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전북일보 논설위원)
우리의 좋은 풍습중 하나가 정초(正初)에 덕담을 주고 받는 것이다. 덕담은 상대방이 잘되기를 기원하면서 복을 빌어주는 말이다. 흔히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 ‘부자되세요’ ‘소원 성취하세요’ 등의 인사말이 그것이다.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기록한 책에는 덕담에 관한 대목이 여럿 나온다. 순조때 열양(冽陽), 즉 서울(漢陽)의 연중 행사를 기록한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고 한다.
“설날부터 사흘 동안 길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새해 안녕하시오’ ‘올해에는 꼭 과거 급제하시오’ ‘부디 승진하시오’ ‘아들 낳으시오’ ‘돈을 많이 버시오’ 등 좋은 일을 들추어 하례한다”
또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도 유사하다. 정월조(正月條)에 “친구나 어린 사람을 만나면 과거급제(登科), 승진(進官), 아들 낳기(生男), 돈벌이(獲財) 등의 말로 덕담을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덕담을 하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말에 영적인 힘이 있어서 말한대로 이루어 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언령(言靈)신앙이다. 새벽에 정화수를 떠 놓고 비는 것도 그렇고, 기독교의 기도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해다. 벌써부터 각축전이 심하다. 대선 주자들이 전국 투어를 돌고 언론사마다 여론조사 발표가 잇달고 있다. 각 후보들의 선거 캠프가 차려졌고 지방에도 조직정비가 이뤄지고 있다. 전북의 경우 정동영 김근태 조직 이외에 고건 이명박 후보의 조직이 속속 갖춰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보면서 올해도 얼마나 많은 말잔치가 펼쳐질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장밋빛 공약에서 부터 각종 유언비어와 흑색선전까지 난무할 것이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말과 보수언론의 증오에 가까운 독설까지 합세하면 ‘말의 악취’가 진동하지 않을까 지레 겁부터 난다.
말은 하는 사람의 인격이요, 사상의 옷이다. 남의 가슴에 못을 박기도 하고 찡그린 얼굴에 꽃을 피워주기도 한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옷감은 염색에서, 술은 냄새에서, 꽃은 향기에서, 사람은 말투에서 그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옛말에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고 중국에서는 ‘온정이 깃든 말은 삼동(三冬) 추위도 녹인다’고 했다. 반면에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고 말의 경솔함을 경계했다.
또 논어에는 사불급설(駟不及舌)이란 말이 나온다. 네마리의 말이 끄는 빠른 마차라도 혀의 빠름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한번 내뱉으면 그만큼 빨리 퍼지고 또 취소할 수 없는 것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미련한 자는 그 입으로 망하고 그 입술에 스스로 옭아 매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덕담은 상대방에게 복을 주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을 복되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공자는 정치의 ‘정(政)은 정(正)’이라 했다. 지도자가 솔선해서 몸을 바르게 가지면 국민들이 바르게 행하고 따른다는 것이다.
올 12월 대선은 보수와 진보, 동과 서의 일대 격돌이 예견된다. 거친 말들이 파도처럼 일렁일 것이다. 악담보다 덕담이 넘치는 한 해 였으면 한다.
/조상진(전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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