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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선거, 그리고 아름다운 그 길

그 길은 아름다운 길이다. 강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면 작은 논을 지나 산아래 밭가로 그 길은 나 있다. 조금 더 가다보면 작은 마을이 나오고, 그 길은 마을 앞을 지나 들 가운데로 나간다. 그리고 세상의 어디로든 나갈 수 있는 도로가 나온다. 버스가 다니는 길에서 동네까지 걸어 30분쯤 걸리는 이 길을 나는 50여년쯤 걸어다녔다. 나는 그길을 내길로 알고 살았다.

 

그 길에 봄이 오면 길가에 서리를 하얗게 둘러 쓴 쑥들이 돋아나고, 작은 나물 꽃들이 피어난다. 논과 밭에서는 보리들이 파란색을 찾아가고 사람들이 논밭으로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면 길가에 있는 느티나무에 잎이 피어나고, 소쩍새가 찾아와 울고,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나면 사람들은 모내기를 했다. 모내기 철 학교에서 집에 가다보면 어디서든 하얀 쌀로 지은 못밥을 배가 터지게 먹고 갈 수 있었던 그 길, 여름밤이면 밤물을 대느라고 빤닥이는 담뱃불이 반딧불이와 함께 그 길을 아름답게 했다.

 

비가 오면 산에서 흘러내리는 생수가 길 가득 넘치고 우리들은 그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며 학교에 가고 집에 왔다. 가을이 되면 누렇게 익은 벼들을 척척 베어 넘기는 기운찬 농부들의 몸놀림들은 내게 지금도 삶의 경이이다. 길가에 빨갛게 익어 가는 늙은 감나무의 감이며, 길 가 밭에 고구마들은 우리들의 헛천난 배를 채워 주는 간식거리였다. 벼들이 다 떠나버린 늦가을 산밭에 파랗게 자라는 무도 늘 우리들의 표적이었다. 무를 뽑아 밭두렁 풀에 쓱쓱 문질러 이빨로 껍질을 대충 벗겨 한입 베어 물면 흰 무에 빨갛게 묻어나던 잇몸의 피.

 

아, 그런 일들로 우리들은 동네 사람들과 선생님들에게 그 얼마나 많은 잔소리를 들어야 했던가. 지금도 그 길에 들어서면 나는 그 때의 그 수많은 일들이 하나하나 꼬물꼬물 살아나곤 한다.

 

내가 어른이 되면서 나는 그 길에서 외로움을 배웠다. 어디 갔다 밤늦게 막차에서 내리면 막막해지던 작은 들판의 어둠과 검은 산자락 아래 반짝이는 불빛들, 그리고 달이라도 떠 있는 겨울밤이면 길에 패여 있는 작은 웅덩이 얼음을 파싹파싹 깨뜨리며 걷던 그 적막함, 그리고 나는 그 길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시를 쓰고 세상을 사랑하는 이치를 하나하나 터득해 갔다.

 

그 길이 새마을 사업으로 이리저리 변해갔다. 길은 넓혀지고 길가에 있던 우물은 사라지고, 오랜 세월 우리들의 간식을 제공해주었던 다정한 감나무는 베어지고, 좁은 논들이 길로 변했다. 그리고 차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길은 선거 공약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선거 때만 되면 입후보자들이나 선거 운동원들은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우리 후보가, 내가,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이 되면 이 길을 말끔하게 포장하겠노라고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그들을 늘 대통령으로, 국회의원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으로 내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당선과 함께 그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리고 선거 철이 되면 그들은 또 나타났다. 면장을 대동하고, 군수를 대동하고, 그리고 또 똑같은 소리들을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해댔다. 드디어 지방자치시대가 시작되었다. 이제 선거가 더욱 많아졌으므로 그 길을 포장하겠다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만 갔다. 그러고도 끄떡 없던 그 길이 장장 30여년만인 1999년 세기말 무렵에야 역사적인 시멘트 포장을 하게 되었다. 실로 엄청난 일이요 필설로 다 하지 못하는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 선거가 또 있어야 함으로 그 길은 아직 몇백 미터 비포장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 그 길을 다니던 우리 동네 사람들은 몇 명 남지 않았다. 그 길이 포장되는 꼴을 보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뜬것이다. 길은 포장이 되었으되 그길을 다니는 사람들은 우리 동네 사람들보다 차 타고 다니는 외지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동네에 인물이 없어서 그 길포장이 되지 않는다며 순박한 동네 어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그 길, 이제 또 몇 명이 나타나서, 내가 국회의원이 되면 남은 저 길을 포장하겠다며 착하고 선한 농부들의 표를 사정사정 달라고 할 것인가.

 

/시인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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