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동시대 영화의 지도 그리기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다시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이같은 '재발견'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오해했던 경우, 나이가 필요한 영화일 경우, 반대로 그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경우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스펙트럼이 넓은, 매우 적극적인 이해를 요구하는 곳이다. 28일 개막하는 '제12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앞두고 전북일보가 'JIFF를 다시 발견하는 힘'을 연재한다. 영화를 본 뒤 단정적인 별점을 매기기 보다는 그 영화에 대해 자꾸만 생각할 것을 권한다. 그것만이 영화를 보고 나서 죽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체성으로 거론되어 온 '대안과 독립'은 실험적 영화에 대한 힘 기울이기로 열 두해 동안 두드러지게 나타나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나 이러한 자존심은 열두 번 째 영화제의 튼튼한 힘이 되었다. 이번 영화제에는 예년에 비하여 많은 다큐멘터리 작품들이 선보인다.
프로그래머로부터 추천받은 작품은 <니콜라이 차우세스쿠의 자서전> ,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 , <선물가게를 지나는 출구> , <테이프> 이다. 2001년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의 프런티어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작품들과 함께 일본의 오가와 신스케의 <해방전선> 다큐 시리즈가 소개된 바 있었다. 그 때의 영화 관람으로 다큐멘터리 제작현장이야말로 '전장'이라는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다큐멘터리는 드라마와 같은 픽션적 영화들과는 달리 제작 목적, 제작 과정과 그 방식에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 실로 그 '현장'과 '실험'이 그 다큐의 명맥을 살리기 때문에 관객에게 끼치는 미디어로서의 힘은 지대하다. 오늘의 영상 세계에서 다큐멘터리가 차지하는 역할이 확대되어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해방전선> 테이프> 선물가게를> 빛을> 니콜라이>
▲ 루마니아 안드레이 우지카 감독의 <니콜라이 차우세스쿠의 자서전 (2010)>니콜라이>
루마니아의 철권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세스쿠가 권좌에서 내려진 후 처형되기 직전의 인터뷰 장면이 흐린 영상으로 소개된다. 티미소아라 집단 학살의 주모자임을 묻는 이 장면이 오픈닝과 클로징으로 편집된 180분의 방대한 장편기록물이다. 감독은 단지 수집한 과거의 기록 영상 필름 자료들을 순차적으로 편집한다. 놀랍게도 영상 상태는 최상의 것으로 차우세스쿠 자신을 위하여 집권 당시 선전홍보 목적으로 기록해놓은 생생한 영상물들이 시기에 따라 편집되어있다. 권력을 장악한 젊고 패기 넘치는 차우세스쿠는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국민 앞에 나타난다. 크지 않은 키, 곱슬머리, 활달하기 이를 데 없다. 거칠 것 없는 행동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공산당 중앙 서기장에서 독립 국가의 초대 대통령으로, 당 서기장으로 국가수반으로 철권 독재자로 올라서는 전 과정이 놀랄 만큼 선명하게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 영상물은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그의 동반자로 등장한다. 프랑스의 드골, 첵코의 두브첵크 그리고 미국의 닉슨 등, 중공의 모택동과의 만남, 대통령으로 왕홀을 받아 기립박수를 받는 화려한 모습들, 미국방문으로 카터 대통령 접견,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접견, UN 본부 참석 등 실로 그의 자서전은 화려하다. 한 독재자의 허무한 삶을 목격한다.
