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저는 사지에서 탈출, 진나라로 갔다. 1년 후, 범저는 진나라 소왕에게 유세, 중용된다. 범저는 당시 진나라 소왕의 외척으로 재상 지위에 올라 위세를 떨치던 양후(穰侯)가 멀리 제나라를 치려하는 계책에 대해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와 우호관계를 맺고 이웃 나라를 치는 것이 제일 좋다"며 그 부당함을 지적한다. 또 "왕이 간사한 신하의 아첨에 빠져 깊은 궁궐 안에서 평생 미혹에 사로잡혀 현명한 신하와 간사한 신하를 가려내지 못한다면 종묘가 망한다"며 직접적으로 양후를 모함했다. 결국 소왕은 양후 등 외척들을 내쫓았다. 범저는 봉토를 받고 재상 응후(應侯)가 되고 위제에 복수도 한다.
소왕은 응후의 계책을 받아들여 위나라에 이어 한나라를 쳐서 승리하고, 이어 조나라 군대를 장평에서 크게 깨뜨렸다. 장평 전투에서 승리한 장수 백기는 응후의 모함을 받아 죽고 만다.
안팎으로 승승장구하던 응후도 어느 순간 삼족을 멸하는 죄를 짓고 사지에 몰렸다. 그의 측근들이 전투에서 패하고 비리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왕은 그를 모두 용서하고 더욱 격려했다. 이 소문을 듣고 연나라 사람 채택(蔡澤)이 응후를 찾아 말했다. "당신은 재상자리에 앉아 계책으로 천하 제후들이 진나라를 두려워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의 공은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이 상황에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상군, 백기, 대부 종(모두 왕에 충성을 다했지만 결국 죽임을 당했다)의 처지가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이에 응후는 "가지고 있으면서 만족할 줄 모르면 가지고 있던 것마저 잃는다"며 채택을 소왕에게 천거한 뒤 물러났다. 재상에 오른 채택은 소왕, 효문왕, 장양왕, 시황제까지 넷을 섬겼다.
새정부 총리로 지명됐던 김용준씨가 두 아들 병역과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이자 29일 전격 사퇴했다. 소아마비라는 천형을 딛고 승승장구해 온 김씨는 잠시 노욕에 취했다가 돈만 빼고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대개 이익을 좇으면 화가 닥친다.
김재호 논설위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