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의 보존과 활용, 이 두 마리 토기를 잡은 게 아비뇽이다.
매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이 도시는 중세의 풍경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도시에 존재하는 견고한 석조건물들은 14세기 때 모습 그대로다. 이 도시의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정책이 얼마나 치밀하고 지혜로운지 보여준다.
역사 관광마케팅 역시 뛰어나다. 특히, 교황의 성격에 맞춰 차와 다과의 양을 계산해서 파는 교황궁전 내부에 있는 가게는 인상적이다. 아비뇽 페스티벌도 빼놓을 수 없다. 매년 7월 아비뇽 시 전역에서 3주간 열리는 이 축제에는 연극, 춤, 뮤지컬, 현대 음악 등이 공연된다. 축제 기간 동안만 연간 5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이 모든 것을 위해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이가 있다. 아비뇽 시청의 문화관광부 디렉터 미쉘 갈반이 그 주인공이다. 문화관광부 디렉터란 지역 문화유산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전문가다. 그는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 예산수립, 관광마케팅 등 전 분야를 담당한다.
인터뷰는 아비뇽 시청 별관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그는 문화재 보존·복원 계획, 관리기술, 예산 수립, 문화재 복원 인재 양성, 관광마케팅 대안 등 여러 부분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특히 문화재 원형을 고려한 보존과 이를 위한 전문가와의 소통을 강조했다. 취재도중 그는 사무실 창문 맞은편 건물에 조명등과 가까이 있는 작은 성모마리아 상(16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을 가리키면서 “조명에서 나오는 열에 의해 석조상이 손상될 우려가 있다”며 “조명을 설치하는 사설회사와 문화재 전문가와의 의견 조율이 제대로 안됐기 때문에 저런 실수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재임기간에 반드시 바로 잡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1시간여 동안 진행된 인터뷰는 강의를 듣는 듯 특별했다.
- 중세 문화유산의 원형이 거의 훼손되지 않고 보존돼 있다.
“아비뇽의 문화유산은 거의 석조로 돼있다. 그 시대에 쓰였던 돌 중 버려진 돌들이나, 같은 시기의 문화재를 보수하고 남은 돌 등을 쓴다. 즉 14세기 건물을 복원할 때는 당시에 쓰였던 돌을 그대로 활용한다는 의미다. 심지어 돌의 재질까지 맞추려고 노력한다.”
- 철저한 고증이 필요해 보인다.
“당연한 말이다. 아무나 할 수 없다. 정부나 자치단체의 문화관광부 디렉터, 역사학자 등 전문가들이 모여 해당 시대의 유물을 고증한다. 건축가들도 프랑스 건축협회가 지정한 사람들만 참가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합류할 때도 있다. 고증이 끝나면 문화재의 특성에 맞춰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다. 가령, 창문이나 창틀은 어떻게 복원 할 것인지, 벽화는 어떤 기법을 사용해 보수할 것인지, 어떤 전통공법으로 활용해야 하는 지 등 세부적인 내용들이다.”
- 당대에 존재했던 건축물의 외형, 내부구조, 제작 방식 등을 상세하게 고려하는 것 같다. 반면, 한국의 석굴암 같은 경우 시멘트로 복원했다가 내부에 습기가 생기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야기됐다. 한국의 유적 복원 상황에 대해 아는가.
“한국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잘못된 복원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석굴암같이 시멘트를 바르면 습기를 흡수하거나 물기를 제거하는 효과가 나지 않는다. 현재 남아있는 건축물들은 습기가 많은 자연적인 장애를 극복하고 수백 년 수천 년을 버텨왔다. 당시에 쓰인 자재와 공법만으로도 환기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원형을 고려한 정비방법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문화재 보수·복원과 관련한 재정은 어떻게 마련하는가.
“정부에서 40%정도 지원해주지만 부족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의 경우 복원작업을 하는데만 300만 유로(한화 37억여 원) 정도의 예산이 든다. 게다가 우리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뿐만 아니라 국가지정 유산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모두 합쳐서 105개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의 날에 1주일 동안 포럼을 개최한다. 포럼을 열면 프랑스에 있는 대기업들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벌인다. 이 때 관심을 끌어 문화재 보수·복원에 대한 투자를 유도한다.”
