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동교회 예배당은 남녀평등 추구한 ‘ㄱ자 구조’
익산으로 향하는 10월의 풍경은 노랗다. 추수를 끝낸 들녘은 짧게 머리 자른 까까머리 중학생을 닮은 듯하고, 황등 돌산의 깎인 절벽은 늦가을의 햇살을 머금고 누렇다.
익산 두둥교회, 두동편백마을, 나바위성당과 산책로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이 가득한 채 10월의 익산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종교를 떠나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닌 교회와 성당은 여행지로도 제격이다.
△ 원시적인 방법으로 길을 찾다
익산을 출발하면서 이제는 보편적인 길 찾기의 수단이 된 내비게이션을 끄고 두동편백마을을 찾기로 했다. 익산 시민이지만 초행길인 두동편백마을을 도움 없이 찾기로 한 것이다. 길을 잘못 들면 잘못 드는 대로, 길을 모르면 길가에 차를 멈추고 동네주민들의 길 안내로 찾기로 했다. 최첨단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여행법을 택한 것은 옛 모습을 고이 간직한 두동교회에 대한 경외감도 한 몫 했고, 편백나무 숲을 거닐 수 있다는 원시적인 기대감도 한 몫 했다.
함열을 지나 성당 쪽으로 향하면서 잠시 길을 잃었다. 저 멀리 한가로운 오후를 맞이하는 우체국이 보여 잠시 길을 묻는다. 낯선 이의 등장에 반가움으로 손수 도로까지 나와서 길안내를 하는 우체국 직원의 손끝에 정겨움이 가득하다. 기계적인 내비게이션보다 정겨움이 물씬 묻어나는 사투리에 짧은 여행길이 즐겁다. 우체국 직원의 손끝을 따라 1~2분 정도, 두동편백마을 이정표가 보이고 저 멀리서 낮은 담장 위로 그려진 벽화가 어서 오라 손짓한다.
△ 두동마을, 느리게 걷다
마을 초입에 내려 10월의 햇살을 온몸으로 맞는다. 두동교회로 향하는 발걸음이 설렌다. 오랫동안 간직된 옛 건물에 대한 궁금증과 ‘ㄱ자 구조’를 지닌 옛 교회의 풍경이 나를 과거로 돌려줄 것 같은 착각과 기대감. 정보화센터를 돌자 오래된 교회종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목탑에 설치된 교회 종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맑게 울려 퍼지는 소리가 들릴 듯하다.
“그 종은 우리교회 두 번째 종이에요.” 갑자기 들려온 말에 깜짝 놀라 뒤돌아보자 두동교회 목사님께서 짧은 안내를 해주신다. 일제침략전쟁 때, 첫 번째 종을 수탈당하고 그 이후에 만들었다는 두 번째 종. 옛 종을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옛 풍경을 살려 새로 목탑을 만들고 걸었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래된 건물에 조화롭게 세워진 종이 두동교회의 오랜 역사처럼 낡아있었다.
익산시 성당면 두동리 385-1번지에 있는 두동교회(전북도 문화재자료 제179호)는 1923년 해리슨 선교사에 의해 설립됐다. 초기 기독교 전파 과정에서 남녀유별의 관습이 남아 있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나타난 ‘ㄱ자 구조’의 실내를 천천히 구경하고 창틀과 오래된 풍금의 나이테를 가늠해봤다. 남북축을 이루고 있는 곳이 남자석이고 동서축은 여자석이다. 남자 석이나 여자 석이 33㎡(10평)정도 크기가 똑같다. 설교자는 남자 여자 석을 모두 볼 수 있었지만, 예배당 안의 남녀 신도들은 서로 보지 못하였다. 남녀 석 공간 크기가 같게 한 것이나 강단이 남녀 석 가운데 향하게 배치한 것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두동교회 ‘ㄱ자 구조’의 예배당은 남녀를 구분하면서도 남녀평등을 추구한 묘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 구조는 두동교회와 김제 금산교회 등 두 곳 밖에 남아 있지 않다. 두동교회를 뒤로 하고 마을을 돌아 ‘생태탐방로’라 이름 붙여진 편백나무 숲으로 향한다. 편백나무 숲, 가는 길이라는 푯말을 따라 걷는다. 편백나무의 향이 99173m²(3만 평) 길을 따라 먼저 마중 나온 듯 온몸을 감싸 안는다. 수령 30년 이상 된 나무들로 조성된 편백나무 숲.
편백나무의 곧은 줄기가 숲을 이루고 있어 장관이다. 숲으로 다가갈수록 편백나무 특유의 향이 강해져 온몸 곳곳에 향이 밸 듯하다. 편백나무 숲으로 걸어 들어가며 얇은 외투를 벗는다. 안내자분의 귀띔에 의하면 오전 9시와 11시 사이 삼림욕을 하기에는 최적의 시간대란다. 이 시간대에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 발생양이 최고조에 이르러 몸속 병원균은 물론 해충, 곰팡이 등을 없애준다. 또한 항암효과, 심폐기능 강화, 말초혈관 단련 그리고 피부 소독 및 호흡기 강화에 큰 도움을 준다.
△ 고딕양식 갖춘 한옥 성당 국내 유일
두동교회가 있는 성당면과 맞닿아 있는 망성면 화산리의 나바위 성당(국가지정문화재 제318호)은 ‘한옥 성당’으로 유명하다.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1845년 사제 서품을 받고 중국에서 귀국하면서 첫발을 디딘 곳이다. 성당이 있는 주변에 너른 바위들이 많아서 ‘나바위’라 이름 붙여진 것으로 전한다.
기와지붕이 겹으로 쌓여있고 지붕과 지붕 사이에는 팔각형 유리 창문까지 있다. 예배당 바깥쪽 양 옆으로 우리나라 고궁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회랑까지 있다. 본당은 고딕양식의 차갑고 웅장한 이미지와 한옥이 주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동시에 가졌다. 이런 양식의 성당 건물은 국내에서 유일하다.
성당 주변은 산책하기 좋다. 본당 건물 뒤쪽 언덕으로 산책로가 갖춰져 있다. 산책로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 부활의 메시지를 담은 ‘십자가의 길’이 있다.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으로 올라가 던 순간을 담은 열네 개의 부조가 세워져 있다. 단풍이 빨갛게 말라가는 풍경 속에 고난의 예수를 조형적으로 담은 부조는 비록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옷깃을 여미게 한다. 인적이 드무니 숲길을 홀로 거닐다 보면 믿음이 없더라도 적잖은 위안을 받게 될 것이다. 언덕 정상에는 ‘김대건 신부 기념비’가 있다. 우리나라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후 첫 발을 디딘 곳이 지금의 성당이 있는 자리다. 그는 이후 1년 만에 순교한다. 기념비는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타고 왔던 돛단배와 같은 높이로 만들어졌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는데 아주 웅장하다. ‘망금정’이라는 정자도 있다. ‘금강을 바라보는 정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기 오르면 금강과 황산벌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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