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의 본향…‘추임새’ 넣다보니 ‘귀’ 절로 열려
2011년 10월, 전주 국악방송(FM 95. 3MHz)이 전주 한옥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전국에서 다섯번째 개국이지만, 서울을 제외하고는 프로그램 자체 제작이 가능한 가장 큰 규모. 박준영 국악방송 사장은 “귀명창이 많기로 소문난 전주는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악의 수도”라고 했다. 판소리 격언에 “귀명창 있고 명창 있다”고 했다. 소리를 제대로 음미하고 소리꾼 경지의 높고 낮음을 가늠해내는 귀가 걸출한 명창을 낳는 법. 소리를 듣고 추임새 넣어가며 장단 맞추는 고수의 ‘귀의 힘’이 명창의 ‘입의 힘’보다 크다. 판소리는 등장인물과 다양한 상황을 실감나게 펼쳐내는 소리꾼의 재주, 여기에 화답하여 동화되는 관객이 일체감을 이룰 때 진정한 예술성에 다다를 수 있다. 전주에 유독 귀명창이 많아 판소리의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 전라도 사투리로 하는 판소리
“그래도 귀명창이 많으니까 전주오면 소리헐 맛이 나.”
일흔을 훌쩍 넘긴 노장 송순섭 명창은 전주 공연의 의미를 여기서 찾았다. 이처럼 소리꾼들은 전주에서 소리하는 것을 즐기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워한다. 귀명창이 전주에 많아 소리를 할 때는 추임새로 흥을 돋구어 소리꾼이 소리할 맛을 느끼게 하고 소리를 한 다음에는 소리꾼의 소리가 어떠했는지를 평가하여 소리꾼의 실력을 금방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전주에는 귀명창이 많은 것일까.
조선시대 숙종(17세기말) 때 만들어진 판소리는 전라도 언어로 표현된 전라도 음악이다. 조선시대 전라도는 넓은 호남평야를 바탕으로 하여 먹고 살기가 다른 지방에 비해 휠씬 좋았던 지역이었다. 전주는 바로 이러한 전라도의 중심이었다. 전주는 동부산간지역과 서부평야지역이 맞닿는 곳이다. 때문에 사람이 모이고 물산이 모이고 재물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것은 전주만의 문화를 창출하게 만들었다. 결국 소리꾼들은 전주로 모여들었고 소리를 들어줄 사람도 전주에 있었다. “잘 헌다”는 기본. “이럴 때 박수를 치는 것이여” 라는 추임새는 물론 어린 여성 명창이 무대에 서면 “소리 잘하네. 얼굴도 이쁘고. 결혼은 했는� � 여기저기서 추임새가 쏟아진다. 전주는 고수에게도, 관객에게도, 명창의 완창을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만드는 ‘추임새 경연장’. 이것이 전주에 귀명창이 많은 첫 번째 이유이다.
△ 전주대사습, 전주에 뿌리 내리다
조선 숙종대 시작된 마상궁술대회가 고종대에 이르러 대사습놀이로 이어졌다. 고종 2년(1864) 흥선대원군은 단오절에 관의 주관으로 판소리 경창대회를 열도록 하고 장원한 명창을 궁궐에 불러들였다. 이렇게 시작된 전주대사습놀이는 1905년까지 37회에 걸쳐 개최되었다. 전주대사습놀이는 전라감사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수천 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치러졌으며, 관중들의 박수갈채로 장원이 결정됐다. 전주대사습의 관객은 이른바 귀명창이 많아 이미 이름이 알려진 소리꾼들조차도 전주대사습에 서는 것이 긴장되는 일이었으며 그 자체만으로도 영광스럽게 여길 정도의 권위를 지녔다.
일제강점기에 중단됐던 전주대사습놀이는 1975년에 부활되었는데, 판소리뿐만 아니라 한국음악의 전분야로 확대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매년 열리고 있어 전국을 대표하는 국악인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국악인 등용문이라고 할 수 있으나 최근 여러 지역에서 경연대회가 열리고 있어 그 위상이 위협받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심사의 공정성 문제와 관객 수가 줄어드는 등 위기에 봉착해 있다. 최동현 군산대 교수는 “전주대사습놀이의 위기는 주최자인 지자체와 방송사에 의존하면서 소리꾼들 스스로가 심사위원에 참여하면서 그 권위만을 행사한 데서 빚어진 사태”라며 “소리꾼들 스스로가 대안을 찾아야 할 때”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 일반 귀명창을 배출해낸 전북도립국악원
2003년 11월은 판소리가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전북도가 전북도립국악원을 건립해 소리문화의 중심을 표방한 당위성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판소리는 모름지기 한국전통음악의 자존심으로서 보존·전승해 발전시켜야 할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그 위상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북도립국악원은 ‘판소리의 고장 = 전주’임을 드높인,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명창들이 버티고 있는 곳이다. 1985년 이래 수많은 명창들이 배출됐으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 진행되면서 수많은 귀명창들을 양성해내고 있다. 현재 주·야간에 판소리반과 고수반이 설강돼 있다. 그렇게 거쳐간 사람들은 어느 순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쑥대머리’ 한 대목을 멋들어지게 부른다. 바로 이것이 전주에 귀명창이 많은 세 번째 이유일 것이다. 어느 누가 초등학생의 입에서 ‘엇머리’라는 판소리 장단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겠는가? 전주에 사는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자산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병규 문화전문 시민기자(동학 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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