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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공예 살리기 나선 미술사가 최공호 교수

"전통공예 통해 지역성의 가치 찾는일은 시대적 흐름"

▲ 미술사가 최공호 교수는 20년 전부터 전통공예를 통해 지역성의 가치를 찾는 일을 주장해왔다. 최 교수는"아직 보이는 성과는 없지만 잃어버린 가치들에 눈을 돌리는 시대적 변화를 보면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안봉주기자 bjahn@

지난해 연말, 우연히 들르게 된 '2013 한국공예트렌드 페어'에서 글을 읽었다. 얄팍한 브로슈어에 실린 '지역성의 가치, 지역의 미래'를 주제로 한 글이었다. '모던이 폐기한 지역과 지역성'을 주목하면서 지역을 서로 다른 가치의 중심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그 글의 논리는 부드러웠으나 힘이 있었다.

 

"지역은 지도상의 변방이 아니라 잠재적인 가치의 중심이다.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이곳, 내 무늬 결이나 파동과 같은 에너지의 발신지다. 연못 어디든 돌이 덜어진 곳에서 물결이 퍼져나가면 돌을 던지는 순간, 내가 선 곳은 새로운 중심이 된다. 문제는 내가 지금 돌을 떨구는 일이다."

 

지역을 앞세운 대부분 글들의 '그렇고 그런' 빤한 주장이나 논리 대신 고개 끄덕이게 하고 마음을 울리는 글의 미덕은 필자의 주장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했다.

 

미술사가 최공호 교수(56·한국전통문화대)를 만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산업화를 앞세우는 문화의 시대에 지역성과 공예를 짝지워 그 가치를 발견하는 일에 앞장서온 그의 실천적 삶의 풍경도 그렇지만, 산업화의 물량적 공세와 획일화된 일상 문화에 이미 익숙해진 시대에 그가 주장하는 전통공예의 부활은 과연 가능성이 있을까 궁금했다.

 

지역이 변방을 넘어 다름의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믿는 그는 지역의 고유한 가치를 만드는 일을 주목하면서 무엇보다도 공공성의 보편적 가치를 수렴하는 일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교수와의 인터뷰는 염천(炎天), 그야말로 온 땅이 끓어오르는 듯 한 여름 한낮,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 연구실에서 있었다. 넓지 않은 공간에 사방이 책장으로 둘러싸인 그의 연구실은 나뭇결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큰 탁자와 쓰임새를 발휘하는 아름다운 공예품들이 숨은그림찾기처럼 놓여있다. 모두가 곁에 두고 사용하는 일상용품들이다.

 

"공예는 실천이 중요합니다. 일상문화에서 쓰이지 않는 공예는 살아남기 어렵죠. 공예의 본질이 쓰임새에 있는데 그 역할을 포기하면 본질적 가치를 포기하는 것 아니겠어요. 현대 공예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최교수에게 듣는 지역성과 공예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책상위에서 쌓여진 이론적 주장이 아니라 전통 공예의 수많은 장인들을 현장에서 만나면서 공예의 가치와 지역성의 의미를 온전히 체득해온 결실인 덕분이었을 것이다.

 

-지난해 한국공예 트렌드페어의 주제가 '지역 공예의 재발견'이더군요. 울림이 컸습니다. 오랫동안 전통공예와 지역성을 주목해오셨죠.

 

"20년 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주제입니다. 전통공예를 통해 지역성의 가치를 찾는 일을 주장해왔지요. 아직 보이는 성과는 없지만 잃어버린 가치들에 눈을 돌리는 시대적 변화를 보면서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전시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전통공예를 마을단위로 계승하고 발전시켜가는 '자생적 공방'이었습니다. 일본 몇몇 도시의 예가 소개되어 있더군요. 지역성과 공예의 가치를 실현하는 방식의 모델이 혹시 이런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다르지 않겠죠. 지역의 전통공예 장인들을 통해 그 가치를 발견하고 현대에 이어내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게 하는 좋은 방식입니다. 제가 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학생들과 함께 진행했던 부여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도 거기 있었으니까요."

 

-우리나라 전통공예, 지역공예는 이미 힘을 잃은 것 같습니다. 전통의 맥이 단절된 지 오래여서 그것의 부활을 기대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현실은 그렇지만,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부여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일본의 몇 마을을 돌아본 적이 있습니다. 가장 부러운 것은 우리 전통공예의 기반은 다 무너졌는데 일본은 하부구조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이었어요. 물론 그 배경에는 자기 취향과 표현을 아주 구체적으로 발현하는 일본인들의 일상문화가 있을 겁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전통을 대하는 그들의 진지한 태도와 관점이죠. 전통을 산업화의 발목을 잡는 존재쯤으로 여겨온 우리와는 많이 다르죠."

