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 몫의 주민숙원사업 예산을 아예 한푼도 편성하지 않았더니 의원들이 난리가 났다. 안달이 난 의원들이 '예산심의 때 두고 보자'는 등 별의별 궁리를 다했다. 그래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예결위원장이 찾아와 의원들의 예산을 세워 달라고 하소연하더라."
어느 자치단체의 군수가 털어놓은 에피소드다. "의원 몫의 예산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정도도 아닐 뿐더러 군민을 속이는 짓이기 때문"이라는 게 당시 군수의 생각이었다.
한 해 살림의 칼자루를 쥔 예결위원장의 요구를 집행부가 무시한 것도 놀랍지만, 예산심의 책임자가 체면을 구기면서까지 군수를 찾아가 자신들의 몫을 배려해 달라고 하소연한 것 역시 놀라운 일이다.
의원들이 예결위원장을 군수한테 보내 자신들 몫의 주민숙원사업비를 편성해 달라고 '간청'하는 촌극이 벌어졌다면 의원들한테는 그만큼 요긴했을 것이다. 도대체 소규모 주민숙원사업 예산이 뭐길래?
소규모 주민숙원사업은 마을 안길 포장이나 하수구 정비, 도로개설 및 확포장, 선착장 조성, 저장시설,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신축 등 규모가 작은 사업을 이른다. 주민 민원성 사업도 있고 선심성 사업도 있다.
이런 사업들은 대개 단체장이 포괄적으로 활용하는 재량사업비에서 집행된다. 그래서 단체장 호주머니 돈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돈 일부를 의원들이 자기 몫으로 돌려 쓰겠다는 것이다. 예산심의권을 무기로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
전북도는 도의원 몫으로 개인당 연간 4억 원씩 책정해 놓고 있다. 의회 부활 초기엔 5000만원이었던 것이 이처럼 불어났다. 전북교육청도 도의원 몫으로 개인당 1억 원씩 배정했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시군의회도 마찬가지다. 의회의 예산심의권에 대한 댓가성이다.
이 예산이 문제가 되는 건 생색내기용, 선거운동용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 수의 계약인 데다 시공업체는 해당 의원한테 리베이트를 건네는 경우도 있어 비리 개연성도 있다.
최근 도의회가 의원 몫의 주민숙원사업을 풀예산 대신 개별사업에 넣겠다고 했다. 그래도 '의원 몫'이라는 건 살아있다. 눈가리고 아옹하는 격이다. 핵심은 '의원 몫'을 없애는 건데 이걸 실행하지 못하니 안타깝다. 그러고도 집행부한테는 예산편성의 잘못을 따지며 떳떳하게 행동한다.
/ 이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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