 중요한 수송항이 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중국 본토와의 근접성으로 군수품과 병사들을 내보내는 중요한 항구로 활용됐으며, 유럽 항로 기항지가 되자 대륙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만주 등지로 오가는 무역선과 여객선으로 붐볐다. 특히 이 시기에는 고베, 요코하마와 함께 일본 3대 항구로 꼽히며 중요한 국제무역의 거점으로 자리 잡았고, 1914년 모지항역이 조성되면서 더욱 번성해 일본 대표 무역항이 되었다. 그러나 1942년 간몬해협을 가로지르는 간몬터널이 개통하면서 배가 아닌 기차로 물자를 수송할 수 있게 되자 수출항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지역 경제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대부분 항구가 이런 과정을 거쳐 새로운 활로를 찾듯이 모지항도 ‘개발’을 내세운 정비 사업을 시작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1960년대다. 1960년 쓰에요시 시장이 취임하면서 내놓은 항구 활성화 계획 ‘기타큐슈 르네상스 구상’이 발판이 됐다. 모지항은 재정비 시행 초기, 위기를 맞았다. 근대기에 조성됐던 역사적 건축물들이 개발을 앞세워 해체 위기에 놓인 것이다. 언론과 지역 주민들이 나서 개발계획을 비판하며 보존 운동을 벌였다. 항만 매립이 중단되고 도로 계획도 다시 세워졌다. 이때 만들어진 재정비 사업의 주제는 ‘역사와 자연’이었다. 때마침 일본 정부의 고향 만들기 특별 대책사업에 모지항 재정비 사업이 포함되면서 예산도 확보됐다. 정비 개념은 모지항의 역사를 주제로 하는 ‘레트로(Retro)’. 옛 광장과 이야기를 간직한 근대 건축물들, 수변 가로까지 항구를 중심으로 조성된 역사적 공간과 분위기가 ‘모지항 레트로’란 이름의 사업으로 추진됐다. 1988년 본격적인 항구 재생 사업이 시작됐다. 모지항 곳곳에 있던 10여 동의 근대 건축물을 항구를 중심으로 이전하거나 복원해 근대사를 껴안은 모지항의 풍광을 만들어냈다. 1995년에는 행정과 민간이 협력해 ‘모지항 레트로 클럽’을 결성했다. 더 새로운 활로를 찾아 한 번 더 도약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모지항 레트로 클럽’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과 상인, 행정이 협력해 모지항 관광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모지항 레트로 클럽’은 주민과 지자체가 함께 단체를 만들고, 자원봉사자와 기업이 참여해 지역을 살려낸 모범 사례다. 모지항은 1995년 3월 재개장한 이후 정부의 지원이 더해지면서 활력을 찾았다. ‘개발’만을 앞세워 낡고 오래된 공간을 없애지 않고 역사 자원으로 활용해 관광 콘텐츠로 이어낸 지혜로운 선택의 결실이다. 재정비 사업으로 새롭게 문을 연 이후 모지항의 관광객 수는 크게 늘었다. 최근 2~3년 동안 이곳도 코로나의 영향을 받았지만, 다시 활기를 찾아가는 중이다. 모지항은 쇠퇴하던 무역항에서 관광지로 변신했다. 그러나 모지항 역시 인구 증가에는 변화가 없다. 관광객은 늘었지만, 실제 주민 인구 증가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상황은 모지항의 과제다 기타큐슈시 산업경제국 쓰지모토 에리카 진흥계장은 “젊은 층 유입을 가장 큰 과제로 삼고 있다”며 “젊은 세대가 찾아올 수 있는 5개년 발전 방안을 담은 실천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소개했다. /일본 규슈=김은정 선임기자, 천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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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07.06 11:07

[도시의 시간, 성장동력을 만들다] ④ 주민들이 앞장선 지역 프로젝트의 빛나는 결실

지역의 문화자산을 예술과 접목해 만든 브랜드 △벳푸 프로젝트 규슈 오이타현의 벳푸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온천 도시다. 온천이 솟아나는 곳은 자그마치 2,800여 곳. 그곳에서 솟아나는 1일 온천의 양은 13만 7,000t으로 일본에서 용출량이 가장 많다. 온천마을을 찾아오는 관광객 수도 단연 1위. 관광이 벳푸의 주요 산업이 된 배경이다. 그러나 벳푸는 산업 환경이 변하면서 더이상 성장하지 않는 도시, 정체되고 쇠락해가는 도시가 됐다. 산업 대부분이 서비스업에 치중되어 있는 데다 종사자들의 낮은 임금이 원인이었다. 온천에 기대고 있던 벳푸의 산업 환경은 변화가 절실했지만, 오랫동안 굳어진 도시의 환경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온천에만 기대어 온 산업 구조를 바꾸고 쇠락해가는 벳푸의 도시 환경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지역주민들이 나섰다. 문화기획자와 예술가들이 의기투합해 설립한 ‘벳푸 프로젝트’도 그중 하나다. <벳푸 프로젝트>는 예술을 앞세운 민간비영리 기구(NPO)다. 단체 사무실이 있는 노구치 오토마치는 벳푸의 중심지이자 번화가였지만, 지금은 쇠락한 구도심의 마을이다. 옛날에는 배가 정박하는 항구가 있어 물산이 풍부했고, 시청 등 관공서와 상가, 영화관 등 다양한 시설들이 밀집해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항구가 이전하고 시청도 옮겨가면서 도심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상권이 붕괴하자 주민들이 떠나가기 시작하고 빈집이 늘어났다. 