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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약할때에

▲ 신정호 전주 동신교회 담임목사
동화작가 정채봉 씨의 글 가운데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 라는 글이 있습니다.

 

상처를 입은 젊은 독수리들이 벼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날기 시험에서 낙방한 독수리, 벗으로부터 따돌림 받은 독수리, 위 독수리로부터 할큄 당한 독수리.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들만큼 상처가 심한 독수리는 없을 것이라고들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하다는데 금방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이 때, 망루에서 파수를 보고 있던 독수리 중의 영웅이 쏜살같이 내려와서 이들 앞에 섰습니다. ‘왜 자살하고자 하느냐?’ 물었습니다. ‘괴로워서요.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겠어요.’ 이들이 답합니다.

 

영웅 독수리가 말합니다. ‘나는 어떤가? 상처 하나 없을 것 같아? 이 몸을 봐라!’ 영웅 독수리가 날개를 펴자 여기저기 빗금진 상흔이 나타났습니다.

 

‘이건 날기 시험 때 솔가지에 찢겨 생긴 것이고, 이건 위 독수리가 할퀸 자국이다. 그러나 이것은 겉에 드러난 상처에 불과하다. 마음의 빗금 자국은 헤아릴 수도 없다.’ 영웅 독수리가 또 말했습니다. ‘일어나 날자꾸나. 상처 없는 새란 이 세상에 나자마자 죽은 새다.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

 

보통 독수리와 영웅 독수리의 차이는 상처를 보는 눈의 차이였습니다. 영웅 독수리는 상처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상처 속에 감춰진 축복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많은 상처 덕분에 하늘을 높이 나는 영웅 독수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아름답게 화장하고 단정하게 옷을 입었지만, 그 아래 감춰진 상처는 영웅 독수리의 날개 아래 감춰진 상흔과 같습니다. 거기에다가 드러나지 않은 마음의 상처야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아픔일 것입니다. 죽지 못해 사는 사람도 많이 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과연 오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의미에서 상흔을 더욱 많이 남긴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한 인간의 위대함은 상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큰 상처를 견디어 내었느냐로 평가됩니다. 역경 중에도 포기하지 않은 집념으로 측정됩니다. 시련을 기회로 삼고 상처를 진주로 만든 삶의 지혜 속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겠습니까? 상처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상처를 치유할 때 우리에게 진정한 승리가 주어질 것입니다. 승리하는 삶을 위해서는 몇 가지 지혜로운 자세가 필요합니다.

 

첫째, 낙심하지 말고 인내해야 합니다.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나약함을 보임이니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쉽게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당하실 때 베드로는 흥분해 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라버리고 말았는데 이 때 주님은 ‘검을 든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성령께서 반드시 우리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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