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한번쯤이라도 올라본 사람은 하얀 구름 위로 끝없이 펼쳐지는 산봉우리 물결 앞에서 경이로운 탄식을 토해내고야 만다. 태백산맥이 서남쪽으로 갈라져 남쪽으로 쭉 내려오다 굽이치듯 솟아오른 지리산의 풍경은 아름다움에 장엄한 빛이 더하여 바라보는 사람들을 한껏 겸손하게 만든다.
한꺼번에 앞 다퉈 솟아오른 수십 개의 산봉우리들은 하늘과 맞닿은 듯한 정점에서 완만하게 혹은 급하게 굽이쳐 흘러내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언덕과 계곡, 수풀은 묘한 조화를 이루며 신령스러운 세계를 펼쳐내었다. 천왕봉이며 노고단에 오른 사람들은 사방 팔방으로 눈길 미치는 곳마다 뿜어져 나오는 신령스러운 기운에 매료되고, 마치 신선세계에 와 있다는 착각에 빠져드니, 예부터 사람들은 지리산을 신선세계로 알고 자신을 낮췄다.
△동서로 뻗은 최고봉들
동서 34㎞, 남북 26㎞, 둘레 320여㎞, 면적 483㎢에 달하는 거대한 지리산은 3대 주봉인 천왕봉-반야봉-노고단이 하늘에서 마치 푸른 비단을 아래로 활짝 펼쳐놓은 듯한 형세를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지리산 정상에 오르면 마치 하늘정원에 와 노닐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지리산의 최고봉은 통천문을 거쳐야 비로소 오를 수 있는 천왕봉(해발 1915m)이다. 대장 봉우리인 천왕봉에서 시작한 산봉우리들은 그야말로 하늘정원을 이루며 서쪽 주능선을 따라 부챗살처럼 끝없이 펼쳐진다. 천왕봉-제석봉(1806m)-연하봉(1651m)-촛대봉(1708m)-칠선봉(1558m)-덕평봉(1521m)-형제봉(1443m)-토끼봉(1533m)-반야봉(1751m)-노고단(1507m)에 이르는 장장 40㎞짜리 산악 마라톤 코스다. 천왕봉, 반야봉처럼 해발 1500m 이상인 20여개의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며 걷노라면 눈 닿는 곳마다 펼쳐지는 포근하고, 아기자기하고, 장엄한 풍광이 반긴다. 끝 모를 곳까지 펼쳐지는 운해에 잔잔하게 물결치는 산봉우리들이 저마다 사방으로 치렁치렁 늘어뜨린 능선과 계곡에는 갖가지 형상의 기암괴석과 평전, 계곡물이 운해와 낙조, 일출, 단풍, 꽃 등 온갖 삼라만상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뤄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지리산 10경
예로부터 지리산의 아름다움은 10경으로 대표됐다. 선인들은 천왕봉 일출, 피아골 단풍, 노고단 운해, 반야봉 낙조, 벽소령 명월, 세석평전 철쭉, 불일폭포, 연하선경, 칠선계곡, 섬진청류 등 지리산 곳곳에서 구경할 수 있는 빼어난 아름다움을 통해 '지리산의 미'를 좀 더 널리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근래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전국 국립공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 100곳을 선정해 발표한 바 있는데, 무려 16곳이 지리산에 있는 경관이었다. 뱀사골 계곡과 노고단 운해, 바래봉 철쭉, 지리산 일출, 칠선계곡, 제석봉에서 바라본 운해, 노고단에서 바라본 천왕봉, 피아골 계곡, 다랭이 논, 쌍계사 벚꽃길, 산수유마을, 화엄사 각황전, 곰이 있는 풍경, 화엄사계곡과 섬진강, 촛대봉에서 바라본 세석평전, 노고단 등이다. 특히 화엄사 일원과 한신계곡 일원은 일찍이 명승으로 지정됐을 만큼 유명세가 톡톡하다.
△곳곳이 명승
지리산에는 천왕봉 같은 산봉우리를 비롯해 칼바위, 사자바위, 뱀사골, 한신계곡, 불일폭포, 뱀소, 용소, 세석평전, 정령치, 성삼재 등 1백 개가 넘는 수많은 명승지가 있다. 하지만 지리산에는 이름 없는 명승지가 더 많다고 한다. 그 만큼 지리산에는 아름다운 풍경이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지난 3월 발표한 제11회 국립공원 사진 공모전 당선작으로 97개 작품이 발표됐다. 대상 작품은 지리산 뱀사골 계곡의 풍경을 렌즈에 담은 남광진씨의 작품 '5월의 꽃 수달래'였다. 이 작품은 계곡 주변에 핀 수달래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힘차게 쏟아져 내려오는 계곡물이 멋지게 이룬 조화를 절묘하게 포착해 냈다.
이밖에 지리산의 자연경관을 주제로 한 작품이 대다수였다. 노랗게 물들어 가는 가을 지리산에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바위 아래로 흘러내리는 무재치기 폭포의 풍경, 바래봉 철쭉, 만복대의 봄, 노고단의 봄, 지리산 꽃동산, 장터목에서 본 능선과 남해, 고사목지대, 고사목과 반야봉의 구름, 노고단의 아침 등 지리산 곳곳의 능선과 폭포, 계곡, 꽃, 나무, 기암괴석 그리고 주변 구름, 하늘 등이 한번 어우러지면 걸작으로 탄생했다.
△동에는 남강, 서에는 섬진강
지리산에는 산과 계곡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천왕봉에 떨어진 빗방울은 실낱같이 흐르다가 계곡물이 되고, 계곡물은 강으로 흘러 바다로 나아간다. 지리산은 화강암 위에 흙이 두껍게 덮인 토산이어서 항상 물을 풍부하게 품고 있다가 마치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주듯이 만물에 생명수를 제공한다. 이 때문에 지리산의 생태계는 건강하고, 활기차다.
지리산 동서를 가로지르는 주능선 북동쪽에서 형성된 임천강-엄천강-경호강 등 물줄기는 곳곳을 휘어돌아 함양과 산청군을 거쳐 진주 남강으로 흘러든다. 서남쪽에서는 남원 요천 등이 합수하는 섬진강이 구례 곡성을 거쳐 하동으로 빠져나간다. 어머니의 치마를 촤악 펼쳐놓은 듯한 지리산 자락의 끝부분을 구곡간장처럼 휘어들며 흐르는 이들 생명의 물줄기들은 지리산이 선사하는 또 다른 멋진 풍광을 곳곳에 쏟아낸다.
남원에서 만난 이병채 씨(남원문화원장)는 "지난 1965년부터 지리산을 오르며 지리산 구석구석을 다녀보았다. 지리산은 웅장하면서도 어머니처럼 포근하고, 멀리서 보든 가까이서 보든 세계 유수의 산과 비교해서 결코 빠지지 않는 명산이다"라고 그 아름다움을 말했다.
사실 인간은 지리산이 주는 아름다움을 받아만 온 것이 아니다. 실상사, 화엄사 등 지리산에 자리잡은 수많은 사찰과 암자는 물론 마을과 주민들이 만든 다랭이논 등은 주변 자연풍경과 절묘한 조화미를 만들어 냈다.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 등 산골 오지의 다랭이논들은 산사람들이 억척스럽게 새긴 눈물의 조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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