이 단체가 입주해 있는 건물도 1927년에 지어져 시가 오랫동안 사용했으나 시청을 새로 마련해 이전해간 이후 비어 있던 것을 관광협회 등 벳푸를 변화시키려는 다양한 단체들이 입주해 <창조교류발신거점>이란 이름을 내걸었다. <벳푸 프로젝트>는 2005년 단체를 만들고 그다음 해에 비영리기구로 법인화했다. 먼저 주목한 것은 구도심을 살리는 일이었다. 빈집을 활용해 거리를 바꾸고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꾸리기 시작했다. 빈점포를 객석으로, 거리를 무대로 만든 <벳푸 프로젝트>의 퍼포먼스. 사진/벳푸 프로젝트 첫번째 프로젝트는 예술을 활용한 이벤트였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국제행사를 유치해 공공미술을 늘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들이 참여하는 시민문화제를 기획해 문화와 예술을 일상화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썼다. 온천에 의지한 관광 산업을 지역적 특성에 예술을 입히는 관광 산업으로 폭을 넓히는 것이 목표였다. 벳푸는 직장을 가진 인구의 80%가 서비스업에 종사할 정도로 관광 산업 비중이 높은 도시. <벳푸 프로젝트>는 2006년 지역의 관광 여건을 먼저 조사했다. 당시 일본은 여행 패턴이 여성, 젊은 세대, 개인으로 변하는 시점이었지만 벳푸의 여건은 완전히 달랐다. 관광객의 70%가 여전히 남성이고 단체 중심의 관광이 절대적으로 비중이 높았다. 단체가 아닌 개인 중심의 여행 대상지, 젊은 여성들이 찾아오는 관광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인구 11만 명의 도시 벳푸의 변화가 시작됐다. 벳푸가 가진 유형무형의 자산에 예술을 접목한 다양한 사업은 도시에 새로운 매력을 더했다. <벳푸 프로젝트>를 이끄는 나카무라 쿄코 대표는 “새로운 승부를 위해서는 경쟁을 해야 했다. 경쟁력을 갖추는 일은 벳푸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줘야만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어느 사이엔가 벳푸는 온천의 도시로만이 아니라 예술이 숨 쉬는 도시 감성이 넘치는 도시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이나 개인 블로거들의 발신이 벳푸를 알리는 중요한 홍보 수단이 됐다. 개인 여행객들이 벳푸의 매력적인 공간을 여행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고 오래된 빈집과 사용하지 않는 시설들을 활용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 결과였다. 마을의 빈집을 예술가들의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자 국내외의 예술가들이 찾아왔다. 아예 이주해오는 예술가들도 늘어났다. <벳푸 프로젝트>는 낙후된 지역의 빈집을 예술가와 기업 등에 연결하고, 예술인들이 이주하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오래되어 낡고 방치되어 있던 아파트를 예술가들의 생활공간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외형은 그대로 두고 내부를 개조한 키요시마 아파트가 대표적이다. 전쟁 시기에 지어진 이 아파트는 오랫동안 빈 채로 방치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새로운 입주자(?)들의 터전이 됐다. 주민들은 모두 벳푸로 이주해온 예술가들. <벳푸 프로젝트>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120여 명의 예술가가 이곳을 거쳐 갔거나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벳푸시도 이러한 움직임을 주목해 이주해오는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아티스트 이주 정주 계획’을 만들었다. <벳푸 프로젝트>는 18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대부분이 20~30대 젊은 층이다. 오이타현청과 벳푸시, 문화재청, 기업 등과 손을 잡고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벳푸 프로젝트>는 벳푸를 새로운 매력의 도시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들은 인적 자원을 발굴하고 지역 정보를 발신하며, 지역 제품을 개발하고 오래된 공간을 고치고 변화시키는 사업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이 가진 힘을 보편화한다. 농산물 생산자들과 협업으로 만들어낸 브랜드 ‘Oita Made’나 낡은 호텔에 미술작품을 결합해 창조적인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Creative Platform Oita’는 그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벳푸 프로젝트>는 위로부터의 변화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추구한다. 주어진 정책에만 의존하지 않고 주민들이 나서 공간을 새롭게 이해하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더해지면 도시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나카무라 대표는 "매력적인 것을 발신하는 장소이자 창조적이고 재밌는 사람들이 모이는 도시로서의 가치를 높여나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소개했다.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의 가치 살려낸 도서관의 변신 △오이타 아트플라자 오이타현의 현청이 있는 오이타 시에는 이 지역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가 설계한 <오이타 아트플라자>가 있다. 