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단상-책이란 무엇인가?
더위가 물러나고 가을이 온다! 천고마비(天高馬肥)로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요, 천고인독(天高人讀)으로 사람에겐 독서의 계절이다. 책 속에 길이 있고, 길 속에 들어있다는 책이건만, 독서인구가 줄어서 아예 책이 소멸할 거라는 전망이 팽배한 현실에서 되묻지 않울 수 없다. 도대체 책이란 무엇인가? 앙드레 지드가 말한 대로, ‘책이란 거울과 같은 것’ 불립문자인 책 거울로는 미진한 점이 없지 않지만, 책이란 추우면 한기를 막아주고, 더우면 그늘을 만들어 준다. 외로울 땐 가장 가까이서 서권기(書卷氣)로 나를 감싸주어서 오롯한 시간을 그와 함께 펼쳐 보내길 그 얼마였던가. 무한 허공이 있듯이 무한 생각의 책도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나는 감히 책이란 인간에겐 의식주요, 그중에서도 나 자신이 입고 사는 옷이라서 동고동락했느니, 신간 서적을 펼치는 순간마다 저자의 도서관 하나가 문을 열고 나에게로 다가왔다. 이 얼마나 가슴 뛰는 선물인가. 헌책이나마 그래도 옷이요 밥풀이 되어주었기로, 연애편지를 뒤져서 최상의 고백서를 일생이 모자라도록 쓰고 읽고, 쓰고 읽고, 평생을 희망의 옷깃으로 허기를 때우면서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느니...부자가 부럽지 않고, 가난이 부끄럽지 않은 건, ‘책 옷’의 훈 짐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ㄱ자도 몰라보는 노치원 어른도 폐품으로 나온 서적 뭉치를 보면 반색을 하고, 단번에 리어카에 싣고 고물상으로 달린다. 도서관은 옷으로 넘쳐서 입하 사절이라니, 거세게 달려드는 밀물 공황장애랄까. 허풍산이 발병 난 몸뚱이, 불안한 뇌파만 살아서 울부짖는 뭉크의 ‘절규’ 같은 그림이 없어지지 않듯이 글자도 없어지지 않는다. 왜? 옷이니까. 입어야 사는 생명체니까. 그림 한 점이 많게는 수백억도 넘게 호가하는 현실에서 문자 한자의 예술성이 그림에 못지않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와 ‘어’는 절묘한 예술의 경지를 잘 보여주는 명화 중의 명화다. 보라, 어머니의 어는 이에 점을 안에다 찍었다. 아버지는 이에 점을 밖에다가 찍었다. 얼마나 안팎으로 절묘한 세상 원리를 나타낸 예술 글자인가. 나무 목자 목(木)은 사람이 십자가를 보듬고 섰다. 승천하는 기상이 목(木)소리까지 살랑살랑 사랑을 풀어내는 현상이 얼마나 절묘, 신통 방통인가?!. • 점 하나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너’이고 ‘나’다. 님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남’에서 점 하나를 지워버리면, 그렇게도 기리는 ‘님’이거늘... 극과 극, 두 획 사람 人, 서로가 부족한 2/1이니, 의지 가지 청홍으로 만난 단짝이요. 음양 좌우 두 손, 요철凹凸의 길, 배와 배를 맞추는 통통선 기울지 않는 수평으로 출렁인다. 서로에게 원수가 아니라, 진실로 형평의 안정과 균형을 이루는 구원의 신이다. 이름하여, 청홍의 옷을 입고 하나로 휘돌아 나아가는 천생연분, 태극의 길이다. 옷을 입어야 사는 목숨, 책이 부자라야 우리 몸뚱이도 부유한 삶을 누릴지니, 책이 곧 우리들의 의식주요, 그중에서도 글자와 글자가 몸을 데워 주는 생기의 원천인 옷이라는 걸 망각하지 말지니. 오늘에 나 자신에게 외쳐 댄다. 화성 너머 은하를 넘어 ‘미래의 거울’, 출렁이는 파도 ‘책 옷’을 입고 찰랑찰랑 가잔 구나. 생명의 열망을 읽고 쓰고 읽고 쓰고, 건너야 하는 고해의 바다 무쏘의 뿔처럼 찔러대는 파도가 바다를 철썩철썩, 책을 채워, 나를 채워 가잔 구나. 책을 읽는 것보다도 TV 같은 비디오에 접하면 접할수록 인지능력과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지적했듯이, 책을 읽고 자연과 더불어 교감하는 교육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책을 존중하는 사회로의 열린 교육! 바로 지금이, 대자연 ‘책’이라는 거울을 들여다보고 귀 기울이는, 일상의 독서 생활화를 제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막장의 시점이다. 대자연 만유를 읽어야 할 책! 눈에 보이지 않는 무한 허공까지도 읽어야 할 공책 한 권!. 한 손엔 괭이를 들고, 또 한 손엔 드론의 책, 극과 극 청홍을 휘몰아 가는 상생(相生)의 길, 그게 곧 태극의 길 ‘책’이다. 드론을 채워 가는 이 가을의 단상, 온고지신(溫故知新) ‘책’을 삭여 먹으면, 밝아오는 생명의 정곡 진수를 털어내는 적멸일시 분명하다. 보라! 저 흩날리는 낙엽이랑 풀벌레 소리 이슬이 빛나는 책갈피마다, 열망의 끝에 불타는 ‘낙엽귀근’이자, 이 ‘가을 책’ 한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