 

-우리 사회의 경우는 전통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너무 오랫동안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수님의 지역 공예의 가치를 살리는 일은 어떻습니까.

 

"지역공예를 살리기 위해 꽤 오래전부터 디자인과 지역 장인의 협업을 지향해왔습니다. 근래에는 그런 작업이 활발해지고 있으니 바람직한 일이죠. 디자이너와 지역 장인의 협업은 장점이 많습니다. 지역 장인들은 고유하고 숙련된 기술, 그리고 그 기술이 갖고 있는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있죠. 대신 동시대 감각을 반영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숙련된 기술은 있으나 시대를 읽는 감각이 부족하니 디자이너들과 협업이 이루어지면 우성 결합의 결실이 만들어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러한 협업형태의 작업에서 부작용은 없을까요.

 

"당초 그런 우려가 있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전통공예에서 협업은 사람과 사람의 결합입니다. 어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느냐가 중요하죠. 재능만의 결합이 아니라 좋은 사람의 결합이어야 합니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장인들이 앞에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청소를 하고 치워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디자인을 던져주고 제작에만 장인들의 기술을 활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그런 경우, 십중팔구 공예장인의 존재는 미약해지고 당초의 목표인 공예 대중화도 길을 잃게 됩니다. 허위적인 예술가 의식을 좆아가는 통로밖에 되지 않죠. 공예는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쓰이게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전통장인들과 디자이너들이 결합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구요."

 

-문화의 시대에서도 산업화가 화두입니다. 전통공예의 박제화도 이런 논리로부터 비롯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 전통의 어플리케이션이라고 하면 산업화를 먼저 떠올립니다. 매우 단순한 논리고 다소 폭력적인 개념입니다. 전통 공예는 수공예적인 과정을 절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산업화를 앞세워 공예의 과정을 기계화해버리면 그것은 이미 공예품이 아닌 기계제품이죠. 그 경계선을 나누는 전통공예의 고유성이 바로 수공예인데, 이 수공예를 포기할 수 없다면 대량생산이나 산업화는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을 전제하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죠. 산업화는 속도와 규모, 효율을 내세우는 현대의 버전입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있잖아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렸던 가치를 아쉬워하면서 그 그늘에서 상처 받은 것을 치유하자고 난리를 치는 시대가 왔지 않습니까. 이 시대적 흐름을 주목해야하는 것이죠."

 

-이 시대가 수공예적 가치를 필요로 한다는 말씀이군요.

 

"느림과 아날로그적인 따뜻한 가치가 곧 수공예적인 가치잖아요. 그런 가치야말로 현대인들이 다시 찾고 싶어 하는 것 아닌가요. 기계의 차가운 가치로 충족시킬 부분은 충분히 수용을 하고 허용하되, 병행해서 우리 삶에 밀착되는 영역에서는 철저하게 차가운 가치를 배격하고 따뜻한 가치를 지향해가도 될 만한 시대가 되었다고 봅니다."

 

-지역 공예의 활로와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는 지금이 좋은 기회랄 수 있겠군요.

 

"물론입니다. 우리 사회의 구조도 그렇고 이제는 그래도 먹고 살만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만약 한줄기 남아 있는 전통 공예, 지역의 고유한 공예의 맥 조차 산업화로 몰고 가면 말이 안되지요. 공예의 산업화는 애당초 성립 불가능한 목표입니다. 앞뒤 맞지 않는 목표죠."

 

-앞서 일본의 공예를 이야기 하셨는데, 실제로 성공한 사례가 적지 않겠죠.

 

"일본 뿐 아니라 세계 각 나라마다 전통공예로 지역을 성장시킨 예가 얼마든지 많습니다. 일본 벳부의 경우도 그 중 하나인데, 거기서는 '반농반도'(半農半陶)의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도자기를 생산하는 마을의 경우, 그 마을에서 생산되는 도자기 양을 스스로 조절을 해가는 삶의 방식을 말합니다. 장인이 여럿 있는 마을이라 하더라도 수요는 한정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서로 욕심을 내어 생산을 늘려 경쟁을 하다보면 재고가 쌓이고 그렇다보면 빚이 되고, 좌절하게 되고, 결국은 역량을 상실하게 되죠.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일 년에 필요한 도자기 수요를 측정해 그것보다 상회하는 생산능력을 다른 부분으로 활용합니다. 절반의 역량을 농사짓는 일로 쓰는 것인데, 생태적 농사를 지으면서 그 가치를 도자기로 담아 그릇으로 공유하고 소통하면서 삶의 전체를 유기적인 양태로 이어가는 것이죠. 얼마나 바람직한 일입니까. 공예의 살길은 바로 이런 철학적 기반에 있습니다."