확실한 자기 언어와 철학으로 한 시대, 일본의 건축을 대표한 그가 건축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설계사무소를 설립한 후 독립적으로 작업한 첫 번째 작품이다. 1962년 착공해 1966년에 완공된 이 건축물의 전신은 오이타 현립도서관. 오랫동안 지역주민들의 도서관으로 기능했으나 지난 1996년, 현립도서관을 새로 지어 이전하면서 쓰임을 잃었다. 오이타시는 오이타현으로부터 토지와 건물을 인수해 새로운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한때 전체 철거 혹은 일부 철거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건축적 가치를 살려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내부의 일부는 개조해 시민들의 문화 정보 교류 장소인 <오이타 아트플라자>로 재개관했다. 1960년대 일본에서 활발했던 메타볼리즘 운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건축물의 외관은 가공되지 않은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돼 낡고 녹스는 등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 특징. 도서관과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아트플라자의 쓰임이 크게 달라 전면적인 ‘리뉴얼’ 작업이 요구되었지만 오이타시는 건축물 구조는 물론 내부의 대부분 공간을 그대로 두고 부분만 개조해 사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오이타 아트플라자>가 1층에 2층까지 닿는 높은 천장과 창문을 통해 내부로 길게 들어오는 은은한 빛, 오전과 오후 햇빛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양쪽으로 창이 뚫려있는 특별한 공간을 갖게 된 배경이다. 1층과 2층에는 시민 갤러리와 창작 활동을 위한 공간이, 3층에는 건축가 이소자키가 작업한 세계 각국의 건축 작품 모형과 아카이브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2022년 10월 국가등록유형문화재로 등록된 <오이타 아트플라자>는 오래된 건축물의 빛바랜 외관에도 불구하고 랜드마크가 됐다.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의 대표작이어서 건축 전공자들이라면 필수적으로 찾아오는 공간이기도 하다. 주목하게 되는 것이 있다. <오이타 아트플라자>가 있는 부지의 위치다. 이곳은 오이타 시청과 오이타성 사이에 자리 잡은 이 도시의 중심이다. 당초 철거 방안이 제기되었던 것도 ‘노른자위’ 땅의 부동산 가치(?)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이타시와 시민들은 화려한 새로운 시설을 건립하는 대신 지역이 배출한 세계적 건축가가 남긴 건축물로서의 역사성과 가치를 택했다. 재생의 의미와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선택이 아닐 수 없다. / 김은정 선임기자, 천경석 기자

  • 기획
  • 김은정
  • 2023.06.27 15:54

[도시의 시간, 성장동력을 만들다] ③ 쇠락하는 도시에 새 활력 불어넣은 '도서관의 힘'

도시는 성장을 멈추는 그때부터 쇠퇴하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오래된 도시들 역시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성장을 멈춘 지 오래다. 이미 쇠퇴하고 있는 수많은 도시는 인구가 줄어드는 ‘소멸 위기의 도시’로 내몰리고 있다. 오래된 도시의 인구 감소는 우리나라만 겪고 있는 현상이 아니다. 일본의 오래된 도시들은 우리보다 앞서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의 위기를 맞았다. 일본 도시들의 구체적인 인구 감소현황이 공개된 것은 지난 2014년 마스다 히로야 전 총무상이 주도해 펴낸 <마스다 보고서>에서다. 보고서는 ‘현재의 인구 감소 추이로는 2040년까지 일본 도시의 절반인 896개 도시가 사라진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일본의 수많은 도시를 충격에 빠뜨린 경고였다. 그러잖아도 인구 감소로 쇠퇴일로에 놓여있던 도시들은 어떻게든 도시를 살릴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나서야 했다. ‘더 이상의 인구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목표를 위해 주목한 것이 있다. 쇠락한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을 ‘거점’을 만드는 일이다. 도시의 거점으로 ‘도서관’을 주목한 도시들이 있다. 일본 규슈 사가현의 다케오 시와 구마모토현의 기쿠치 시다. 새로운 커뮤니티를 창출해낸 오래된 도시의 거점 △다케오시립도서관 사가현은 규슈에서 가장 작은 현이지만 온천으로 이름을 알린 작은 도시들이 적지 않다. 인구 5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 다케오 시도 그중 하나다. 고령화율이 일본 도시 평균을 웃돌고 전체 면적의 23%가 논밭인 다케오시의 주산업은 농업이다. 1,3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온천 도시이지만 '일본 온천 관광 100선'에는 들지 못하는 평범한(?) 소도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평범한 작은 도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변화를 이끈 것은 놀랍게도 시립도서관이다. 다케오시립도서관은 2012년까지만 해도 시민들의 이용률이 낮은 전통적인(?) 