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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古都 잠에서 깨다 ⑩ 전문가 좌담회] "역사적 가치 철저히 고증…관광콘텐츠 개발 서둘러야"

▲ 2013년 당시 익산 왕궁리 유적터 전경. 현재 국립부여문화재 연구소에서 지속적으로 발굴을 추진하고 있다.

‘백제고도 잠에서 깨다’기획취재 과정에서 문제로 지적된 부분은 유적의 보존·관리 부실과 가시적으로 보여줄 게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익산의 왕궁리와 미륵사지는 역사적인 연결고리 없이 따로 떨어져 있어 고도의 분위기를 느끼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상당히 ‘심심하다’는 평가를 하는 이유다. ‘백제고도 잠에서 깨다’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역사적 가치를 철저히 고증하고, 관광객이 볼 수 있는 가시적 관광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들은 또 역사학계와 행정이 꾸준히 연계해서 유적관련 정책방향을 개발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일시·장소 = 12월 18일 전북일보사 편집국장실

 

△사 회 = 김세희 기자

 

△토론자 = 김미란 전라문화유산연구원 상임이사, 김주성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박광수 익산시청 역사문화재과 과장, 홍경술 미륵사지유물전시관 관장

 

-사회= 지난 7월 익산의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으로 내세우기엔 아직도 많은 과제가 쌓여있다.

 

△김주성= 우리가 두 개의 세계유산을 갖고 있다는 건 자랑스럽다. 하지만 관광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두 유적지에 각각 탑 하나씩만 있고, 고고학적인 주춧돌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두 번, 세 번 오고 싶다는 생각을 갖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이런 부분 때문에 다른 지역의 백제역사유적지구와 비교해봤을 때, 평가에서 밀리고 있는 느낌이다.

 

△홍경술= 세계유산이 갖고 있는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세계유산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생각했을 때 보편적이고 후대까지 남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자치단체장들은 세계유산의 보존과 관리보다는, 그 유산을 활용한 관광마케팅에 치중하고 있다. 관리부분에 투자를 많이 해 유적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를 부각시키는 데 힘써야 한다.

 

△김미란= 등재유산으로 지역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서두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장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이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장기프로젝트를 가지고 유산자체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연구는 유산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를 복원하는 일이다. 유적은 역사성을 담보할 때, 보는 사람들에게 더 큰 파급효과를 낸다.

 

△박광수= 유네스코 세계유산 관련 행정을 담당하다 보니 할 말이 많다. 김 이사님께서는 등재 유산에 대해 학술적 규명을 바탕으로 그 가치를 높이는 게 우선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때문에 익산시에서 매년 2번 정도 전국적인 학술대회를 열었다. 앞으로도 백제학회, 한국 고대사학회 등 전국에서 열리는 역사 관련학회에 계속 참여할 예정이다. 관련 예산을 4000~5000만 원 정도 편성했다. 마한, 백제라는 틀 속에서 익산에 있는 세계유산에 담겨있는 역사적 사실과 가치를 규명해 내기 위한 학술대회를 계속하고 있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김주성 교수님께서는 미륵사지나 왕궁리 유적이 세계유산 평가를 할 때 다른 지역에게 밀리는 게 아니냐고 하셨다. 우리 역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며 실사를 잘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미국의 전문가를 2번 초청해 예비실사를 진행했다. 당시 전문가들이 익산의 문화유산을 실사할 때, 공주나 부여의 유산을 실사할 때보다 2배 이상의 시간을 투자했다. 미륵사지 유적과 왕궁리 유적이 공주 부여의 그것보다 더 역사적 가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익산 세계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통해 어떻게 지역경제를 되살리며 시민들의 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많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지역 전문가분들께서 큰 관심을 가지고 조언과 질책을 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김주성= 탑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땅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해줬다는 사실, 브랜드로서 최고의 가치가 있어서다. 하지만 익산 세계유산은 브라질의 이구아수폭포나 미국의 그랜드캐년처럼 수려한 경관을 가진 건 아니다. 따라서 그 가치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는 게 우리의 과제다. 관광객들에겐 익산과 관련된 백제의 역사보다 관광요소들이 매력을 끌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김 기자가 로마의 뜨레비 분수를 소개했었는데 사람들에겐 뜨레비 분수가 언제 어떻게 조성됐는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근처에 있는 아이스크림 집을 소개하는 게 그 곳을 갔다왔다는 좋은 증거가 될 수 있다. 즉 우리가 역사성을 부각시킨다고는 하지만 관광객들은 그런 부분에 중점을 두지는 않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샘솟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박광수= 익산 세계유산은 매장문화라 시각적인 감흥을 찾기 힘들다. 따라서 익산시에서는 ‘차세대실감형 콘텐츠사업’에 5억 원 정도의 예산을 편성했다. 3D기술을 통해 홀로그램을 만든다든지, 가상현실시스템을 구현하는 콘텐츠다. 현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옛 토목건축의 자취를 보여주는 유구(遺構)나 매장문화재 건물에 탑재하면 해당 문화유산의 가치를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될 걸로 생각한다.

