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향기를 물씬 풍기는 아비뇽. ‘아비뇽 유수’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유명한 이 도시는 권좌에서 쫓겨난 교황의 슬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4세기 당시 이곳에 머물렀던 교황들은 고뇌하고 번민하다 떠나갔지만, 당시의 흔적들은 그대로 보존돼있다. 50m의 높이를 자랑하는 교황궁전, 프랑스의 민요 ‘아비뇽 다리 위에서’로 유명한 생 베네제교 등 즐비하다. 국가의 지원과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복원전문가들의 땀과 노력, 시민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의 재현’에 완벽하게 성공한 이 도시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끈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현대를 살아가는 아비뇽의 사람들은 중세의 공간속에 살고 있다. 말 그대로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다.
△중세역사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공간= 아비뇽 역사지구는 말 그대로 유적의 도시였다. 아비뇽 시에 따르면 이곳에는 모두 105개의 문화재가 있다. 지역 일대는 11세기부터 교황이 건설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세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풍경들이다.
역사지구 안에는 교황궁전, 로마네스크 후기의 대성당 등 14~16세기의 교회, 17~18세기의 성 등 사적 건축물이 즐비하다. 현대적인 패션 부티크, 갤러리 등도 모두 중세시대 건물의 외형을 갖춘 공간에 입점해 있으며, 시대를 거스르는 오래된 저택들도 구석구석 자리잡고 있다. 시청·경찰서 등 관공서와 대학도 사적으로 지정된 건물 내에 있다.
국민의 생활과 단절된 채 존재하는 국내 유적지구와는 사정이 달랐다. 역사유적지구가 우수한 보존 상태를 보여주고, 지금도 사용하는 게 신기해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느냐”고 미쉘갈반 아비뇽 시청 문화관광부 디렉터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관리는 문화재 복원학교 등에서 양성된 정예인력이 하고 있고, 토지소유주가 유적을 마음대로 변형할 수 없게끔 우리가 제지를 하고 있다.”
함께 현장을 찾은 서제희 리옹 한글학교 교장은 “(각종 제약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이 유적을 생활문화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60만 관광객 찾는 아비뇽의 상징, 교황궁전= 아비뇽 역사지구 중앙에 위치한 교황궁전은 뛰어난 보존력을 자랑한다.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교황의 불안감이 궁전 곳곳에 적나라하게 담겨 있어서다. 당시를 살아갔던 교황에겐 슬픔의 흔적일 수 있지만,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겐 매력적인 요소다.
높이 50m, 1만5000㎡의 교황궁전은 두께 4m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안팎으로는 삼엄한 경비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성벽 사이사이 침략해오는 적을 향해 활을 쏘고 포탄을 날릴 수 있는 공간들이 곳곳에 존재했다. 심지어 궁전 안쪽 뜰에는 당시 쓰였던 돌 포탄까지 있다. 14세기 교회권력이 쇠락하면서 프랑스군으로부터 교황 자신을 방어하려 했던 흔적이다.
전쟁 영화에 나올 법한 외관으로 씁쓸한 이면을 간직한 것 외에, 궁전 안뜰에 바닥을 복원하는 현장이 눈길을 끈다. 복원현장에 걸려있는 해설문에 따르면 20년에 걸쳐서 복원 중이다. 섣부른 복원으로 원형논란을 유발하고, 복원유적에 균열이 생기는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이와 함께 궁전 내부에는 복원과정을 설명해주는 영상자료실이 있다. 어떤 것이 더 증축되고, 예산은 얼마나 드는 지 설명하는 영상이 상영된다.
관광객들을 매료시킬만한 것도 상당수다. 각 성벽마다 당시 재위했던 교황의 얼굴과 궁전을 쌓는 데 공헌했던 귀족들의 얼굴이 새겨져있다. 또 궁전 4층에 위치한 전시실에는 역대 교황들에 대한 소개와 바닥타일, 프레스코 등이 소규모로 전시돼 있다. 이곳에는 영어·일본어·중국어 등 7개 국어로 설명된 해설서가 비치돼 있다. 유적지 설명이 대부분 모국어로 돼있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불편을 주는 한국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이외에도 궁전 아래층에는 당시 살았던 교황들의 성격에 맞춰 차와 다과를 종류별로 파는데, 관광객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다.
서제희 교장은 “비록 한 공간이지만 역사 유적을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하는 지 엿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사례다”고 평가했다.
△붕괴현장이 예술로 승화된 생베네제교(아비뇽 다리)= 교황궁전 외 또 다른 관광명소가 ‘아비뇽 다리’로 알려진 생 베네제교다. 12세기에 처음 지어진 이 다리는 21개의 교각에 22개의 아치가 있는 900m 길이의 다리였지만, 17세기말 홍수로 파괴돼 현재는 아치형으로 된 교각 4개만 쓸쓸히 남아있다.
다리 근처에 있는 자료관에서는 옛 아비뇽의 화려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고, 아비뇽 성벽에서 연결되는 다리의 시작부분에는 생 니콜라 예배당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다리는 붕괴되고, 유적은 덩그러니 하나 남아있지만, 해가 넘어가기 직전의 다리의 모습은 다르게 다가왔다. 마치 동화 속 공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유적을 더 유서 깊게 만든다.
당시 다리 중턱에서 만난 관광객 이브 씨는 교황궁전과 론강을 바라보며 “중세시대의 유적과 풍광을 경험할 수 있다는 데 아비뇽의 매력이 있다”며 “역사유적이 매혹적인 예술품처럼 다가온다”고 말했다.
매표소에 따르면 이 다리는 연간 30~40만 정도의 관광객이 찾는다. 매표소 직원인 투르니에르 스테판씨는 “어릴 때부터 들었던 다리와 관련된 민요가 많은 관광객들을 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아비뇽 성벽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축대 중간과 매표소에는 민요 ‘아비뇽 다리 위에서’가 펼쳐져 있다. 전래되는 민속음악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사례다.
● 교황 성격 오롯이 담긴 역사 관광마케팅 '눈길'
교황의 성격을 역사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있다. 당시 교황의 성격에 맞춰 차와 다과를 다양하게 파는 가게다. 교황궁전 입구 부근에 위치해 있다.
가게의 진열대 위에는 교황의 이름이 적힌 큰 상자가 있고, 그 양 옆에는 차를 포장해놓은 종이상자가 놓여있다. 종이상자에는 교황의 성격이 묘사돼 있다. 가령 어떤 교황은 섬세하고 예민한 성격을 가졌고, 어떤 교황은 불만이 많고 다혈질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식으로 자세하게 풀어놨다.
교황의 성격에 따라 허브가 담긴 양이 다르고, 여기에 오렌지나 계피·과일 등을 첨가해 당시 교황의 취향에 맞춰서 판매한다.
이러한 점들이 관광객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주는 것처럼 보인다.
서제희 교장은 “한국도 역사 인물에 관련된 스토리를 가시화해 역사관광마케팅을 할 수 있다”며 “사료를 바탕으로 유적과 관련된 인물의 이야기를 활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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