도서관이었다. 사람들을 불러 모을 거점 공간을 모색하고 있던 다케오시가 기존 도서관을 고치고 새롭게 단장해 재개관한 것은 2013년. 아름다운 디자인과 편안한 내부 공간 구성, 여기에 이용자 중심으로 전면 개편된 운영방식은 도서관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재개관한 지 1년여 만에 연간 이용자는 100만 명이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중 40만 명이 지역 주민들이 아닌 다른 지역 방문객들이라는 사실이다. 도서관을 방문하기 위해 다케오 시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식당과 숙박업소 등 지역 상권은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자연히 경제적 효과도 이어졌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다케오 시의 선택이 있었다. 다케오 시는 공공도서관을 지역 커뮤니티를 되살릴 거점이자 자랑스러운 자산으로 만들기 위해 지정관리제도를 도입해 혁신을 꾀했다. 세계적인 서점 ‘츠타야’를 만들어낸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CC)'의 경영자 마스다 무네아키에게 운영 관리를 위탁한 이유였다. 도서관은 서점과 멀티미디어 이용관, 미술관, 커피숍과 편집숍이 들어선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자료 보존과 도서 대출이라는 기존의 도서관 성격에서 벗어나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공부도 일도 대화도 가능한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도서관에서 즐길 수 있게 했다. ‘누구에게나 편안한 도서관’을 내세운 이 도서관의 목표는 새로운 커뮤니티 창출이었다. 관심을 끈 것은 또 있었다. 운영방식의 변화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던 개관 시간을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로 연장하고 개관일도 연간 295일이었던 것을 365일로 늘려 연중 쉬지 않는 도서관을 만들었다. 리모델링을 거쳐 문을 연 도서관의 공간은 창조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넓은 공간을 차지했던 관장실을 없애고, 잡지 판매 코너와 DVD 대여점을 설치한 것도 큰 변화였다. 장서는 18만 8,321권에서 21만 1,096권으로 늘리고 좌석 수도 187석에서 279석으로 늘렸다. 다시 문을 연 이후 도서관의 일일 평균 방문자 수는 기존 867명에서 2,529명으로, 대출 이용자는 일일 평균 280명에서 460명으로 늘었다. 다케오 시민만이 아니라 일본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도서 대출이 가능하게 한 것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데 주효한 방식이었다. 그 결과 도서관 회원의 60%가 지역 외 거주자이고 도서 대출 역시 외부에서 찾아오는 이용자들이 43%나 됐다. 주변 음식점과 상점은 덩달아 매출이 늘었고, 숙박시설 예약률은 두 배로 뛰었다. 다케오시립도서관의 성공사례는 일본 각 도시에도 영향을 미쳐 도서관 건립 바람을 일으켰다. 2015년 1월 가나가와현 에비나시와 2016년 미야기현 타가조시에 만들어진 도서관이 그 결실이다. 이용자 중심의 운영을 내세운 다케오시립도서관에서는 책을 읽다가 커피를 흘리거나 책을 훼손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1년에 2,000만 엔(약 2억 원)을 들여 6000∼7,000권을 구입하고, 3년 동안 한 번도 보지 않는 책들은 따로 골라 폐기하거나 보육원에 기증하는 것도 특별하다. 다케오시립도서관은 지난 2017년 10월, 새로운 공간을 더했다.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될 어린이도서관이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온 다케오시립도서관이 가져올 또 다른 변화가 기대된다. 지역의 자연환경을 품은 도서관, 주민의 자긍심이 되다 △기쿠치중앙도서관 기쿠치 시는 구마모토현의 북부를 흐르는 기쿠치 강 상류에 있는 도시다. 인구 5만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지만, 규슈지방의 정치, 교육, 문화 중심지로 번성해 지금도 적지 않은 유적이 남아 있다. 곡창지대여서 농업이 발달하고 지리적 여건으로 쌀 집산지가 되어 한때는 상업 도시로도 발전했다. 그러나 일본의 오래된 지방 도시들이 그렇듯이 기쿠치도 성장을 멈추고 쇠퇴의 길에 들어선 지 오래다. 수십 년 동안 청년들이 대거 대도시로 이주하면서 도시는 활력을 잃었다. 시는 지역을 떠나려는 청년들을 붙잡기 위해 대책을 찾아야 했다. ‘청년들이 떠나지 않는 도시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청년들이 왜 지역을 떠나는 것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던 시는 활력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첫 번째 과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공간을 위해 시가 선택한 것은 도서관. 지역 주민이 자랑스러워하는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기쿠치 시는 어느 도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랜드마크로 만들기 위해 건축가 나카무라 가즈노부 씨에게 디자인을 의뢰했다. 