 

-수요에 맞게 생산하는 도자기 이야기를 들으니 공예는 결국 쓰임의 실천이 있어야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분명해지는군요.

 

"그것이 핵심이지요. 공예는 실천입니다. 쓰임새가 있어야 공급이 이루어지죠. 공예와 연관된 사람들부터 일상에서 공예의 활용을 실천해야 합니다. 쓰지 않으면 공예의 본질적 역할이 없어지는 것이고, 그렇다보면 공예는 살길을 찾기 어렵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공예의 본질을 잃은 지 오래여서 일상생활에서 우리 전통공예가 자리 잡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데요.

 

"그동안 현대공예에 대해 주장해온 것이 있습니다. 공예가 삶으로부터 일탈해서 엉뚱하게 위치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비판이지요. 예를 들면 금속공예를 보죠. 숟가락을 만드는 작가는 거의 없습니다. 금속공예가 대부분이 주얼리를 만들죠. 그것도 '아티스트'로서 만드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전통적으로 금속공예 영역에서 사용의 빈도수가 많은 것이 뭘까요. 수저와 젓가락입니다. 어떤 물건보다도 중요하죠. 그런데 이 소중한 물건을 정작 공예가들은 만들지 않습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작가의 허위의식 때문이라고 봅니다. 예술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식이죠. 본질을 잃어버린 공예는 가치를 이미 포기한 것과 같습니다."

 

-공예라는 것이 오히려 작가들이 터부시하고, 예술성과 이런 쓰임새와는 별개라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문제가 많군요.

 

"공예품은 쓰임의 역할이 있을 때 부가적 가치가 만들어집니다. 만약 어떤 공예품이 후대에 발견되었다고 해보죠. 누군가 소장했었다는 것과 누군가의 삶의 궤적을 읽어낼 수 있는 용도를 함께 가진 것의 가치는 다르죠. 작가가 만들고 세월이 완성해주는 것이 공예품입니다. 금방 만들어서 가치가 발휘되는 것은 예술품이죠. 공예품은 세월을 두고 묵혀서 쓰고 대물림 해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공예가들의 인식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전업작가가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은 거의 없습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로 늘 위기에 처해있죠. 공예는 좀 다릅니다. 본질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파인 아트를 하는 예술가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스스로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서 달라지요. 공예가나 디자이너들은 삶과 접점을 이루어 삶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기여하는 바가 크고 바람직합니다."

 

-공예와 지역성의 가치를 강조해오셨는데 그것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떤 것입니까.

 

"공예가 제 자리를 찾고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지역성의 가치에 주목해야 합니다. 필연적인 과제지요. 공예가들이 자신의 작업에 지역성을 어떻게 접목시켜야하는가는 그래서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다른 지역에 없는 이 지역 고유한 역사적 배경이나 문화적 특성을 연동해 자기 색깔을 찾아 나갈 때 지역 공예의 고유성을 찾게 되고 가치를 갖게 됩니다. 제가 진행했던 부여프로젝트도 바로 그런 작업의 연상이지요."

 

-전라북도나 전주의 공예는 어떻습니까.

 

"전주를 중심으로 한 전북은 문화적 저력이 있습니다. 특히 공예의 저력은 압도적으로 우월합니다. 전국을 비교해도 장점이 많은 지역입니다. 지자체 단위에서 지역 공예 분야를 문화재로 가장 많이 지정한 곳도 전북일겁니다. 전주는 특히 장인들이 몰려있는데 그런 사례는 드뭅니다. 물론 지정 과정에서 부정적 측면을 겪기도 했겠지만 그들에게 공통의 목표를 주고 동기부여를 해 밀고 가는 리더십이 있다면 굉장히 바람직한 환경입니다. 중요한 것은 순수한 마음으로 장인들을 돕고 이끌고 보듬어 지역의 고유한 어떤 것들을 지켜가는 것이겠죠. 전주와 전북은 공예의 향기를 가장 진하게 아름답게 피울 수 있는 지역입니다. 가능성이 그만큼 많은 지역이죠. 그래서 부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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