 

△김미란= 두 분 말씀에 공감한다. 그래도 유산의 활용을 위해선 학문적 연구와 실용적 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 또 현재 익산시가 세계유산과 관련해 진행하고 있는 장기 프로젝트를 시민들과 공유할 필요도 있다 시민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어서다. 연구단계에서부터 시민들과 공유를 해서 함께 가자는 의미다. 물론 그렇게 되면 힘들고 더딜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우리 대에 사업을 마무리하려고 서두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밑바탕을 제대로 깔아놓는 것이 우리 세대에서 해야 하는 과제다.

 

-사회=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갔더니 수천 년 수백 년 전의 문화재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마치 고대의 도시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관광객들 역시 이런 부분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반면 한국의 경우 고대 유적들이 역사적 연결고리 없이 따로 떨어져 있어서, 고도의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다.

 

△박광수= 문화재와 사람이 어우러진 경우가 외국에는 많다. 그 자리에서 발굴이 이뤄지고, 이를 볼 수 있도록 해서 관광자원화한다. 반면 한국은 유적이 발굴되면, 주변을 철거해버리고 해당 유적만 보존한다.

 

특히 익산의 경우는 세계유산들 주변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고 각 유적간 거리도 멀다. ‘심심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주나 부여, 공주는 문화재주변에 사람이 살고 있다. 익산과 다른 지역의 세계유산을 비교할 때 이런 차이점을 고려하면서 대안을 내주셨으면 좋겠다.

 

△김주성= 익산 유적지는 앞으로 우리가 그림을 채워나갈 흰 도화지와 같다.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간의 거리는 멀다. 하지만 왕궁리 옆에는 제석사가 있다. 이 두 유적을 하나로 묶고, 앞에 있는 도로를 오밀조밀한 골목길로 꾸며보는 건 어떨지 싶다. 이후 그 골목에 상권을 들어서게 하는 방법을 제안해본다. 그리고 보석가공단지와 코스를 연결을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보석가공단지는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산업이다. 미륵사 같은 경우는 그 위의 산에 사자사가 있고, 미륵산성이 있다. 다소 거리가 있지만 옆에 쌍릉이 있다. 이 부분도 연결해볼 만하다.

 

유럽을 사례로 들어보겠다. 유명한 관광지 빼고는 많은 부분들이 ‘골목관광’이다. 골목길을 따라가며 느끼는 정취를 많이 강조한다. 익산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다. 김미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연구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익산시에서 홀로그램을 활용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복원이 잘못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때 연구를 바탕으로 수정 보완한 뒤,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재복원해야 한다.

 

△홍경술= 아직 IT기술이 유물을 완전히 복원할 수 있는 단계에 올라오지 못했기 때문에 홀로그램을 ‘보여주는 것’은 결국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주에서 사용하는 경우를 봤는데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매장문화와 유구를 연결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 진실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전문해설사가 사료를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효과가 있다.

 

스토리텔링도 다양화해야 한다. 백제 이외 다른 시대와 연관 지은 역사 이야기.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 등을 소재로 쓸 수 있다.