기구치 시 만의 특별한 도서관을 만들고 싶었던 나카무라 씨는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자연환경을 주목했다. 그중에서도 시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쿠치 강을 도서관의 주제로 삼았다. 강의 흐름처럼 곡선을 그리는 거대한 책장이 만들어져 1층 아담한 도서관을 가득 채웠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아름다운 도서관 기쿠치중앙도서관의 ‘BOOK RIVER’가 탄생한 과정이다. 기쿠치도서관의 외형은 예상 밖으로 소박하고 평범하다. 거대한 규모도 아니고 화려하지도 않다. 그러나 1층에 있는 도서관에 들어서면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책장이 곡선으로 휘감아 돌며 공간을 가로지른다. 높지 않지만 길이 100m가 넘는 책장이 가로로 이어지며 공간을 나누거나 연결하면서 다양한 기능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풍경은 특별하고 아름답다. 기쿠치중앙도서관은 지난 2017년 문을 열었다. 도서관의 슬로건은 ‘사람과 정보, 문화가 만나 어울리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교류의 공간’이다. 개관 이후 불과 두 달 만에 지역 주민의 80%가 도서관을 찾았으며 타지에서 도서관을 찾는 방문객들도 늘기 시작했다. 미국의 이름난 인테리어인 전문 잡지 <INTERIOR DESIGN>'은 지난해, ‘잠시 머물고 싶은 세계 12개의 도서관’에 이 작은 도시의 기쿠치중앙도서관을 선정했다. 도시에 활력을 가져다준 도서관은 이제 주민들의 자랑이 되었다. 공간의 힘으로 활기를 얻어낸 오래된 도시들이 적지 않다. 그 통로는 서로 다르지만 새로 짓거나 오래되어 방치됐던 건물을 활용해 지역 주민들을 모으고 외지인들을 끌어들이는 도서관의 등장은 새롭다. 도시재생의 의미와 가치가 더 다양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 일본 규슈=김은정 선임기자, 천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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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06.22 15:23

[도시의 시간, 성장동력을 만들다] ② 옛것에 대한 가치 새로운 시선으로 일군 '도시 경쟁력' 주목

오래된 도시에는 시간을 함께해온 오래된 공간이 축적되어 있다. 그 공간들은 세월에 묶여 사라지거나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 오래된 공간의 변신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어느 공간은 도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도시재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보다 먼저 저성장과 인구 감소를 경험한 일본은 일찌감치 도시재생에 눈을 떴다. 쇠퇴하는 오래된 도시를 살리기 위해 고민하며 찾아낸 해법 중 하나가 도시재생이다. 낡고 방치된 공간을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생명과 가치를 살려낸 도시가 적지 않다. 그 사례를 찾아 규슈지역의 도시를 돌아보았다. 지역의 전통 자산을 도시 마케팅으로 연계해 성공한 사가현의 도자기 마을 <아리타 세라>, 1600년대부터 200년 동안이나 일본의 유일한 국제무역 창구였으나 기능이 약화되면서 상당 부분 훼손되거나 버려졌던 공간을 복원사업을 통해 도시의 관광 콘텐츠로 거듭나게 한 나가사키의 <데지마>가 거기 있다. 지역을 떠나는 청년들을 붙잡기 위해 도시가 활력을 찾을 방법을 고민하며 얻은 기쿠치의 랜드마크 <기쿠치 중앙도서관>, 인구 5만 명의 작은 도시를 세계적으로 주목하게 만든 흥미로운 공간 <다케오시립도서관>, 상인과 장인의 공방이 된 150개의 전통 건물 거리 <야메후쿠시마>, 아름다운 도시 만들기 프로젝트로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구마모토현의 랜드마크가 된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도 주목할만한 사례다. 지역의 문화자산을 예술과 접목해 브랜드를 만들고 그것을 지역주민들과 함께 발전시켜가는 <벳푸 프로젝트>도 흥미롭다. 쇠락하는 도서관을 재생시켜 아름다운 건축물로 만들어낸 <오이타 아트플라자>, 한때는 일본의 3대 항구로 꼽혔으나 쇠락의 길을 걷다 행정과 민간의 협력으로 새롭게 태어나 관광지로 변신한 <모지항 레트로>도 있다. 지역이 가진 가치를 새로운 시선으로 주목해 동력을 만들어낸 이 도시들의 노력이 일궈낸 결실이다. 그들은 어떤 가치와 철학으로 도시를 살리는 동력을 만들었을까. 오래된 공간과 사라지는 전통 문화유산을 활용해 문화의 생명력을 키우고 사람을 불러 일자리를 만드는 이 도시들이 답을 준다. △도자기의 전통, 다시 세계에 이름 알리는 <아리타 세라> 아리타(有田)는 일본 규슈 북서부 사가현에 있다. 사가현은 오래전부터 도자기 산지로 전통을 이어온 아리타 덕분에 이름을 더 널리 알렸다. 아리타 도자기는 한때 유럽 전역에 수출될 정도로 번성했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단순한 생활용품을 넘어 예술작품으로 인정받는 대표적인 도자기다. 사가현에는 아리타 외에도 이마리, 가라쓰 등 각각의 이름을 내세운 도자기의 전통을 가진 지역이 많지만, 아리타는 일본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가장 많이 찾아오는 도자기 도시로 꼽힌다. 공교롭게도(?) 아리타 도자기의 뿌리는 정유재란 때 조선에서 끌려간 도공 이삼평이 뿌리다. 일본으로 끌려가 사가현 아리타에 정착하게 된 이삼평은 아리타의 이즈미 산에서 질 좋은 고령토(백토)를 발견하고 도자기를 만들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도자기였다. 