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 전북일보 편집국장
민주당과 전라북도간 정책간담회에서 언급된 '전북도민은 너무 점잖다' 발언이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든다. 언론인 출신인 이낙연 민주당 원내대표(전남 영광· 함평)가 '도민은 물론 정치인들이 너무 얌전하고 점잖다'도청 간부들에게 쓴소리를 날렸다.
울어야 젖을 얻어먹는 것처럼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전북이나 전남 같은 지역은정부에 대고 짖어대야 현안들이 풀리는데 전북에서는 그런 목소리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뒤집어 보면 전북은 전남보다 점잖아서 국가예산이나 정부 프로젝트 배정에서 손해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선거 때마다 여당에 몰표를 주었는데 그 댓가는 형편없다는 정서가 강한 상황이어서 그의 이런 발언에 공감하는 기류가 만만치 않다. 어느 네티즌은 “전북은 더 이상 선거철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주고도 대접받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며 핫바지 노릇을 하지 말자는 글을 띄우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91.5%라는 압도적 지지를 받았던 지역이 전북이고,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 11명 전원이 당선된 지역도 전북이다. 전국의 광역자치단체장중 도지사가 유일하게 열린우리당 소속을 갖고 있는 지역 또한 전북이니 노무현 정권에 대한 기대가 부풀 만도 하다.
그러나 실은 되는 게 별로 없다는 정서가 지배적이었다. 동계올림픽 유치 건은 강원도로부터 각서까지 받아놓고도 물건너 갔고, 호남고속철도는 ‘출발은 늦었지만 완공시기는 경부 고속철도와 똑같이 하겠다’는 과거 정부의 약속이 파기되고 이젠 경제성을 들먹이며 차일피일 늦춰지고 있다. 국책사업인 새만금사업은 법원 판단에 좌지우지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공군 사격장인 고군산군도의 직도를 국방부 관리로 이전한다는 방침이 나왔고 새만금지구에 1,000만평 규모의 군사용 공항을 건설하겠다는 국방부의 언급이 있었지만 정치권은 '열중 쉬어' 자세다. 공공기관 역시 '빅3'는 커녕 부가가치가 하향세인 기관만 검토되고 있다. 이러니 핫바지론이 나올 만도 하다.
핫바지론은 과거에도 나왔었다. 전북지역이 DJ(김대중 전 대통령) 아성이었던 평민당 시절 일부 공천탈락자와 상대 정당이 주로 제기한 주장이었다. DJ에 표를 몰아주었지만 정부 예산이나 대규모 프로젝트는 전남에 편중되고 전북은 들러리만 서더라는 것이었는데 십수년이 지난 지금 핫바지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전북은 지금 국회의장과 장관, 원내대표, 예결위원장, 청와대와 코드가 맞는 국회의원 등 다른 어느 때보다 지역발전을 추스려 나갈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지역의 현안들이 덜커덩거리고 돈이 없어 사업을 제대로 굴리지 못한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이낙연 의원의 말마따나 너무 점잖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높은 자리에 오르니 변심해서 그런 것인지 또는 가만히 있어도 표 찍어주는 지역이라는 인식 때문에 그런 것인지 등등….
초록은 동색. 아마 똑같은 색깔구조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정치권은 지역의 리더인데 그들이 청와대나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지 않으려 한다면 점잖다는 소릴 듣게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현상이 지역이익에 부합하면 모르되 그렇지 못하면 당연히 문제제기가 있어야 한다.
전북-전남은 예산이나 커다란 프로젝트를 놓고 앙숙처럼 경쟁해 왔고 그럴 때마다 전북은 패배를 맛보기 일쑤였다. 주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 했고. 그런데 이젠 전남지역 국회의원한테 너무 점잖다는 충고까지 듣는 전북이 됐다. 전북은 뭐하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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