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두(효사랑가족요양병원 한방과 원장)
한의학 치료요법 중에 부항 요법은 유리컵처럼 생긴 도구로 공기를 빨아들여 몸에 붙이는 일종의 물리요법이다. 이것으로 피를 사혈, 자락하기도 하고 인위적으로 멍들게 해 진통 효과와 국소의 혈액순환 촉진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항간에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신경통, 근육통을 막론하고 전신질환에도 부항을 이용해 나쁜 피를 빼야 낫는다고, 한 번에 한 사발씩 아까운 피를 뽑아 빈혈을 일으키거나 탈진되는 일이 보고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부항 요법을 맹신한 나머지 어디 아플 때마다 피를 뽑는 것을 능사로 여기고, 혹은 다쳤을 때 '꼭 피를 빼내야 나쁜 피가 다 빠져서 낫는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의학에서는 혈액을 밀어 이동시키는 에너지를 기(氣) 또는 기운이라고 한다. 우리는 '혈액순환이 원활할 때 기혈순환이 잘 된다'라고 표현하는데 피를 활동시키는 것은 기운이다. 혈액순환이 잘 되게 하고 혈관 운동을 왕성하게 하려면 기가 충분하고 잘 소통이 되어야지 피만 빼서는 소용이 없다.
우리가 부항을 붙여 나오는 피는 나쁜 피가 아니다. 출혈된 피는 시간이 지나면 선지처럼 굳어지게 된다. 사혈시간이 오래될수록 진하고 끈적끈적하게 되는 것이다. 흔히 이것이 '어혈'이라고 강조하는데 좀 오버하는 감이 없지 않다. 타박상을 입거나 삐어서 많이 붓고 아플 때 사혈을 하면, 일시적으로 부종 및 통증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고여 있던 나쁜 피를 빼서 통증이 감소한 것이 아니라 몸의 자연치유반응으로 몰렸던 혈액 속의 통증 및 염증유발물질을 조금 덜어준 덕이다. 이때의 염증으로 인한 부종 및 통증은 몸의 자연치유반응이다. 억지로 소염, 진통시키면 아픈 것은 빨리 없어지나 손상된 조직의 회복은 그만큼 더디어지고 불완전하게 된다.
피가 몸 구석구석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이 불과 25초라는 걸 생각하면 살아 있는 몸은 잠시도 쉬지 않고 피가 순환하고 있다. 만일 피가 멈추어 흐르지 않으면 그 조직은 조만간 썩어 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다쳐서 붓고 아프고 멍든 그 자리도 피 흐름이 좀 더디다 뿐이지 말 그대로 나쁜 피가 고여 있는 게 아니니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되게 된다.
또 멍이라는 것도 다쳤을 때 순간적으로 약간의 출혈이 있었던 것이 피부 조직에 베어 들어 시퍼렇다가 차츰 주위로 퍼지면서 연해져 일주일쯤 지나면 저절로 완전히 흡수되어 버린다. 부항으로는 이렇게 베어든 멍을 제거할 수도 없거니와 제거할 필요도 없다.
가령 골절 환자가 두어 달 후에 골절도 잘 접합되고 일정 기간 물리치료로 완쾌되었을 때 이 사람은 그렇게 몹시 다쳤어도 피 한 방울 뽑지 않고 아무런 부작용 없이 잘 나았지 않은가?
피를 뽑는 것은 어디까지나 모세혈관에 침을 찌르든지 부항을 강하게 빨아들여 생피를 인위적으로 출혈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령 일시적으로 효과가 났다면 이렇게 피가 날 정도로 강한 신경 자극을 가했기 때문이지 피를 뽑았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아픈 곳을 주무른다든지 따뜻하게 찜질하든지하고 침을 맞아 기를 순환시켜 신경 자극과 함께 혈액순환을 촉진하면, 소중한 피를 뽑지 않고도 좋은 치료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전현두(효사랑가족요양병원 한방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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