그 덕분에 일본의 도자기는 400년 역사와 전통을 갖게 됐다. 오늘에 이르러 이삼평이 도조(陶祖)로 추앙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삼평이 도자 가마를 연 후 아리타 지역뿐 아니라 이마리, 하사미 등 사가현의 여러 마을이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해 본격적인 도자 마을로 성장했다. 그중에서도 아리타 도자기는 도자공예의 대표적인 브랜드가 되어 세계 시장을 휩쓸었다. 그러나 오랜 역사 속에서 아리타 도자기는 여러 차례 부침을 겪어야 했다. 아리타에서 생산되지 않은 상품들이 아리타 이름을 내세워 시장을 어지럽히고 중국 도자기들은 싼 가격으로 밀려와 자리를 빼앗기도 했다. 그러나 아리타 사람들은 400년 전통을 이어온 도자의 뿌리라는 자긍심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냈다. 도공들이 밀집해있던 거리에 세계 최대의 도자기 판매점 ‘아리타 도자 마을 플라자’를 조성했던 것도 그 일환이었다. <아리타 세라>는 바로 이곳, ‘아리타 도자 마을 플라자’를 개편해 2018년 4월 더 새롭게 문을 연 공간이다. 아리타 시내에서 자동차로 불과 5분 거리.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 잡은 <아리타 세라>는 아리타 지역의 도자기 공방 스물 두 곳의 도자기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문적인 도자기 공방 거리다. 언뜻 외형적으로는 거대한 쇼핑 거리처럼 보이지만 외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주차장과 편의시설을 갖추고, 오며 가며 쉴 수 있는 크고 작은 공간을 만들어 마치 작은 공원과도 같은 환경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곳에 자리 잡은 공방과 가게마다 명확하게 드러나 보이는 특성이다. 판매를 위한 공간이면서도 각 공방의 가치와 철학을 담아낸 다양한 물건과 형태의 전시 기법은 이들 공간에 특별함을 더한다. 이미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협업으로 아리타 도자기의 진가를 알리고 있는 공방도 적지 않은데, 그들 중에는 세계 각 도시와 연계해 매장을 확산해가고 있는 공방도 있다. <아리타 세라>는 2018년 문을 연 이후 불과 2년도 되지 않아 코로나의 급습으로 위기를 맞았다.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공간의 환경은 암담했다. 다행히 코로나 팬데믹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기 시작한 올해 초부터 <아리타 세라>에도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5월 말에 찾았던 <아리타 세라>는 아직 한적했다. 코로나 후유증이 가져온 풍경이었지만 지난 3월부터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는 <아리타 세라> 사람들의 의욕은 넘쳐 보였다. 이곳을 아리타의 관광 거점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도자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육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시설과 숙박을 위한 호텔을 갖추는 로드맵도 흥미로웠다. 지역의 전통 자산을 도시의 성장 동력으로 활용해가는 이들의 지혜가 어떤 성과를 가져올지 궁금해진다. △시간의 정취를 간직한 거리의 변신 '야메 후쿠시마' 야메시는 후쿠오카현 남서부에 위치한다. 중남부는 평야, 북동부는 삼림이 점하고 있는 야메 지역의 중핵 도시다. 에도시대에는 야메 지방의 물산 집적지로서 정치, 문화 중심지로 번성했다. 지금은 야메차, 국화, 표고버섯 등 농산물 생산이 활발한 농업도시로 알려졌지만, 중세 시대부터 이어져 온 수제종이 와시, 불단, 제등 등 전통 수공예로 이름을 알린 장인의 도시이기도 하다. 이곳, 야메시의 중심에 '역사적 건물군 보존지구'로 지정된 거리 <야메 후쿠시마>가 있다. 수많은 전통가옥과 수로를 끼고 이어지는 거리 풍경이 아름다운 지역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1621년 후쿠시마 성이 무너졌을 때 이 주변에 있던 성곽 마을은 온전히 살아남았다. 이후 야메 지역의 교통 중심이 되어 물산 집결지로 자리 잡은 <야메 후쿠시마>는 에도-메이지-다이쇼-쇼와 시대를 거쳐오면서도 150여 개의 전통 건물이 그대로 남아 상인과 장인의 공방으로 변신했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전통가옥과 거리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지역주민의 노력 덕분이다. 주민들은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열리는 지역 축제를 이어가며 도시를 알렸다. 다양한 전통 놀이를 통해 무형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하얀 벽 거리 풍경을 보존하고 알리기 위해 힘을 모았다. 빈집을 잘 보존하기 위해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사람들이 모이는 카페나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드는 일에도 발 벗고 나섰다. 행정적 지원도 주효했다. 야메시는 <야메 후쿠시마>의 보존을 위해 세 가지 정책을 앞세웠다. 기술자의 확보, 활기를 되찾을 소프트웨어 구축, 그리고 시 전체의 문화경관을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지 고민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오래된 건축물의 역사를 조사하고 기준에 근거한 설계나 시공을 위해 장인을 육성하는 일은 야메시의 중요한 과제로 안겨 있다. 