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진, 남도의 해돋이 '장관'
강원도 '정동진'은 해돋이 명소의 대명사다. 90년대 중반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 촬영지여서 더 유명해진 정동진은 서울 광화문에서 정 동쪽으로 내달리면 도착하는 나루라는 데서 유래했다. 그럼 광화문에서 정남진(正南津)은 어딜까? 전라남도 장흥군이다. '정남진의 해돋이도 멋지다'는 이야기는 광주·강진·장흥 일대에 아내의 친척·친지들이 살고 있기에 자주 들었다. 2011년 첫 날 새 해를 정남진 장흥에서 맞았다.
▲ 멀고 힘들었던 정남진 가는 길
정남진 새해맞이 여행에는 장인·장모·처남 가족과 아내의 이모네까지, 돌이 안 된 젖먹이를 포함해 모두 스무 명이 참석했다. 장흥은 전주에서 200㎞ 가까이 되지만 처가의 친척·친지 집 방문차 몇 번 다녀온 적이 있어 낯선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해맞이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지난 연말 광주를 비롯해 나주·영암·강진·장흥에 30~40㎝의 큰 눈이 내려 도로 상황이 좋지 않은 것. 하지만 이미 마음들이 들떠 있었고 숙박도 예약했기에 모두들 무모하지만 과감하게 "가자!"에 합의했다.
광주와 나주는 어느 정도 제설작업이 돼 '갈 만 하네'라며 유유히 지났다. 복병은 영암이었다. 영암군의 도로에는 내린 눈이 그대로 덮어 있었다. 게다가 눈발까지 거세졌다. 자동차들은 그야말로 설설, 엉금엉금 기어갔다. 가속 페달에서 아예 발을 떼고 앞 차 바퀴 자국 위를 조심스레 뒤따랐다. 가드레일과 충돌해 멈춰 선 차들을 보니 어깨에 힘이 더 들어갔고 핸들을 쥔 손에는 땀이 났다. '마의 구간' 영암을 간신히 빠져나와 강진을 지나 목적지인 장흥 안양면 수문리와 용곡리, 일명 '키조개마을'에 도착하니 탁 트인 겨울바다가 힘들었던 여정을 위로했다. 평상시 넉넉잡고 전주에서 자동차로 2시간 30분, 광주에서는 1시간 30분 정도면 도착하는데, 이날 광주에서 이곳까지 4시간이 넘게 걸렸다.
▲ 싱싱하고 푸짐한 키조개 만찬
키조개마을로 가는 길은 종려나무들이 안내했다. 종려나무는 전주시도 가로수로 추진하고 있는 아열대 수종인데, 온통 하얀 세상에서 푸른 때깔이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드넓은 바다가 보이는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키조개마을에는 장흥 유일의 해수욕장인 수문해수욕장을 중심으로 민박촌이 형성돼 있고 인근에 찜질방·실내외 물놀이 시설·호텔급 객실을 갖춘 16층의 옥섬워터파크와 여러 펜션 등 숙박시설이 많았다.
마을 특산물이 키조개라는 것을 반영하는 듯, 옆 민박집 마당에는 '키조개 선글라스'를 낀 귀여운 눈사람이 서 있었다. 저녁식사 메뉴는 당연히 키조개. 이 곳 키조개는 '먹을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다'는 득량만(得粮灣) 청정해역인 '여닫이 갯벌'에서 나오며, 생산량의 반은 일본으로 수출된다고 한다. 마을에는 지난해 11월 TV예능프로그램의 식도락 여행 장흥 편에서 연예인들이 들렀다는 음식점을 비롯해 여러 키조개 전문요리점이 문을 열어 놓았다.
키조개는 축제가 열리는 5월께 가장 맛있다는데, 겨울철에도 제 맛을 잃지 않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서도 키조개를 구입해 맛 볼 수 있다. 민박집 주인은 어른 손바닥보다 더 큰 싱싱한 키조개를 푸짐하게 구해다 주고 손질까지 해줬다. 키조개 속살[패주(貝柱)·관자]은 열을 가하면 영양가를 잃으므로 생으로 먹는 것이 좋지만, 준비해 간 숯불을 피우고 키조개 껍데기 위에 살짝 구워 먹으니 더 쫄깃쫄깃하고 담백했다.
▲ 남포마을 석화구이의 깊은 맛
다음날 어둑새벽 새 해를 맞이하기 위해 선착장 쪽으로 향했다. 유명 해돋이 장소처럼 북적거리지 않아서 좋았다. 바다 건너 먼동이 희끄무레해지면서 2011년 첫 해가 '예쁘게' 솟아 올라왔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연발하며 새해맞이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하늘은 맑고 바람도 잔잔해졌지만, 도로 위 눈이 제대로 치워지지 않았기에 장흥의 다른 여러 명소를 방문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다음을 또 기약하고, 키조개마을에서 10여㎞ 떨어진 장흥군 용산면 상발리 남포로 이동했다. 이 작은 바닷가 포구는 영화 '축제'의 주 촬영지였던 곳이다. 마을 앞에 있는 소의 등을 닮은 '소등섬'은 소나무 몇 그루를 품고 있다. 바닷물이 밀리면 섬까지 걸어갈 수 있으며, 소등섬을 배경으로 떠오르는 해 또한 장관이라고 한다.
특히 이 마을은 자연산 석화(石花?굴)의 산지로 일명 돌꽃마을이라고 불린다. 겨울철이면 맛이 더 깊어진다는 싱싱한 굴을 먹기 위해 찾는 이가 많다고 한다. 석화구이 집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갔다. 나무 탄 매운 내와 '바다의 우유'인 굴 내가 자욱했다. 바다에 띄우는 스티로폼 부표에 앉아 화덕에 장작을 지피고 석쇠 위에 굴을 올렸다. 곧 강한 불을 쐰 굴들이 '탁탁' 소리를 내며 익어갔다. 면장갑을 끼고 조새(굴 까는 갈고리)를 이용해 껍데기를 벌린 뒤 도톰한 속살을 맛보았다. 굴 육수로 끓인 떡국도 한 그릇씩 먹었다.
여행정보에 따르면 장흥은 한반도에서 겨울에도 봄빛이 가득하고 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이라고 한다. 새 봄이 오기 전, 봄을 먼저 만나기 위해 한 번 가볼만한 곳이라고 생각하며 정남진을 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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