- 문화재 관련 전문인력은 어떻게 양성하는가.
“아비뇽 대학 석사과정에 복원 문화유산 관련 학과가 있다. 학생들에게 문화재 복원, 역사 이론, 가이드 등 크게 셋으로 나뉜 교육 과정을 거치게 하며, 현장 실습 비율을 절반으로 해 실무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 문화재에 대한 관리도 엄격하다고 들었다. 역사 지구 안에 있는 건물은 임의로 구조를 변경할 수 없다고 하던데.
“유산환경규제 보호법에 따른 것이다. 아비뇽 성벽 내의 모든 기념물들을 포함해 1913년에 제정된 역사기념물 보호법과 1930년 문화등급지구 법에 따라 보호된다. 구역 내의 건물들은 구조와 색깔 등 소유주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 규제에 대한 주민 반발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했는지.
“민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문화관광도시로 관광수입으로만 먹고 산다. 다른 부분을 통해서 소득을 창출하긴 힘들다. 우리에겐 그 만큼 문화유산이 중요하고, 규제를 강하게 할 수밖에 없다. 만약에 건물 소유주가 임의로 구조를 변경할 경우, 변경비용보다 두 배의 비용을 벌금으로 내게한 뒤 원래대로 변경하도록 한다.”
- 관광수입으로만 먹고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아비뇽 페스티벌을 예로 들어 설명하겠다. 이 축제에는 연간 5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현재 아비뇽은 관광객 수에 비해 숙소가 많이 부족하다. 더구나 3주만 열리는 축제 때문에 예산을 들여 숙박업소를 증축할 순 없다. 이때 시민들이 자신의 거주지를 관광객에게 숙소로 대여해주고 휴가를 떠난다. 그만큼 문화유산 관광업이 중요하다는 걸 방증한다.”
- 인터뷰에 성심성의껏 응해줘서 감사하다.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아비뇽 교황궁전에는 연간 60만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관광객이 많은 만큼, 그로부터 생성되는 열 때문에 궁전 내부의 벽화가 손상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의 말, 사슴, 들소 등 100여점의 동물상이 그려진 구석기 시대의 유물, 라스코 동굴 벽화도 같은 문제를 겪었다. 1945년부터 1963년까지 일반에게 공개됐지만, 벽화에 곰팡이가 생기는 등 보존에 문제가 많아 현재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현재 관광객에게 공개된 유적은 복제유물이다. 우리도 지금 이런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 [아비뇽 문화유산 관리계획] 장기적 관점 반영해 상세한 내용 담아
미쉘 갈반이 인터뷰를 하면서 공개한 문서 ‘아비뇽 시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관리 계획’은 상당히 체계적이다.
아비뇽 시의 문화관광부, 보끌뤼즈 문화유산 관리과, 자치단체 건축역사문화보존 기관인 DRAC PACA의 주관 하에 만들어진 이 계획은 문화유산 관리에 관해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세계유산 등재에 따른 직·간접적 경제적 효과, 세계유산과 도시환경(유적 보존 상태에 관한 평가)에 관한 점검표, 보존 기준 확립과 투자 등의 프로젝트, 문화유산 코디네이터 양성계획 등이 나와 있다.
이 중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세계문화유산 관리정책은 시의 다른 정책서비스들(문화, 도시계획, 기술)과 통합되지 못하면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문화유산의 장으로서 모든 관리계획을 아우르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 개별 문화유산만 보호할 것이 아니라 도시 자체를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관리계획에는 세계유산 지정지역 인근을 난개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주변지역을 완충지대로 지정하고 있다.
이밖에 미쉘 갈반이 인터뷰 중에 언급했던 교황궁전 내 벽화의 예방·보존 프로그램을 비롯해 문화유산 관광서비스, 교육 서비스 등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다. 그는 “세계유산 등재 및 관리를 위해 장기적 관점에서 광범위한 지침을 제공하는 전략적 프로젝트다”며“계획을 바탕으로 20년 동안 조례를 만들어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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