주민과 행정이 연계해 빈 상점이나 가옥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기 위한 시스템 구축도 거리의 공동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야메시의 중요한 정책이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찾아간 <야메 후쿠시마>에서 기대했던 활기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순환형의 지역사회 만들기를 내세워 시민과 행정이 나서고 전문가들이 지원하는 정책을 만들어 실행해나가는 야메시의 노력은 오래된 도시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통가옥의 거리 <야메 후쿠시마>의 내일이 기대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김은정 선임기자, 천경석 기자

  • 기획
  • 김은정
  • 2023.06.15 17:27

[도시의 시간, 성장동력을 만들다] ① 쇠퇴하는 오래된 도시, 재생의 가치를 주목하라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 도시들 대한민국의 지방 도시들이 사라진다. 2021년 7월, 감사원이 발표한 ‘인구구조변화 대응 실태’ 보고서에 따른 예측이다. 2017년 기준 대한민국 인구는 5,132만 명. 100년 전인 1917년 인구 1,697만 명(조선총독부의 통계연보)의 3배가 넘지만 우리나라 인구는 줄곧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100년 후인 2117년에 우리나라 인구가 1,510만 명으로 급감한다는 분석도 있다. 감소세도 그렇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인구 감소에 따라 소멸할 위기에 처한 도시들의 숫자다. 이 보고서는 우리나라 시군구들이 30년 후부터 소멸위험 단계에 진입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전국 229개 시·군·구 중 2047년에는 157개, 2067년 216개, 2117년 221개가 ‘소멸 고위험지역’에 몰려 있다. ‘지방소멸위험지수’를 적용한 분석이다. ‘지방소멸위험지수’는 ‘한 지역의 20~39세 여성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이다. 이 지수가 0.5 이하면 인구소멸위험 지역으로 분류한다. 이 지수를 적용하면 인구가 몰려 있는 서울조차도 100년 뒤에는 인구수가 지금의 30%에도 못 미친다는 전망이 있고, 부산 대구 광주 대전을 비롯한 대도시의 상황도 다르지 않으니 지방 중소도시들의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오래된 도시들은 대부분 성장을 멈추어 이미 쇠퇴의 길에 들어선 지 오래다. 쇠퇴에 놓인 그 도시들이 이제 인구 감소로 소멸의 위기에까지 몰리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도시재생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구하라 그렇다면 소멸위기에 놓인 도시들을 쇠퇴하는 환경에서 구할 수는 없을까. 정부가 모색한 해법이 있다. 이른바 도시재생 사업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도시 재생은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추진되어온 지속사업이다. 도시재생 정책이 본격적으로 부상한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다. 당시, 재개발을 전면에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도시재생' 정책은 부산이 진원지였다. 뉴타운 공약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뉴타운돌이(?)'들이 사업 추진이 어렵게되자 2011년부터 국토해양부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새로운 정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명 '커뮤니티 뉴딜'이다. 뉴타운 사업은 물 건너갔으니 마을만들기사업을 뉴딜사업처럼 하자는 전략이었다. 이 사업을 지원하는 특별법 제정까지 추진됐다. 특별회계를 만들어 쓰기 위한 목적이었다. 특별법 제정은 무산됐지만, 이명박 정부 후기에 도시재생이 큰 이슈로 등장했던 배경이다. 물론 이들이 추진했던 재생의 바탕은 '재개발'이었다. 보다 적극적으로 도시재생 사업이 추진된 것은 문재인 정부 때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도시재생 뉴딜정책’을 발표하고 2018년부터 실행에 나섰다. 5년 동안 해마다 10조 원씩 50조 원을 투자하는 도시재생 뉴딜정책의 목표는 전국 500개 지역을 재생시키는 것. 전면개발 대신 도시재생으로 지역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도시정책이었다. 도시의 확장에만 골몰해온 후유증 이제 도시재생은 시대적 화두가 되었다. 낡은 공간과 낙후되고 쇠퇴한 지역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오래된 도시들의 절박한 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에 만들어진 신도시들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대부분 도시는 오래된 도시다. 기능으로는 ’발전과 쇠퇴를 반복해오면서 특정한 지역 산업을 갖게 된 도시’이고, 그 도시만의 ‘두드러진 향토색을 가진 도시’다. 