 

△김미란= 행정에서 정책을 입안할 때, 학계와 연계해 꾸준히 갈 필요가 있다. 유적 관련 행정에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하면서, 앞서 나온 대부분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박광수= 동감한다. 김이사님 말대로라면 가장 바람직한 유적 관련 행정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익산시가 큰 틀에서는 역사와 행정이 연계해서 가고자 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현재 5년에서 10년까지의 큰 플랜을 가지고 있다. 익산이 지향하는 방향은 역사문화도시다. 2차년도 사업으로 ‘역사문화도시를 위한 기본 연구 용역’을 국토학회하고 같이 하고 있다. 도시계획측면에서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사이의 빈 공간을 어떻게 채워 나가야 할 것이냐’, ‘도시 전반차원에서는 어떻게 가야 하는가’ 등에 대한 관련 용역 등을 추진하고 있다.

 

△김주성= 익산은 ‘천도설’이 있을 정도로 백제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 왕궁리와 미륵사지가 그것을 증명한다. 무왕이 사비와 익산을 왕래한 통로, 즉 어도(御道)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도시계획 속에 이런 역사적 가치가 묻히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박광수= 공감한다. 기존의 도시계획은 역사성에 대한 고려 없이 구획을 바둑판처럼 나누고 도시를 만들어나갔다. 적어도 익산이 그러면 안 된다. 도시 계획을 입안할 때, 어도를 찾는 건 우리의 숙명이다. 역사문화도시로 거듭나려면 이런 부분을 장기 계획 속에 넣어놔야 한다. 유적과 유적이 연계돼 역사성과 고도의 정체성이 살아있는 길을 만들 계획이고, 이런 관점에서 용역을 진행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사회= 한국도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백제역사유적지구 통합관리사업단’을 만든 뒤 체계적으로 관리하고자 하지만, 다소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홍경술= 본래 취지는 백제역사지구가 있는 지역을 한데 묶어 관리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각 자치단체에서 진행하는 유적 보존관리와 관광마케팅의 성격이 달라 통합하기가 힘들었다. 오히려 통합관리사업단에서 전담하다보면 자치단체의 실정을 모르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 힘들다.

 

△박광수= 통합관리사업단의 업무를 정확히 알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현재 사업단은 백제역사유적지구의 통합 홍보나 모니터링만을 담당한다. 문화재 현장에서 이뤄지는 사업은 안 한다. 즉 전체 사업을 담당하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는 얘기다. 전체적인 고도 보존과 세계유산 통합 검사는 문화재청에 담당하고 있고, 유적관리와 관광마케팅은 자치단체에서 담당한다. 그러나 지역민들은 큰 기관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 전북과 충남의 백제역사유적지구가 한 몸으로 가야 세계유산으로 가치를 빛낼 수 있다는 게 태생적 기반이자 특징인 것 같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각자만의 가치를 구현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를 빛낼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김주성= 7세기 백제문화의 예술적 완숙미가 왕궁리와 미륵사지에 집약돼 있다. 그 가치를 차별성 있게 드러낼 필요가 있다. 당대 신라와 고구려의 불상과 대비시키면 백제불교미술의 우수성을 확연히 볼 수 있다. 또 동아시아에서 미륵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도 계속 탐구한다면 충분히 가치가 조명될 수 있다고 본다.

 

△홍경술= 흔히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공주나 부여는 패망 역사라고, 부정적인 기억만 있는데 익산의 미륵사지나 왕궁은 무왕이라는 절대적인 부흥기를 가지고 있었을 때이다. 최전성기의 문화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마한에서 백제로 가는 연결고리가 남아있기도 하다. 또 공주나 부여보다도 익산에 대한 일본사람들의 관심이 높다. 익산에 대해 그런 긍정적인 평가와 관심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미란= 유럽의 문화유산은 시민들의 삶속에 녹아있는 문화유산들이다. ‘우리는 사이트만 있는 문화유산이라 강점을 살려내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미륵사지는 백제 고도의 정신문화가 담겨있다. 미륵신앙 관련 종파인 요식종인데, 관련 사찰들이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김제 금산사다. 현대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정신문화를 조명해서 부각시키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박광수= 우리 익산시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제시됐다고 본다. 현재 익산시가 하고 있는 역사문화콘텐츠 사업에 관해서는 문화재청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기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실무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전북도의 지원이 미흡한 것 같다. 가령 미륵사지와 금마 사이에 존재하는 석상들이 풍수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가치가 있는데 정작 탐방로가 없다. 이를 연계하는 도로가 지방도다. 세계유산도 됐고 전북을 대표하는 관광지라면 전북도에서 탐방로 조성 등 적극적인 지원을 해줘야 하지 않나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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