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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임진왜란·병자호란 역사 재조명

안평옥 장편서사시 '화냥년'

 

"이 선생, 나 좀 만납시다."

 

수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안평옥 시인(69)의 목소리는 상기됐다. 이튿날 그가 건넨 시집'화냥년'(도서출판 계간문예). 궁금했다. 왜 이리 도발적인,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는 제목을 내걸었을까. 평소 입바른 소리를 해서 손해보는 일이 많다던 그가 뭔가 작정하고 감행한 일은 아닌가 싶었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현재에 녹여내면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서사시가 우리 주변에 많지 않았습니다. 신동엽 시인이 1989년 발간한 장편서사시 '금강' 이후 이렇다 할 서사시가 없었다 이 말입니다."

 

15년 동안 노심초사하며 엮은 시집이라지만 제목에서 주는 오해(?)를 감안해 은근슬쩍 물었다.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들을 '환향녀'(還鄕女)라고 했다가 '화냥년'이라고 불리웠습니다. 국가와 무능한 사회 지도층에 의해 국가가 환란을 겪어 어쩔 수 없이 피해를 본 여성들을 절개가 없는 여성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된 것이죠. 이것이 우리 역사의식의 현주소라 여겼습니다."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고 나서 "정말 홀가분했다"는 시인을 두고 "나도 책 몇 권은 빌려줬으니 공이 있는데, 그 양반 참 징글징글허게 매달렸다"는 오하근 원광대 명예교수는 "그러나 '화냥년'에 관한 어원은 설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시인이 "아"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도록 하는 과거로의 회귀는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시작되던 1592년부터 병자호란이 있던 1936년을 거쳐 1945년 소현세자 독살의 역사를 훑으며 시인은 "우리가 일본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뼛속 깊이 새겨야 한다"고 강분했다.

 

시집을 '바람','비','번개','천둥'으로 전개시킨 것도 무감각한 역사의식을 일깨우기 위한 극적 장치. 여기서 시(詩)는 '되돌아가기'로 시간을 역추적하거나 '예시'를 통해 순서를 엉키게도 한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서사 속 인물과 접촉하되 사건에는 개입하지 않는 방식을 취한다.

 

마지막 5부에선 인조의 뒤를 이은 효종이 추진한 북벌 계획의 허와 실을 더듬는 '허생전'을 각색한 '타오르지 못한 횃불'을 실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쉽지 않으나 평탄하지 않았던 우리 역사의 치부를 바로 보기하는 시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시인은 "건강만 허락된다면 동학을 바로보는 시도 쓰고 싶다"고 했다. 한 인간의 비극이 아니라 동학군의 숭고한 정신 이전에 그것으로 뭉뚱그려진 그늘까지 아우르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김제에서 태어난 안 시인은 전라북도 산림행정과장을 지냈으며, 1993년 '문학세계'와 1998년 '불교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해 시집 '흔들리는 밤', '내가 사랑하는 당신에게','그리움이 뜨거운 날에','새벽 인력시장'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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