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런던에서 먹고, 점심은 파리에서 먹고, 저녁은 뉴욕에서 먹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얼핏 들으면 마치 비행기를 타고 세계일주라도 하는 사람들 처럼 들릴지 모르나 실은 우리 주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많은 간판들이 다른 나라의 글로 되어 있다는 것을 꼬집는 말이다. 간판에 써놓은 글의 뜻이 무슨 말인가도 모르면서 마치 훈장이라도 달은 것처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 어디 그뿐인가. 아직 우리 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 아기들까지 에이, 비이, 시이를 가르치려는 극성스런 아버지 어머니들, 국어 점수야 좋든 말든 외국어 점수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국어 교사보다 외국어 교사가 대접받는 우리 사회의 편협된 사고방식,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글과 말의 권위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어떤 통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 중학생의 1.73%가 한글을 읽지 못하고, 초등학교 2·3학년 수준의 학력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조사보고가 나와 교육 당국은 물론,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킨 일이 있었다. 이 조사에 의하면 한글을 읽을 수는 있으나 스지 못하는 학생 수는 0.54%로, 중학생 6.62%가 한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중학교 학생이 이정도라면 초등학교 학생은 또 어떠하겠는가.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제 나라 글도 잘 모르는 사람이 다른 나라의 글을 잘 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 설사 잘 안다고 해도 그런 사람을 어디에 쓸 것인가.
만약 이러한 때 세종대왕이 살아돌아 오기라도 한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참으로 한심한 백성들, 어쩔도리 없는 사대주의 찌꺼기들 이라고 탄식을 하지 않았을가 싶다.
쓰기 쉽고, 읽기 쉽고, 배우기 쉽고, 말하기 쉬운 우리 글을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학자들을 동원, 과학적이고 철학적이고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는 위대한 한글을 만들어 놓았는데도 우리 겨레의 영원한 유산인 한글을 멸시하고 천대해서야 어찌 문화민족이라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호되게 꾸짖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한글의 수난의 역사도 우리 민족의 고통만큼이나 오육의 시대를 함께 살아온 셈이다. 조선시대에는 한문의 그늘에 가려 무시를 당해왔고, 일제시대는 한글의 말살정책에 숨을 죽이며 살았고, 해방 후에는 외래어의 물결에 휩쓸려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계속 위협을 받아왔다. 예컨데 상처투성이의 생명만 겨우 유지되어온 셈이다.
몇년 전 일본 귀타큐우슈시에 있는 코쿠라교회 최창화목사는 NHK방송 뉴스 시간에 자신의 이름을 한국식 발음이 아닌 일본식 발음으로 방송을 했다고 해서 인권침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려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최목사는 이 옷장에서 ‘이름을 개인의 인격과 민족주체의 상징’이라고 반박하고 앞으로 한국인의 이름은 한국의 발음으로 방송하자고 요구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신선한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글과 말은 모든 행동의 시작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지금 언어의 혼란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신문 잡지 방송 쉼 없이 쏟아지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도대체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외래어 속어 저속어가 온통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는 얘기다.
10월은 문화의 달이자 9일은 한글날이다. 이날만이라도 다시 한 번 우리 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서재균(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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