▲ 영국의 뱅크시 감독의 <선물가게를 지나는 출구>선물가게를>
먼저 뉴욕의 지하철을 상상하시라. 지저분한 벽 낙서들, 스프레이의 메케한 냄새와 함께 역겨운 낙서들이 떠오른다. 이른바 그래피티(길거리 미술), 이제는 엄연한 예술의 세계에 진입한 미술 영역이다. 영국의 런던, 현대미술 그것도 그래피티의 대가 아티스트 뱅크시가 출연한다. 그러나 막상 영화는 뱅크시에 관한 가게주인의 의도가 뒤집혀 괴짜 인간에 대한 뱅크시의 기록물이 된다. 영화를 이루는 여러 컷들 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종이 미술의 프린팅도 등장한다. 승용차 위에서 질주하며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달리는 화물열차를 향한 스프레이 퍼포먼스가 다양하게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도시 전체가 사물전체가 화폭이다. 그들은 그려대고 경찰은 그들을 잡으려 쫓고 쫓기는 아티스트들의 활동은 그야말로 도시의 게릴라 작전임을 말해준다. 그들은 작은 선물가게를 통해 쫓는 이들을 피해 탈출한다. 인터뷰를 하는 검은 망토는 <스타워즈> 의 '데스베이더'를 연상시키며 우리로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LA의 도심지, 이스라엘 팔레스틴의 시멘트 처절한 장벽에도 그들의 자유와 평화의 그래피티가 뿌려진다. 그들의 행위예술은 시대와 사회를 향한 저돌적이고 도전적인 부르짖음이다. 사람의 앤디 워홀의 탄생을 예견할 수 있는 이 영화에서는 백남준의 비디오 행위 미술을 쏙 닮은 작품들과 뱅크시의 아트 포퍼먼스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스타워즈>
▲ 중국의 전위 안무가 리 닝의 <테이프>테이프>
중국 산동성 성시인 제남(지닌)시의 재개발지역이 그 무대다. 도시의 곳곳이 행위무용 전위 댄스의 무대가 된다. 리 닝이 직접 안무를 하며 훈련을 시키는 현장으로부터 임신에서 육아의 과정을 겪는 아내와 자라나는 아이와의 내면적 관계를 저변에 깔면서 제자들의 수습과정을 독려하는 수년 간의 기록물이다. 도시의 어느 곳도 그들의 무대 아닌 곳이 없다. 동토와 같은 재개발지구, 얼어붙은 강의 얼음을 깨고 벗은 몸으로 들어가거나 누드의 몸으로 도심을 걷는 그들은 개인으로나 그룹이 펼치는 전위 행위다. 몸의 예술이다. 몸부림의 퍼포먼스다. 도시가 그들의 전 무대다. 특히 폐허가 된 곳들 폐차장, 허물어진 건물 사이사이에서 그들은 제목 그대로 테이프로 몸을 감고 서로를 얽어매며 화공본드나 물풀들로 몸을 비비며 몸부림친다. 그들의 항거의 몸짓을 즉각 알아낼 수 있다. 서로를 뗄 수 없는 서로에게서 자유로워야하는 도시민들의 향수를 안고 그들은 여전히 항거의 춤을 추고 있다. 전위예술안무가로서,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아이의 아버지로서 사회적 책임과 진정한 자유의 실천을 2005년에서 2010년에 이르는 기간 그들이 지난(제남)시에서 벌렸던 행위예술의 집합체를 볼 수 있다.
▲ 칠레의 파트리시오 구스만 감독의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2010)>빛을>
어린시절 독일제 망원경이 우주공간에 대한 열정을 갖게 해 주었다는 나레이션은 "그 어린 시절, 칠레는 평화로운 천국이었다."는 톤으로 바뀌는 오프닝은 칠레의 세계적인 아타카마 사막 라 살레의 천문대 천체 관측소를 근접영상으로 소개한다. 오픈 신에서 보여주는 아름답고 잔잔한 영상이 보여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가슴 아픈 내력을 깊숙이 담고 있다. 칠레의 비극이 담겨있고 또한 그 비극의 극복을 잔잔하게 말해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영상미 넘치는 작품이다.
감독은 천체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펼쳐 보여주는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의 천문대(건조함과 청명함의 중심지 라 살레)통해 보는 저 광막한 천체와 행성들과 은하수의 무수한 무리 별들이 회전하는 사막위의 밤하늘, 별바다는 말 그대로의 신비를 보여준다. 그 별들은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고 죽는다. 그 별들의 주성분은 칼슘이란다. 만 년 전에 형성한 이곳, 사막지역에 살았고 묻혀버린 신비로운 칼슘 덩이의 미라와 인골들처럼 이곳에 수용되었던 광산 노예들의 수많은 인골들을 기억하게 한다. 뿐만 아니다. 감독이 말했던 것처럼 그토록 평화롭던 칠레를 지옥으로 만들었던 독재자 피노체트에 의해 실종되어 이곳 사막에 집단 매장된 역사도 기억하게 한다.
감독은 또 다른 장면을 보여준다. 기억을 잃고 있는 조부모를 바라보며 실종 부모를 기억하고 있는 칠레의 여성 천문가. 그는 아타카마 천문대의 망원경을 통해 펼쳐지는 광활한 은하계와 행성들의 신비 속에서 그 아픔의 의미를 찾는다. 35mm필름을 통한 천체들과 사물들의 최상의 아름다운 영상을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 이영호(전북독립영화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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