어느 쪽이든 이 도시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문제가 있다. 그중 하나가 구도심 활성화다. 수십 년 동안 ’확장‘의 가치를 앞세운 도시발전 정책으로 신시가지 개발을 도구로 삼았던 우리나라의 오래된 도시들은 그 결과, 너나 할 것 없이 구도시와 신도시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도시의 확장에 환호했던 시기도 잠시, 신도시 건설에만 집중하는 그사이 구도심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확장’에만 골몰한 결과는 또 있다. 신시가지가 개발되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덤으로 따라온 난개발 후유증이다. 개발에만 집중해 인간적인 공간을 만들어 내는데 실패한 적지 않은 도시들이 미래를 위협받고 있는 현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치밀하고 미래지향적 전략이 가져온 성과 그러나 도시재생을 정책으로 실현한 국가와 도시 중에는 낡은 공간들을 동력으로 삼아 힘을 잃어가던 도시를 살려낸 사례가 많다. 무조건 확장하고 새로 짓는 개발 논리에 빠지지 않고 ‘재생’의 가치와 의미를 주목한 성과다. 공동화되어가던 옛 도심이 생기를 되찾아 사람을 부르고, 환경쓰레기로 오염되어가던 강이 살아나 다시 도시의 동맥이 됐다. 낡고 오래되어 방치되었던 건물을 고쳐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새로운 옷을 입힌 공간을 가진 도시들은 다른 모든 도시들에 선망의 대상이다. 도시재생을 먼저 시행한 나라는 영국과 독일이다. 19세기를 주도했던 영국은 특히 도시재생의 모범적 나라로 꼽힌다. ‘문화’와 ‘공간’을 중심에 두어 도시재생을 성공시킨 사례가 많은 덕분이다.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도시재생으로 성공한 대부분이 치밀하고 미래지향적인 전략을 바탕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20년 이상 방치됐던 화력발전소에서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변신한 <테이트 모던>도 영국 정부가 추진했던 <밀레니엄 프로젝트>로 추진한 사업이었다. <밀레니엄 프로젝트>는 대처 수상의 뒤를 이은 존 메이저 수상이 1995년 영국의 화려한 부활을 예고하며 선언한 도시정책 프로젝트다. 세계 관광객들을 불러온 <그리니치빌리지 밀레니엄 돔>, 세계의 최대 회전 그네인 <런던아이>, 템즈강의 보행자 전용다리인 <밀레니엄 브릿지>, 그리고 낙후된 템즈강 남부의 재활성화가 이 프로젝트의 주요 사업이었다.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가장 성공적인 ‘테이트 모던’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랜 연구 끝에 만들어진 도시정책의 전략이었다. 재생은 새로운 시대로 나갈 수 있는 기회 우리나라의 도시들도 너나없이 재생을 성장 동력으로 내세운 길을 실천하거나 모색하고 있다. 전북의 각 시군에서도 도시재생 사업이 추진됐다. 외형적으로만 보자면 개선된 주거환경의 변화가 눈에 띄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도시재생의 영역은 그 스펙트럼이 넓다. 그중에서도 재개발을 통한 도시재생은 필요하지만 경계해야 할 부분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무분별한 난개발의 또 다른 실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뉴타운이나 재개발 건축 사업들은 가능한 프로젝트를 크게 만들어 큰 규모의 건설회사들이 독식하게 된다.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만들지 않으니 중소규모의 건설회사나 설계사무소 등 관계가 있는 업종의 작은 업체들이 일감을 맡을 기회는 줄어든다. 불균형한 구조의 악순환이 지속되면 경제민주화의 실현 또한 멀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도 최근 주목되는 움직임이 있다. 도시재생 사업 방식의 변화다. 이미 한 시대를 점철했던 재개발과 재건축이 되살아날 기미다. 물론 규제 완화나 철폐가 전제되어 있다. 그렇다면 재건축 재개발만이 오래된 도시의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일까. 답을 주는 도시들이 있다.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을 철저히 경계하며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든 오래된 도시들의 지혜와 선택이다. 재생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지 10여 년, 우리의 도시 환경은 큰 폭으로 변했다. 재생사업의 성과가 도시에 스며들면서다. 그러나 어느 사업이든 공과 과가 있는 것이어서 성과와 함께 새롭게 안게 된 문제도 적지 않다. 새로 시작하는 ‘도시의 시간, 성장 동력을 만들다’는 도시재생의 성과와 과제를 진단하는 기획이다. 그동안 추진해온 도시재생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분석하고 공유해 도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것이 취지다. 우리보다 앞서 도시재생을 시작한 일본의 도시와 국내외 도시 사례분석,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도시의 발전을 견인해나갈 도시재생의 성과와 과제를 살펴본다.

  • 기획
  • 김은정
  • 2023.06.01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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