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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더 불편하게

▲ 복효근 전북작가회의장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엔 낯선 먼 곳에 자동차로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지도가 필수였다. 지도를 따라 가다가도 중간에 차에서 내려 길을 물어야만 하기도 했다. 여러 번 도상훈련을 했음에도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한 경험도 있다. 그 시절엔 어떻게 살았을까? 얼마나 비효율을 견디며 귀찮은 일들을 감내해야 했었을까?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우리에겐 친절하기 그지없는 내비게이션이 있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 편리한 도구를 만들 수 있었을까, 지름길로 안내해 줄 뿐만 아니라 과속단속 장비가 있는 위치까지 알려주어 과속을 하다가도 단속 카메라 앞에서 속도를 줄이게도 해준다. 신기하기만 하다. 친절한 여자의 목소리를 따라 좌회전하라고 하면 좌회전하면 된다. 유턴하라 하면 유턴하면 된다. 어디를 가든지 길을 헤맬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능소능대하다.

 

내비게이션에게 빼앗긴 것은 없는가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인용한 글은 헝가리의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가 쓴 〈소설의 이론〉 첫머리에 나오는 부분이다. 어쩌면 별빛에 지도를 읽으며 별빛을 따라 여행을 하던 시대가 행복했었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불편하고 비효율적이고 소모적이며 많은 시행착오를 각오해야만 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행복했었다고? 무슨 뜻일까?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도 별을 보고 가야 할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과 우주와의 총체적 연관성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의 의미는, 오늘날처럼 기계문명 속에서 그것이 제공하는 편리함 안에서만 살아가려는 대신에, 인간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사회와 자연과 우주와 통섭하며 그것을 몸으로 읽어내며 살아가는 기쁨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자. 내비게이션에게 빼앗긴 것은 없는지. 오직 내비게이션이 일러주는 대로 꺾고 틀고 늦추고 돌고 멈추고 하다 보니 주객이 바뀌지는 않았는지. 길은 단순히 목적지를 향해서 뚫린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다. 길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일 수 있다. 그 안에 인간이 쌓아놓은 문화와 역사가 오고가고 길 밖으론 또 다른 세상이 길에 면하여 펼쳐져 있다. 길 위엔 나와 동시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나간 시간의 인간들의 발자취도 새겨져 있는 것이다. 물론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길 위에 펼쳐진 문화와 역사와 인간과 풍광을 모두 체험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긴 하지만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서 목적지에 도착하기만 하는 여행이란 더욱더 이것들을 접하기는 난망하다.

 

실패·방황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

 

그렇다고 오늘날 번잡한 삶 속에서 내비게이션의 역할이 무용하다는 말은 아니다. 내비게이션이나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문명의 이기에 지나치게 의존해 살아가는, 그래야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고와 그런 삶의 모습이 얼마나 비주체적인가, 나아가 인간 스스로를 소외하는 일인가 말하고자 예를 들었을 뿐이다. 기계 따위가 답을 다 알려주는 삶은 얼마나 재미 없을 것인가, 좀 느리고 좀 불편하고 좀 덜 효율적이면 어떤가? 인생에 지름길이 많으면 생이 짧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있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는 어느 시인의 시 구절을 기억한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수와 실패와 방황을 겪으며 삶은 더 풍요롭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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