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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역사

인간의 욕심은 피를 동반하기 일쑤였다. 500년 전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저지른 정복전쟁은 문명 파괴를 넘어 원주민을 멸종에 이르게 할 정도로 잔인했다. 영국에서 건너온 청교도인과 프랑스 등의 세력에 의해 완전 제압된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겨우 멸종을 면했을 뿐이다. 그 남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520년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 시절 정복자 코르테스는 유카탄반도(멕시코) 아즈텍 문명의 중심지 테노치티틀란에 쳐들어가 20만 명이 넘는 아즈텍인과 몬테수마 왕을 살해하고, 결국 아즈텍 문명을 멸망(멸종)에 이르게 했다. 얼마 후 역시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가 1532년 페루 잉카제국에 쳐들어가 아타왈파 왕을 죽이고, 잉카제국을 정복했다.

 

그로부터 500년 후 일어난 1·2차 세계대전이 지구촌 곳곳을 지옥에 떨어뜨렸다. 독일 나찌와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학살은 치를 떨게 했다.

 

인류사에서 2차 세계대전만큼 인명 피해가 많았던 전쟁은 없었다. 이 전쟁은 유럽 전역과 중국, 동남아시아, 북아프리카, 태평양 등 거의 세계 전역에서 치열하게 전개됐다. 이 전쟁의 사망자는 5000만 명에 달했다.

 

나찌군의 유대인 학살로 500여만 명이 희생됐고, 일본군의 1937년 남경 대학살로 중국인 30여만 명이 잔혹하게 학살됐다. 일본이 중국과 한국에서 벌인 대학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일본은 전쟁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일본의 3대 영웅으로 말해지는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가 연이어 전국 패권을 호령하던 16세기말까지 일본은 피로 물들었고, 히데요시는 1592년부터 7년간 조선을 침략해 엄청난 살육을 저질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막부시대를 열게 된 결정적 전투, 1600년 9월 세키가하라전투는 피아군 10만여명이 몰살한 피의 승리였다.

 

우리 또한 전쟁의 역사를 안고 있다. 7세기까지 삼국간 패권다툼이 치열했다. 중국과 만주 일대의 수많은 종족들이 한반도를 침략했다. 14세기 몽골침략, 16세기 임진왜란, 20세기 초 서구 열강의 침탈과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강점, 그리고 1950년 6.25전쟁 등이 이어지면서 대학살의 피해를 입고 살아왔다. 6.25전쟁은 250만명을 살해한 엄청난 학살이었다. 그 중에서 양민 학살은 공포의 절정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과 경찰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저지른 양민학살과 보복학살은 결코 용서될 수 없다.

 

김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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